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님, 오늘밤에는 꼭, 산타할아버지를 저희에게 보내 주세요. 모두 산타클로스는 없대요. 그건 어른들이 전부 꾸며낸 얘기래요. 하지만 지운이는 아는걸요? 분명히 산타할아버지가 루돌프를 타고 오실 거라는 걸 말이에요. 꼭... 지운이의 선물을 가지고 오실 거예요... 천사님, 산타할아버지를 지운이에게 보내 주세요. 아멘...."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짧은 곱슬머리의 사내아이는 꼭 쥐고 있던 손을 풀며 눈을 떴다. 아이의 옅고 긴 속눈썹이 천천히 깜박거리고, 기도를 읊조렸던 앵두 같은 입술이 달빛에 반짝였다. 아이는 자신의 옆에 무릎 꿇고 앉아 아직까지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있는 다섯 살 난 여자아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지아야, 이제 눈떠도 돼."
"기도 끝났어, 오빠?"
"응."
"그럼, 이제 산타할아버지 오시는 거야?"
"그건 자신할 수 없어. 워낙 바쁜 날이잖아."
"왜? 그래도 천사님께 기도도 했잖아."
"천사님께 기도하는 아이가 우리 밖에 없는 건 아닐 거야. 세상의 아이들은 많아. 우리 아파트만 해도 100명쯤 될걸?"
"100명? 그렇게나 많아?"
"그래. 그러니까 온 세상에 있는 아이들은 다 세지도 못할 거라구."
"억 명 보다 많아?"
"그럴걸?"
"이야.....!!!"
"게다가 산타클로스는 한 명이잖아. 밤사이 그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힝... 그럼 올해도 산타할아버지는 안 오시는 거야?"
어느새 지아의 구슬 같은 눈동자에 이슬이 맺힌다. 지운이는 울먹이는 여동생의 어깨를 안아주며 달래 듯 말했다.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응. 그 수많은 아이들 중 우리가 선택받을 수도 있어. 산타클로스는 처음부터 아이들을 정해 놓으시진 않거든? 하늘을 날다 착하게 잠들어 있는 아이를 발견하면 선물을 주시는 거지."
"정말?"
"응. 그러니까 울지 말고, 침대로 올라가서 착하게 자는 거야. 알았지?"
"응."
그러면서 지아는 무릎을 펴고 일어나 침대로 뛰어 올라갔다. 지운이 역시 침대로 올라가 눕고는 옆에 있는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아이들의 눈은 별처럼 빛나고, 동그란 뺨 위로 보드란 솜털이 가늘게 숨쉬고 있었다.
"근데, 오빠. 저렇게 걸어 두면 정말 그 안에 선물을 넣어 주실까?"
이제 지운이와 지아는 마주 보이는 벽에 걸려져 있는 크리스마스 양말과 장갑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산타클로스가 이 방에 들어오시면 제일 먼저 성탄 양말을 찾아보실 거야. 왜냐면 산타할아버지는 주머니 같은 것에만 선물을 담아 주시거든?"
"정말?"
"그렇다니까. 저렇게 양말하고 장갑을 걸어 놓으면 그 안에 넣기 가장 좋은 선물을 담아 주실 거야."
"그럼 큰 주머니를 달아 놓으면 선물도 큰 걸로 주시겠네?"
"그래도 너무 크면 안 좋아. 산타클로스가 들고 오기 힘드니깐 말이야."
"오빠, 그래도 큰 주머니를 하나 달아 놓으면 안 돼? 어쩌면 그 안에도 선물을 넣어 주실 지 모르는데..."
"양말하고 장갑을 걸어 뒀으니 됐어. 욕심내지 마. 응?"
지운이의 달래는 듯한 말투에 뾰루퉁해진 지아가 말했다.
"큰 주머니를 달아 놓으면 우리 아빠 선물까지 주실 지 모르잖아."
"또 아빠 얘긴 왜 해? 아빤 이제 안 오신다고 했잖아. 엄마랑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다른 가족을 만들었다고 했잖아."
"싫어, 지아는 그런 얘기 싫어. 아빠 보고 싶어. 아빠 보고 싶어!!! 앙~~"
드디어 지아의 큰 눈에서 맑은 별똥이 뚝뚝 떨어졌다. 지운이은 울고 있는 동생을 꼭 껴안고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큰 주머니도 달아 놓자. 산타할아버지가 아빠 선물도 가지고 오시게 큰 주머니도 달아 놓자구... 산타할아버지가 오시면 저 안에 들어갈 가장 좋은 선물을 넣어 주실 거야. 그러니까 울지마, 울지마..."
잠시 후,
두 손을 꼭 잡은 채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아이들 머리 위로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아이들 맞은 편 벽에는 크리스마스 양말과 장갑, 그리고 그 옆으로 큰 주머니가 사이좋게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 머리 위에 있는 창문 틈으로 눈동자 하나가 보였다. 아이스 블루... 그 얼어붙을 것 같은 눈동자의 주인공은 씩 하고 웃은 후 몸을 날려 심연의 밤하늘로 사라졌다.........
