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144)회
한편,노준의는 점을 본 이후로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고 좌불안석 이었다.
어느 날 더 이상 참지 못하고,일하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잠시 후 모두 모였는데,그 가운데 집안일을 주관하는 우두머리 이고는 원래 동경 사람인데,아는 사람에게 투신하고자 북경에 왔다가 찾지 못하고, 노원외의 집 앞에 쓰러졌다.얼어 죽을 지경에 이른 그를 노준의가 구하여 집안에서 요양하게 해 주었다.
그가 근면하고 신중하며 글씨도
잘 쓰고 셈도 잘 해서, 집안의 사무를 맡겼다.5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를 일꾼의 우두머리인 도관에 임명하여, 집 안팎의 모든 일을 그에게 맡겼다.
수하에 4,50명의 일꾼들이 있었으며, 집안사람들은 모두 그를 이도관이라
불렀다.그날 일꾼들이 모두 이고를 따라 대청 앞으로 와서 인사했다.
노원외가 한번 둘러보고는 말했다.어찌하여 그는 보이지 않느냐.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한 사람이 계단 앞으로 달려왔다.키는 6척이 넘고 나이는 24~5세쯤 되었다. 그는 북경 토박이인데 어릴 때 부모를 모두 잃고 노원외의 집에서 자랐다.
그의 살결이 눈처럼 흰 것을 보고, 노준의가 솜씨 좋은 장인을 불러 온몸에 꽃 문신을 새기게 하여 마치 옥기둥에 비취를 장식한 것 같았다.
몸에 새긴 문신을 비교하자면 그 누구도 그를 따라올 수 없었다.꽃 문신만 멋진 것이 아니라,피리도 잘 불고 거문고도 잘 타고 노래도 잘하며 춤도 잘 췄다.
한 개의 글자를 나눠서 하나의 문장으로 만드는 글자 놀이나, 앞 문장의 끝 단어를 이어 문장을 짓는 유희에도 뛰어나, 못하는 것이 없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없었다.
게다가 각 지방의 사투리나 갖가지
기예를 지닌 사람들의 전문적 용어도 잘 구사할 줄 알아, 그에 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석궁을 가지고 다녔는데,끝이 세 가닥인 짧은 화살을 사용하여 교외로 사냥을 나가면 백발백중이었다.사냥이 끝나고 돌아올 때면 적어도 작은 짐승 백여 마리를 잡아 왔다.
활쏘기 대회에 나가도 걸린 상금은 모두 그의 차지였다.게다가 아주 영리하여 하나를 말해 주면 열을 알았다.이름은 연청 인데,북경성 사람들은 모두 그를 팔방미인 이라 하여 낭자 연청이라 불렀다.
연청은 노준의의 심복이었기 때문에,대청에 올라와 인사했다.일꾼들이 모두 두 줄로 서 있는데,이고는 왼쪽에 서고 연청은 오른쪽에 섰다. 노준의가 말했다.내가 지난번에 운명을 점쳐 보았는데,백일 이내에 피를 흘릴 재앙이 있다고 한다.
동남쪽 천리 밖으로 몸을 피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내가 생각해 보니,동남방 으로 가면 태안주가 있다.그곳의 동악 태산은 천제인성제 의 금전이 있는데, 천하 인민의 생사와 재액을 주관하는 곳이다.
나는 그곳에 가서,첫째는 향을 피워 내 죄를 없애고,둘째는 재앙으로 부터 몸을 피하고, 셋째는 장사를 하면서 바깥 경치도 구경 하려고 한다.
이고!자네는 수레 10량을 준비하여 산동의 화물을 실어 두게. 그리고 행장을 수습하여 나와 함께 가는거야.연청은 집안을 잘 관리하도록 해라..창고 열쇠는 이고에게서 인수해라.사흘 안에 출발하겠다.연청이 말했다.
주인님이 틀렸습니다.속담에 ‘점괘를 팔 때는 말을 돌려서 한다고 했습니다.
점쟁이의 허튼 소리를 믿지 마십시오.집안에 있는데 두려울 것이 뭐 있습니까.
노준의가 말했다.내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넌 나를 거역하지 마라.만약 재앙이 닥쳐오면,그때는 후회해도 늦다.
연청이 말했다.
주인님은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여기서 산동 태안주로 가려면 양산박을 지나가야 합니다.
근래 양산박에는 송강 이라는 도적이 있어 민가를 약탈하고 있는데,관병이 체포하려고 해도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주인님이 향을 피우러 가시겠다면,
태평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가십시오.지난번 점쟁이의 헛소리는 믿지 마십시오. 어쩌면 양산박의 나쁜 놈들이 점쟁이로 가장하고, 주인님을 선동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 제가 집에 없었던 것이 애석합니다.
제가 만약 집에 있었다면 몇 마디 말로써 그 점쟁이의 정체를 밝혀 웃음거리로 만들었을 겁니다.노준의가 말했다.너희는 헛소리를 지껄이지 마라.누가 감히 나를 속인단 말이냐 양산박의 도적놈들이 뭐 가 대단하냐.
