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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초(無名草)-최서해
분야: 어문 > 소설 > 중.단편소설
저작자: 최서해
원문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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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왔다가 겨우 세 살을 먹고 쓰러져 버린 『반도공론』이란 잡지 본사가 종로 네거리 종각 옆에 버티고 서서 이천만 민중의 큰 기대를 받고 있을 때였다.
『반도공론』의 수명은 길지 못하였으나 창간하여서 일 년 동안은 전 조선의 인기를 혼자 차지한 듯이 활기를 띠었었다. 『반도공론』이 그렇게 활기를 띠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그때 그 잡지의 사장에 주필까지 겸한 이필현 씨가 사상가요 문학자로 당대에 명망이 높았던 것이요 또 하나는 『반도공론』은 여느 잡지와 색채가 달라서 조선 민중의 기대에 등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돈의 앞에는 아름다운 이상도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자본주들의 알력으로 한번 경영 곤란에 빠진 뒤로는 삼기 넘은 폐병 환자처럼 실낱같은 목숨을 겨우겨우 이어가다가 창간한 지 십 년 만에 쓰러지고 말았다. 『반도공론』의 운명은 그 잡지 사원 전체의 운명이었다. 그들도 처음에는 어깨가 으쓱하였으나 나중에는 잡지의 비운과 같이 올라갔던 어깨가 한 치 두 치 떨어져서 얼굴에까지 노랑꽃이 돋게 되었다.
그러한 사원 중에 박춘수라는 서른한 살 된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학예부 기자로 상당한 수완을 가진 사람이다. 본래 경상도 김천 사람으로 키는 중키에서 벗어지는 키나 몸집이 똥똥해서 그저 중키로 보이는 골격이 건장한 사람이다. 얼굴 윤곽이 왼편으로 좀 삐뚤어진데 뺨이 빠지고 얽어서 얼른 보면 험상궂게 생겼으나 커다란 눈을 오그리고 두툼한 입술을 벙긋하면서 하하하고 웃으면 보는 사람에게 쾌활하고도 관후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다. 그는 부지런한 사람으로 잡지사가 한창 경영 곤란에 빠져서 월급 지불까지 못 하게 된 때에도 불평은 불평대로 쏟아 놓으면서 할 일은 꼭꼭 하였다.
이날도 그는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여덟 시 반에 집을 나섰다. 콧구멍 만한 방 한 간에 육칠 식구가 들어 박이니 너무도 비좁아서 이웃 친구집 대청마루에서 여러 날 잠잔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면 사지가 찌뿌둥하고 뱃속이 트릿하였다. 오늘 아침에는 뱃속이 여느 때보다도 더욱 트릿해서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을 나섰다. 파리 소리와 어린애 울음에 교향악을 이룬 콧구멍 같은 방에서 뛰어나오니 기분이 좀 가벼워지는 듯하나 대문간에 따라 나와서 남이 들을세라 은근히,
"여보! 저녁거리가 없으니 어떡하오! 오늘은 일찍 나오시오."
하고 쳐다보던 아내의 흐린 낯이 눈앞에 떠올라서 머릿속이 다시 무거워졌다 게다가 오랜 가뭄 뒤의 불같은 볕발까지 눈이 부시게 내리쪼이니 가슴 속에 뜨거운 김이 서리는 것 같다.
"엑 더워……. 소나기 한번 안 지나가나.“
그는 혼자 뇌이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벌겋게 달은 볕발에 물든 하늘은 좀처럼 비를 줄 것 같지 않다. 그는 소나기 지난 뒤의 어린애 눈동자같이 하득하득 빛나는 나뭇잎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먼지가 풀풀 이는 창신동 좁은 골목을 헤저어 동대문 턱으로 나왔다. 뼛속까지 녹아 내리는 듯한 땀에 벌써 의복은 후줄근하였다. 가슴이 구르고 호흡은 불같은데 두 다리의 기운은 풀려서 중병을 앓고 난 사람 같다. 그는 삼복 폭양에 백여 리의 길을 걷고도 땀도 별로 흘리지 않고 기운이 싱싱하던 옛날을 생각하는 때마다 지금의 건강이 너무도 상한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중병을 앓은 일도 없이 다른 무슨 이렇다 할 만한 까닭도 없이 나날이 상하여 가는 건강을 생각하면 무어라 꼭 잡아 말할 수 없는 크고 흉악한 그림자가 자기의 몸을 자기로도 모르게 한 치 두 치 먹어드는 듯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소리도 못 치고 죽는 죽음이다. 흥."