03-12-24 PM 11:48
클럽 뉴이바의 공기는 탁했다. 코를 찌를 듯한 알콜 냄새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짙은 담배 연기... 그리고, 어둠의 노래를 계속해서 부르고 있는 무대 위의 싱어... 그의 우울한 음색은 클럽 뉴이바의 공기 마저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여기 한 잔 더 줘요."
벌써 여섯 잔 째 스트레이트를 주문하고 있는 저 여인... 그녀의 움푹 패인 눈이 여러 차례 깜박이고 있었다. 잠시 후 새로운 잔을 그녀 앞에 내미는 바텐더...
"많이 취하신 것 같습니다, 손님."
"훗... 신경 쓰지 말아요. 이브 날 밤이잖아요."
"그런데 손님은 우울해 보이시는 군요. 보통의 젊은 여성들은 지금 이 시간 친구들과 어울려 있지 않나요?"
"당신........!!"
여자는 풀려버린 혀로 그를 쏘아 부르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바텐더와 눈이 마주친다.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소원을 말해봐요."
"훗... 새로운 영업 전략인가요? 소원을 들어 주는 바텐더라... 제법 기발하네요."
"내일이 크리스마스잖아요. 사실, 오늘밤에는 굉장히 바쁘지만, 접수된 소원이 너무나도 많아서 말이죠. 하지만 특별히 당신을 위해 선물을 준비해 보죠."
"지금 날 유혹하는 거예요?"
"하하하... 그럴리가요. 단지 소원을 말하라고 했을 뿐이에요. 말해봐요, 레이디. 당신은 무엇이 갖고 싶죠? 말해서 손해 볼 건 없어요."
아이스 블루의 눈동자가 뚫어질 듯 그녀를 응시했다.
"하긴... 조금 심심했던 찰나였어요. 좋아요, 당신의 그 유치한 장난에 장단을 맞춰 드리죠. 이 거짓말쟁이 아이스 블루씨. 후후..."
여자는 스트레이트 잔을 들어 쭉 들이킨 다음 우울한 목소리의 싱어를 돌아봤다. 그러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싱어를 아세요? 제가 클럽 뉴이바를 찾는 유일한 이유죠. 그의 부드러운 노래 소리가 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답니다. 기타를 만지는 저 길다란 손가락을 만져보고 싶어요. 단단한 그의 입술에 키스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는 냉정한 사람, 여자에게 관심이 없어요. 물론 절 기억하지도 못 할 테죠. 이렇게 매일 밤 자기를 보러 오는 데도 말이에요...."
여자의 구슬픈 목소리에 바텐터의 아이스 블루가 조금씩 흔들렸다.
"소원이 뭐냐고 물으셨나요?"
이제 여자는 촉촉이 젖은 눈을 돌려 바텐더를 똑바로 쳐다봤다.
"저 남자가 나만 바라보는 것, 저 남자의 깊고 슬픈 눈동자가 나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어때요? 들어줄 수 있나요?"
그리고 여자는 웃었다. 마치 말도 안 되는 말을 뱉은 후 멋쩍어 하는 사람처럼.
"좋습니다. 손님의 소원, 확실히 접수되었습니다. 내일 아침 당신의 소원이 이뤄질 겁니다."
"후후후... 그런가요? 기대해 보죠. 그럼........ 전 이만 가봐야겠네요. 즐거웠어요, 거짓말쟁이 산타클로스. 당신에게도 좋은 크리스마스가 되길 빌어요."
여자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클럽 뉴이바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서 바텐더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다.
"메리 크리스마스, 레이디......."
03-12-25 AM 7:20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온 세상은 하얗게, 그 행복함을 들이밀고 있었다.
알람 소리에 잠이 깬 30대 중반의 주부 성정아씨는 에이프런을 둘러매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어제 밤에 미리 준비해 놓은 케잌 재료들이 식탁에 고스란히 올려져 있었다.
"자, 슬슬 시작해 볼까?"
성정아씨는 즐거운 듯 콧노래를 부르며 밀가루 반죽을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한 시간 뒤 새하얀 생크림의 크리스마스 케잌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완성된 자신의 작품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성정아씨는 에이프런에 젖은 손을 닦으며 2층으로 올라갔다.
"지운아, 지아야,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 엄마가 뭘 준비했는지 보지 않을래?"
성정아씨는 손을 마주 잡은 채 잠들어 있는 천사 같은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그녀는 아이들의 이마에 차례로 키스하고는 속삭였다.
"딱 30분만 더 자는 거야, 알았지?"
아이들을 다시 한번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내려보던 성정아씨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가다 벽에 걸려 있는 크리스마스 주머니들을 보았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그 앞으로 다가갔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심장이 세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게?"
크리스마스 양말을 떼어 내자 제법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불쾌한 기분으로 양말을 뒤집었다.
툭!!
그것은 분명 사람의 발이었다. 발목 위로는 어떤 것도 붙어 있지 않은 사람의 발......
"헉............ 뭐, 뭐야.....!!!"
성정아씨의 떨리는 손은 이번엔 장갑을 떼 내어 뒤집었다.
툭!!
사람의 손, 손목만 남아 있는 사람의 손이었다.
"허................ 억.....!!!"
