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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는 다니엘
단 9:1-7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단 9:1-7 / [백성을 위해 비는 다니엘] 아하수에로의 아들 메대 사람 다리오가 바벨론 제국의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2) 그가 바벨론을 다스리기 시작하던 해에 나 다니엘은 성경을 공부하다가 예루살렘이 70년 동안 폐허더미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여호와께서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하셨던 말씀 가운데 적혀 있는 것이었다. 3) 나는 굵은 베옷을 걸치고 잿더미 위에 앉아 금식을 하면서 주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 자비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4) 그때 나는 내가 섬겨 왔던 하나님 여호와께 우리 겨레가 지은 죄를 고백하면서 이렇게 기도드렸다. `여호와 하나님! 주께서는 한없이 위대하십니다. 우리는 오로지 주님만을 우러러봅니다. 주께서는 진실하시지요. 주께서 맺으신 계약에 충실하시지요.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언제나 한결같이 사랑하시지요. 또 주께서 명하신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이들을 아껴 주시지요. 5) 우리는 주께 잘못하였습니다. 주님 앞에서 못되게 굴었습니다. 그릇된 일만 하였습니다. 주께서 명하신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른길 아니냐고 보여주신 것. 그것을 우리는 멀리 떠나버렸습니다. 6) 주님의 종인 예언자들이 하는 말씀을 우리는 듣지 않았습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임금에게, 통치자에게, 조상에게, 온 나라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만 우리는 그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7) 여호와여, 주께서는 언제나 바르십니다. 늘 올바른 일을 하십니다. 하여 우리는 이렇듯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우리가 주께 진심으로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우리나 주께서 흩으셔서 멀든 가깝든 여러 나라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의 형벌 기간이 70년 만에 그칠 것을 알게 된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죄를 자백하며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간구합니다.
연수를 깨달았나니(1-2) 다니엘은 날마다 세 번씩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6:10). 금식하며 기도하기도 했습니다(9:3). 그러나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일뿐 아니라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그의 기도는 말씀 묵상을 통해 시작된 기도였습니다. 다니엘이 묵상한 내용은 예레미야 25장 11-12절, 29장 10절의 예레미야가 포로 생활에 대해 예언한 말씀이었습니다. 말씀 묵상을 통해 70년의 기간이 끝나가는 것을 깨닫게 된 다니엘은 더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말씀 묵상은 우리의 기도를 간절하게, 깊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3-4) 기도에 대한 풍성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자복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금식은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결사적 각오요, 베옷은 슬픔의 외적 상태를 드러냅니다. 재는 탄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음을 말합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죄를 스스로 고백하며 기도했습니다. 무엇보다 언약을 지키시고,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의지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며 기도할 때 기도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5-7) 다니엘은 하나님께 죄의 용서를 구하기 전에, 먼저 자신과 민족의 죄를 매우 구체적으로 고백합니다. 특히 자신을 포함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실패한 것에 대해 범죄, 패역, 행악, 반역, 법도와 규례를 떠남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죄를 자백합니다. 9장에서 네 번이나 자기 백성이 죄를 지었다고 고백합니다(9:5, 8, 11, 15). 자신들에게 임한 수치와 형벌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결과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때 먼저 지은 죄를 자백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적용: 나라와 민족,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해 기도하십시오.
