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3. 큐티
마태복음 24:1 ~ 14
성전의 무너짐과 세상 끝의 징조들
관찰 :
1)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에 대한 이어지는 예언
- 1절.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 2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 실제로 예루살렘성은 A.D.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실제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박살이 나게 됩니다. 오직 통곡의 벽만 남겨져서 옛 성전의 흔적이 남게 됩니다. 역사 속에서 예루살렘 성은 17번 파괴되고 18번 다시 세워집니다.
- 그런데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는 일을 주님이 하시는 것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한 것이거나 모슬렘이나 십자군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허용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성전 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사실은 예루살렘 성전이 나타내고자 했던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참 성전이요 참 제물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했고, 성전을 무너뜨리는 것에 대해서는 끔찍하게 생각하면서, 진짜 성전인 예수님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동조 한 것입니다.
2) 감람산에서의 말씀
- 3절.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일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나아와서 어느 때에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무너지는 것인지를 묻습니다. 또한 이들은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면 세상이 끝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성전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착각을 하는 것이 이미 솔로몬 성전이 무너졌었고, 스룹바벨 성전도 무너졌었습니다. 성전이 무너지는 것이 곧 세상의 끝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그것을 세상의 끝과 동일시 여기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미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고, 성전보다 크신 분이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깨닫지 못한 것은 듣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세에 대한 징조를 설명해 주십니다. 주님은 이제 곧 십자가를 지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람산에서 제자들과 모여 앉아서 말세에 있을 일들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제자들이 이 때의 감람산에서의 이 말씀을 이해하는 자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도 이 말씀을 이해하는 이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특별히 오늘과 같이 말세의 끝에 다다른 상황에서 이 말씀이 진짜 말세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자신이 지셔야 할 십자가를 염두에 둔 상황에서 말세의 성도들까지 고려하고 배려하시면서 메시지를 남겨주시는 것입니다. 말세에 있을 난맥상을 이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분별하고 이길 수 있도록 주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3) 말세에 대한 예수님의 권면
a.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 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 5절.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 많은 사람이 나는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라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 신천지의 이만희, 통일교의 문선명, JMS, 등등. 이미 자신을 예수라고 하는 자들은 모두다 가짜들입니다. 주님이 이미 말씀하셨듯이 주님은 그렇게 오시지 않습니다.
b. 두려워말라
- 6절.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 7절.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 8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것이라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날 것임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이곳 저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겨우 재난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 9절.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 10절.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 11절.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 12절.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 13절.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말세에는 사람들이 환난에 예수의 제자들을 넘겨줄 것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또 예수의 제자들을 죽일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예정된 것입니다. 예정된 수순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예수의 제자들은 모든 민족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 불법이 성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갈 것이라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친구 사이, 직장 동료 사이, 이웃 사이, 한 나라의 백성들 사이, 한 민족 간의 사이를 모두 멀어지게 하는 사탄의 전략이 발동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c. 끝까지 견뎌라.
- 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 이 말씀을 들었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죽기 살기로 복음을 땅 끝에 까지 전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초대 교회 때 이미 상당한 지역까지 주님의 복음이 증거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이 복음의 확산을 막았고, 궁극적으로 로마의 국교화가 기독교 복음의 땅 끝 전도를 가장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명분없고, 잔혹한 전쟁이었습니다. 교회가 힘을 얻어서 그 힘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방식은 모두가 다 실패로 끝난다는 것이 역사 속에서 적나라하게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오직 끝까지 견디며 주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증거하는 전도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세상 끝까지 주님의 복음이 증거되는 것이고, 그제야 끝이 오는 것입니다.
- 끝까지 견뎌야 하는 이유는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런 자들을 이기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예루살렘의 멸망은 예수님은 익히 아시는 바였고, 예수님의 섭리 속에 있는 계획이었습니다. 요세푸스는 A.D. 68-70년의 유대 전쟁 기간 동안 죽은 유대인의 숫자가 약 백만 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전역의 유대인 총 인구가 약 80만 명, 그리고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약 2백만 명이라고 추산할 때 이 숫자는 거의 전 유대인의 몰살을 의미합니다. 이런 엄청난 일을 주님은 미리 보시고 있고, 슬퍼하시지만 그대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신다. 이 모든 책임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들이 자신들과 자신들의 후손에게 그 핏값을 돌리라는 것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예수님보다 더 큰 것으로 여기는 이들의 미련함이 그런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가혹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2) 마지막 때에 있을 일들에 대해 설명하시고, 미혹받지 말고, 두려워 말고, 끝까지 견딜 것을 주님은 권면하셨습니다. 이것을 위해 주님은 결국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주님의 제자들, 하나님의 백성들을 고아같이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에 미혹받지 않기 위해,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견디기 위해 성령의 은혜를 구함이 지혜입니다.
3) 말세에 있을 일들을 알려주심은 속절없이 당하지 말라는 것이고,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그러한 시기에 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이것을 이미 다 알려주셨기에 살 길도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의 복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길 수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 :
1) 성전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었습니다. 그것을 잘못 오해하고 끝까지 자신들의 옮음만 주장했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봄으로 좌절과 절망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성전이신 예수님을 믿은 자들은 비록 티투스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지언정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예수 그리스도를 볼 것에 대한 믿음으로 참으로 소망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무너질 성전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소망이고 기쁨이요 믿음의 중심입니다. 썩어지고 무너질 세상의 것에 믿음의 중심을 두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아야 하겠습니다.
2) 말세는 이미 왔습니다. 그것의 끝이 아직 오지 않았을 따름입니다. 그럼 말세의 성도들은 말씀을 연구하는 가운데 말세의 환란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이사하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가? 그럴 수 없습니다. 지진이 나면 지진이 난 곳에서, 전쟁이 나면 전쟁이 난 곳에서, 기근이 발생하면 기근이 발생한 곳에서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종말론자들 중에 무서운 메시지를 통해 공포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주님께 나아오게 하기도 합니다. 회개해야 하고, 삶을 돌이켜야 하는 것은 맞는 것이겠지만 전쟁이나 환란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증거하는 것을 위한 길을 선택하여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정말 잘못했을 때는 혼나고 그 행위를 돌이키는 것이 지혜입니다. 혼나지 않고 잘못을 반복하는 것이 더 악한 것이 됩니다. 우리 나라의 문제들은 어쩌면 빨리 하나님께 혼쭐을 나고, 그러고 돌이켜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자정능력이 없다면 그렇게라도 해서 살 길을 주시는 주님을 소망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런 댓가도 치르지 않고 계속해서 이 땅에서 축복만을 받고자 하는 것은 못된 심보입니다.
3) 땅 끝까지 주님 나라의 복음이 증거되어야 그제야 끝이 옵니다. 이것을 주님이 하시겠지만, 그 통로요 도구가 되는 것이 나라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10월 27일 대한민국 회개 기도모임이 있습니다. 이 시간이 정치적 쇼에 현혹되고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와 진정한 변화의 물꼬가 터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동성애를 비롯한 잘못된 문제들에 대해서 기독교가 바른 목소리를 바른 방식으로 내게 되는 시간이 되길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