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아침 편지-2665
선어禪語-066
<선농일치>
동봉
소위 선농일치禪農一致라는 주제는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이었던
백용성(1964~1940) 선사께서
내세운 수행의 슬로건으로서
참선禪과 농사農가 하나一致다
선禪을 참구하고 농사農를 짓는 게
따로 떨어진 게 아닌 하나다
몸과 마음의 건강은 일치에서 온다
일치一致란 어긋남이 없으며
한결같게 서로 맞음이다
용성 진종 백상규 대종사께서는
경남 함양군 백전명 백운리 50번지
백운산 자락 약 15만 평 산야山野에
화과원華果院이란 농장을 연 것이다
이 농장에는 감나무를 비롯하여
밤나무, 배나무 등을 심었고
물 있는 곳은 벼농사를 지었다
갖가지 나무와 온갖 약초를 심었으며
이 화과원에서 얻어지는 이익금을
모두 독립자금으로 썼다고 한다
백학명(1867-1929) 선사께서 남긴
선농일치 역시 나름대로 유명하다
학명 선사 또한 선농일치 사상으로
불교 개혁에 가장 앞장을 선 분이다
불교에 몸을 담고 있는 수행자는
생각보다 게으름이 두드러진다
왜냐하면 소위 농공상과農工商科가
수행자들에게는 주가 아니었으며
참선과 염불, 경전 연구와 강의 등
마음공부가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
원불교의 교조 소태산 박중빈 선생
그는 1891년에 태어나 1943년
겨우 53세로 대열반에 들었지만
20대 중반에 큰깨달음大覺을 얻어
마침내 원불교[○佛敎]를 연 분이다
이 박중빈 선생은 박학명 선사와
자그마치 24살 큰 차이를 이루었으나
같은 고향 사람이며 늘 함께하였다
그는 새로운 종교를 열었으며
선농일치를 주창한 선지식이다
근대의 만암(1876~1948) 대종사도
선농일치 정신에 철저했던 분이다
그가 내세운 선농일치 사상은
백양사를 중창重創하는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나온 철학이다
그의 선농일치는 농사와 수행을
둘로 보지 않고 언제나 합일시켰다
특히 만암 스님의 선농일치는
만암 대종사 생각에 머물지 않고
백양사 대중들이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의 그의 선농일치 주창은
마침내 백양사의 전통이 된 것이다
특히 불교 정화의 근간으로 삼아
수행자는 게을러서는 안 되었다
수행은 마음으로만 닦는 게 아니요
몸만으로 단련하는 것도 아니라는
신심일여身心一如를 내세웠다
아무리 수행에 전념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몸의 건강이 받쳐 주어야 했다
만암 대종사의 불교 개혁이었다
지난 3월 제15대 조계종정에 취임한
성파 대종사는 선농일치에 있어서
가장 현실적인 분이라 할 것이다
그는 650톤의 도자기를 구워
팔만대장경을 손수 제작하였고
질그릇을 만들어 장류를 담았으며
그 장류를 고르게 나누어 주었다
소위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후학을 이끌었다
화엄의 '이사무애理事無碍' 세계를
스스로 보인 선지식 중의 선지식이다
선농일치의 창시자라면 당唐나라의
으레 백장회해(749~814) 선사다
백장산百丈山에 살았기 때문에
당시부터 백장선사라 불렀고
회해懷海는 선사 이름이다
제6조 대감혜능 선사 이래
제7조 남악회양이 대를 이었고
제8조가 유명한 마조도일 선사며
제9조가 청규淸規로 잘 알려진
선농일치 시조始祖 백장회해 선사다
백장회해 선사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하루라도 일하지 않는 수행자는
그 하루 동안 밥을 먹지 말라'
참으로 엄청난 철학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도출된다
어떠한 마음공부를 선禪이라 하고
어떤 체현을 농農이라 할 것인가?
선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겠으나
농은 필히 논밭에 씨를 뿌리고
잘 가꾸고 제대로 거두는 것만이
다는 아닐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
백학명 선사 불교개혁과 선농불교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217
백용성 선사의 함양 화과원 유허지
http://hamyang.grandculture.net/hamyang/toc/GC07200454
-----♡-----
사진 동봉
-----♡-----
05/04/2022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