사람마다 어려움을 만나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해결해보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찾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태도를 보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인 태도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 설 교 >
기도하기를 결심합시다
단 9:1-7 / 윤성진 목사
■ 한 가난한 청년이 부농의 집에 머슴처럼 들어가서 헛간 건초더미에서 잠을 자면서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주인집 딸과 눈이 맞아서 사랑에 빠졌다. 이것을 안 주인은 내 귀한 딸을 이렇게 가난하고 쓸모없는 이런 청년에게 줄 수 없다고 그 청년을 쫓아 내어 버리고 말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서 주인은 헛간을 청소하다가 헛간 벽에 있는 낙서를 보니까 ‘가필드’라는 사인이 그려져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까 한 몇 십 년 전에 쫓아내어 보낸 그 청년이 ‘가필드’였는데 바로 그 청년이 지금 미국의 20대 대통령으로 취임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이 가난한 청년은 그때 쫓겨난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파서 ‘내가 열심으로 노력 해야겠다. 그리고 내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살아야겠다.’ 결심한 바를 열 가지 목표를 세우고, 열 가지 좌우명을 만들어서 실천을 해서 드디어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 열 가지는 이렇다. ① 게으르지 말며 수입의 범위에서 생활하자. ② 약속은 적게 하고 진실을 말하자. ③ 좋은 친구를 사귀되 끝까지 사귀자. ④ 남을 나쁘게 말하지 말자. ⑤ 요행을 바라는 것은 게임이라도 피하자. ⑥ 맑은 정신을 흐리게 하는 음료는 피하자. ⑦ 비밀은 나의 것이나 남의 것이나 지키자. ⑧ 돈은 마지막 순간까지 빌리지 말자. ⑨ 행동에 책임지고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자. ⑩ 잠들기 전에 기도하며 반성의 순간을 갖자.
이 열 가지의 결심과 실천이 그를 위대한 인생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우리가 거저 살아가는 것 하고, 어떤 결심을 가지고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다니엘도 어린나이에 나라가 망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다시 말하면 왕의 진미와 마시는 포도주로 내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여서 다니엘에게 늘 지혜를 주셔서 출세의 가도를 달리게 만들어놓았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그가 당시 최고의 나라인, 그 나라의 총리까지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때는 그가 포로로 끌려 간지 67년 정도가 되었을 때입니다. 나이는 매우 많았습니다. 그때 그는 다시 또 한번의 결심을 합니다. 오늘 3절에 어떤 결심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그랬습니다. 기도하며, 간구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해가 되어지면, 이런 결심, 저런 결심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우리도 다니엘처럼 기도하며, 간구하리라. 기도의 결심을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학자들은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나이가 열일곱살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포로 생활을 67년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의 다니엘의 나이는 84세 정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나이가 많아서 무슨 결심을 하겠나? 나는 이만한 나이에 무슨 새로운 일을 시도하겠나? 그렇게 하지 마세요. 다니엘은 84세에 기도하기로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금년에는 더 기도하리라. 더 열심히 기도 하리라. 그렇게 기도의 결심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기도가 여러분을 한해동안 축복으로 끌고 갈 것입니다. 그 기도가 여러분의 일생을 복되게 끌고 갈 줄 믿습니다.
1. 말씀을 믿는 자가 기도합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가? 1절, 2절이 그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1절과 2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아멘”
때는 언제인가 하면, 다리오 왕 원년 이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서 5장 끝에 보면 바벨론이 메대와 파사에게 망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6장부터는 메대 파사 나라가 시작되어지는데, 6장과 9장의 사건은 메대 파사라는 나라가 다스리는 때의 이야기입니다.
나라가 바뀌었으니까 그 당시의 형편이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이러한 때에 다니엘은 나의 민족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역사의 물결은 지금 어디로 흘러 갈 것인가? 하며,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하다가 성경을 읽었습니다. 어떤 성경을 읽었다고 했습니까? 예레미야서를 읽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70년 만에 마치리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왔지만 70년이 되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는 예언의 말씀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몇 년 쯤 포로생활을 했다고 했습니까? 67년째입니다. 그러니까, 약 3년만 지나게 되면 다시 우리나라가 저 이스라엘 나라로 돌아가게 된다는 예언의 말씀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5장 11절에 보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70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29장 10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범죄하여 바벨론에게 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것을 예언했던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영원토록 계속 할 것이 아니라,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다가,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 올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 말씀을 발견하고, 깨달았을 때에 다니엘은 기도할 것을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제 참된 기도가 되느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지고, 발견되어질 때에 진정한 기도자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몇 날이 못 되어서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은 500명 쯤 됩니다. 그런데,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로서 기다린 사람은 120명 정도입니다. 이 사람들이 초대교회의 초석이 됩니다.