내가 보기에, 그놈들은 초개같은 하찮은 놈들이다.내가 가서 그놈들을 붙잡아,내가 지금껏 배운 무예를 천하에 드날린다면 진짜 사내대장부가 되지 않겠느냐!.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병풍 뒤에서 한 여인이 나왔다.
그녀는 노원외의 부인으로서 나이는 25세였으며,노준의에게 시집온 지 5년이 되었다.부인 가씨가 말했다. 여보! 당신이 하는 말을 다 들었습니다.예로부터,1리만 밖으로 나가도 집안에 있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점쟁이의 헛소리를 듣지 마십시오.바다 같이 넓은 가업을 버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호랑이굴이나 용이 사는 못 같은 곳에 가서 장사를 하려 하십니까.집안에서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심을 줄여 고요하게 있으면 절로 무사하게 될 것입니다.
노준의가 말했다.당신 같은 여인이 무얼 알겠소.있다고 믿는 것이 낫지, 없다고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오.자고로 화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니, 필시 길흉이 있는 것이오.내 뜻은 이미 결정되었으니,너희들은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마라!
연청이 다시 말했다.저는 주인님 덕분에 조금 이나마 봉술을 배웠습니다.자랑하려는 것은 아니고,주인님을 수행하다가 노상에서 도적이라도 만나게 되면 4~50명 정도는 해치울 수 있습니다.
이도관은 남아 집안을 보살피고, 제가 주인님을 모시고 가겠습니다.
노준의가 말했다.내가 장사하는 데에 모르는 것이 있어,이고를 데려 가려고 하는 것이다.그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데려가는 것이고, 나대신 힘을 써야 할 일은 너에게 맡기는 것이다.
장부 관리는 다른 사람 에게 맡기되, 집안일은 네가 주관하도록 해라.이고가 말했다.소인은 근래 발에 무좀 증상이 심해서 먼 길을 걷기가 힘듭니다.노준의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천일 동안 병사를 양성하는 것은 하루를 쓰기 위해서 라고 했다! 내가 너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했는데,너는 무슨 핑계가 그리 많으냐!누구든 나를 가로막는 자가 있으면,내 주먹맛을 보게 될 것이다.
이고는 깜짝 놀라 얼굴이 흙빛이 되었고, 아무도 다시는 말하지 못하고 모두 흩어졌다. 이고는 분을 참으며 소리를 삼키고,행장을 준비했다.수레 10량을 마련하고,10명의 수레꾼도 부르고, 수레를 끌고 갈 4~50마리의 말도 끌고 왔다.행장과 상품도 수레에 실어 준비를 마치자, 노준의가 친히 점검했다.
사흘째 되는 날,여행길의 무사함을 빌면서 귀신의 형상을 그린 종이를 불사르고,집안의 모든 사람을 불러 한 사람씩 할일을 분부하였다.
그날 저녁 먼저 이고와 일꾼 둘이 수레를 끌고 성을 나갔다.부인은 수레가 나가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다음 날 새벽,노준의는 목욕하고 새 옷을 갈아입고 아침밥을 먹은 다음,무기를 꺼내 들고 후당으로 가서 조상에게 향을 피워 올리고 하직인사를 했다.
문 앞에서 부인에게 말했다.집안을 잘 보살피시오.길어야 3개월 이고,짧으면 4~50일이면 돌아올 것이오.부인 가씨가 말했다 도중에 항상 조심하시고, 서신을 자주 보내 주세요.
연청도 절을 올리자, 노준의가 분부했다.
너는 집에 있으면서 모든 일을 직접 살피고,기생 집이나 오락장에 가서는 안 된다.연청이 말했다.주인님께서 이렇게 길을 떠나시는데,제가 어찌 감히 태만 하겠습니까.
노준의가 곤봉을 들고 성 밖으로 나가자,이고가 맞이했다.노준의가 말했다.너는 일꾼 둘을 데리고 먼저 가다가,깨끗한 객점이 나오면 밥을 지어 놓고 기다려라.
그리고,수레꾼들이 먼저 밥을 먹게 하여 노정이 지체되지 않도록 해라.이고는 몽둥이를 들고 일꾼 둘과 함께 먼저 떠나고, 노준의는 여러 일꾼들과 함께 수레를 따라 걸어갔다.도중에 풍광이 좋고 길이 넓고 평탄한 것을 보고, 노준의는 기뻐하면서 말했다.
내가 집에만 있었다면 이런 좋은 경치를 어찌 볼 수 있었겠는가.40여 리를 가자,이고가 주인을 맞이하였다.점심을 먹고 이고는 또 먼저 떠났다.다시 또 4~50리를 가서 객점에 당도하자, 이고가 수레와 인마를 맞이하여 투숙 하였다.
