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초순, 대학교 동아리 친구들의 송년모임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母校 교수로 있는 한 친구가 긴급제안을 했다.
"감동적인 연극작품이 있는데, 새해 벽두에 단체관람을 하자"고.
좋았다.
단박에 의기투합이 이루어졌다.
필요 경비도 각출했다.
바삐 살다보니 한 달이 급류처럼 흘렀다.
지난 주 금요일 밤에 친구들이 다시 大學路에 모였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자유극장에서 앵콜공연에 돌입한 그 핫한 작품 - 여보 나도 할말있어 - 을 관람했다.
연극 ‘여보 나도 할말있어’는 신생 극단, '나는세상'에서 만든 作品이다.
그 극단의 '김영순 대표'가 집에도 들어가지 않은 채 찜질방에서 꼬박 3개월간 먹고 자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듣고 쓴 작품이었다.
육필로 쓰고 온몸으로 연출한 땀의 결정체였다.
수작이었다.
친구의 소개로 우리는 공연장 입구에서 김대표를 만났고 그녀와 잠간이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한 눈에 척 봐도 품격과 교양이 진하게 느껴졌다.
공연 후 귀가하여 그녀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상고 졸업 후 일을 하다가 30대에 늦깎기로 미국유학, 뉴욕대에서 공부한 노력파였다.
11년간 미국에서 演劇에 대한 공부와 경험을 축적한 뒤 5년 전에 귀국했고, 그 이후엔 집필과 강의, 공연, 극단대표 등의 일로 열심히 매진했던 열정맨이기도 했다.
객석 정 중앙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 공연의 콘티와 구성은 여느 공연과는 달랐다.
어떤 설정에 대한 기.승.전.결의 진행이 아니라 주제별로 단락 단락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일관된 스토리의 이어짐이 없었고 뜬금없이 전혀 다른 장면들이 전개되지만 전체적으로는 演出者의 의도와 취지를 한 흐름으로 매끄럽게 엮어가는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영화나 소설, 뮤지컬에선 가끔씩 접했던 전개방식인데 연극에선 생소했다.
좁은 공간에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섬세한 표정 하나까지 가까이에서 교감할 수 있는 연극무대의 특성 상,
옴니버스는 신선했지만 그것이 반복되는 감동의 원천이자 멀티적인 눈물 자극의 포인트란 걸 나중에 알았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시종일관 가슴이 먹먹했다.
미혼보다는 기혼에게, 젊은층보다는 중년충에게, 남성보다는 여성들에게 더 깊게 心琴을 울리는 작품이었다.
같이 간 여자동창들도 이니나 다를까 하나같이 손수건을 만지작 거렸다.
남자들도 이따금씩 눈물을 훔쳤다.
우리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스토리였다.
부모님의 진솔한 모습이었고 자식들의 속깊은 얘기였다.
고부간의 숨길 수 없는 뒷모습인 동시에 친구나 이웃간의 질박한 삶의 단면들이었다.
먹먹한 감동, 완벽한 공감.
그랬다.
이 연극을 한 문장으로 축약하자면 바로 이것이었다.
물론, 중간 중간에 해학과 유머가 가득했지만 그 이면에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파생된 아픔과 절망이 여과없이 뚝뚝 녹아 흘렀다.
그 절망과 슬픔을 딛고 다시금 희망과 치유의 꽃으로 승화되어 가는 인생찬가였다.
마치 아주 먼 水平線 너머에서 하늘과 바다가 같은 빛깔로 만나 광활한 한 선을 이루는 것처럼.
그 소생과 회복은 '광야의 길'을 지나고, '사막의 강'을 건넌 사람들에겐 정금같은 祝福이었다.
모든 관객들에게 아주 쉽고 편안하게 다가섰지만, 느낌의 여과지는 그리 간단치 않았다.
내내 묵직하고 애닲았다.
한마디로 웃음과 눈물로 교직해 낸 핍진한 작품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골계 속에 강력한 울림과 깨달음을 고명처럼 얹어서 쩌낸 무지개떡 같았다.
교양과 열정을 두루 갖춘 중년 미혼 여성, 김영순 대표가 주장하고자 했던 무언의 웅변도 아마 이것이었으리라 評價한다.
인생살이, 나만 힘든 게 아니다.
나만의 질곡이 아니라 누구나 다 대동소이함을, 작품은 복선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 깨달음이 성숙과 인격의 다른 표현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고통총량의 법칙'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이라고.
농삿일이 풀과의 전쟁이듯, 삶은 다양한 갈등과의 전쟁이라고.