오늘도 누가 기도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가 기도합니다. 기도의 약속을 믿는 자가 기도합니다. 성경에 얼마나 많은 기도의 약속들이 있습니까?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요, 구하는 일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다’라고, 그렇게 기도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자식이 떡을 달라는데, 생선을 달라는데, 어느 아버지가 뱀을 주며, 돌을 주는 그런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악한 자라도 네가 좋은 것 주고 싶지 않느냐, 그런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께서 더욱 좋은 것 성령을 주지 않겠느냐! 주신다, 준다! 기도하면 준다! 너희가 구하지 않은 그 아들까지 내가 버려 십자가에 못 박아 그 생명의 값으로 너희를 구했는데, 무엇을 안주겠느냐! 아들까지 주었는데, 장난감, 옷, 그런 걸 네게 안주겠느냐? 다 주겠다! 하나님께서 구하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다가 쉽게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구하라고 예를 들어가면서 우리에게 구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이런 재판관이 있는데, 한 가난한 여인이 그 재판관에게 가서 계속해서 내 원한을 풀어 달라, 풀어 달라, 그렇게 이야기 했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이런 재판관이지만은 그래도 이 여자가 밤낮으로 와서, 아침저녁으로 와서, 번거롭게 하니까 내가 들어주어야겠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자녀들의 기도를 안 들어 주겠느냐, 오래 참겠느냐, 빨리 응답해주겠다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고난당하느냐? 기도하라! 병들었느냐? 기도하라! 가난하느냐? 기도하라! 실패했느냐? 기도하라! 외로웠느냐? 기도하라! 자녀가 잘못되어지느냐? 기도하라! 지혜가 부족하냐? 기도하라! 소원이 있느냐? 기도하라! 자녀가 필요하냐? 기도하라! 시험에 들었느냐? 기도하라! 전쟁에 나갔느냐? 기도하라! 결혼해야 하겠느냐? 기도하라! 부부사이에 문제가 있느냐? 기도하라! 중대한 결정을 해야겠느냐? 기도하라! 불가능한 것이 있느냐? 기도하라! 계속해서, 계속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지 우리가 선택하지 말고, 누구든지, 대상 가리지 아니하고, 언제든지 시간 가리지 아니하고, 어디서든지 장소 가리지 아니하고, 얼마든지, 제한하지 아니하고, 기도하면 내가 들어주마 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응답해주마, 응답해주마, 너희가 얻지 못하는 것은 너희가 구하지 않아서 얻지 못하는 것이지, 내가 안주어서 너희들이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확실히 믿는 자는 기도 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질병에 걸렸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낫게 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왜 기도 안하겠습니까? 병에 걸려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내가 기도하면 낫겠냐?” 이렇게 믿음이 없으면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낫는다는 확실한 보장이 있으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발견하고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기로 결심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확실히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기도의 약속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 하리라!” 결심하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약속은 기도해야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29장 10절은 70년이 지나면 해방되리라는 약속입니다. 11절은 이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12절에서 14절은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자하면 나를 만날 것이고, 그리고 약속한대로 포로에서 다시 돌아가게 해 주겠다.” 하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약속입니다. 그런데 언제 그 뜻이, 언제 그 약속이 이루어지느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약속도 이루어지는 것은 기도해야만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기도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성경 안에는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예레미야서 29장 11절에 있는 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되기를 원합니다.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물질적으로 부유하기를 원합니다. 가정이 평화롭기를 원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기를 원합니다. 행복하며, 웃으며, 감사하며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이런 축복의 약속들이 성경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축복도 기도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36장을 보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는데, 저 끝 부분에 가게 되면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에덴동산 같은 축복을 누리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6장 37절에 가서 뭐라고 하는가하면,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찌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행복하고, 형통하게 그렇게 살기를 바라고, 그렇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간구하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지만, 70년이 차면 해방되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기도해야만 그 약속을 이루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기도 