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를 보며
박재삼
스물 안팎 때는
먼 수풀이 온통 산발을 하고
어지럽게 흔들어
갈피를 못 잡는 그리움에 살았다.
숨가쁜 나무여 사랑이여.
이제 마흔 가까운
손등이 앙상한 때는
나무들도 전부
겨울나무 그것이 되어
잎사귀들을 떨어내고 부끄럼 없이
시원하게 벗을 것을 벗어 버렸다.
비로소 나는 탕에 들어앉아
그것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기쁘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음을
부우연 노을 속 한 경치로써
조금씩 확인할 따름이다.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성찰적, 관조적
◆ 특성
① 자연물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화자의 심정을 형상화함.
② 감정적인 태도와 관련된 것을 모호하게 표현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먼 수풀이 온통 산발을 하고 → 마음이 매우 혼란스러움을 비유적으로 표현함.
* 갈피를 못 잡는 그리움 → 젊은 날에 겪었던 불순하고 속된 사랑의 열망
* 숨 가쁜 나무 → 속된 사랑의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던 젊은 날(스물 안팎 때)
* 겨울 나무 → 부끄러운 것들을 벗어 버린 중년에 대응되는 비유적 이미지
* 잎사귀 → 젊은 날의 격정
* 탕 → '부우연', '조금씩'과 연결되어 뚜렷하지 않은 삶의 실체를 차츰 확인해 가는
화자의 상황을 상징하는 공간임.
* 기쁘게 다가오는 것 같음
→ '겨울 나무'에게 동질성을 발견하고, 삶의 참모습을 인식한 데서 기쁨을 느낌.
* 3연 → 중년이 되어서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됨.
◆ 제재 : 겨울나무
◆ 화자 : 지난 날의 삶에 대한 성찰과 현재의 자신의 삶에 대해 자각하는 자
◆ 주제 : 겨울 나무를 통해 중년의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수용함.
자아의 참모습 인식에서 오는 기쁨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젊은 시절의 정신적 방황과 열정(여름나무, 2·30대)
◆ 2연 : 중년이 되어 허울을 벗고 참모습을 인식함.(겨울나무, 40대)
◆ 3연 : 참모습의 인식에서 오는 홀가분한 심정과 기쁨(주제연)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자연의 모습을 인간의 삶에 대응시켜 노래한 이 시는 여름 나무의 모습에서 젊은 시절 방황과 열정을 겨울나무의 모습에서 벗을 것을 벗어 버리고 참모습을 드러내는 중년 나이의 삶을 투영시키고 있다. 시적 화자는 욕탕 안에서 벗을 것을 다 벗어 버린 겨울나무와 같이 비로소 자신의 참모습을 조금씩 확인해 나가는 데서 느끼는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퍼온 글>
시인은 나이를 먹을수록 순수한 인간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노래하고 있다. 시는 한 마디로 사람의 삶(인생)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이 삶에 대하여 영감(spiritual touch)을 얻어야 아름다운 시를 쓰는데, 박재삼 시인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탁월한 영감을 가진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영감이라는 말은 신통할 수 있는 경향을 가졌다는 말이다.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에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자신을 찾아오도록 배려했다. 그래서 사람은 실낙원으로 고통 속에 살지만 그 고통을 벗어나 다시금 낙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그것이 모든 자연현상이고 우주와 세상에 있는 삼라만상들이다. 그래서 그 길을 찾는 불교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그림자, 물거품, 환상 같은 것이라고 묘사한다.
삶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시인은 혼자 울리는 꽹과리 같이 실없는 헛소리를 노래하게 된다. 그러나 박재삼 시인은 삶의 무게로 무장하고 있는 깊이 있는 삶의 노래를 합니다. 시인의 관심이 삶에 대한 성찰에 집중되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현대인이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시인의 벌거벗은 모습은 탕 속에 들어가 부연 김 속에 숨어 있는 것이듯, 세상을 상징하는 산에 가득한 나무들, 곧 사람들이 모두 옷을 벗고 순수하게 나타나는 계절이 겨울이라는 말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죽음, 그리고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신 앞에 서는 최후의 심판 때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가을은 경건해야 하고, 경건할 수밖에 없으며, 경건을 노래하는 시가 나타나게 되고, 겨울은 죽음의 세계를 노래하게 되어 있다. 시인은 자신의 가을을 '손등이 앙상할 때'라고 말한다. 젊음이 갖는 정욕과 격정과 세속의 살춤들을 끝내고 나서 도달하는 노년의 시간, 그것은 인생의 가을을 의미한다.
