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楚汉志) 1-058
* 地 方 巡 行
始皇 37年 10月 癸丑日. 이날 황제는 오랜만에 地方巡行의 길에 올랐다. 순행을 떠나는
직접적인 목적은 会稽山(浙江省)에 새로운 颂德碑의 除幕式에 참석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왕 길을 떠나는 김에 멀리 云夢(湖北省)과 九疑(湖南省)도 돌아보고, 귀로에는
平原津 别宫에 들러 며칠 동안 휴양을 할 예정이었다.
황제의 행차가 언제나 그러하듯, 이번 행차도 호화롭기 그지 없었다. 더구나 이번 순행에는
승상 이사와 황제의 둘째아들 胡亥도 동행을 하게 되어, 행차가 더한층 다채로왔다.
비서장 趙高는 太子 扶蘇와 사이가 벌어지자, 태자를 제거해 버리고 胡亥를 후계자로 내세울
연극을 꾸미려고 일부러 호해를 동행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조고는 길을 떠나기에 앞서, 호해를 은밀히 찾아가 다음과 같은 귀뛈을 해 주었다.
"황제께서는 태자를 몹시 미워하시어, 북방으로 정배를 보내 버리셨습니다. 태자를 보내신 것은,
호해 공자님에게 大位를 물려 주시려는 심산임이 분명하오니, 공자께서는 그런 줄 아시고
이번 여행중에 효성을 다하시도록 하시옵소서. 소인도 전력을 기울여 대위를 공자께서
계승하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정이 그렇게 되고 보니,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밀착될 수 밖에 없었다.
始皇帝의 행차는 수행원과 호위병까지 합하면, 일행 모두가 5만명에 이르렀다.
始皇帝가 云梦,九疑,丹阳 등지를 돌아보고 会稽山에 도착한 것은 그해 11월의 일이었다.
시황제의 <송덕비>는 멀리 동해를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는 회계산 정상 상상봉에 세워졌는데,
그 비석에 새겨진 碑文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황제의 성업은 진실로 위대하시도다. 천하를 평정하시사 육국을 통일하매, 육국의 백성들은
모두가 입을 모아 황제의 치적으로 찬양하노니, 이 어찌 태평성대가 아닐 것이냐..... .
거기까지는 좋다고 치자. 그 다음이 걸작이었다. ..... 백성들의 부부 관계도 종래에는 매우
어지러웠건만, 통일 천하 이후에는 백성들도 황제 폐하의 덕행을 본받아 夫妇和合하여 淫乱한 일이
일체 없게 되었으니, 그 모두가 황제 폐하의 은덕임이 분명하도다..... . 아무리 아첨하는 비문이기로,
아첨도 그에 이르면 천하의 일품이라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始皇帝는 아방궁 안에 궁녀들을 3천여 명이나 거느리고 있건만, <황제 폐하의 덕행을 본받아 백성들의
부부 관계가 매우 원만해 졌다>고 했으니, 그 어찌 소가 웃다가 배꼽 잡을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정작 시황제 자신은 그러한 아첨이 무작정 기쁘고 즐겁기만 하였다. 황제 일행이 송덕비의
제막식을 끝내고 산을 내려오고 있노라니까, 저만치 맞은편 산봉우리 위에 푸른 빛깔의 구름이
한 조각 떠돌고 있었다.황제는 그 구름을 보자, 별안간 얼굴에 불안스러운 기색이 감돌며,
승상 이사를 불러 묻는다. "짐이 수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에도 산상의 이상한 云气가 감도는 일이
있었는데, 오늘도 역시 저 산 위에 푸른 색채의 구름이 떠돌고 있으니, 이 어찌된 일이냐?" 승상 이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구름이란 본시 끝임 없이 변하는 것이오니, 너무 괘념치 마시옵소서."