생명이 존재하는 한 갈등과 번민은 피할 길이 없겠지만 그 치유와 극복은 각자의 몫이며 치열한 성찰이라고,
이 공연은 중저음 사자후로 관객들의 가슴을 사정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명징하고 고마운 일깨움이었다.
런닝타임이 약 100분 정도인데, 육칠할 가량은 계속해서 웃음보가 터졌다.
그것도 피식피식 새나오는 설핏한 웃음이 아니라 풍선처럼 팡팡 터지는 박장대소요 요절복통이었다.
재미지고 상큼했다.
연기자들은 관객들의 감성을 하나 하나 끄집어 내 자신의 찜질복 주머니에 제멋대로 우겨넣고는,
인정머리 없이 드잡은 채 위아래로 흔들다 세차게 메쳤다.
그들의 신들린 연기력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빨려들었고, 영혼의 武裝이 낱낱이 해체되었다.
어느 곳에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가도 이내 감성의 비등점을 찍고 튀어오르기 일쑤였다.
시종일관 愉快했지만 그 다음 장면에선 어김없이 손수건이 필요했다.
스토리가 제아무리 탄탄하고 짱짱해도 연기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그건 이미 사람 떠난 빈들이다.
한국에서 제일가는 연기파 배우들의 입에 착착 감기는 맛깔스런 입담과 빼꼽 빠지는 골계 앞에서 관객들은 하나같이 마음껏 소리지르고 손뼉쳤다.
연방 환호하기 바빴다.
그러면서도 중간 중간에 눈물 쑥 빠지게 만드는 대목들이 절묘하게 버무려졌다.
한마디로 멋진 콘티였다.
우리가 본 지난 주 불금의 공연시간엔 유형관, 김태양, 우상민, 김정하, 허인영, 권혜영 씨 등 한국 공연계에서 내로라하는 실력파 연기자들이 무대를 완벽하게 쥐락펴락했고, 그 덕분에 觀客들은 깊은 심연까지 몰입했다.
100분이 마치 10분 같았다.
행복하고 감사했다.
연출자의 예지와 인사이트, 연기자들의 혼을 담은 熱演이 대학로를 감동의 땅으로 빛나게 했다.
그곳이 한국 종합예술의 메카로 평가받는 건, 그래서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서초동의 예당, 광화문의 세종, 홍대나 명동의 다양한 무대들을 이따금씩 접하며 살지만, 역시 대학로는 그곳만의 고유한 향기, 맛, 색깔, 품격이 있어 좋다.
나만의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아마도 예향의 동네로는 최고가 아닌가 한다.
내가 마음 속으로 가끔씩 되새김질하는 문장이 있다.
의미있는 인생은 숨을 쉰 횟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가슴 벅찼던 經驗과 追憶에 의해서 평가받는 거라고.
인생의 감동과 행복의 순위도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나이가 들수록 인맥은 좁아지고 낯가림이 심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인지상정이니까.
옛날엔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했지만 이젠 누구랑 가느냐가 훨씬 더 중요해졌다.
캠퍼스 시절, 봉사 동아리에서 만났던 소중한 친구들.
노후에도 자연스런 同行이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 기도하고 있고, 그리 노력하고 있다.
나는 우리들의 순정과 우정으로 착실하게 행복의 밑그림을 차근차근 그려가고자 한다.
또한 나는 부자를 꿈꾼다.
금전적인 부자가 아니라 문화, 인생, 예술, 나눔, 감사가 서로 씨실과 날실되어 다양한 문양으로 모자이크 되어가는 삶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많은 財物보다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분광되어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여러 관점의 經驗과 思惟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영혼의 풍요'라고 믿기 때문이다.
긴 인생길에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진솔한 벗들이 있어 고맙다.
자리를 마련해 준 김교수와 동행해 준 다정한 친구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 작품은 1월 하순에 종연 된단다.
안 보신 분은 꼭 한번이라도 관람하실 것을 강력하게 권면하며 공연후기를 끝맺을까 한다.
인생은 아름답다.
배려와 존중을 바로 알고 잘 지켜 행하는 친구들이 있어 고맙다.
그런 벗들에게 진심어린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브라보.
첫댓글 때로 한권의 책, 한편의 영화, 연극이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진한 감동을 줄 때가 있습니다.그것이 우리들의 이야기일 때는 그 감동의 수치가 더욱 높아지겠지요. 친구가 이렇게 호평한 연극을 아내와 함께 꼭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