낭만적인 기차여행
홍 재 석
화창한 봄 날씨에 환상적이며 달콤한 기차여행은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다. 좋아하는 연인이나 다정한 친구와의 밀월이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 함께 앉아 손잡고 차창 너머로 스쳐가는 풍광은 더욱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둘만의 다정다감한 대화는 말을 하지 안 해도 다보고 알리라. 차내의 포근하고 부드러운 안정감이 풍기는 기차여행은 기쁨과 사랑마저 실어다준다.
기차의 내력은 영국의 “스티븐슨”이 처음 발명하였다. 실용화한 것도 영국이 가장먼저 기적소리를 울렸다. 우리나라 고종황제(1899)때 일본인의 기술로 노량진에서 제물포까지 경인철도를 처음 개통했다. 6년 뒤에는 서울 부산 간 경부선철도가 개통되었다.
그러나 경술년 국치로 우리나라의 국권을 일본에 빼앗겼다. 생각할수록 천벌의 천인공노할 통탄할 일이 아닌가. 그동안 113년이나 되도록 기차는 우리들의 발이 되여 주었고, 추억에 남는 기적소리는 마음속에 낭만이었다.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했으며, 희로애락의 소식을 실어다주고 있는 선망의 철마가 아닌가.
또한 우리나라 근대화 산업의 원동력이며 대동맥으로서, 전 국토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일본의 착취정책으로 우리민족은 고충을 당하였지만 당시 철도건설은 그래도 개명(開明)의 횃불이 되었으리라. 나도 중학교 때 전차로 서대문까지 와서, 서울발 마지막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피난 온 추억이 생생하다. 배 한척 없는 한강을 어찌 넘어왔으리. 그 시절 휴전 후 서울로 되돌아가지 못한 판단의 잘못이 못내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나는 어제 벗과 함께 오랜만에 청주역에서 제천까지 무궁화호열차로 여행길에 올랐다. 객차 내에는 조용하고 한적했다. 차내에서 판매원의 정겨웠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객차 4량의 중간에 무인 자동판매기 코너가 따로 설치되어 있었지만, 이용객은 보이지 않고 전시품 같았다. 역구내나 차내의 시설은 훌륭하며 경로우대를 받았지만 왠지 쓸쓸한 분위기 이였다. 다행이 말벗이 차내 식을 준비하여 왔기에, 심심찮게 먹으면서 옛 이야기로 정담을 나누웠지. 조용한 분위기에서 들려오는 레일소리는 경쾌한 장단으로 귓전을 울리니 출근하던 젊은 시절이 불현듯 회상되는구려.
사람의 마음은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감정을 알 수 있지 않는가. 우리의 눈 맞춤도 어느 때보다 즐거움이 가득했다. 오늘따라 날씨마저 시샘을 하는지 냉랭한 기운이 우리의 몸을 더 밀착시켜준다. 느끼는 감성은 깊어만 갔고 어느덧 종착지 제천역에 도착하였다.
이 고장애 온 첫인사로 역구내 한약재 전문판매점에서 따뜻한 십전대보탕 차를 한잔씩 마셨다. 노곤하던 온몸이 풀리니 잠시 편안하게 쉬여갔다. 이곳의 명승지인 의림지 관광길은 택시로 10분여 거리 이였다. 유구한 세월 속에 숨을 쉬고 있는 신라시대 수리시설로, 경관은 방죽의 푸른 소나무 가지의 고고한 운치처럼 이름다운 경치로다. 기사의 친절한 안내로 곰치나물밥의 점심은 다양한 산채의 오묘한 맛을 처음 먹어보았다. 오는 길에는 차내에서 도착지를 오송역으로 연장하였다. 역사 내를 사방 둘려보니 웅장한 현대식 시설은 청주시와 세종시의 관문 역으로서 보람과 희망을 안겨주기에는 응당하리라.
지난날 나는 6,25사변 후 고등학교시절 고향에서 기차통학을 하였다. 어느 여름날 긴 장마철 하교 길에, 무연탄증기차의 객실 안에서 위험한 열차 탈선사고를 당했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열차는 요동을 친다. 차내의 승객은 혼비백산하고 선반 위의 물건은, 제멋대로 떨어지니 아비규환이다.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몇 차례 쿵쿵하는 소리는 공포감을 더했고, 중간에 있던 두량의 객차는 넘어졌다.
