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과 완전히 달라진 설날
- 70대 회고 : 이제 고향은 어디에 -
🏠 30년 전 그 설날
• 7형제 대가족 30여 명이 모이던 시끌벅적한 명절
• 전을 부치고 만두 빚던 주방 전쟁
• 고스톱 치던 형제들과 뛰어놀던 조카들
• 3교대로 나눠 먹던 저녁 식사
🚗 민족 대이동의 풍경
• 차량으로 가득 찬 톨게이트
• 인산인해를 이룬 고속버스 터미널
• 무거운 짐 들고 고향 향하던 귀성객들
• 널뛰기, 윷놀이, 사물놀이... 전통 명절 놀이
💔 변해버린 오늘
• 명절증후군이라는 새로운 단어
• 해외여행을 선택하는 사람들
• 없어져버린 고향집
• 그리고... 2012년 떠나신 어머니
"명절은 어머니였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설날 새벽, 홀로 잠에서 깼습니다.
어제 자식들과 25년 전 떠난 아내의 산소를 다녀온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습니다.
문득, 30년 전 그 시끌벅적했던 설날이 떠올랐습니다.
30년 전 그 설날
30년 전, 우리 집 설날은 그야말로 전쟁이었습니다.
아들만 7형제인 대가족,
4대에 걸친 30여 명이 모였으니까요.
까치설날부터 온 가족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비좁은 시골집은 순식간에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주방에서는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어머니와 며느리들이 전을 부치고 만두를 빚었습니다.
남편들의 흉을 보며 웃고 떠들던 그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며느리들의 수다가 듣기 싫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너그러이 맞장구를 쳐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손길
설날 아침, 한 개 소대만큼의 식구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안방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먼저 아들들이 연로하신 부모님께 세배를 드렸습니다.
"올해도 건강하게 우리 곁에 계셔주세요."
이어서 며느리들이 세배를 드렸고,
어머니는 "우리 아들들 잘 건사해줘서 고맙다"며
세배돈을 나눠주셨습니다.
산소 성묘를 마치고 점심 전투를 치르면,
각자 처가 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렇게 1박 2일의 시끌벅적한 명절이 끝나면,
다시 외톨이가 되시는 부모님...
그것이 우리들의 삶이었습니다.
민족 대이동의 풍경
명절이면 온 나라가 움직였습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는 차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고속버스 터미널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표를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섰습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곤함도 있었지만 설렘도 있었습니다.
민속촌이나 공원에서는 전통 놀이가 한창이었습니다.
널뛰기, 윷놀이, 팽이치기...
한복 입은 사람들이 전통 놀이를 즐기는 모습,
그게 바로 우리의 설날이었습니다.
변해버린 오늘의 설
그런데 언제부턴가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국민소득은 올랐지만, 마음의 여유는 사라졌습니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겼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고향집은 점점 텅 비어갔습니다.
그리고 2012년, 어머니가 떠나셨습니다.
명절은 어머니였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안 계신 설...
찾아가야 할 고향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우리 어머니 생전 모습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어머니의 음식 맛이 그립습니다.
어머니의 한결같은 마음이... 그립습니다.
마치며
시대가 변했습니다.
생활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그걸 탓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가끔은 돌아봤으면 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30년 전 그 시끌벅적했던 명절이,
때로는 그리워지는 건 저만의 마음일까요?
이미지 출처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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