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옛날부터 사람들의 지식을 담고 그 지식을 널리 퍼뜨리는 생각의 매개체 역할을 해 왔다. 휴대폰이나 컴퓨터같은 인터넷 매체가 발명되기 훨씬 전 부터 사용되었던 책은 종류가 감히 셀 수 없을 정도로 수없이 많다. 이 역사가 담겨있는 수많은 책들을 한눈에 담아 직접 구경할 수 있는 장소가 있으니, 바로 부산의 보수동 책방골목이다.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겼던 시대부터 수많은 정보가 오고가는 현대시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책들이 분포해 있는 이곳은 1950년대, 생활비를 위해 상인들이 헌책을 팔기 시작하면서 노점과 가판대 등이 주를 이뤄서 형성되었고, 60년대부터 서점의 형태로 변화하면서 전국의 다양한 책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70년대에는 70여 개의 서점이 들어서며 전성기를 맞기도 했고, 우리나라의 경제 위기였던 IMF 시대에도 헌책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득을 보기도 했다. 인터넷 서점의 돌풍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부흥을 위한 문화행사를 시행하고, 책을 직접 찾아서 펼쳐보는 감성적인 측면으로 인기를 유지해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유구한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보수동 책방골목에는 서점만 있는 것이 아닌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사진관과 편하게 휴식할 수 있는 카페, 책방골목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관광안내소 등의 시설도 위치해 있어 여가를 목적으로 방문하기도 좋은 곳이다.
책방골목에서 중구쪽으로 걷다 보면 부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장소가 또 한 곳 나오는데, 바로 부산근현대역사관이다. 책방골목이 한국전쟁 이후의 부산 시민들의 문화와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곳이라면 여기는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부산의 외교적인 아픔과 수난, 근현대사의 정권과 그 사상이 담긴 문화재들을 모아놓은 부산의 커다란 역사책같은 곳이다. 1929년에 일본 제국이 건축한 이 건물은 일제감정기 때 부산의 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지점으로 사용되었다가 광복 후 미국의 문화와 물품 등을 전시하는 부산미국문화원으로 바뀌었다. 이 부산미국문화원은 독재정권 당시 월 9만명 정도가 방문했다고 하며, 대학생들에 의해 방화를 당하는 등 피해를 입기도 하다가 1999년에 부산광역시의 소유가 되면서 2006년부터 부산근현대역사관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전체적으로 도서관의 느낌이 강했다. 대청서가라는 이름이 붙여진 1층은 기둥과 벽들을 메우고 있는 책장과 그 사이사이 꽂혀 있는 근대 역사와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 그리고 그 책들을 읽으며 쉴 수 있는 여러 의자와 데스크, 어린이를 위한 책놀이터도 마련해 놓아 박물관 같은 웅장한 분위기가 아닌 깔끔한 라운지 같은 느낌이 나는 게 매력적이었다.
대청마루라는 이름의 2층은 벽에 붙어있는 하얀 패널에 역사를 설명하는 검은 글씨들과 방문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 사진과 같은 시청각 매체가 알맞게 배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6.25 전쟁 때 쓰여진 실제 책 40권이 전시되어 있었고, 50년대 당시 국민학교 학생들이 사용하던 교과서의 키트를 직접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었다. 오직 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반구형 모양의 마루들을 배치해 재미를 더하기도 했다. 이런 특별한 특징들 이외에도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인문학 프로그램과 넷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소규모의 공연 등 심심할 틈이 없도록 감상의 퍼레이드가 펼쳐지니 조용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나만의 공부장소를 찾고 있다면 여기도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연말 12월에는 역사관의 본관이 개관한다고 하니 이 또한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