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수(Waterloo Bridge)
최용현(수필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9월, 전선(戰線)으로 부임하기 위해 런던의 워털루 역으로 가던 48세의 영국군 대령 로이 크로닌(로버트 테일러 扮)은 안개 자욱한 워털루 다리에서 지프를 세운다. 지프에서 내린 그는 다리 난간에 기대선 채 호주머니에서 조그만 마스코트를 꺼내 보면서 회상에 잠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런던에서 휴가를 보내던 25세의 로이 대위는 귀대를 하루 앞두고 워털루 다리를 걸어가고 있던 중 갑자기 공습경보를 듣는다. 로이는 길바닥에 핸드백을 떨어뜨리고 당황하는 숙녀 마이라(비비안 리 扮)와 함께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대피한다.
혼잡한 대피소에서 마이라가 그날 저녁 런던공연을 앞둔 발레단의 무용수인 것을 알게 된 로이는 자신도 다음날 전쟁터로 떠나야 하는 영국군 장교임을 알려준다. 공습경보가 해제되어 밖으로 나오자, 마이라는 행운의 마스코트라면서 하얗고 조그만 인형 하나를 로이의 손에 쥐어준다.
그날 밤, 런던의 올림픽 극장에서 발레공연을 하던 마이라는 객석에서 로이를 발견하고 가슴이 설렌다. 로이가 보낸 쪽지를 통해 저녁식사 초대를 받은 마이라는 엄한 단장에게 쪽지가 발각되는 바람에 나가기 어렵게 되었지만, 단짝친구인 키티(버지니아 필드 扮)의 도움으로 로이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촛불클럽에서 ‘올드 랭 사인’을 들으며 함께 식사를 하고 춤도 추는데, 마지막 촛불이 꺼질 때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헤어진다.
휴가가 이틀 연장된 로이가 아침에 마이라의 숙소로 찾아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며 청혼을 하자 마이라는 자신도 그랬다며 쾌히 승낙을 한다. 두 사람은 차를 타고 가서 로이 집안의 어른인 삼촌의 허락을 받은 후 성당으로 달려가지만, 너무 늦어서 결혼식을 하지 못하고 다음날 11시에 식을 올리기로 한다.
다음날 아침, 마이라는 로이로부터 갑작스런 일로 전선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지금 바로 역으로 나간다는 전화를 받는다. 마이라는 떠나는 로이를 마중하러 택시를 타고 워털루 역으로 나가지만, 출발하는 기차에서 겨우 로이의 얼굴만 보고 돌아온다. 그 일로 공연시간을 지키지 못한 마이라는 발레단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를 거세게 항의한 키티와 함께.
두 친구는 허름한 방을 얻는데, 직장을 구하지 못해 궁핍한 삶을 이어간다. 마이라는 로이의 어머니가 런던에 온다는 연락을 받고 고급스런 찻집에 예약을 한다. 찻집에 앉아서 기다리던 마이라는 종업원이 갖다 준 신문을 보다가 사망자 명단에서 로이 대위의 이름을 발견하고 정신을 잃고 만다.
종업원이 포도주를 떠먹여줘서 깨어난 마이라는 로이의 어머니에게 차마 로이의 죽음에 관해서는 말하지 못하고 계속 퉁명스럽게 대하는데, 그러자 로이의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서고 만다. 친구 키티는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춘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런 희망이 없어진 마이라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매춘을 시작한다.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워털루 역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마이라는 출구로 나오는 군인들을 보다가 로이와 마주치고 망연자실한다. 알고 보니 로이가 분실한 인식표(認識票) 때문에 전사자로 보도된 것이란다. 로이는 이제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결혼을 서두른다. 로이는 마이라를 스코틀랜드 본가로 데려가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인사를 시킨다.
마이라는 어두운 과거를 떨쳐버리고 새 출발하자고 스스로 다짐해보지만, 명예를 중요시하는 로이 가문 사람들을 보면서 양심의 가책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마이라는 혼자 괴로워하다가 로이의 어머니를 찾아가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로이에게는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그 집을 떠난다.
다음날, 로이가 마이라가 살던 방으로 찾아와 숨기는 것이 뭔지 키티에게 물으며 마이라를 찾아달라고 한다. 키티는 로이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면서 마이라가 호객행위를 하던 곳을 함께 가보지만, 그 시간 마이라는 로이를 처음 만난 워털루 다리 위를 걷다가 달려오는 군용 트럭의 헤드라이트 불빛 속으로 몸을 던진다.
