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법관, 정치적 판단자 자처 안돼”… ‘사법 소극주의’ 소신
[대법원장 후보자 조희대]
대법관때 “증거-사실 근거 판결”
소수의견 66%가 ‘엄격한 법해석’
“양심적 병역거부, 입법해결” 의견도… 법조계 “소신대로 전합 이끌 것”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입구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조 후보자는 “한평생 법관 생활을 하면서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의 길을 걷고자 노력했다”며 “단 하루를 하더라도 진심과 성의를 다해서 헌법을 받들겠다”고 했다. 최혁중 기자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66·사법연수원 13기)를 두고 법조계에선 법조문에 충실한 해석을 하는 ‘사법 소극주의’ 소신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관 시절에도 “법관이 정치적 판단자나 역사적 심판자로 자처해선 안 된다”며 법조문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며 사회를 바꾸려는 시도에 여러 차례 제동을 걸었다.
국회 인사청문 절차와 본회의 임명동의안 표결을 거쳐 대법원장에 임명될 경우 조 후보자가 이 같은 자신의 소신에 입각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를 이끌어나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함부로 문언과 다른 해석 허용 안 돼”
조 후보자는 대법관 시절인 2019년 여수·순천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됐던 피고인들에 대한 전합 판결에서 “재심 사유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며 재심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당시 조 후보자는 “형사소송법 규정 등에 따라 (재심 사유에 대한) 증명이 없으면 법원은 재심 청구를 기각해야 한다”며 “법관은 법률에 따라 증거와 사실에 근거해 심판해야지 정치적 판단자나 역사적 심판자로 자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에 대한 국민적·정치적 감정과 별개로 법관의 판결은 철저하게 증거와 법조항에 따라야 한다는 취지다.
주식 압류 고지를 받기 전에 불복 항고가 가능한지를 다룬 전합 판결에서도 “함부로 문언과 다른 해석을 하는 건 허용될 수 없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인 2009년에 조 후보자는 ‘수원 노숙소녀 피살사건’의 주범으로 기소된 청소년 5명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조 후보자는 당시 “피고인의 변명이 불합리해 거짓말 같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피고인을 불리하게 할 순 없으며, 범죄사실의 증명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고도의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 심증을 갖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서울대 법이론연구센터가 지난해 학술지 ‘기초법학연구’에 게재한 ‘조희대 대법관의 사법철학 분석’ 논문에 따르면 조 후보자가 대법관 재임 시절(2014년 3월∼2020년 3월) 참여한 전원합의체 판결 113건 중 반대 의견을 낸 사건은 30건이었다. 그리고 그중 20건(66.6%)은 법조항이나 법의 일반적 원칙을 중시하며, 엄격한 법해석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조 후보자는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후에도 “헌법이 정한 대로 법원이 운영되는 것이 법원의 본모습”이라는 소신을 주변에 밝혔다고 한다.
