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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로버츠 미국 작가
세스가 속삭인 지혜의 말들
세스는 당신의 존재를 비추는 거울일 수 있다.
수천 년 전부터 되풀이 설해졌던 진리이지만
아직 육화되지 못한 채 겉돌기만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생경한 낱말들의 조합이지만
당신의 영혼은 익히 알고 있는 말일 수도 있다.
말의 뒤안에 서성거리면서
당신의 존재가 화학변화를 일으키기를 기대하고 있는,
자신의 말을 성장 촉진제로서 기꺼이 쓰임받고자 하는
빛의 존재를 마음에 그리면서,
그 속안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에 왔는가?
지금의 내 존재가 나에게는 가장 도전적이고, 가장 마음에 듭니다. 사실 ‘나’는 수많은 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육체를 띠고 있는 나도 있고, 그렇지 않는 나도 있습니다. 육체를 갖지 않은 채 의식으로서만 존재한다고 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이 아닌 저승만을 연상하곤 하지만, 육체를 갖지 않는 의식이 한 차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에 한 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태양계에 하나의 별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내가 있는 곳은, 여러분이 죽은 다음에 즉각 자신들을 발견하게 될 그런 하늘 나라가 아닙니다. 나와 같은 이런 특별한 존재 상태가 되려면, 당신들은 아마도 태어나고 죽는 일을 여러 차례 겪어야만 할 겁니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없이 살고 죽는 일을 되풀이했다고 말하면 무슨 활극을 연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나는 당신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죽음을 경험해 보았고,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책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 또한 수없이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 다른 차원, 다른 존재로서의 경험도 아주 많습니다. 거기에서 터득된 지혜와 앎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의식으로 끌어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육체적인 개성이 아니듯이, 나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나의 현실을 말하는 것은, 곧 여러분 자신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근본입니다.
우리 안의 두려움과 에고의 정체
여러분은 대부분 장난감 블록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물질의 블록에만 온통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시야가 그렇게 제한된 상태 속에서 살기 때문에, 물질의 블록이 여러분에게는 정말 진짜인 것처럼 보이고,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래서 다른 현실들에 대해 설명할 때조차도 ‘모습’이니 ‘형상’이니 하는 단어들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진화에 대한 여러분의 개념은 더 큰 블록을 쌓아 올리는 놀이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느 날엔가 여러분은 ‘아이들의 장난감’ 따위는 한쪽으로 치워 버릴 것이지만, 지금은 온통 거기에만 사로잡혀 있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육신을 지녀야만 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게임의 규칙은 아닙니다.
의식은 여러분의 지구가 형성되기 오래 전에도 존재했었습니다. 의식은 물질의 바탕을 이루는 힘입니다. 의식은 물질적인 것 이외에도 다른 수많은 현실들을 지어 나갑니다. 여러분 자신의 견해가 너무나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현실이 존재의 규칙이자 양식인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자유 의지를 사용하여, 여러분의 물리적 현실을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것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에고를 지나치게 발전시키고 특화시켜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은 문제와 도전을 지니고, 이를 풀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현실에 대해, 육체를 넘어서 있는 존재의 본질에 대해,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 점에서 여러분 자신에 대한 접촉 지점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육체의 현실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그것만이 여러분이 아는 유일한 현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나 자신을 넘어선 곳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합니다. 인간의 현실과 경험을 넘어선 곳에, 인간의 말로는 번역될 수 없는 또 다른 현실이 존재합니다. 그 자아에게 있어서, 물리적 현실이란 것은 차가운 겨울 날씨 속에 내뿜어진 하나의 따뜻한 숨결처럼 연약하고, 덧없고, 일시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전체 자아의 다른 부분들과 계속해서 접촉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에고는 물리적인 육체의 현실과 그 안에서 살아남는 법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채, 생존을 주장하는 에고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그 때문에 영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육신이 죽어야만 영혼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과 더불어 ‘영혼’을 획득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당신들 각자가 지금 영혼입니다!
여러분이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다른 현실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여러분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 비행사가 우주복을 입는 것과 거의 똑같은 이유로, 여러분은 육체를 입고 있습니다. 죽음은 우주복을 벗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에고는 물리적인 현실 속에 겉으로 드러난 내면의 자아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내면의 자아가 여러 가지 문제를 풀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일련의 특징들이지요. 우리가 그렇게 생각함에 따라 에고 또한 계속적으로 변화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현실만이 현실이 아닙니다. 그것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이 있지요. 여러분은 그 동안 진짜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진짜인 현실을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현실들을 인식하고, 발전시키고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방법은 이 자료 속에 주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완전히 이해해야만 그것을 활용할 수도 있지요.
