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발행되어 494년간 행방 불명 되었다가 간송 전형필이 1943년 여름
극적으로 구입 보관하여 왔다 우리가 말하는 한글이라 불린것은 1910년 이후
국어학자 주시경에 의해 널리 퍼졌다 당초 28자 였으나 지금은 24로 네자는
쓰지않고 있다 세상에 글자가 만들어진 이후 만든 과정이나 이유등이 이처럼
잘 기록된것은 그 유례가 없다 세종대왕과 8명의 신하가 함께 저술한 해례본은
책표지외에 33장(66쪽)으로 이루어졌으며 목판본으로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이용준에 의해 발견되었다1962년 국보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발견당시 표지와 맨앞 두장이 없었다 다행이 조선왕조
실록에 내용이 수록되여있어 사라진 부분을 복원 하였다 그런데 세종 대왕의 서문
인 맨 마지막 글자인 이(耳)를 의(矣)로 잘못 복원하고 말았다 몇권을 찍었는지는
모르나 이후 만든 용비어천가를 550권이나 찍어 펴냈다하니 해례본도 적지않은
분량을 찍어 널리 알렸을 것이다 1943년 여름 한남서림(간송이 옛책의 구입을 위해
만든서점)앞을 바쁘게 지나는 거간꾼 이순황을 불러 사유를 물어보니 "지금 경상도
안동에서 훈민정음 원본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구입하기 위해 돈을 구하러
가는길 " 이라고 하자 액수를 물어보니 일천원 이라고했다(당시 일천원은 서울 큰
기와집 한채값) 간송은 아뭇소리 않고 1만1천원을 주며 1천원은 수고비라고 했다
부산 피난시절 벼개를 뜯어 그속에 책을 넣고 안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최초로 이책을 필사해 연구한 이는 벽초 홍명희의 아들 홍기문이었다 금번 교보문고
에서간송과 손을 잡고 복제본과 연구책자를 펴내서 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