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퍼거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아버지이지만 동시에 애버딘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의 전설적인 골키퍼 짐 레이튼, 에릭 블랙, 마크 맥기등이 있었다.
1981~1982시즌 스코티쉬컵 우승자격으로 출전한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에 출전한 애버딘은
1라운드에서 스위스의 시옹과 맞붙어 각각 홈앤드어웨이에서 7:0, 4:1로 대승을 거두며 가볍게 통과했다.
하지만 2라운드였던 알바니아의 디나모 티라나와의 경기에서 1,2차전 합계 간신히 1:0으로 통과했다.
3라운드에선 폴란드의 레흐 포즈난을 1,2차전 합계 3:0으로 승리하며 마침내 8강에서 독일의 거함
바이에른 뮌헨과 맞붙게 되었다.
당시 뮌헨은 파울 브라이트너, 칼 하인츠 루메니게, 한스 푀글러, 아우겐탈러등이 버티고 있던
유럽 최고의 팀중 하나였다. 당시 유럽 미디어 대부분은 뮌헨의 4강진출을 낙관 했으며 애버딘의 유럽무대 도전은
여기서 멈출것이라는게 대다수 미디어의 의견이었었다.
1980년 3월, 뮌헨의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스코틀랜드의 작은 거인 애버딘은 독일의 거함을 상대로
기적적인 0:0 무승부를 이루어냈고 피토드리에서 열릴 애버딘의 홈경기에서 준결승진출팀이 결정될 예정이었다.
피토드리에서 열린 2차전, 뮌헨은 브라이트너의 프리킥을 아우겐탈러가 득점으로 연결시키며 1:0으로 앞서나갔다.
여기서 만약 애버딘이 동점골을 넣었더라도 애버딘은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탈락할 예정이었다.
전반 종료직전 애버딘은 닐 심슨의 기습적인 중거리슛으로 동점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후반전초반 다시 푀글러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2:1로 뒤지게 되었다.
이대로 가면 바이에른 뮌헨의 4강행을 확정적이었으나 퍼거슨은 포기하지 않고 동점골의 주인골 닐 심슨을 빼고
존 휴이트를 투입했다. 장신공격수 휴이트의 투입이후 지친 바이에른 선수들은 당황했고 결국
센터백 알렉스 맥리쉬가 프리킥 상황에서 헤딩으로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불과 30초후, 애버딘은 에릭 블랙의 헤딩슛을 바이에른의 골키퍼 뮬러가 선방해냈으나 볼이
존 휴이트의 발앞에 떨어졌고 휴이트는 그대로 결승골을 터트린다.
(1983년 3월 애버딘과 뮌헨의 컵 위너스컵 8강 2차전은 피토드리 역사상 최고의 경기로 꼽힌다.)
4강전 상대는 벨기에의 바터셰이였고 피토드리에서 열린 1차전에서 5:1로 가볍게 승리했고 2차전은
1:0으로 패했으나 애버딘이 위너스컵 결승이 열릴 예테보리로 가는데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예테보리에서 열리는 결승전에서 애버딘의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로 결정되었다.
사실 레알 마드리드라는 팀은 알렉스 퍼거슨의 축구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영향을 끼친 팀이라고 할수있다.
올드축구팬들이 항상 역대 유러피언컵 최고의 결승전이라고 말하는 경기가 있을 것이다. 바로 1960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햄튼파크에서 열렸던 레알 마드리드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결승전이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소령" 페렌치 푸스카스가 4골 1어시스트,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헤트트릭을 기록하는 투맨쇼를 펼치며 프랑크푸르트를 7:3으로 대파하며 유러피언컵을 차지했었다.
당시 퀸스파크의 연습생이었던 소년 알렉스 퍼거슨은 연습생신분으로 햄튼 파크에서 직접 그 경기를 보았고
당시 유럽에서 위세를 떨치던 프랑크푸르트의 우승을 생각했던 소년 퍼거슨은 그날 디 스테파노의 플레이에 매혹되어
언젠가 유럽 정상에 오르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바로 23년후, 퍼거슨은 바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감독으로서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와 유럽 정상을 놓고
예테보리에서 한판 겨루게 되었다.
알렉스 퍼거슨은 경기전 그의 스승 족 스테인의 조언대로 디 스테파노에게 위스키 한병을 선물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서독 대표팀의 기둥이자 프리메라리가 최고의 센터백 울리 슈틸리케가 7주간의 부상
을 당했었으나 결승전에 맞춰 막 복귀한 참이었다.
실제로 슈틸리케는 그날 결승전에서 7주간이나 이탈해있던 선수라는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끈질긴 수비를
펼치며 경기를 연장전까지 이끌고 갔던 1등공신이었다.
전반전 애버딘은 스트라칸의 코너킥을 에릭 블랙이 밀어넣으며 거함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선제골을 터트렸다.
북해를 건너온 1만 4000명의 애버딘팬들은 흥분했고 레알 마드리드의 벤치는 침울 해졌다.
하지만 잠시후 알렉스 맥리쉬의 백패스 실수는 마드리드의 산티아나에게 연결되었고 골키퍼 짐 레이튼은 그만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후아니토는 가볍게 성공시키며 동점을 만들어냈다.
슈틸리케의 끈질긴 수비에 막힌 애버딘은 결국 경기가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연장전에서 애버딘의 마크 맥기는 미친듯이 질주했고 그는 교체투입된 존 휴이트를 바라보며 크로스를 올렸다.
휴이트는 그대로 달려들어가며 슈틸리케와 파코 보넷 사이에서 헤딩슛을 성공시켰고 애버딘은 마침내
레알 마드리드까지 무너뜨리며 창단이후 처음으로 유럽 정상에 등극했다.
(레알 마드리드를 침몰 시킨 존 휴이트의 결승 헤딩골. 독일병정 슈틸리케도 어쩔수 없었던 애버딘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이다.)
훗날 알렉스 퍼거슨은 당시 휴이트가 결승골 당시 자신의 지시대로 곡선으로 들어가지 않고 직진으로 질주해서
벤치에서 마구 욕을 퍼부어 댔으나 곧바로 결승골이 터졌다고 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우상이었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맞붙어 얻어낸 유럽 챔피언 타이틀이었다.
퍼거슨은 자신의 축구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우승을 애버딘과 함께한 83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우승으로 꼽은바 있다.
당시 스코틀랜드 북서부의 모든 학교는 애버딘의 우승을 기념해 휴교령을 내렸고 애버딘 시내는
유럽을 정복한 영웅들의 귀환을 환영하기 위해 50만 인파가 몰려들었었다고 한다.
(영웅의 귀환, 알렉스 퍼거슨이 마침내 유럽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한편, 잉글랜드의 맨체스터에선 이날 애버딘의 우승에 감명받아 몰락할 명문의 재건을 맡아줄 적임자로
알렉스 퍼거슨을 꼽았고 1986년 가을 마침내 그를 올드트래포드로 데리고 와서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클럽으로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