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리역에서
임 애 월
청리역에서는 하루 서너 번
기적을 울리며 완행열차가 들어와
잠시 머물고는 금방 떠난다
산골짜기 사이로 꼬리를 감추는
열차의 꽁무니에 매달려 아득해지는 계절
여름비 내리던 날
작은 배낭을 맨 그대가 빗속에서 멋쩍게 웃을 때
먼 산맥들이 천지사방에서 따라와 마중하였다
말 없이 엎드린 채 100년을 지켜온 간이역의 긴 레일
오래된 필름 속 낡은 영상 같은 한 폭의 수채화
그 여름날의 풍경 속으로 기차는 무심하게 떠났고
몇 개의 추억과 함께 나는 남겨졌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형체도 모르는 시간처럼
소리도 없이 곁을 떠나버린 것들과
살다가 문득 그리워지는 이름들이
평행선을 달려와 철로변에서 서성이고
목이 긴 철새들이 다시 날아들기 시작한다
직선을 고집하는 딱따구리 소리 가을숲을 흔들면
점점 가벼워지는 산맥의 능선
이 가을
떠나는 것들은 핑계를 대지 않는다
* 청리역 -경북 상주시 청리면에 있는 간이역
첫댓글 잘
감상했습니다
매표소도, 개찰원도 없는 역,
기차를 타고 객차승무원에게 표를 끊었던 추억은
청리역에만 남아있는 추억은 아니었지요.
전국 곳곳에 그런 추억을 담은 간이역이 있었으니까요.
아침에 힗링하고 갑니다.떠나고 싶은 이 봄에...감사히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