성정아씨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돌려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꿈나라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다시 벽으로 고개를 돌린 그녀는 벽에 걸려 있는 나머지 하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것을 떼어 내기란 불가능했다. 엄청난 무게감, 결국 그것을 지탱하던 못이 부러지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대형 주머니가 그녀의 발 앞으로 떨어졌다.
철퍼덕!!!!
곧 그 안에서 걸쭉한 물이 베어 나와 성정아씨의 흰 양말을 붉게 적셔 갔다.
"헉........!!!"
뒷걸음질치던 그녀는 바닥을 채우고 있는 붉은 액체에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녀의 새하얀 에이프런에 붉은 반점이 찍히고, 그녀가 손바닥을 움직일 때마다 붉은 손도장이 바닥에 새겨졌다. 그녀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이 끔찍한 상황에서 얼른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몸을 일으키려던 그녀는 힘이 풀린 다리 덕에 다시 앞으로 고꾸라졌고, 그때 본능적으로 앞으로 뻗친 손이 그만, 주머니의 입구를 벗기는 꼴이 되고 말았다.
거짓말처럼 주머니가 열린다. 스르륵 벗겨진 그것은 자신이 품고 있던 내용물을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었고, 성정아씨는 더 이상 정신을 붙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붉은 바닥으로 쓰러진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벗겨진 주머니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손목과 발목이 잘려나간......... 자신의 전 남편이었다.
03-12-25 AM 9:34
찌~~~잉!!!
몇 번이고 눌러 대는 벨소리에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쑤셔왔다. 그녀의 거친 입김에는 아직도 알콜의 역한 냄새가 베어 있었다.
"누구세요!!!"
제법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치며 문을 열자 환한 표정의 남자가 입구에 서서 웃고 있었다.
"퀵 서비스입니다. 정은수씨 되십니까?"
"그런데요."
"여기 사인 좀 해 주시겠습니까?"
여자가 성의 없이 사인을 마치자 남자는 들고 있던 보라색으로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내밀었다.
"누가 보낸 거죠?"
"그건 잘 모르겠지만 좀 전에 클럽 뉴이바에서 싣고 온 것입니다."
"클럽 뉴이바?"
잠시 의아해 하던 그녀는 곧 어젯밤 일이 떠오르자 코웃음을 쳤다.
"그럼 확실히 인계했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메리 크리스마스!!"
퀵 서비스 맨이 돌아가자 여자는 상자를 이리저리 뒤집어 보고는 별 관심 없다는 듯 식탁으로 휙하니 던졌다.
"보나마나 기념품 같은 거겠지. 클럽 뉴이바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찍힌. 쳇, 별걸 다해 하여튼. 크리스마스다 이건가? 대체 집 주소는 어떻게 안 거야?"
여자는 고개를 절레거리고는 샤워 실로 들어갔다. 어제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이 없었다. 단지 아이스 블루의 눈동자를 가진 특이한 분위기의 바텐더만 떠오를 뿐이었다.
"내가 어제 무슨 얘길 한 거야, 쓸데없이......"
잠시 후 샤워 실에서 나온 여자의 온 몸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타는 갈증에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들고 식탁으로 다가간 그녀는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라이타, 아, 아니다. 콘돔, 그래, 콘돔이 분명해. 요즘은 툭하면 그런 걸 기념품이랍시고 주고들 하니까. 쯧...."
그러면서 여자의 손은 어느새 보라색의 포장지를 뜯고 있었다.
"가벼운 걸로 봐서 분명하네. 쓸데도 없는 사람한테 너무한 거 아냐? 후후후..."
하지만 잠시 뒤, 웃으며 상자 뚜껑을 열던 여자의 표정은 겁에 질려 일그러졌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꺄~~~~ 악!!!!"
그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본능적으로 던져버린 상자 안에는 사람의 것이 분명한 동그란 안구가 들어 있었다. 그녀의 창백해진 얼굴 위로 땀이 솟아오를 때쯤, 어젯밤 그 기묘한 바텐더에게 했던 자신의 말이 떠올랐다.
저 남자가 나만 바라보는 것, 저 남자의 깊고 슬픈 눈동자가 나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 어때요? 들어줄 수 있나요?...............
Second Story. Don't Cry, Baby
"언니, 나 왔어!!"
발랄한 차림의 여자가 508호의 문을 연 것은 온 세상이 축제 분위기로 한껏 들떠 있는 크리스마스 이브 날 저녁이었다.
"어서 와. 차, 많이 밀리지?"
"말도 마. 도로가 완전 주차장이야. 형부는?"
착한 인상을 가진 남자가 거실로 나오며 그녀를 반겼다.
"왔어, 처제? 밖에 많이 춥지?"
"이맘때면 언제나 그렇잖아요. 잘 지냈어요, 형부?"
여자는 언 손을 호호 불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와!! 트리 예쁘게 만들었네. 진짜 크리스마스 분위기 나는 걸?"
베란다 앞에 놓여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황홀한 눈으로 쳐다보던 그녀는 곧 몸을 돌려 자신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언니 부부에게 물었다.
"우리 강아지들 어딨어? 자?"
"시간이 몇 신데 벌써 자. 방에 있어."
"흠.. 이것들이 이모가 왔는데 나와 보지도 않는다 그거지? 혼내 줄 테다, 요 놈들."