여러분은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 자신을 에고와 동일시하는 일을 그쳐야 합니다. 여러분의 에고가 인식하는 것 이상의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십시오. 이 자료는 진리라는 것을 여러분이 소화하기 쉽게 포장 단위로 묶어서 팔 수 있다고 자기 자신들을 기만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자료는 여러분이 지성적이고 직관적으로 확장해 나아가기를 요구합니다.
3차원의 현실과 차원의 출입구
여러분은 스스로 변장을 한 채, 자신이 변장하고 있음을 얼른 알아차리기 어려운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시스템 속에서는 현실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지요.
하지만 여러분이 알고 실감하는 ‘현실’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없이 많은 현실이 있고, 현실의 시스템들 사이에는 시간과 공간이 ‘휘어지는’ 차원의 출입구가 있습니다. 나는 그 출입구를 통해서 여러분과 만납니다.
나는 여러분의 오감이 만들어내는 현실만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으로 하여금 실감케 하고, 그럼으로써 여러분의 세계를 넓혀 주기 위해서 보내졌습니다. 여러분의 역사 속에는, 나 말고도 다른 많은 이들이 보내졌습니다. 여러분이 진보함에 따라 여러분은 새로운 차원들을 열어 나갈 것이고, 여러분 또한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물리적인 현실이라는 것은 현실이 취하는 하나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시스템에 갇혀, 여러 경험의 하나일 뿐인 작은 부분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셈입니다.
도전과 시련은 상호 관련된 시스템들의 다양함 속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배우게 해줍니다. 여러분의 시스템 속에서 슬픔과 번민이 실제로서 느껴지지 않는다면, 배움의 장치가 무력하게 되어 버릴 것입니다.
3차원에서의 경험은, 수련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입니다. 당신은 결국 그 모든 것을 놀랍도록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이며, 그 기억들을 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당신의 전 존재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당신은 직관으로 알고 있지요. 당신 자신이 당신의 모습을 지어내며, 진정한 당신은 그런 모습과는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그러나 더 넓은 의미에서의 환경이나 눈에 보이는 모든 세계까지도 당신이 창조한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정으로 품은 생각이 추진력이 되어 물질을 창조하고, 3차원의 삶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다차원적인 자아가 다양한 환경과 조건을 창조하고, 시련과 도전을 장치합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 때문에, 적어도 초기에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경험을 창조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두가 자발성에 의해, 한계 없는 기쁨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매번의 삶 속에서, 당신이 당신 자신의 무대 장치를, 당신의 환경을, 선택하고 창조합니다. 당신의 부모도 당신이 선택하고, 어린 시절에 부딪히게 될 사건들도 당신이 장치해 놓습니다. 당신들 각자가 배우로서 저마다 역할을 맡고 있으며, 내면의 안내에 따라 연극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인생 각본은 당신이 쓴 것입니다!
모든 현실들이 서로 교차하는 네 개의 절대적인 조절점이 있습니다. 이 조절점들은 에너지가 흐르는 통로로서, 하나의 현실에서 다른 현실로 가는 보이지 않는 길로서, 역할을 합니다. 시공간이 휘어지는 지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이 조절점들 중에는 절대 지점이 있고, 주요 지점이 있고, 그보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지점이 있지만, 이들은 모두 순수 에너지가 축적되는 곳을 대표하며, 미세한 것에서 극단에 이르기까지의 순수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에너지는 활성화되어야만 합니다. 이 에너지는, 물리적으로 활성화되기 전까지는 잠자는 상태에 있습니다. 당신들의 감정이나 느낌이 이 조절점들을 활성화시킵니다. 당신들이 의식하든 안 하든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현실의 경험이라는 외길은, 여러분이 그 길을 따라 여행하는 겉보기의 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상, 비유를 사용하자면, 여러분 자신의 위와 아래에는 무수히 많은 실들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적적인 거미줄 망이 처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물리적인 현실이 환상임을 받아들여야만 하고, 그 너머에도 존재하는 현실들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하는 존재들이 많지요.