그는 어이없는 코웃음을 치고 종로를 스쳐 오는 바람을 동대문 파출소 그늘에 서서 쏘이면서 동대문 문루를 쳐다보았다.
온몸에 먼지를 뿌옇게 입은 문루는 내리쪼이는 볕에 육중한 몸을 주체치 못해서 소리 없는 한숨을 쉬는 것 같다. 그것을 보고 섰으려니까 춘수 자신까지 그 기분에 눌려서 숨이 막히는 것 같다. 그는 몸을 돌려서 전찻길을 건너섰다. 그의 아내는 아직도 시간의 여유가 있는 저녁 거리를 걱정하였으나 그는 눈앞에 닥친 전차비 오 전이 호주머니에 없는 것을 혼자 분개하면서 동편 쪽 집 그늘로 종로 네거리를 향하여 걸었다.
사에 찾아드니 아래층 영업부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나 위층 편집실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망했어! 망해. 열 시가 다 되도록 아무도 안 왔으니 일 잘 되겠다……."
그는 혼자 분개하면서 저고리를 벗어 걸고 넥타이를 끌렀다. 먼지가 뿌연 책상을 원고지로 슥슥 문대고 의자에 앉으려니까 저편 방으로 급사가 눈을 비비면서 나왔다.
"너 지금 일어났니?"
그는 담배를 피우면서 급사를 보았다. 급사는 아무 말도 없이 머리를 숙였다 들면서 벙긋 웃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더니 물과 빗자루를 가지고 와서 그때에 소제를 시작하였다. 급사가 방바닥에 물을 뿌리고 쓸려는데 김과 최가 들어왔다.
"이게…… 이런……."
말썽 많기로 이름있는 방안을 돌아보더니 가느다란 눈을 똑바로 떠서 급사를 보면서,
"이게 뭐냐? 글쎄 해가 낮이 되도록 뭘 했니? 뭣 했어?"
하고 야단을 치기 시작하였다.
"우두머리 놈들이 그 꼴이 되니 무언들 바루 되겠나!"
최가 비꼬아 말하였다.
"엑 속상해서……. 글쎄 어쩌자고 우리가 이 노릇을 한담! 엑."
김은 혼자 골이 나서 한참 푸닥거리를 놓았다.
그들은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한군데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였다.
열어 놓은 유리창으로 흘러드는 바람은 여러 사람의 상기된 얼굴을 시원스럽게 스치었다.
"그래 이달에도 월급을 안 주게 작정인가?"
김은 그저 성이 가신 듯이 가느다란 눈을 깜빡하면서 볼멘소리를 쳤다.
"이달도 삯이 글렀나 보이……. 네기 월급은 고사하고 단돈 몇 푼이라도 주었으면……. 참말 생각하면 우리가 더러워……."
의자를 가로 타고 앉은 최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남의 말처럼 뇌였다.
"이거 사람이 살 수 있나! 그래 그놈들은 어쩌게 작정이야……. 이사(理事)인지 깻묵덩인지 그 자식들은 매일 호기만 빼면서 책을 맨들라고 독촉은 하면서도 돈은 안 주고……. 먹어야 일도 하지! 엑……."
춘수는 얽은 얼굴에 근육을 씰룩거리면서 커다란 목소리로 물퍼붓듯 주어 대다가 벌떡 일어나서 유리창 앞으로 간다. 그저 의자에 앉은 두 사람은 입맛만 쩍쩍 다시고 앉아서 춘수의 뒷그림자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
실내에는 갑자기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 때에 따르릉 따르릉 하고 탁상 전화 종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세 사람은 그저 앉았고 선 대로 전화 종소리는 못 들은 것처럼 가만히 있다.