"명이 데리고 나와, 저녁 먹자."
"알았어, 언니."
여자는 신나는 얼굴로 아이들 방의 문을 열었다.
"한동명!!"
"이모!!"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들고 있던 동화책을 내려놓고 여자에게 달려와 안겼다.
"잘 지냈어? 어디 보자, 우리 명이 얼마나 컸나?"
"언제 왔어, 이모?"
"방금. 이모가 뭐 사왔게? 짜-잔!!"
남자는 장난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리면서 급하게 손을 씻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밀가루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역시 애 보는 재주는 없다니까."
여자는 꽤나 유감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번에는 찌개의 간을 보고 있는 자신의 언니 곁으로 다가갔다.
"나 몇 일째 감기가 떨어지질 않아. 경이 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당연하지. 너 경이 만질 생각, 꿈에서도 하지마. 응?"
"어유~ 걱정을 마셔. 그 정돈 아니까. 얼른 들어가 봐. 우리 경이 저러다 숨 넘어 가겠어."
"니네 형부가 갈 거야. 애 둘 키우더니 달래는 수준이 신의 경지야, 저 사람. 신경 쓰지 말고, 앉아. 밥 먹자."
여자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방을 걱정스레 돌아본 후 의자를 꺼내 식탁에 앉았다.
"많이도 차렸다. 이젠 별 걸 다 할 줄 아네?"
"7년 차 주부 아니냐? 맛도 보증해.... 당신, 손 다 씻었음 얼른 들어가 봐요. 경이 기저귀 젖었나봐."
"오케이. 지금 간다구. 처제 먼저 시작하기 없어."
"의리가 있지!! 젓가락 하나 건들지 않을 테니까 다녀오세요, 형부."
순간, 아이들의 방이 조용해졌다. 넘어갈 듯 울어 젖히던 동경이의 소리가 뚝 하고 멈춘 것이다.
"어, 경이 안 운다."
"녀석, 오늘은 금새 그치네."
남자가 웃으며 부엌을 나서려는 순간, 동명이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안 가보셔도 되요, 아빠. 동경이 이제 안 울어요."
"어유~ 우리 이쁜 동명이. 동생도 잘 보네?"
여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씩씩한 표정으로 서 있는 동명이를 안아 토닥였다.
"앉아. 다들 앉으세요. 자기도 앉아."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찌개 냄비를 올리며 여자의 언니가 말했다.
"경이한테 안 가봐?"
"괜찮아. 우유 먹은 지도 얼마 안 됐고, 혼자서도 잘 노니까. 일단 밥부터 먹자구. 또 칭얼거리면 그때 들어가 보면 돼. 앉아."
여자는 아이들 방을 보며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지만 자기를 끌어당기는 남자의 손길에 끌려 식탁 앞에 다시 앉게 되었다.
"자, 자 먼저 건배부터 하자구. 여기 모인 사랑하는 내 가족들,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
남자의 넉살에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고, 모두들 환상적인 음식을 먹기 위해 잔을 내리고, 수저를 들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저마다 음식 얘기에 옛날 얘기에, 그렇게 화기애애한 저녁 식사가 계속 되고 있었다.
"근데, 처제는 언제 결혼 할 거야? 오늘 같은 날 데이트 할 남자도 없어? 해마다 아줌마, 아저씨랑 이제 뭐야?"
"뭐 어때서요? 난 이게 좋아요. 우리 동명이 동경이도 있고. 그치, 명아?"
아이는 스파게티 면을 입에 달고 활짝 웃었다.
"너도 얼른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 가. 니 자식 낳아서 키워야지, 언제까지 조카들만 물고 빨고 할래?"
"피... 됐어요, 아줌마. 난 형부처럼 좋은 남편 만날 자신도 없고, 또 우리 명이, 경이처럼 이쁜 아이 만들 자신도 없네요."
그러면서 사랑스러운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에게 아이가 물었다.
"이모는 동명이가 그렇게 예뻐요?"
"어유~ 당연하죠. 이모는 세상에서 우리 명이가 제일 좋답니다."
"어머, 쟤 봐. 당신 닮아서 넉살이 장난 아냐."
"괜찮아. 사내 녀석이 넉살도 있고 그래야지. 하하."
세 사람은 아이의 귀염 짓에 저마다 행복한 웃음을 웃고 있었고, 그들만의 작은 파티는 그렇게 무르익고 있었다.
"근데 언니, 아무리 생각해도 명이는 또래 애들 같지 않은 데가 있어. 경이 보는 것 좀 봐. 애가 애를 보는 거 같지가 않다구."
"원래 밑에 여동생 있는 집 애들은 다 그렇대. 또 지 아빠가 좀 다정하니? 그 피가 어디가?"
"하여튼 우리 명이는 진짜 멋있는 오빠야."
여자는 계속해서 스파게티 면을 돌리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도 봐. 경이 우는 거 똑 달래놓고 나왔잖아. 의젓한 녀석 같으니라구."
찌개를 한 숟가락 퍼서 입에 넣은 후 남자가 아이를 향해 물었다.
"근데 너, 동경이는 어떻게 달래 놓은 거냐? 재주 좋네?"