마지막 장면은 다시 첫 장면으로 연결된다. 중년이 된 로이 대령이 워털루 다리 난간에서 마이라가 준 행운의 마스코트를 바라보며 추억을 되새기다가 다시 지프를 타고 워털루 역으로 향하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애수(Waterloo Bridge)’는 1940년 머빈 르로이 감독이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로버트 E. 셔우드의 동명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흑백영화로서, 영국 명문가의 젊은 장교와 미모의 발레단 무용수의 아름답고 비극적인 사랑을 인상적으로 그려내어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객들을 울리며 불후의 명작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이 영화의 OST인 ‘올드 랭 사인’은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밤에 영국 런던의 세인트 폴 사원 앞에 모여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부르는 노래이다. 스코틀랜드의 시인이며 작곡가인 로버트 번스가 스코틀랜드의 민요에서 채보(採譜)하고 작사한 것인데, 이제 세계적인 이별의 노래가 되었다.
이 노래의 제목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은 스코틀랜드 남부의 사투리를 그대로 쓴 것으로, 표준어로 쓰면 ‘오랜 옛날부터’라는 뜻의 ‘올드 롱 신스(Old Long Since)’가 되고, 의미대로 쓰면 ‘옛날 옛적에’라는 뜻의 ‘롱 롱 어고우(Long Long Ago)’가 된다.
우리나라에는 언제부터인지 이 노래가 ‘석별’ 혹은 ‘석별의 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왔다. 한국인의 정서와도 잘 어울리는 애조(哀調) 띤 곡으로, 8.15해방 전까지는 만주와 상해 등지에서 활동하던 독립투사들 사이에서 애창되었으며, 안익태 선생이 지금의 애국가를 작곡하기 전까지는 이 멜로디가 우리나라의 국가로도 사용되었다.
알랭 들롱이 등장하기 전, 4~50년대에 세계 최고의 미남배우로 명성을 떨쳤던 로버트 테일러의 장교복 입은 모습이 멋진 이 영화는 6·25전쟁 중에 피난지인 부산과 대구에서 처음 개봉되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재개봉되어 많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그 당시, 이 영화의 영향으로 연인들 사이에 조그만 마스코트를 선물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유행했다는데….
첫댓글 명작중의 하나이지요 젊은 날 연인들과 이영화를 보면서 가슴 아팠던 추억이 있을겁니다
2019년 8월 18일에 이영화 '애수 Waterloo Bridge'가 올려져 있으니 감상하시면 되겠군요
선견지명이 있으시군요.
미리 '애수 Waterloo Bridge'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젊은 사람들도 꼭 한번은 보아야 할 명화죠.
@월산거사 이영화를 보면서 많은 이들의 가슴이 아려 오는 이유는 무얼까요? 아름다운 추억 때문이겠지요?
거사님의 에세이 읽고 영화를 보는 우리 카페회원님들은 호강하시는 셈이지요. ㅋㅋ
@여정 연초에 해주시는 덕담이라 생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스토리는 다르지만, 옛사랑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시집가서 잘 사는줄 알았는데 십년만에 직장으로 전화가 왔어요. 그런데, 모진 마음으로 받지않았습니다. 받았다간 그 여자가 허물어질 것같아서요.
https://youtu.be/j9wBK32HC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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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옛사랑에 대한 환상을 지닌 채 헤어졌는데,
중간에 옛사랑을 여러 번 만나면서 환상을 깨고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거든요.
@월산거사 아이고 거사님! 우짤라고 그랬심니꺼? 막상 만나면 오는 그실망감이~~~~ㅜㅜ
@여정 그래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으니, 저는 만나길 잘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잘 했심더. 옛사랑은 추억속에 담아두는 기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심더. 막상 만나보면 100명중 99명은 옛날 모습이 아니라서 실망한답니더. ㅎㅎ 가리 늦가 불 붙으면 끌 수도 없심더. 참말로 잘했심더. ㅎㅎ
https://www.youtube.com/watch?v=Pim5HHyl6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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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옛사랑을 만나서 실망하면 현실에 더 충실해질 수도 있죠,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월산거사 옛사랑은 싱싱한 젊은 날의 추억으로 가슴에 담아두는 것이 훨씬 아름답고 달콤하지요. 초라한 현재의 첫사랑의 모습을 만나면 모두가 실망합니다.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는 그추억을 가슴에 묻어두고 이따끔 추억하면서 아름답게 살지 않습니까? 그노님이 현명하신거지요. ㅎㅎ
@여정 네, 그 말씀에 90%쯤은 동의 합니다. 그러나 10%쯤의 예외도 있지요.ㅎㅎ
애수, 베라크루스, 셰인은 건너 뜁니다,
너무 많이 보아 와서요!ㅎㅎㅎ
네, 그 셋은 워낙 유명한 영화들이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