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겨루다
성병조
(우리말 겨루다) 서울 아들 집이다. 망설이다 상당한 용기를 가지고 이 글을 쓴다. 실력은 변변찮으면서 용기가 넘쳐서일까. 항상 짝사랑 해오던 KBS ‘우리말 겨루기’에 또 도전하고 말았다. 이제는 눈 뜨고도 코 베어 간다는 서울이다. 대구서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겨우 예선합격에 만족해야 했던 사람이 서울까지 진출한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말 달인들은 과연 어떤 모습이며, 내 실력은 어디쯤일까? 뜻을 이뤄 막상 출연하라고 하더라도 모자라는 실력으로 망설일 처지에 욕심을 부리다니. 다행히 예심 통과하여 면접을 보았지만 두 차례 예심 통과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최종 합격자 발표는 며칠 기다려야 하지만 별 기대는 않는다.
(서울은 신기하다) 나이 듦은 숨길 수 없나 보다. 예전에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나도 똑같이 하고 있으니 말이다. 서울에서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신기하다. 주말 백화점에 들르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수없는 인파, 과연 저들은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가는가. 다들 어렵다고 하지만 이곳만큼은 모두 행복감으로 넘치는 듯하다. 옛 어른들의 말씀이 자꾸 생각난다. 어떤 직장이 있어 일상을 이어가며 얼마만큼 만족하며 살아갈까. KBS 방송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성원과 각종 프로에 대한 궁금증도 예외가 아니다. 출입구는 앞뒤 두 곳뿐이다. 마침 공개홀에서 진행되는 리허설에 기웃거렸다가 쫓겨났지만 보면 볼수록 신기한 게 서울이다.
(사서 고생?) 요즘 나는 색다른 고민에 빠져있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실로 난감한 일이다. 실체를 분명히 밝히기가 뭣하여 좀 애매하게 기술할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작은 소망은 있기 마련이다. 항상 짝사랑만 해오다 덤벙 뛰어들고 말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성과가 다가왔다. 준비된 사람이 아니라 에멜무지로 해 본 일이 사고(?)를 친 것이다.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우선은 기쁜데 그 다음이 문제다. 첩첩산중, 설상가상이다. 그냥 참가만 해도 족한 일인데 욕심이 내 어깨를 누른다. 더 이상 탐내지 않아도 좋을 거라며 자위해 왔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다. 애는 쓰도 성과가 보이지 않으니 마음만 자꾸 조급해 진다.
(신나는 인터뷰) 방송사서 녹화 일을 알려온 후 조바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구성작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쯤 시간을 내주면 한 시간 반쯤의 전화 인터뷰를 하고 싶단다. 예심 접수 때부터 시작하여 면접 때도 열심히 컴퓨터 입력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더 필요한 한 게 있나 보다. 출연 시 진행자가 묻기 위한 자료 수집이다. 나의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샅샅이 다 파헤친다. 이렇게 상세하게 물어야만 진행이 가능한가. 출생지서부터 성장 과정, 직장 생활, 그리고 가족상황까지 거침이 없다. 그들의 용의주도함에 혀를 두른다. 맞장구를 잘 쳐 주는 바람에 예상을 뛰어넘어 무려 세 시간 반이나 걸렸다. 정답에는 약해도 말만은 자신 있는데.
(아는 대로 성실히 답변) 정치인이나 재벌들이 경찰, 검찰에 조사받기 위해 갈 때면 꼭 기자들이 따라 붙는다. 궁금한 것을 묻기 위함이다. 대표로 선정된 기자 두어 명이 물으면 대부분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고 대답한다. 여타 질문이 이어져도 앵무새처럼 이 답변만 반복한다. 과연 그들이 한 점 숨김없이 성실하게 답하는 것일까? 나중 결과는 영 딴판일지라도 일단 이 답변이 유리한 걸 모두가 안다. 나는 포토라인에 서는 것은 아니지만 머잖아 이런 지경에 놓이게 된다. 만인이 보는 곳이라 답변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나에게 이런 질문이 다가 온다면 "아는 대로 숨김없이 성실히 답하겠습니다" 고 크게 외칠 생각이다.
(도전이 없으면) 흔히 하는 말로 '가만히 있으면 2등' 이란 게 있다. 나서지 않고 조용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살다 보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더러 있다. 그렇다고 '복지부동" 아니면 '복지 안동' 하고 있는 게 좋을까. 포항 포스코 입구에는 대형 정문이 세 곳 있다. 정문 위에 내건 대형 슬로건이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 이라고 적혀 있다. 지나는 길이면 항상 여기에 눈길이 간다. 창의란 도전과 일맥상통할 지도 모른다. 도전하지 않고 얻는 수확은 거의 없을 게다.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모든 성과의 뒤에는 용기 있는 도전이 수반된다. 나는 요즘 어쩌다 덤벼든 도전 앞에서 색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도전 끝나다)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있을까. 결과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오랜 준비를 한 것도 아닌 '어공'처럼 뛰어든 게 아니었던가. 아는 것이 생각나지 않아서, 벨 누르는 게 늦어서, 젊은 사람들의 순발력이 좋아서 등의 변명은 필요 없다. 프로가 좋아서, 그냥 짝사랑 해오다 저지른 ‘사고’에 불과하다. KBS 우리말 겨루기 녹화가 어제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 무려 7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방송 준비서부터 녹화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복잡 세밀한 절차를 거치는 줄 경험 않고는 이해 어려울 터이다. 비록 기대에 부응치는 못했지만 도전의 꿈을 달성한 것만으로 족하다. 어설픈 몸짓을 맘껏 펼쳤다. 본 방송은 2019. 3. 18 저녁에 예정되어 있다.
(엄지인 아나운서) 나는 KBS 우리말 겨루기 진행자인 엄지인 아나운서를 무척 좋아한다. 84년생, 연세대학교를 나와 2007년 KBS 33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 그동안 체험 삶의 현장, 미녀들의 수다, 뉴스9 등을 진행했다. 2014년 결혼,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방송 참여도 중요하지만 제작 과정과 진행 솜씨에 눈 돌릴 때가 많다. 프로그램 진행 과정을 보면 그들의 전문성과 열정을 쉽게 알 수 있다. 엄지인 아나운서는 이런 점에서 아무리 후한 점수를 줘도 좋을 성싶다. 물론 구성 작가가 준비한 자료를 충분히 숙지하였겠지만 출연자의 면면을 훤히 꿰뚫고 있는 모습이 감동 적이다. 아무리 노련한 진행자라 하더라도 준비가 부족하면 금방 표가 나고 만다. 그제 스튜디오 녹화 때 프로 근성이 듬뿍 풍기는 매끈한 진행, 미소 천사인 그녀를 보면서 프로는 어떠해야 하는 지를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