모든 나무가 잎을 떨구고 겨울의 발가벗은 모습으로 서 있을 때에, 시인은 자신도 벌거벗은 순수한 존재로 드러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에게도 겨울이 있어 신 앞에 서는 때가 있음을 알게 되고, 그 순간을 기억하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이 가을에 한번 읽고 넘어가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비옥한 시간이 되기를 기원한다.
<박재삼의 시 세계>
1. 그의 시에는 '운다(동사)'와 '눈물(명사)'이란 시어가 많이 등장함.(눈물의 시인)
2.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사랑의 마음을 고전 속의 인물 춘향을 통해 형상화함.
3. 한의 정서를 노래하면서 한국적 서정시의 전통을 계승함.
4. 평이한 조사법, 직설법을 회피한 우회적 표현, 사투리를 이용한 독특한 영탄법
[작가소개]
박재삼[ 朴在森 ]
<요약>
박재삼은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 음색을 재현하면서 소박한 일상 생활과 자연에서 소재를 찾아 애련하고 섬세한 가락을 노래했다.
출생 – 사망 : 1933. 4. 10. ~ 1997. 6. 8.
출생지 : 해외 일본 도쿄
데뷔 : 1953. 시 「강물에서」가 모윤숙에 의해 문예에서 추천
1933년 4월 10일 도쿄 출생. 경남 삼천포에서 성장했으며, 고려대 국문과를 중퇴했다. 현대문학사, 대한일보사, 삼성출판사 등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제2회 현대문학신인상, 한국시인협회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인촌상 등을 수상했다. 1953년 시 「강물에서」가 모윤숙에 의해 『문예』에서 추천되고, 1955년 시 「정적」이 서정주에 의해 『현대문학』에 추천되었으며, 같은 해 시조 「섭리」가 유치환에 의해 『현대문학』에 추천됨으로써 추천을 완료하였다.
1962년 첫 시집 『춘향이 마음』을 간행한 이래 시집 『햇빛 속에서』(1970), 『천년의 바람』(1975), 『어린 것들 옆에서』(1976), 『추억에서』(1983), 『아득하면 되리라』(1984), 『내 사랑은』(1985), 『대관령 근처』(1985), 『찬란한 미지수』(1986), 『바다 위 별들이 하는 짓』(1987), 『박재삼 시집』(1987), 『사랑이여』(1987), 『울음이 타는 가을 강』(1987), 『다시 그리움으로』(1996),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1997) 등 다수의 시집과 시 선집을 간행하였다. 수필집으로는 『울밑에 선 봉선화』(1986), 『아름다운 삶의 무늬』(1987), 『슬픔과 허무의 그 바다』(1989) 등이 있다.
1997년 6월 8일 타계했다. 그의 시 세계는 시 「춘향이 마음」(1956)과 「울음이 타는 가을 강」(1959) 등으로 대표되는데, 그는 이런 시들을 통해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 음색을 재현하면서 소박한 일상 생활과 자연에서 소재를 찾아 애련하고 섬세한 가락을 노래했다.
그는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 나와 바닷가에 서자”(「밤바다에서」 1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슬픔이라는 삶의 근원적인 정서에 한국적 정한의 세계를 절제된 가락으로 실어, 그 속에서 삶의 예지와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그의 시에 있어서 자연이란, 삶의 이치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음으로써 영원하고 지순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세계이다.
그는 그 자연에 의지하여 위로와 지혜를 얻지만, 때로는 자연의 완벽한 아름다움과 인간과의 거리 때문에 절망하기도 한다. 박재삼의 시는 1950년대의 주류이던 모더니즘 시의 관념적이고 이국적인 정취와는 달리 한국어에 대한 친화력과 재래적인 정서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 주어, 전후 전통적인 서정시의 한 절정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의 시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어체의 어조와 잘 조율된 율격은, 그의 시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을 보장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학력사항> 고려대학교 - 국어국문학(중퇴)
<경력사항> 현대문학사, 대한일보사, 삼성출판사 등에서 근무
<수상내역> 제2회 현대문학신인상, 한국시인협회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인촌상
<작품목록>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춘향이 마음, 수정가, 한, 햇빛 속에서, 소곡
정릉 살면서, 천년의 바람, 어린 것들 옆에서, 뜨거운 달, 비 듣는 가을나무,
추억에서, 거기 누가 부르는가, 아득하면 되리라, 간절한 소망, 내 사랑은[시조집]
대관령 근처, 찬란한 미지수, 가을 바다, 바다 위 별들이 하는 짓, 박재삼 시집,
사랑, 그리움 그리고 블루편, 사랑이여, 가을바다, 기러기 마음을 나는 안다[편],
햇볕에 실린 곡조, 해와 달의 궤적, 꽃은 푸른빛을 피하고, 허무에 갇혀,
나는 아직도, 다시 그리움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 박재삼 시선집
[네이버 지식백과] 박재삼 [朴在森]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