"네 ─ 여보셔요."
소제를 마치고 책상을 닦던 급사가 전화를 받더니,
"저 인쇄소에서 전화가 왔는뎁시요. 교정을 어서 보아 줍시사고 합니다."
그는 어느 사람에게란 지목이 없이 수화기를 손에 든 채 이편을 보면서 말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 대답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떡하랍시요?"
급사는 열적은 듯이 혼자 머리를 굽실하면서 또다시 물었다.
"간다고 그래라, 이제 곧 간다고."
창 앞에 섰던 춘수는 급사를 돌아보았다.
"가긴 어디루 가……. 그깐 놈의 잡지는 만들어서 뭘 해, 그대로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라고 해라."
김은 분개한 목소리로 뇌이면서 급사를 돌아다보았다. 급사는 전화통에 입을 대다 말고 어쩔 줄을 몰라서 혼자 망설인다.
"엑 실없는 사람! 더운데 누가 거까지 가겠냐? 이리로 좀 보내라고 해라."
옆에 앉았던 최가 웃으면서 김을 건너다보고 다시 급사를 보았다. 급사는 최의 말대로 대답하였다.
"글쎄 이 노릇을 어째야 좋담! 저녁거리가 없지……. 어린애는 월사금을 못내서 학교에서 쫓겼지……. 이거 사람이 제 명에 못 죽고 이렇게 말라서 죽겠으니……."
김은 호소할 곳 없는 가슴을 혼자 탄식하듯이 거의 절망에 가까운 소리로 뇌이었다.
김의 탄식에 춘수의 가슴도 울리었다. 그의 귀에는 아내의 말이 다시금 들리는 것 같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자기가 들어가기만 기다리는 식구들의 모양이 눈앞에 떠올랐다. 오늘 아침에도 네 살 된 딸년은 곁집 아이가 먹는 참외를 보고 사달라고 트집을 쓰다가 제 어미한테 얻어 맞고 울던 것이 그저 머릿속에서 때룩거렸다. 그는 연기가 핑핑 서리는 가슴을 드는 칼로 빡긁고 싶었다. 어른들의 고생은 둘째로 아무 철없는 어린것들까지 나날이 닥쳐오는 생활난에 어깨가 벌어지지 못하고 활기 없이 크는 것을 보면 붉은 피가 머리 끝까지 끓어오른다.
"돈! 돈!"
그의 머릿속에는 또 공상의 푸른 구름이 오락가락하였다.
"백 원만 있었으면!"
"에라! 백 원을 가지고 뭘 한담!"
이렇게 차차 불어가는 돈 액수는 천원 만원을 지나 엄청난 숫자에까지 이른다. 그렇게 머릿속에 돈 그림자가 어른거리면 그는 그 돈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이 집을 짓고 사업을 하고…… 별별 꿈을 다 꾸게 된다. 지금도 그의 눈은 쨍쨍한 볕발에 삶는 듯한 종로로 주었으나 보는 것은 그의 머릿속에 그리는 딴 세상이었다.
"이 사람아 무엇을 생각하나? 준이나 보세."
하는 최의 소리에 춘수는 비로소 제 정신이 들어서 머리를 돌렸다. 어느새 준장이 책상 위에 놓였다. 그는 얼없는 공상을 한 것이 남에게 들킨 듯이 무슨 죄나 지은 듯한 열적은 생각에 혼자 웃다가,
"에익."
하고 한마디 뇌이면서 일어서서 그의 책상 앞으로 갔다.
"여보게들 그래 모다 이럴 작정이야?"
담배를 피우던 김은 그저 신기가 펴이지 않았다.
"그럼 어떡하나? 하늘에 올라가 금시 별 따는 수가 나나! 붙어 있는 우리만 곯지."
최는 그저 뱃심좋게 뇌이면서 커다란 봉투에 들어 있는 준장을 끄집어내었다.
"이놈아 이건 걷어 치이고……."