"구름이 변화하는 것은 짐도 알고 있지만, 저기 보이는 저 구름은 빛깔이 푸르게 보이니,
저것은 예사 구름이 아닌것 같구료. 혹시 짐을 해치려는 怪汉이 숨어 있는 증거인지도 모르니,
그런 자가 있는지 없는지 군중들을 철저하게 수색을 해보는 것이 어떠하겠소?"
始皇帝가 그러한 걱정을 하는데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시황제는 언젠가, 푸른 옷과
붉은 옷을 입은 두 동자가 꿈에 나타나 玉玺를 서로 빼앗아 가려고 싸우는 꿈을 꾼 일이 있어서
그 이후로는 그는 푸른 빛깔과 붉은 빛깔만 보면, 피해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이 날은 산 위에 푸른 구름이 떠돌고 있었으므로, 매우 불안해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모르는 이사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아무 일도 없는데 백성들을 함부로 수색하면,
오히려 소란만 일으키게 될 것이오니, 그런 일은 아니 하심이 좋을 듯 하옵니다. 황제는 그 말을 듣고
수색을 단념하고 산을 내려오니, 그 곳에는 황제를 환영하는 백성들이 수만 명이나 운집해 있었다.
시황제는 온량차를 천천히 달려 나가며, 군중들의 환호에 손을 높이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군중에서 황제를 증오의 눈으로 노려보며, "여기가 어느 나라 땅이라고, 저 자식이 거드름을
피우고 돌아 다니는 것이야!" 하고 혼잣말처럼 주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불평하는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의 이름은 项羽였다.
1-059편에 계속
초한지(楚汉志) 1-059
项羽라는 청년의 나이는 이십 이삼세쯤 되었을까? 키는 팔척이 넘고, 몸은 절구통 같이 거대한 데다가,
얼굴에는 시꺼먼 수염이 뒤덮혀 있어서, 흡사 怪兽같아 보이는 젊은이 였다.
그러나 家门만은 楚나라名将이었던 项燕의 집안 출신이라 秦始皇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맺혀있는
청년이었다. 그러기에 항우는, 환영나온 백성들이 시황제의 위풍에 눌려 벌벌 떨고 있음을 보고
비위가 뒤틀려 견딜 수가 없었다.그리하여 항우는 始皇帝를 노려보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또다시 투덜거렸다. "저 자식을 숫제 없애 버리고,저놈의 자리를 내가 빼앗아 버릴까."
<진시황을 죽여 없애고, 그 자리를 빼앗아 버리겠다>는 말은,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다.
그러기에 항우의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오자 별안간 항우의 입을 손바닥으로 잽싸게 덮어 씌우며, "이넘아!
우리 가문이 몰살하는 꼴을 보려고 네가 그런 말을 함부로 내 뱄느냐." 하고 호되게 꾸짖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항우의 삼촌인 项梁이었다. 항양은 초의 명장이었던 항연의 아들로서,
일찍부터 아버지의 원수도 갚을겸, 초나라를 다시 일으키려는 독립 투사였던 것이다.
항우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삼촌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그러기에 일찍부터 항양은 항우에게
글도 깨우쳐주고 검술도 가르쳐 줬다.그러나 항우는 글과 검술에는 관심이 없어서, "글이란
자기 이름이나 쓸줄 알았으면 그만이고, 검술은 한사람을 상대하는 기술에 불과하다,
그런것을 무엇에 쓰냐며 만인을 상대하는 술법을 배우고 싶소." 하고 고집을 부려 그때부터 항양은
항우에게 병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이날도 둘이 진시황의 행차를 구경하려고 나왔는데,
항우가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함부로 씨부려대고 있으므로, 항양은 조카의 입을 막아 버리며
호되게 꾸짖었던 것이다.그러나 항우는 오히려 삼촌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이렇게 투덜거렸다.
"제꺼짓 놈이 뭔데, 삼촌은 진시황이란 자를 그렇게도 무서워하시오."