그제서야 포크를 내려놓은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자신 있게 말했다.
"그냥 별 거 없어요. 우는 아기는 나쁜 아기라고 했죠. 계속 그렇게 울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줄 거라구요. 전, 동경이가 선물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이 됐을 뿐이에요."
"하하하. 욘석, 요 맹랑한 녀석."
식탁에 앉아 있는 이들은 다시 한번 웃음보가 터졌고, 저마다 이 작은 아이가 주는 행복에 즐거워했다. 참으로 행복한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리고, 아기가 혼자 있는 작은 방에서는, 행복으로 넘쳐 나는 바깥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그 곳에서는, 더 이상 울지 않는 착한 아기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얼굴은 베개로 눌러진 채, 그리고 그 베개 위에는 두꺼운 동화책 박스가 올려진 채로........
Final Story. Santa Claus Is Comming to My Home
"자, 이제 수염을 붙여 봅시다. 박스 세 번째 칸을 열어보시면 인조 수염과 고무 밴드가 있을 겁니다. 밴드 봉지를 먼저 끄집어내시고 다음에 수염을 꺼내세요. 수염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뤄주세요. 엉키면 굉장히 곤란합니다. 본인의 부주의로 못 쓰게 된 수염은 또 다시 제공해 드리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두 당 하나씩만 입니다........ 아, 뒤쪽 아저씨!! 제가 그렇게 말씀 드렸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잡아당기니 수염이 찢어질 수 밖에요....... 아니요, 여분은 없습니다......... 당연하죠. 수염이 없다면 진정한 산타클로스가 아니죠...... 굳이 그러시다면 복도 3번째 사무실로 가보세요. 그 곳에서 별도로 구입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니요,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네, 맞습니다. 그 쪽입니다. 그 곳에서 수염을 구입하신 다음, 다시 여기로 오시면 됩니다. 자, 그럼 우리는 계속해서 수염을 붙여 보도록 하죠. 가장 긴 밴드로 이렇게... 감으시면 됩니다. 굉장히 쉽죠? 다음은........."
제일 뒷자리에서 일어선 남자는 불퉁한 얼굴을 한 채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의 손에는 튿어진 인조 수염이 들려 있었다. 그는 투덜거리는 발걸음으로 복도를 따라 걷다 잊었다는 듯 멈춰 서더니 몸을 돌렸다.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 왼쪽."
그의 걸음이 조금 빨라지더니 얼마 가지 않아 곧 3번째 사무실의 문을 발견하고는 이내 얼굴이 환해졌다.
"수염을 따로 구입하려고 하는데요."
"네, 이쪽으로 오세요. 어떤 제품이죠?"
남자는 대답 대신 손에 들려 있는 찢어진 수염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안경 낀 여자는 무척 유감이라는 목소리로 말해왔다. 그녀의 안경 밑에 숨어 있는 주근깨들이 들썩이고 있었다.
"X-2로 군요. 이 제품이 잘 찢어진답니다. 소재가 솜이라 쉽게 튿어지기도 하구요. 역시 박스에서 꺼내다가 이렇게 된 모양이군요?"
"네... 혹시 AS를 받을 수도 있습니까?"
"이건 또 유감이네요. X-2 모델은 AS 제품이 아니랍니다. 기본 단가가 다른 제품에 비해 월등히 저렴한데서 오는 단점이기도 하죠."
"따로 구입하면 얼맙니까?"
"밴드 포함해서 만 팔천 원입니다."
"밴드는 있습니다만..."
"불행히도 밴드와 세트 제품이랍니다. 아, X-3도 있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X-3?"
여자는 여전히 주근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아래로 숙여 작은 박스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남자가 그것을 받아 열고 있는 동안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최신 모델입니다. 소재가 합성 나일론으로, 일단은 질기구요, 밴드가 부착되어 나온 제품이라 착, 탈의도 간편합니다. 그냥 귀에다 걸어 주시면 되거든요."
그것은 남자가 봐도 자기가 찢어 먹은 수염 보다 좋아 보였다. 털실처럼 생긴 가닥가닥은 꼬불꼬불 웨이브까지 져 있었다. 언젠가 티비에서 방영된 핀란드 산타 축제에서 본 것과 꼭 닮은 수염이었다.
"이건 얼마죠?"
"X-2의 모든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했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 가격이 조금 비싼 편입니다. 삼만 이천 원, 손님께는 특별히 삼만 원에 드리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남자는 조금 고심하더니 이내 만 원짜리 석 장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여자의 표정은 만족스러워 보였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손님. 부디 메리 크리스마스...!!"
그 곳을 빠져나온 남자는 제법 괜찮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원래 있던 곳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올 때는 왼쪽, 갈 때는... 오른쪽. 오른쪽, 오른쪽...."
잠시 후 남자가 원래 있던 사무실의 문을 열었을 때, 그 곳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수염이 붙어 있었다. 모두 여자가 말했던 X-2 제품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만 사천 원이 비싼 X-3를 내려다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자, 이제 여러분 모두 산타클로스가 되셨습니다. 정말 영락없는 산타의 모습 그대로군요."