안할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다니엘은 기도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축복을 준비해 놓으시고, 기도하면 주시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행복을 우리를 위해서 준비해 놓으시고 기도하면 주시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성공과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준비해놓고 기도하면 주시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준비해 놓으시고, 기도만 하시면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시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하지 못해서 그것을 받아 누리지 못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답답하고, 통탄할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구하라!” “구하라!” 우리에게 피 맺히게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고 “이제 기도하리라!” 결심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약속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부를 487장을 보면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다 맡아 주시는 우리 친구”라고 하였습니다. “주께 구함 없는 고로, 기도하지 않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기도하지 않는 고로 평안하지 못하네, 기도하지 아니하는 고로 부요하지 못하네, 기도하지 아니하는 고로 축복받지 못하네, 다 거기다 한번 적용해 보세요. 기도하지 않아서 주께 구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하지 말고 기도 드려 아뢰세!” 이제 기도하면 이루어주마! 하고 약속하신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생명을 건 열심
다니엘이 기도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는데, 얼마나 단단히 결심 했는 줄 아십니까? 3절에서 다니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세요. 금식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금식기도는 생명을 내걸고 모든 것을 다 끊어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붙들고 늘어지는 기도입니다. 베옷을 입고 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상복을 입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어떨 때 상복을 입습니까? “내가 부모님을 좀더 잘 섬겼으면, 더 오래 사실 수 있는데 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해서 세상을 떠나게 했습니다. 나는 부모님을 빨리 세상 떠나게한 죄인입니다.” 하는 그런 뜻으로 상복을 입지 않습니까? 나는 하나 님앞에 이런 죄인입니다. 그런 뜻으로 상복을 입고 기도 했습니다. 재를 무릎쓰고 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나는 재와 같이 이렇게 존재 없는, 아무 무가치한 존재입니다. 하는 그런 뜻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그런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기도한 것 아닙니까?
다니엘이 기도한 이 시기가 다니엘서 6장하고 같은 때입니다. 6장에 보면요 다리오가 나라를 조직해서 다스리기 시작한 때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9장도 다리오 왕 통치 원년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해입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기도하기를 결심하고 기도하고 있는데, 다니엘 6장에 보면 다니엘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서 음모를 꾸밉니다. 그래서 “무슨 허물을 뒤집어 씌워서 다니엘을 죽일꼬?”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신에게 기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왕을 부추깁니다. “왕이여! 지금 왕의 원년인데, 지금 왕에게 모든 백성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데, 왕 외에 다른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절을 하고 기도하는 이런 사람이 있으면 사자굴에 집어넣어 다 죽이고 왕의 왕권을 견고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왕이 들어보니 얼마나 지당한 이야기 아닙니까! 그래서 조서에다가 어인을 찍고, 그것을 공포했습니다. 다니엘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얼마나 기도하기로 단단히 결심을 했든지, 기도를 계속하면 사자굴 속에 들어가서 사자의 밥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불구하고, 기도를 계속하다가 사자 굴에 까지 들어가게 되어집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은 “내가 기도하다가 죽겠다!” “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기도하지 못하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그만큼 단단히 결심을 하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심이 쉽게 무너지는 이유는 이렇게 생명을 걸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도 다니엘처럼 기도를 결심해 보십시다. “나는 적어도 금년에 어느 정도의 기도의 양을 내가 가지리라!” “어디에서 기도 하리라!” “어떤 태도로 기도 하리라!” 그런 기도의 양과, 장소와, 그런 태도를 한번 결정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안해도 내가 같은 장소에서 15분은 기도하리라!” 적어도 “새벽기도를 하되, 1주일에 일곱 번 가운데 두 번 정도는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정말 기도다운 기도를 해 보리라!” 그렇게 기도를 결심하고 한 시간 기도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한번 기도해 보세요.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기도에 대한 결심을 새로이 한번 세워보자는 것입니다.
결심하면, 감당할 힘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주십니다.