김은 최가 잡은 준장을 빼앗아 방바닥에 버리면서,
"어떻게든지 결말을 내세. 오늘은……."
하고 정색으로 말하였다.
"이놈이 미쳤나. 어른을 모르고……. 허허…… 그래 어떻게 할 작정인가?"
최는 다시 준장을 집으려고도 하지 않고 김을 건너다본다.
"오늘 이 편집장인지 주간인지가 들어오면 대진정을 하고 다소라도 변통하여 달라고 해 보세……. 그래 안 되면 그만두지 이리나 저리나 굶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김은 무슨 결심이나 한 듯이 긴장된 빛으로 말하였다.
"글쎄 말은 해 보세마는 돈 안 준다고 우리가 가 보세……. 드러내 놓고 말이지 자네나 나나 어디로 갈 데가 있나? 누가 좋아서 이 노릇을 하겠나!"
최는 자탄 비슷하게 나중말을 맺었다.
"그래 딱한 일이야! 주간이나 사장인들 어쩌겠나? 돈 낸다는 작자가 말만 낸다낸다 하고 주지는 않지……, 그런데 조선서 잡지 사업이란 생돈 쓸어 넣는 사업인 것은 뻔한 노릇이지……. 생각하면 우리가 이것을 하고 앉았는 것이 바보야 바보!"
춘수는 몇 마디 뇌이고는 준장을 집어들고 주필질을 시작하였다.
춘수의 기분은 점점 흐리었다. 사지가 몹시 찌뿌드드하고 뱃속이 버글버글 끓는 것이 선잠을 깬 것 같기도 하고 못 먹을 것을 먹은 듯도 하였다. 그런대로 몸을 비비 틀면서 주필질을 하였다.
정오가 지나고 오후 한 시가 되면서부터는 등골에 찬물을 끼얹는 듯이 전신이 오싹오싹 죄어들면서 아슬아슬 추운 것이 앉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대로 이를 악물고 견디려고 하였으나 나중은 얼음 구멍에서 뽑아놓은 사람처럼 이가 덜덜 쫏기고 머리끝까지 오싹오싹 죄어들여서 안절부절을 못하게 되었다. 그는 참다못해 숙직실로 뛰어들어갔다.
숙직실로 뛰어간 그는 급사의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누워서 덜덜 떨었다. 온몸의 근육이 냉기에 죄어들고 이가 쫏기는 것을 억지로 참아 가면서 한 시간 동안이나 애를 썼더니 그 떨리는 증세가 없어지듯 하며 다시 온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하는데 고기가 익는 것 같았다. 머리가 쩔쩔 끓고 눈이 부연 것이 금방 무슨 변이 생길 것만 같았었다.
"웬일이어? 응…… 어디가 아픈가?"
춘수는 최의 목소리에 겨우 눈을 떴다.
"응 저게 웬일인가? 눈에 피가 몹시 졌네!"
최는 방문을 열고 들이밀어 보면서 눈을 크게 떴다.
"몰라, 덜덜 떨리더니 인제는 열이 나네!"
춘수는 한마디 겨우 뇌이고 눈을 다시 감았다.
"학질인가 보이……. 큰일 났네. 나도 일전에 며칠을 죽다 살아났네! 약 먹어야지……."
최는 혼자 중얼거리다가 문을 도로 닫고 나가 버렸다.
"학질!"
춘수는 혼자 뇌였다. 학질이 그리 무서울 것은 없으나 몸이 이렇게 괴로와서는 촌보를 옮길 수 없는 일이다. 몸이 돌지 못하면 큰일이다. 사의 일은 둘째로 이제는 해가 벌써 낮이 기울었는데 이때까지 아무런 변통도 못 하였으니 집에서는 그래도 기다릴 터인데……. 이렇게 생각하니 의지가지없는 외로운 자기 신세가 새삼스럽게 슬펐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져 죽는대도 누가 들여다볼 것 같지 않은 신세가 어쩐지 슬프고 원통하였다.
"그래도 죽는 날까지는……."