강단 앞에 서서 설명을 하던 남자는 대단히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실내를 둘러 보다 조금 전에 들어온, 아직까지 수염을 붙이지 못한 남자를 쳐다보고는 이내 웃음기가 가셨다. 그는 강단에서 내려와 객석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이것으로 산타 분장은 끝이 났습니다. 이제는 선물을 담을 주머니를 꺼내 볼까요?"
그는 어느덧 X-3를 손에 든 남자에게까지 걸어와 있었다. 그는 수염을 잠시 내려다보더니 남자를 향해 씩 하고 웃었다.
"보자기의 크기는 S, M, L 세 가지입니다. 자신이 주문한 사이즈가 맞는지 확인해 보세요."
그러면서 그는 빠른 손놀림으로 X-3를 남자의 귀에 걸었다. 눈 깜짝할 사이 남자에게도 수염이 생겨났다. 그 모습에 만족한 듯 그는 남자의 어깨를 툭 치고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내밀어 보였다. 남자 역시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가 다시 강단으로 올라가자 남자는 또 하나의 박스를 열어 보자기를 확인했다. 확실히 'L'이 맞았다.
"주문하신 제품이랑 틀린 분 계시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좋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올해 최고의 산타들이 되셨습니다. 모두들 댁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의 아내와 혹은 아이들은,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추억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올해도 잊지 않고 저희 '해피 데이'의 제품을 이용해 주신 여기 모인 고객님들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해피 데이'는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기업, 최고의 크리스마스를 설계하는 기업, 여러분들의 꿈을 이루어주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크리스마스, and... Dreams come true!!!"
크리스마스 전문 샵 '해피 데이' 건물을 빠져나온 남자의 얼굴에는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들어 1번을 꾹 눌렀다. 잠시동안의 연결음, 곧 전화기 저 편에서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유니? 아빠야....... 그래, 우리 미유, 엄마 말씀 잘 듣고 있지?...... 그래, 그래 착하다, 우리 딸........ 아빠? 지금 출장 중이지........ 아니, 거의 다 끝났어. 곧 집으로 돌아 갈 거란다......... 선물? 물론 준비했지. 우리 딸, 기대하고 있어요. 아빠가 최고의 크리스마스를 만들어 줄 테니까....... 그래, 나중에 보자........ 아빠도 사랑한단다."
플립을 닫은 남자의 얼굴에는 따스한 미소가 번져났다. 그리고 곧 발길을 재촉했다.
새벽 1시,
한 남자가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내려 준 것이 루돌프가 아니라 모범 택시였다는 것만 빼고는 거의 완벽한 산타클로스였다. 그의 코 아래 부분을 모두 덮은 X-3 수염이 노란 가로등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는 천천히 발을 옮겨 골목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아늑한 분위기의 집이었다. 벽돌로 지어진 그림 같은 집, 그것을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에는 웃음으로 가득했다. 빨간 벽돌로 된 외벽, 잔잔한 호수 같은 넓은 유리창, 외벽 보다 더욱 짙은 빨강의 지붕. 하지만 남자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그 지붕 위에 지어진 낮은 굴뚝이었다.
"그래, 진정한 산타에게는 굴뚝이 제격이지."
남자는 다시 한번 복장을 가다듬고는 보자기를 단단하게 짊어졌다. 행복하게 웃음 지을 자신의 딸, 미유 생각이 스치자 가슴이 따듯해져 옴을 느꼈다.
사실 몇 번의 연습이 있었다. 가족들 몰래 벽을 타고 지붕에 올라 굴뚝으로 들어가는 연습,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그는 이제 눈을 감고도 그 일을 충분히 해낼 수가 있었다. 지붕에 올라 굴뚝으로 들어가는데 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굴뚝 안으로 들어갈 때 걸리적거렸던 자신의 볼록한 배를 다이어트하기 위해서 그동안 헬스도 꾸준히 했었다. 완벽한 크리스마스 새벽이었다.
드디어 집 안,
남자는 산타 옷에 묻은 그을림을 조금 털어 내면서 조용한 집 안을 둘러보았다. 현관 옆에 놓여진 크리스마스 트리의 간헐적인 불빛말고는 그야말로 적막한 어둠뿐이었다. 남자는 깊게 심호흡을 하였다.
"자, 파티의 시작이다!!"
남자는 거실 장식장에 놓여진 크리스마스 촛대를 들어 불을 붙였다. 제법 주위가 환해진다. 촛대를 손에 든 그는 천천히 걸었다. 제일 먼저 연 문은 그의 오른쪽에 있었다. 문을 열자 그가 싣고 온 불빛이 어두운 방안을 밝혔다. 입구에 선 채 방안을 살펴보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작은 책상 옆에 있는 작은 침대. 그리고 그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천사 같은 여자 아이. 남자는 다시 한번 흐뭇하게 미소짓고는 행여 아이가 깰까 조심조심 문을 닫았다.
아이의 방문을 닫은 그가 다음으로 문을 연 곳은 안방이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그 곳... 남자는 천천히 발을 떼어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로 다가가 들고 있던 촛대를 잠들어 있는 여자 가까이로 가져갔다. 여자의 얼굴은 평온해 보인다. 행복한 꿈이라도 꾸는 것인지 가끔 웃기까지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의 입가에도 웃음이 번진다.