● 사법-입법 영역 명확히 구분
조 후보자는 또 과거 논문과 판결 등에서 사법과 입법의 영역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조 후보자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던 1997년 성(性)전환을 허용해야 할지를 다룬 논문에서 “성의 변경은 당사자 본인을 포함한 각종 법률관계에 엄청난 파장이 있다”며 “독일과 같이 (국회의) 입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법관 시절이던 2018년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서 유죄 취지 소수의견을 낼 당시에도 입법적 해결을 강조했다. 조 후보자는 당시 “국회를 중심으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준비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종전 대법원 전합 판결의 법리를 느닷없이 뒤집는 건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 입법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 후보자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한 판사는 “(조 후보자에게) 판결문 초안을 보여주면 헌법과 법률에 어긋나는 부분 등에 대해 빼곡하게 의견을 달아 돌려줬다”며 “법조항에 충실한 판결을 강조해온 만큼 전합 역시 원리원칙에 입각해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자현 기자, 장은지 기자
“無有定法… 한평생 중도의 길 걷고자 노력”
[대법원장 후보자 조희대]
조희대, 보수색 우려에 “걱정말길”
“국민에 누 끼칠까 두렵고 떨려
하루를 하더라도 헌법 받들 것”
현충원 방명록엔 ‘안민정법’ 9일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가 대법원으로 출근하던 중 개인적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안민정법’이란 글을 남겼다. 자신의 대법관 퇴임 당시 판례집 제목으로 “국민들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살도록 하는 바른 법”이란 의미다. 대법원 제공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66·사법연수원 13기)가 지명 후 일성으로 “한평생 법관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좌나 우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의 길을 걷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등에서 나오는 사법부 보수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조 후보자는 9일 오전 안철상 대법원장 권한대행 예방에 앞서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법부 보수색채가 강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불교 신자인 조 후보자는 불경인 금강경의 ‘무유정법(無有定法)’이란 문구를 인용하면서 “‘정해진 법이 없는 게 참다운 법’이란 말이다. 저는 예전 대법관 취임사에서도 ‘우리 두 눈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본다’고 했다”고도 밝혔다.
국회 인준을 통과해 대법원장에 임명되더라도 정년(70세) 때문에 6년 임기를 못 채우고 2027년 6월 퇴임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기간이 문제가 아니고 단 하루를 하더라도 진심과 성의를 다해서 헌법을 받들겠다”고 말했다.
사법부 신뢰 회복 방법을 묻는 질문에는 “당장은 인사청문회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뿐이다. 혹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법부 구성원들과 그때 가서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스스로 대법원장직을 고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조 후보자는 “중책을 맡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 차례가 아니라 수천 수만 번 고사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사법부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와 국민들에게 혹시 누를 끼치지 않을까 두렵고 떨린다”고 했다.
이날 조 후보자는 대법원에 오기 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개인 자격으로 참배했다. 대법원 관계자들도 참배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그는 방명록에 ‘안민정법(安民正法) 조희대’라고 썼다. 안민정법은 ‘국민들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살도록 하는 바른 법’이라는 뜻으로 조 후보자가 2020년 3월 대법관을 퇴임하면서 엮은 판례집 제목이다.
안 권한대행은 이날 조 후보자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인사청문회 준비를 잘하시라”는 취지의 덕담을 건넸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현안 언급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청문회 준비팀은 법원행정처 소속 부장급 판사 1명, 심의관급 판사 3명으로 구성됐다. 조 후보자는 다음 주부터 서울 서초구 서초동 청문회 준비팀 사무실에 출근할 예정이다.
장은지 기자
野일각 “대법원장 후보자, 연이은 부결은 부담”
[대법원장 후보자 조희대]
“曺 보수 대변” 검증 벼르면서도 고심
더불어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가 과거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은 판결 등을 지적하며 “미스터 보수 의견” “보수의 대변자”라고 비판했다. 조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인사검증을 예고하면서도, 당 내부에서 이균용 전 대법원장 후보자에 이어 두 번째 낙마는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나오는 모습이다.
민주당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9일 브리핑에서 “(조 후보자가)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에는 ‘진정한 양심이 존재하는지 심사할 수 없다’며 사회적 약자 등에 대한 보수적 견해를 표명했다”며 “인천 부천 민주노동자회 사건 때는 노동단체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며 당일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 후보자가 사법부 수장으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국민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을지 깊은 의문을 지울 수 없다”며 “보수의 대변자가 아닌 국민 인권의 대변자가 될 수 있을지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도 이날 회의에서 “사법부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지, 국민 눈높이에 맞는 도덕성을 갖췄는지, 사법부 수장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한지 등 세 가지 원칙과 기준에 입각해 철저하게 검증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대단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임명에 협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아직까지 이 전 후보자와 같은 재산 문제 등이 파악된 건 없다”며 “큰 결격 사유가 없다면 이번에는 통과시켜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정성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