는 몸을 겨우 일어나 앉았다. 뱃속은 그저 버글버글 끓이고 머리가 헹한 것이 중병을 앓고 난 사람 같다. 그는 겨우 몸을 일어서 편집실로 나오려니까 다리가 허전허전한 것이 몇 걸음 못 걸어서 쓰러질 것 같다. 그런대로 악을 쓰고 편집실로 나오니 목덜미에 살이 피둥피둥한 편집부장이 의자에 앉아서 남산 같은 배를 내밀고 부채질을 하다가,
"박군은 벌써부터 낮잠이오?"
하고 방긋하면서 빈정거린다.
‘남의 속을 저렇게도 모른담…….’
춘수는 가슴에서 복받쳐 오르는 분에 한마디 내쏘려다가 꾹 참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낮잠이나 자지 할 일 있어요?"
하고 빈정거리는 음조로 맞장구를 쳤다.
"어때? 좀 괜찮은가?"
편집부장과 무슨 이야기를 하던 최는 춘수를 보면서 말을 건네었다.
"그저 그래……."
춘수는 자기 자리에 힘없이 앉으면서 이마를 찌푸렸다.
"왜 어디가 편찮소?"
편집부장은 그저 부채질을 설레설레하면서 춘수를 건너다보았다.
"글쎄 학질 같은데……."
"학질? 요새 낮잠 자면 학질 들리지……. 학질이거든 뛰어다니시오. 내가 연전에 학질이 들려서 고생하다가 한강에 나가서 헤엄질쳤더니 달아나 버리더군……. 허허."
하고 싱거운 말에 웃음으로 맛이나 도치려는 듯이 웃었다.
춘수는 아무 말도 없이 흥하고 웃었다. 그 당장에 뛰어가서 멱살을 틀어잡고,
"이 소도적놈 같은 소리 마라."
하고 훌근대고 싶으나 차마 그럴 수 없는 일이고 하여 꾹 참았다. 참으려니까 가슴에 서리는 분은 목구멍까지 치밀어서 혼자 가슴을 쥐어뜯고 싶었다.
"오늘은 어떻게 다소간 변통이 있어야겠습니다. 글쎄 이 노릇을 어떡합니까. 여편네란 며칠 전부터 드러누워 매일 앓고……."
최는 구걸이나 하는 듯한 울듯울듯한 음성으로 편집부장을 졸랐다.
"모다 어떻게든지 해 주셔야지 참말 이제는 못 견디겠읍니다."
김도 주필을 꺼적거리다가 말고 편집부장을 바라보고 다시 춘수를 본다.
"오늘도 글렀는걸! 지금 회계에 말해 보았는데 지금 책을 발송할 우표가 없어서 쩔쩔매는 판에……."
편집부장은 남의 사정은 조금도 모른다는 어조로 말하였다.
"그러면 어떡하랍니까?"
최는 발을 동동 구르다시피 말하였다.
"글쎄……."
부장은 그저 글쎄만 부른다.
"저도 좀 주셔야겠읍니다. 제일 약값 몇 푼이라도 얻어 가지고 나가야지 이렇게 아파서야 견디겠읍니까!"
춘수도 안 떨어지는 입을 겨우 떼었다.
"무얼 박군은 한강에 나가서 헤엄을 치시오. 흐흐…… 그러면 그까짓 학질은 단방문이지……. 내가 보증하리다."
편집부장은 악의 없이 웃음의 말로 하는 것이나 춘수에게는 기막히는 말이다.
"흥 죽을 일이로군."
그는 혼자 뇌이고 준장을 집어 김을 주면서,
"나는 나가 드러누워야겠네……. 자네 좀 보게……."
하고 모자를 떼어들고 나와 버렸다. 분김에 뛰어나오기는 나왔으나 갈 데가 없었다. 빈손으로 집으로 나갈 수도 없는 일이요, 그렇다고 어디 가 드러누울 데도 없었다.