그리고 솥뚜껑 같이 험상궂은 주먹을 움켜쥐어 보이며, "이 주먹 하나면 진시황 따위는 대번에 때려 죽일
자신이 있다오." 항양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넘아! 어리석은 소리 작작하여라. 진시황 한 놈만 때려
죽인다고 진나라가 네것이 될 줄 아느냐.秦나라를 꺼꾸러뜨리고 楚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러면,
군대를 양성하며 병법을 연구해 가지고 무력으로 정벌해야 하는 것이야. 오늘 창문에 들으니,
陳胜과吳广등이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고 하더라. 그것은 진나라가 머지 않아 망하게 될 징조이다.
그러니까 우리도 이 시기를 놓치지 말고, 군사들을 시급히 키워 나가야 한다.누가 뭐래도 진나라를
거꾸러뜨릴 사람은 초나라 백성인 우리들 뿐이다.그러니까 너는 이런데서 쓸데없는 소리나 지껄여대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병법이나 착실히 연구하도록 하여라. 내 말 알아 듣겠느냐?" "알겠습니다.
아저씨. 진나라를 언젠가는 내 손으로 거꾸러뜨릴테니 두고 보십시오."
항우는 자신만만하게 지껄이며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시황제가 행차하는 곳마다 환영나온 백성들로 인산 인해를 이루었다.따라서 行程은 예정보다
자꾸만 지연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 시황제가 순찰 중인 지방은 옛날에는 초나라였던 땅이다.
따라서 백성들은 시황제를 진심으로 환영할 리가 만무했건만 지방관들이 강제로 동원시키는 바람에
백성들은 마지못해 끌려나왔던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진시황으로서는 백성들이 자기를 환영하기 위해 여러 수만 명씩 몰려나온 것을 보고
기분이 나쁠리가 없었다. 그래서 환영 인파를 바라보며 안내하는 지방관들에게, "왠 환영 인파가
저렇게도 많이들 나왔는고?" 하고 물어 보면, 지방관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옛날에는 초나라의
虐政이 워낙 가혹했기 때문에, 폐하의 赤子가 된 이후로는 모두들 聖德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마다
앞 다투어 폐하를 환영하러 나온 것이 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멀쩡한 거짓말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황제는 <성덕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앞을 다투어 환영을 나왔다>는 말에 마음이 더욱 흡족하였다.
비서장 조고는 꾀가 많은 데다가 성품이 매우 간교한 인물인지라, 그는 시황제를 더욱 기쁘게 해 주려고,
"황제 폐하! 蘇州와杭州 지방에서도 백성들이 수십만 명씩 운집하여, 지금 폐하의 临御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옵니다.예정에는 들어 있지 아니 하오나, 그곳에도 잠시나마 들려 주심이
좋으실 줄로 아뢰옵니다." 하고 말했다.시황제는 그런 말을 듣고 기분이 더욱 좋았다.
"짐을 그처럼 환영해 준다니 고맙기도 하구나, 그러나 예정에도 없는 곳에 들렀다가는 平原津别宫에는
언제 들르게 되겠느냐?" "예정이 다소 지연 되시더라도 폐하의 聖恩만은 만 백성들에게 골고루
베풀어 주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 모양으로 조고는 순찰 지역을 자꾸만 확대해 가며,
환영 인파도 점점 성대하게 동원시켜 나갔다.
조고가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꾸면는가 하면은, 그는 이번 기회에 지방관들을 모두 자신의 심복 부하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승상 이사는 조고의 방자스러운 행실이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져서
"황제 폐하의 행정을 맘대로 변경해서는 못 쓰는 법이오 하고 말하면서..... ." 나무라 주었더니,
조고는 대뜸, "모든 것은 폐하의 어명이시옵니다.어명 앞에서는 누구도 불평을 말해서는 안 되는 법이옵니다.
하고 나오는 데에는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일개의 환관에 불과한 조고가 승상을 우습게 알게 되었으니,
그것도 말기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밖에 없었다.
1-060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