이제 촛대는 여자에게서 비켜나 그 옆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촛불의 밝은 빛은 여자 옆에 누워 있는........ 또 다른 사람을 비추었고, 남자의 얼굴에는 더 이상 웃음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남자는 처음으로 인상을 찌푸린다. 그는 자신의 아랫입술을 질근질근 씹어대고 있었다. 무서운 얼굴로 변한 남자는 숙이고 있던 몸을 일으켰고 그 순간 그만, 촛농 한 방울이 여자의 얼굴로 떨어졌다.
여자가 눈을 뜬다........ 눈앞에 보이는 흔들리는 밝은 빛.......... 여자는 그것을 자세히 보기 위해 잠든 눈을 비빈다........ 그리고 촛대...... 그 위에 꽂혀있는 크리스마스 양초......... 그리고......... 그것을 들고 있는........... 산타..... 클로스............???
"메리 크리스마스... 흐흐....."
"꺄~~~~~~악!!!!!!!!!!"
여자는 성대가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더니 옆에 잠들어 있는 남자를 흔들었다. 여자의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것 보다 여자의 입술이, 여자의 턱이 떨어져 나갈 듯 떨린다.
"여, 여....... 여... 보....."
여자는 더욱 세차게 잠들어 있는 남자를 흔든다. 그때까지 여자의 눈은 촛대를 든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산타클로스에게 향해 있었다.
하지만 방안은 여전히 밝은 빛이 살아 있다. 남자의 다른 쪽 손에 촛대에서 빠져나온 양초가 들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에 박힌 촛대를 뽑아 내자 여자의 목은 금새 끈적한 핏덩이들을 뿜어낸다.
"헉!!! 누, 누구야!!!!"
그제서야 겨우 눈을 뜬 여자의 남편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산타클로스.......?"
"너도 메리 크리스마스....."
남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촛대를 높이 들어 한 점 망설임도 없이 그의 눈을 향해 내리 꽂았다.
"크아~~~~악!!!!"
오른쪽 눈에 촛대를 꽂은 그는 고통의 비명을 질러댔다. 그 촛대를 가볍게 뽑아낸 남자는 이번엔 그의 정수리를 향해 힘껏 내리 꽂았다. 남자의 입안으로 튄 그의 피가 비릿한 맛을 주었다. 흔들리는 촛불 아래서 남자의 손은 계속 움직였다. 촛대를 들어 얼마나 찔러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손끝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몇 번 달랐을 뿐........
"어때......... 산타가 주는 선물이........ 흐흐........ 그러게 넌 왜 벌써 출장에서 돌아왔느냐 말이지. 아이와 여자만 있는 집이었는데........ 크크크.........."
두 사람이 축 늘어지는 것을 보며 남자는 촛불을 입으로 불었다. 간단한 그 동작으로 방안은 캄캄한 어둠이 지배했고, 그것에 못마땅하다는 듯 남자는 손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아냈다. 형광등 아래에서 본 방안 풍경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침대의 하얀 시트는 이미 붉게 물든 후였고, 시트를 타고 바닥으로 핏방울들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뭐니뭐니 해도 크리스마스 하면 붉은 색이지. 크크...... 자, 이제 내 선물을 챙겨볼까?"
남자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서랍장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어깨에는 제법 볼록해진 'L' 사이즈의 주머니가 매달려 있었다. 방을 나오기 전 남자는 화장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았다. 부부의 피를 뒤집어 쓴 것치고는 꽤나 양호했다. 산타의 붉은 옷이 더욱 진해졌을 뿐이고, 단지 비싼 X-3의 색깔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후후후... 붉은 수염의 산타클로스라......"
방을 나서기 전 남자는 불을 끄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남자의 나지막한 콧노래 소리가 조용한 거실의 공기를 두드리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세상은 고요하기만 했다. 집을 빠져나가기 전 남자는 잊었다는 듯 제일 처음 문을 열었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천천히 손잡이는 돌려 그 안으로 들어선 그는 잠들어 있는 여자아이에게로 다가갔다.
아이의 표정은 여전히 천사처럼 평온했다. 남자는 주머니를 잠시 내려놓고는 잠든 아이 옆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어 아이의 가느다란 목으로 향했다. 힘이 잔뜩 실린 손끝이 아이의 목에 닿을 무렵, 아이가 번쩍 하고 눈을 떴다.
"산타... 할아버지?"
어느새 아이의 표정이 환해진다.
"산타할아버지 맞죠?"
"쉿......."
아이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아영이 선물 가지고 오셨어요?"
"물론이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가 될 거야."
"정말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자렴. 산타클로스는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단다."
"자요, 저 자고 있어요."
아이는 눈을 질끈 감고는 이불을 턱 밑으로 끌어 당겼다. 아이의 목 근처에 있던 남자의 손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아가야... 메리 크리스마스..."
남자가 방을 나가고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 찬 아이의 두 뺨에는 붉은 손바닥 자국이 남아 있었다.
거실로 나온 남자는 피 묻은 촛대를 원래 있던 자리에 올려놓고는 페치카 앞으로 다가섰다.
"산타클로스가 굴뚝으로 다시 나갔다는 얘기가 있었던가? 흠........"
