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16년만의 최저… 환전 4배 늘고 엔화예금 10조원 육박
환율 떨어지며 ‘엔테크’ 열풍
“쌀때 미리 사두자” 환차익 노리고
日여행객 늘며 환전 규모도 급증
전문가 “단기 차익은 기대 어려워”
직장인 김모 씨(34)는 아내와 함께 가기로 한 겨울 휴가 행선지를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바꿨다. 최근 일본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가성비 높은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마침 미국 달러화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데, 일본 현지에서 엔화로 환전하면 수수료를 더 아끼고 향후 환차익까지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여행하면서 투자까지 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김 씨처럼 환차익을 노리고 이른바 ‘엔테크’(엔화+재테크)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달러-엔 환율이 달러당 150엔을 넘어서고, 하나은행이 고시하는 원-엔 재정환율이 100엔당 860원대로 내려가면서 엔화 가치가 바닥을 쳤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3일 기준으로 1조1110억 엔(약 9조6686억 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6732억 엔(약 5조8507억 원) 규모였던 5대 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4월 말 5978억 엔(약 5조1954억 원)으로 감소한 뒤 9월 말 1조 엔을 넘어섰다(1조335억 엔·약 8조6909억 원).
이러한 엔화 예금 잔액의 상당 부분은 기업 예금이지만 환차익을 기대하는 일반 금융소비자의 예금도 적지 않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며칠 동안 영업점에 일반 금융소비자의 엔화 예금 관련 문의가 꽤 들어왔다”고 했다. 시중은행들은 달러화와 유로화 정기예금에 각각 4∼5%, 2∼3% 정도의 금리를 주는 것과 달리 엔화 정기예금에는 0%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금리를 통한 수익을 기대할 수 없지만 그 이상의 환차익을 노린 엔화 수요가 몰린 것이다.
역대급 ‘엔저 현상’에 일본으로 떠나는 여행객이 올해 대폭 늘며 엔화 환전 규모도 지난해보다 4배로 불어났다.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5대 은행의 엔화 매도액은 약 3138억 엔(약 2조7327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70억 엔·약 6703억 원)의 4배 수준에 달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300만9252명이던 일본행 국내 여행객은 올해는 18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당분간 엔테크 수요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정부가 고질적인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해결과 수출 경쟁력 제고를 위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4월 1000원 안팎이었던 원-엔 재정환율은 이달 6일 867.59원으로 2008년 2월 이후 15년 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다만 전문가들은 환율 움직임을 예측해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양승현 하나은행 압구정금융센터 PB팀장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기조가 완전히 종료되기 전까지 일본 엔화로 환차익을 얻기는 쉽지 않다”며 “엔화 가치가 널뛰는 상황이라 환차익을 위한 투자를 굳이 한다면 분할 매수가 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황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