인간 종족이란 하나의 무대이자 단계로서, 그것을 통해서 여러 형태의 의식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지구는 이제 막 생겨난 의식을 위한 훈련 시스템이라 할 수 있지요. 여러분은 먼저 에너지를 조종하는 법을 배워서 물질화라는 것이 생각과 감정의 구체적인 결과물임을 익혀야 합니다. 그래야만 더 확장되고 열린 현실 시스템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죽고 살고 죽어서 이 육체의 시스템을 떠나게 될 때, 여러분은 그러한 물질화 과정을 다 배우게 될 것이고, 문자 그대로 더 이상 인간 종족이 아니게 됩니다. 여러분 스스로 떠날 것을 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든, 의식적인 자아만이 인간이라는 형상 안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정체성의 다른 부분들은 다른 훈련 시스템들 안에서 동시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진보된 시스템들에서는, 생각과 감정이 자동적으로 즉각 구체화되어 가장 근접한 물질의 형태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배워야 할 것은 결국 배워야 하고, 그것도 잘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시스템 속에서는 마지막으로 환생한 사람들이나, 시스템을 이미 떠났지만 시스템 안에 남아서 사람들을 돕기로 한 사람들이 교사의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의 시스템 속에는 처음으로 들어오게 된 ‘파편 개성들’도 있고, 환생을 거듭해서 이제는 거의 졸업 단계에 있는 존재들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자기 스스로의 한계 때문에, 에고는 모든 가능한 사건들 중에서 오직 하나의 사건을 선택합니다. 에고가 그 사건을 경험할 때까지는, 다른 가능한 사건들과 마찬가지의 사건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육체적인 자아에 의해 경험될 때만이 사건은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전체 자아의 한 부분은 에고가 경험하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사건들을 경험할 수 있고 경험합니다. 전체 자아는 에고에 의해 경험될 수도 있었던 모든 실현 가능한 사건들을 다 알고 있습니다.
자아의 다른 부분은, 선택한 사건들을 경험하기 위해 에고가 들인 물리적인 시간과 똑같은 정도로 다른 대체적인 사건들 속을 탐구합니다. 이 같은 실현 가능한 다른 사건들 역시 다른 차원에서는 똑같이 ‘실재하는’ 것이 됩니다. 물질과 반물질 사이에는 무한한 숫자의 시스템들, 무한한 숫자의 우주가 있습니다. 물리적인 감각으로는 이런 다른 시스템들을 인지할 수가 없지요. 하지만 가능한 사건들도 여러분이 그것들을 인지하든 인지하지 않든 사건들인 점은 분명합니다.
가능한 사건들은 꿈을 통해서 비몽사몽간에 경험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내면의 감각’을 사용하는 수련을 통해서 이런 시스템들을 선도적으로 탐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가능성의 시스템들은 여러분의 물리적인 시스템만큼이나 실재합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는 것뿐입니다.
다른 현실 시스템들 속에서, 우리들 각자는 우리 자신과 동일한 자아도 아니고 쌍둥이도 아닌 ‘다른 자아들’을 가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전 존재의 다른 부분들은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능력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아들 각자는 지각의 성질에 따라 자신의 방식으로 시간을 경험합니다. 그들의 다양한 현실들은 전체 자아의 전체 지각에 통합됩니다. 전체 자아의 이런 모든 층들 사이에는 잠재의식적으로 정보의 상호 교환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내면의 에고는 이들 각자의 자아에 의해 다른 동시적인 자아들에 관한 이해를 하고자 애씁니다. 전체 자아가 자신의 부분들을 동시적으로 지각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이렇게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자아들이 나타나고, 자기들 스스로 고립되고 혼자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여러분이 늘 사용하는 의식적인 마음을 하나의 문으로서 간주한다면, 여러분은 그 마음의 문턱에 서서 육체의 현실 안쪽을 들여다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문들도 있지요…. 여러분이 한 문을 닫고 다른 문을 열기 이전에, 뒤틀리는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현실들, 여러분 자신의 의식적인 다른 부분들을 지각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다른 부분들 역시 여러분이 늘 친숙해 온 의식과 똑같이 진짜이고, 똑같이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식 에너지는 고향의 시스템을 떠나 낯선 타향의 시스템 속으로 전이될 수도 있습니다. 이 시스템에서 저 시스템으로 옮겨감에 따라 뇌파의 변화를 비롯된 여러 가지 자동적인 변화가 따르게 됩니다. 한 시스템에서는 정상이었던 것이 다른 시스템에서는 정상이 아닌 것으로 취급될 수도 있지요.
의식이 무엇이냐를 배우는 데에는 오직 한 길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집중력의 초점을 바꾸어서 가능한 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분 자신의 의식을 활용해 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들여다볼수록 여러분의 의식의 지평선이 더 넓어집니다. 그래서 에고적인 자아로 하여금 평상시에는 갖고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능력을 발휘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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