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라는 이름 / 신재기
"교수님이 이런 일까지 해도 되나요?"
내가 차에서 책 박스를 내려 옮기자 옆에 있던 지인이 한마디 던진다. 이 한마디 말에는 여러 가지 미묘한 의미가 실린 듯했다. 힘을 보태지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는 데 대한 미안함과 변명으로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무거운 책 박스를 들고 나르는 것이 의외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었다. 몸으로 힘쓰는 일을 자초하는 나를 잘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한여름에 작업용 장갑을 끼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짐을 옮기는 대학교수의 행동을 누가 편안하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교단에서 정장 차림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근엄한 모습,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박식을 앞세워 자기주장을 명쾌하게 펼치는 지식인의 모습이 '교수'의 대표적 아이콘이 아니던가. 이런 기준에서 보면 책 박스를 힘겹게 들만지는 교수가 상식을 벗어난 별종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015년 말부터 출판사 일을 시작했다. 이 일이 정년퇴임을 코앞에 두고 돈 벌기 위한 사업으로 시작한 것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수필 전문지를 창간했다. 이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출구가 출판사 경영이었다. 잡지 출간 비용을 줄이고 원고료 재원을 마련한다는 현실적 목적과 명분이 있었기에 이 일에 열중했다. 얼마간 현실적 보탬이 되었기에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원고를 받아 손수 편집하고 디자인하여, 인쇄 제본된 책을 내 손에 넣고 확인하기까지, 아니 저자나 온라인 서점에 배포하는 것까지 모든 일이 나 한 사람의 생각과 몸에 의해 이루어졌다. 자비출판이 대부분이니 인쇄된 책을 저자의 수중에 쥐어주는것은 출판사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책 박스를 옮기는 것은 책을 제작하는 사람의 일이지 교수로서 일이 아님은 자명하다. 주위 사람 누구나 '신재기'를 '교수'로만 생각하고 다른 여지를 두지 않았다.
올여름 오랜만에 의성 고향에 가서 겨우 하루 동안이나마 형님 농사일을 거들었다. 작심하고, 몸을 아끼지 않았다. 마늘 캐는 일이었다. 의성 마늘은 매년 하지夏至 전후에 수확한다. 이때는 장마를 앞둔 시기여서 날씨가 무덥다. 마늘 논에서 종일 일하는 것은 농사꾼한테는 아주 힘들다. 함께 일하게 된 이웃과 일꾼들이 하나같이 "교수님이 어떻게 이런 힘든 일을 할 수 있느냐"고 입을 모았다. 열두 살이나 위인 형님까지도 "신 교수, 너무 무리하지 말게"라고 한다. 형님은 동생이 교수인 것을 늘 자랑스러워한다. 그 감정 농도가 짙어지면 호칭이 '동생'에서 '교수'나 '박사'로 넘어간다. 민망해서 그러지 말라고 해도 그때뿐이다. 그것도 형님 개인의 마음이고 감정이다. 더는 간섭할 일이 아니기에 포기한다. 하지만 '교수'라는 통념을 앞세워 나를 과분하게 평가할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마늘 논에 지천으로 널린 마늘 한 포기처럼 나도 이 세상 많은 사람 중의 평범한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것을….
36년 동안 계급장처럼 달고 지내왔던 '교수'직을 올해를 끝으로 내려놓게 되었다. 주위에서 기분이 어떠냐고, 섭섭하지 않느냐고 물어온다. 물론 만감이 교차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름 덕분에 그간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았다는 점이다. 교수는 사회 윤리적 기대감이 큰 직업이다. 기대가 큰 만큼 사회적 책임도 뒤따른다. 교실에서 학생에게 강의만 잘하면 끝이 아니다. 교수는 학자이기도 하다. 학문탐구는 교수에게 주어진 중요한 책무이다. 그것은 무한의 일이므로 성취도는 늘 부족할 수밖에 없다. 교실에서 이루어진 강의의 흔적은 학생의 기억이나 노트 모서리 정도에 남을 뿐이지만, 교수 개인의 연구업적은 일목요연하게 목록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 부분은 교수의 아킬레스건이다. 다만 문제화되지 않고 무던하게 넘어갈 따름이다. 어디 이것뿐인가. 궁극적으로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사회에 환원해야 할 형이상학적 책임도 져야 한다. 이런 모든 것을 의식하고 실천하는 교수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이름값을 제대로 못 한다. 나도 그런 교수 중 한 사람이었다. 거기에다가 호의적인 사회 평판에 기대어 교수라는 직함을 남용하기까지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생각과 행동은 주체의 자율적 판단과 선택보다는 많은 부분 이데올로기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데올로기는 세상 사람의 무의식이고 상상적인 표상체계로 작용하기 때문에 진실을 왜곡하기 쉽다. 그간 나한테 붙어 다녔던 '교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면서 긍정적이었든 부정적이었든, 그로 인해 덕을 봤던 피해를 입었든 나를 가리거나 얽어매는 데 일조했다. 이제 그런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운 '탈존'이고 싶다. 내가 교수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많은 사람은 여전히 교수라는 색안경을 통해 나를 보고 판단할 것이다. 이 점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교수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간 현실적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꿔왔던 교수라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싶다. 때로는 책 박스를 올기고 농사일을 하는 일꾼이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빈둥대는 자유로운 백수이거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떤 사람으로도 규정되지 않는 그런 존재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