한낮이 기운 뜨거운 볕은 사정없이 내려 쪼여서 다니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그는 한참 서서 망설이다가 기운 없는 다리를 겨우 끌고 ××신문사로 찾아갔다. ××신문사 학예부에 있는 김을 찾아서 원고를 써 주기로 하고 돈 교섭을 할 작정이다. 그것도 조르기는 괴로운 일이나 어떻게 하는 도리가 없으니 염치를 등 뒤에 물리치고라도 교섭하는 수밖에 없었다.
"글쎄 미리는 지출치 않아……. 얼마간 써서 실은 뒤가 아니면 어려운데……. 이삼 일 안으로 좀 써 보지……."
김도 춘수의 형편이 딱한 듯이 말하였다. 춘수는 하는 수 없이 이삼 일 안으로 무엇이나 쓰기로 하고 거리로 나왔다. 그는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거리로 내려오다가 다시 청진동 골목에 들어서서 중학동 어떤 친구를 찾아갔다. 몸에 열은 그저 내리지 않아서 걸을수록 더욱 괴로웠다.
그는 한참 만에 중학동 천변에 있는 어떤 집 앞에 이르렀다. 정작 대문 앞까지 이르니 발이 무거워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괴로와하는 남을 조르기도 어려운 일이요, 갖은 궁한 소리를 다 하면서 구걸하기도 자기의 존재가 아주 짓밟히는 것 같았다. 그는 한참 서서 망설였다. 그러나 목전의 현실은 그의 발을 문안으로 끌어들였다. 그 친구는 있으나 다른 사람이 있어서 그는 할 말을 못 하고 한편에 앉아서 신문을 보면서 그 사람이 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사람은 얼른 가지 않고 신문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그 사람이 미운 생각까지 났다.
춘수는 두 시간 뒤에 그 집을 나섰다.
등 뒤에서 손가락질하고 알지 못할 그림자가 두 어깨를 꽉 누르는 것 같아서 발이 땅에 닿지 않다시피 뛰어나왔다.
"또 만납시다."
하는 주인의 소리는,
‘다시는 오지 말아 주오. 제발.’
하는 소리 같아서 마음이 근질근질하였다.
대문 밖에 뛰어나와서 호주머니에 든 일 원 지폐를 다시 만져 보니 큰 성공이나 한 듯이 시원하였으나 몇 걸음 못 나가서 다시 이마를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것이 몹시 앓는데 자네 돈원 변통해 주게……. 곧 갚으리."
하고 죄 없는 어린애를 빙자하여 말한 것도 마음에 괴롭거니와 그 사람과 같은 제배건만 죄송스러운 목소리로 종이 상전의 앞에 나선 듯이 구걸하던 자기의 그림자가 눈앞에 떠오를 때 그는 자기의 얼굴에 가래침을 뱉고 싶었다.
이러고 살아서 무얼 하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누가 항상 줄 리도 없거니와 준다 한들 오죽하고 주랴. 그는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을 쳤으면 갑갑한 가슴이 풀릴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은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다.
그는 청진동 골목으로 내려오면서 학질약을 사가지고 갈까 말까 하다가 한 푼이 새로운데 약까지 사게 되면 또 몇 식구의 한 끼 값은 없어지는 판이다. 그대로 걸어서 창신동 막바지로 들어갔다.
집이라고 찾아 들었으나 편히 앉았을 자리도 없다. 수구문 안에서 쫓겨난 뒤로 이 집으로 온 지 두 달이나 되는데 한 집안에 세 살림이 살고 있다. 행랑에 한 살림, 안방에 한 살림, 건넌방에 한 살림, 이렇게 세 살림인데 춘수는 건넌방을 차지하였다. 일곱 식구가 콧구멍 같은 방안에서 들꾀게 되니 어떻게 협책한지 그의 어머니는 마루에서 자고 그는 이웃 친구집 마루에서 자게 되었다. 마침 여름이니 그렇지 겨울이나 되더면 더욱 큰 고난을 받았을 것이다.
집에 들어서니 어린 딸년은,
"아버지 아버지! 나도 빠나나…… 빠나나 사줘 응?"
하면서 뛰어나온다.
"저년 또……."