잠시 고민하던 남자는 이내 결심한 듯 몸을 돌려 현관으로 나섰다.
"올 때는 굴뚝, 갈 때는 현관, 현관......... 크크크......."
남자를 기다리던 바깥 세상에는 어느새 새하얀 눈이 날리고 있었다. 어깨 묵직한 주머니를 다시 한번 고쳐 맨 남자는 조금 서두르기 시작했다. 이제 곧 아침이다. 아침이면 크리스마스......
"미유야, 아빠 출장 마치고 이제 간다~~!!!"
남자의 붉은 모자 위로, 붉은 벽돌의 집 지붕 위로 새하얀 눈이 쌓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은 그렇게 세상을 향해 밝아 오고 있었다.
우와.. 멋있다(?) 크리스마스가 무서워지는데요..ㅡㅡ;; 그래도.. 난 크리스마스에 혼자 지낼거 같으니깐.. 쳇..ㅡㅡ;; 암튼^^ 이해 잘 갔습니다.. 음.. 사람들의 소원을..ㅡㅡ;; 산타 맘데로 해석해서 선물을 주는데 그것이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다~ 라고 느껴지는데요^^ 근데 바텐더가 자꾸 맘에 걸리네요..
첫댓글 아..왜 잘 이해가 안되지..;;;이해력 부족인가..
잼나게 잘 읽었습니다.아이스블루......메리크리스마스~~
정말 무시무시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네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님의 글은 언제나 부드럽고 예쁜 문체에요.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ㄳㄳ~~~~잼따
오~~섬찟^^ 잘 읽었습니다!!
첫번째 이야기... 굉장히 재미 있네요... 자근자근한 느낌의 문체가 더욱 긴장감을 주네요~ 잘 읽었습니다. 행복하소서~ ♡
ㄲ ㅑ아>_<~ 사빈니임~ 팬이예요~ 그런데, 첫번째 이야기의 클럽얘기는 본 적 있는 얘기군요.(결말까지 다-_-!) 세번째 이야기는 이해가 안되고요-_-;; 흐음, 전에 못생긴 여자 너무 재밌었어요 >_<~
수염이 X-3에서 K-3로 바뀌네요;
으음...땡글땡글한 눈이 뽑혀서 온 얘기는 한혜연님 작품이랑 비스무리하기도 하네...하여튼 잘읽었습니다~>_<
동생을 벼개로 누르고 거기에 다시 동화책이라니.... 정말로 끔찍하다 ㅡㅡ;;
오타 수정 했습니다. ⓑlood∽님이 말씀하신 한혜연님 작품은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만화가라고 하는데.. 맞는지요...? 비슷한 내용인 것 같은데.. 역시 새로운 아이디어란 존재하지 않나 봅니다..ㅠ-ㅠ 한계가 오는 군요....^^;;
세번째 작품은... 한번 더 읽어봐 주시길 소망합니다. ^^;; 두번만 읽어 보시면 이해가 되실 듯 합니다. 읽어 주신 분들, 감사 드리고, 손 시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손수 댓글까지 남겨주신 분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 드립니다. 하루 마무리 잘 하시길...^^
-0- 클럽여자얘기는 정말 만화가 한혜연님 단편집에 있는거랑 정말 비슷하눼염...거의 똑같다라는-0- 암튼 사빈님 소설 잘보고있어염~
우와.. 멋있다(?) 크리스마스가 무서워지는데요..ㅡㅡ;; 그래도.. 난 크리스마스에 혼자 지낼거 같으니깐.. 쳇..ㅡㅡ;; 암튼^^ 이해 잘 갔습니다.. 음.. 사람들의 소원을..ㅡㅡ;; 산타 맘데로 해석해서 선물을 주는데 그것이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다~ 라고 느껴지는데요^^ 근데 바텐더가 자꾸 맘에 걸리네요..
그 블루 아이즈 바텐더도 산타클로스 일을 하는 사람인가보죠? 암튼.. 잘 읽었습니다^^ 건필하세요^^
님글은 재밌기는 한데요 배경이 우리나라 같지가 않네요... 아님 상당한 상류층 사람들 얘기거나...
산타의 선물을 기대하는 동안은 행복-ㅅ- 인건가... 건필하세요=ㅅ=
정말 글이 너무 예뻐요... 동화같은 문체의 끔찍한 내용이라... ^^;;
음...어렵군요...한번 더 읽어봐야겠네...암튼 잼나게 읽었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건필하세요~ ^^
눈을 선물로 주는 얘기는 한혜연님 단편만화집이랑 완전히 똑같네요~양말에 맞게 발이 들어있다는 것두 그렇구.. 그래두 그 밑에 있는글은 잘 봤습니다.~
호러크리스마스...
역시 사빈님의 섬새한 문체는.. 언제나 굿~ 이라는 말을 외치게 하는.. 그리고 그 클럽 여자 이야기. 저도 어디선가 만화로 본적 있는.. 완전 똑같은.. ^^;; 암무튼... 앞으로도 건필!!
3번째 이야기 설명해주실분이요.. 이해가 되려다.. 연결이 안되고.. 갖가지 상상속으로 빠져버렸습니다-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