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字 隨筆
문득.1009 --- 강화 고려산에 놓은 진달래 꽃불
4월 그믐이다. 2013년 봄은 잔인한 달의 명분을 살렸다. 날씨마저 춥고, 덥고, 눈 오고, 비가 왔다. 미국은 보스턴마라톤 폭탄테러 후유증을, 중국은 지진에 골머리 앓고, 일본은 군국주의 망령에 망언을 쏟아냈다. 북한은 연일 전쟁도 불사한다는 으름장이다. 끝내 개성공단의 잔류 인력마저 철수하다가 어제 실랑이가 벌어졌다. 잠정 폐쇄상태다. 황해도 턱밑인 강화도가 썰렁하도록 으슬으슬 하지만 고려산 진달래에 슬그머니 이끌렸다. 영취산에서 진달래꽃 군락지를 보고 꼭 26일 만에 이곳 고려산에서 다시 보는 셈이다. 꽃바람이 육로 타고 왔는지, 남해에서 서해로 빙빙 돌아왔는지 너무 오래 걸렸다.
참고 견딘 만큼 온 산자락을 진분홍으로 물들인 진달래꽃밭이다. 등산객도 질세라 울긋불긋하게 밀물처럼 몰려다니며 꽃밭을 이루고 있다. 사람도 꽃밭 못지않은 꽃인 셈이다. 아래쪽에서 새싹이 움트고 연초록이 점점 진해지면서 몽실몽실 올라오는 모습이 어이 저리 가슴 뭉클하도록 아름다우냐.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까지 꿈틀거린다. 풋풋한 신록의 모습이 어찌 꽃밭만 못하랴. 진분홍 진달래꽃밭이며, 알록달록 사람의 물결이며, 연초록 신록의 잔잔한 몸짓이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한마당 봄축제가 되었다. 흥겨움에 절로 까르르 토해내는 웃음소리가 또 하나 웃음꽃 만들어 풀어놓았다.
햇볕이 쏟아지는 양지쪽은 여름을 느낄 만큼 무더운데 나무 아래나 그늘진 곳은 아직 썰렁함이 감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에 미적미적 미루다 이제야 진달래밭에 꽃불을 놓았다. 수없이 피고 졌어도 새롭기만 하다. 그만큼 꽃이 주는 신선함이 묻어있다. 산자락을 태울 듯이 이글거리는 꽃불이다. 가려진 소나무 밑에까지 가리지 않고 일제히 온몸에 혼을 태우고 있지 싶다. 이웃 개성공단에서는 오늘도 잔류 인원 7명의 귀환 문제를 놓고 애간장 태우는데 이곳은 아랑곳없다. 꽃은 사람에 취할 만큼 사람이 모여들고 사람은 꽃에 취할 만큼 길목마다 무더기무더기 진달래 꽃불을 지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