노준의는 객점 방안으로 들어가 곤봉을 기대놓고 삿갓을 벽에 걸고
요도를 풀고서 휴식을 취했다.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밥을 지어 먹고 수레를 끌고서 다시 길을 떠났다.이렇게 며칠 동안 밤에는 객점에서 자고 새벽에 일어나 길을 떠났다.
어느 날 한 객점에 투숙하였다가 아침에
일어나 떠나려 하자,점원이 노준의에게 말했다.나리께 알려드립니다.
이 객점에서 20리를 채 못 가면 양산박.입구를 지나게 됩니다.
산 위에 있는 송공명 천왕이 왕래하는 길손을 해치지는 않지만, 나리 께서는 조용히 지나가시되 좀 이상한 일이 있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노준의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그렇구먼.노준의는 일꾼을 불러 옷상자를 가져오게 하였다.상자를 열어 보따리를 하나 꺼내, 그 안에서 흰 깃발 네 개를 꺼냈다.
점원에게 대나무 장대 네 개를 얻어 깃발을 하나씩 매달 았는데,깃발에는 큰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강개한 북경 노준의 화물을 싣고 고향을 떠나 멀리 왔네,
오직 도적을 잡겠다는 마음으로 왔으니.
이제 비로소 남아의 뜻을 나타내노라.
이고를 비롯한 사람들이 그걸 보고 일제히 아이고!’ 비명을 질렀다.
점원이 물었다.나리께서는 산 위의 송대왕과 친분이 있으십니까.노준의가 말했다.나는 북경의 부자인데,그런 도적놈들과 무슨 친분이 있겠느냐!
나는 특별히 송강이란 놈을 잡으러 온것이다.나리께서는 목소리를 낮추십시오.제발 소인까지 연루되게 하지 마십시오.괜한 장난 하지 마십시오.
1만 인마가 있다 하더라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합니다.방귀 뀌는 소리 마라! 네놈들도 모두 도적놈과 한 패로구나!점원은 ‘아이고!’ 비명을 질렀고, 수레꾼들은 모두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이고가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주인님! 저희들을 가련히 여기시어 목숨을 부지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극락왕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노준의가 소리쳤다.
너희들이 뭘 알겠느냐!제비나 참새 같은 작은 새가 어찌 기러기나 고니 같은 큰 새의 뜻을 알겠느냐.내가 평생 동안 무예를 닦아 왔는데,아직 적수를 만나지 못했다.
오늘 다행히 이런 기회를 만났는데 실력 발휘를 하지 않는다면,또 어느 때를 기다리겠느냐!
저 수레 위에 있는 포대 안에 밧줄이 준비되어 있다.저 죽어 마땅한 놈들이 내 손에 걸리면 이 박도로 한 놈씩 베어 쓰러뜨릴 것이니, 너희들은 그놈들을 밧줄로 묶어라. 중요하지 않은 화물은 버리고,그놈들을 수레에 실어 경성으로 압송하여 상을 청하여 내 평생의 소원을 이룰 것이다.
만약,너희들 중에 한 놈이라도 안 가겠다는 놈이 있으면, 그놈부터 먼저 죽여 버리겠다.앞쪽 네 대의 수레에 깃발
네 개를 꽂고, 여섯 대의 수레가 그 뒤를 따라갔다.이고를 비롯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노준의는 박도를 들고 수레를 따라 양산박을 향해 갔다.이고 등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보고,한 걸음 한 걸음 두려움에 떨면서 걸어갔으나, 노준의는 의연하게 걸어갔다. 아침 일찍부터 정오 무렵까지 걸었는데,
저 멀리 아름드리나무 수천 그루가 빽빽한 숲이 보였다.
막 숲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어디선가 호각 소리가 들렸다.이고와 일꾼들은 깜짝 놀랐으나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
노준의는 수레를 한쪽으로 밀어놓게 하였다.수레꾼들은 모두 수레 밑으로 숨어들어 아이고!’소리만 지르고 있었다.노준의가 소리쳤다.
내가 놈들을 쓰러뜨리면, 너희들은 재빨리 묶어라!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숲속에서 4~5백 명의 졸개들이 뛰쳐 나왔다.그때 뒤편에서도 징소리가 울리더니,또 4~5백 명의 졸개들이 나타나 퇴로를 차단했다.
숲속에서 포성이 한 발 울리더니,이규가 쌍도끼를 들고 나타나 큰소리로 외쳤다. 노원외! 벙어리 도동을 알아보시겠소.
노준의가 문득 생각나서 소리쳤다.
내가 항상 너희 도적놈들을 잡으러 오려고 생각하다가 오늘 특별히 이곳에 왔으니,빨리 송강 놈에게 하산하여 투항하라고 해라!
만약 고집 부리며 미적거리면,내가 네놈들을 한 놈도 남겨 놓지 않고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다!이규가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당신은 오늘 우리 군사의 묘계에 빠졌으니,얼른 와서 두령 자리 에나 앉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