친목은 산산조각 부서지고 기차 바뀌는 땅속에 깊숙이 박혔으며, 철길은 엿가락같이 휘어져 있었다. 다행이도 인명피해는 많지 않았으나 그때 심정을 어이 다 표현하랴. 그 위험한 어려움과 가난의 서러움을 다 겪어본 아련한 추억은 나의 황혼길 인생을 뒤돌아보게 한다.
나는 이번의 기차여행을 하면서 열차시간 문의를 해보았다. 114에 전화를 몇 차례 하였지만 대답은 1588-7788이었다. 전국 동일등록 이라 계속 통화중이 아닌가. 하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가서 확인을 하고 왔다. 물론 코레일 의 사정도 있겠지만, 관내 역 전화와 시간을 가서 물어야함은 아이티시대에 이해가 안 된다. 버스는 10분 20분 간격이지만 기차시간은 다르지 않는가. 자기들의 편의만 생각하지 말라. 승객을 배려하는 발신자부담 자동응답이라도 낮시간대의 서비스는 있어야만 되지 않을는지……
이제는 우리나라 철도가 다시 도약하려면 대모보다 피나는 자구책 노력이 앞서야만 하리라. 기차의 이용자와 물동량이 점차 널어날 것이니 미래는 밝다. 지금도 많은 관광열차의 있음은 알지만 시간은 모른다. 하지만 지구 둘레의 4분의 1이나 되는 시베리아 철도와 연계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
앞으로는 만화속의 은하철도 999 보다도 더 즐거운 여행으로, 꿈과 희망을 실어다 주는 그런 기차를 언제나 타볼수 있을는지 기대해보리라. 2012.5.11 충북선 열차를 타 보고서
첫댓글 추억을 마시며 아름다운 기차여행을 하셨군요, 이제 기차여행도 옛날의 정감은 없어졌지만 원할한 승객 운송과 물류 운송 수단으로 치중되어 늘어나는 건 간이역이고, 느릿느릿 차창 밖으로 손짓하던 인여들이 사라졌지요. 저는 어릴적 어머니를 따라 호남선 완행열차를 많이 타고 다녔지요, 그때, 아마도 문학 소년의 꿈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ㅎㅎㅎ
요즘 우리 회장님, 많은 글을 쓰시네요, 열정이 대단하십니다요.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되시길 바랍니다.
"만화속의 은하철도 999 보다도 더 즐거운 여행으로, 꿈과 희망을 실어다 주는 그런 기차를 언제나 타볼수 있을는지." 선생님이 여행하신 열차가 999 열차는 아닌지요. 아름다운 노년,~뵙기에 좋습니다.
선생님 존경스럽습니다. 글을 읽고 기차사고를 당하셨던 그 부분에 마음이 찡했습니다. 기차를 타는 설레임, 추억을 잘 표현하셨네요. 저도 이런 마음이었는데... 선생님은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정도로 선생님의 수필은 뜻이 깊고 높습니다 후배들을 위해서 이런삶의 진지한 모습에 대해 많이많이 써 주십시요 그리고 선생님은 항상 오십세 청년이십니다 건강하시니 감사하고 이렇게 또 저희와 함께 하시니 감사합니다 . 더욱 행복한나날 되십시요. 글 잘 읽고 갑니다
글을 읽으며 옛 영화를 감상하는 것 같았습니다.항상 감동적인 글 감상하고 가게 해주시어 감사합니다,
위험한 어려움과 가난의 서러움을 다 겪어본 아련한 추억은 나의 황혼길 인생을 뒤돌아
'사람의 마음은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감정을 알 수 있지 않는가.
우리의 눈 맞춤도 어느 때보다 즐거움이 가득했다. 오늘따라 날씨마저 시샘을 하는지 냉랭한 기운이 우리의 몸을 더 밀착시켜준다...'
선생님 저도 덩달아 설레이면서 감상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감정을 알 수 있지 않는가.
우리의 눈 맞춤도 어느 때보다 즐거움이 가득했다.
오늘따라 날씨마저 시샘을 하는지 냉랭한 기운이 우리의 몸을 더 밀착시켜준다."
선생님은 많은 시니어들에게 대리 만족을 주십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