아내는 어린애를 흘겨다보다 말고 사내를 쳐다보면서,
"아까 저 안방집 어린애가 빠나나 먹는 것을 보고 엽때까지 트집이라오.“
하고 나직이 말하였다. 그는 이꼴저꼴 안보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아내에게 돈 일 원을 내어 주었다. 흐리었던 아내의 얼굴은 빛났다. 그의 어머니도 돈을 보더니 무슨 태산 같은 짐을 벗은 듯이 한숨을 은근히 쉬면서도 활기가 띠는 것을 그는 느꼈다. 일 원 돈에 활기가 띠는 가족들을 보니 그의 가슴은 더욱 저렸다. 그는 마루 끝에 앉아서 견디다 못해 파리떼가 끓고 어린것의 기저귀며 의복이 불규칙하게 놓인 방 한구석에 드러누웠다. 걸어 다닐 때에는 그래도 촌보나마 옮길 기운이 나는 듯하더니 정말 몸져 드러누우니 다시 열이 온몸을 엄습하여서 그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쳤다.
"어디가 아프냐?"
마루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던 그의 어머니는 춘수를 들여다보면서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뇨…… 학질인가 봐요!"
그는 겨우 대답을 하고 찌긋찌긋 저린 팔다리를 이리저리 늘였다.
"응 학질이면……. 금게랍이라두 사다 먹어야지……."
하고 방으로 들어와서 머리를 짚어 보더니,
"몹시 덥구나!"
하고 수건을 찬물에 축여서 머리 위에 얹어 준다. 펄펄 끓던 머리에 찬 수건이 닿으니 좀 정신이 도는 듯하였다.
"얘! 그 돈에서 금게랍을 좀 사 오렴."
어머니는 쌀 팔러 가는 며느리에게 부탁하였다.
"아니 그만두셔요. 그 돈은 모두 쌀과 나무를 사야지요. 약은 달리……."
그가 말을 마치두 마두 해서 그 아내가 방을 들여다보면서,
"언제부터 아프시우? 그저 병날 줄 알았지! 이 더위에 그렇게 애를 쓰시구……."
아내는 뒷말을 흐리머리해 버리고 나갔다.
"야, 이년아 어린애들과 장난만 치지 말고 오빠 대리나 주물러 주렴!"
그의 어머니는 수건을 머리에 갈아 대면서 마당에서 장난하는 그의 누이동생을 꾸짖었다. 육십이 넘은 어머니가 기운 없이 허둥지둥하면서 걱정하시는 것을 생각하니 바늘방석에 누운 듯이 괴로왔다. 온 식구들을 고생시키는 것이 자기의 죄는 아니건만 그들의 고생을 생각하는 때마다 자기의 죄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밤 여덟 시 이후부터 열이 내렸다. 그는 겨우 몸을 수습해 가지고 일어나 앉았으려니까 찌는 듯한 더위에 숨이 막히었다. 한 칸 방을 혼자 차지하고 앉아도 더울 터인데, 온 집안 식구가 기름을 짜게 되니 참말로 견디기 괴로왔다. 마당에 거적자리를 깔고 앉아서 땀을 들이었다. 버글버글 끓던 배는 그저 몹시 끓이면서 설사가 나기 시작하였다. 한 시간도 못 되는 사이에 설사를 세 번이나 하고 나니 더욱 몸을 걷잡을 수 없었다.
"얘 무얼 좀 먹어야지……. 무얼 죽을 쑤든지 해야지."
하고 그의 어머니는 어린애들께 지친 피곤한 몸을 뉠 생각도 하지 않고 밤이 들도록 걱정을 하고 그의 아내까지 졸리는 눈을 억지로 비비면서 마루에 나앉아 무엇을 꿰매고 있다.
"또 뒷간을 가니? 큰일 났다. 무얼 막을 약을……. 참 답답한 노릇이다 돈이 어디서 다 썩는지…… 하느님도 무심하지……."
춘수가 뒷간으로 가는 때마다 그의 어머니는 걱정하였다. 그것이 춘수에게는 도리어 괴로왔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