작심삼일 이라고 하는데, 삼일마다 우리가 작정하면 될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작심정하고, 또 내일 모레 또 결심하고, 삼일동안 계속, 삼일마다 결심하게 되면 그 결심은 계속해서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명을 걸고 작정하고 결심하고 기도하는 이런 기도에 능력이 따릅니다. 그래서 사자굴에 들어가도 사자가 해치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그의 입을 막아주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을 모함하던 사람들과 그 처자들까지 다 사자 굴에 던져졌는데 그들이 그 사자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다 사자들이 먹어 치웠다고 했습니다. 그의 삶을 최고로 높혀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임금을 통하여서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능력인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를 결심하고,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자에게 이런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나도 이렇게 기도하리라!” 하고 한번 다짐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매일 저녁 6시를 기도 시간으로 정하고 면회를 사절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로 결심하고 기도를 계속 했습니다. 그가 그런 기도의 능력 때문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어지고,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졌습니다. 존 낙스는 “네가 생명을 사랑하거든 기도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존 낙스의 기도는 스코틀랜드의 모든 군대보다도 더 강력한 힘이 있다고 평가 했습니다. 루터는 하루 세 시간 기도하리라고 결심하고 나갔습니다. 그런 기도가 종교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일이 바쁘면 세 시간이 아니라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 앞에 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신약에 보면 사도들도 하루에 세 번씩 기도 시간을 정하고 기도했습니다. 9시, 12시, 3시에 기도했는데 기도 시간마다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기도 하고 또한 앉은뱅이가 일어나기도 하고 땅이 진동하는 이런 엄청난 역사가 작정하고 기도한 그 순간에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웨슬레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두 시간씩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얼마나 규칙적으로 4시에 일어나서 딱 그 시간에 기도 했는지 ‘메도디스트’ ‘규칙쟁이’이라고 하는 그런 별명이 생겨져서, 오늘날 감리교회가 태동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의 선배들처럼 이렇게 기도하기를 결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장소, 기도의 양, 기도의 태도를 한번 결심해 보십시다.
유명한 침례교의 목사인 저더슨은 말하기를 다른 것은 다 도둑맞더라도 기도시간만은 도둑맞지 말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결심을 하고, 그리고 결심한 기도시간을 도둑맞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켜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독수리과에 속하는 뱀잡이 수리라는 큰새는 평소에는 잘 날아다닙니다. 그런데 땅에 내려앉았다가 다른 짐승에게 쫓기게 되면 너무 급한 나머지 자신에게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날지 아니하고 뛰어서 도망가다가 결국 쫓아오던 맹수에게 잡혀서 먹히게 되는 새입니다. 참 어리석고 답답한 새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기도라는 훌륭한 날개를 주셔서 태산 같은 문제가 내게 온다고 할지라도 날아서 태산을 넘어가게 만드셨습니다. 아무리 깊은 골짜기라도 아무리 넓은 환란의 바다라도 날아서 건너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기도의 날개를 달아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때로는 뱀잡이 수리와 같이 기도의 날개가 있음을 잃어버리고 어떤 큰 문제가 닥치면 오히려 그 역경 앞에서 그만 좌절해 버리는 삶을 얼마나 많이 살아왔습니까? 이제 어떤 역경 가운데서라도 기도의 날개를 우리가 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서 그 위기를, 그 역경을 이기고 나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진국이 누구입니까? 앞서가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더 좋은 도구를 개발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삽을 가지고 땅을 파는 사람하고 포크레인을 가지고 땅을 파는 사람하고 비교가 되겠습니까? 손가락을 가지고 계산하는 사람하고 전자계산기를 가지고 계산하는 사람하고 비교가 되겠습니까? 좋은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앞서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남의 것을 빌려 쓸 수 있는 그 사람이 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재벌들 보세요. 재벌들이 다 자기 돈 가지고 저런 재벌이 된 줄 아십니까? 전부 은행돈을 빌렸는데, 어떻게든 많이 빌리고 늦게 갚을 수 있는 능력 있는 그 사람이 재벌이 되어집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 얼마나 많은 빚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내게 와서 빌려서 쓰라고 하지 아니하고 기도하여서 가지고 가서 쓰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 있고 강한 자는 하나님이라는 힘을 기도라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기도로서 하나님의 힘을 마음껏 사용하고 기도의 열쇠로 하나님의 축복의 창고의 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의 손안에 가슴속에 있는 창고에 있는 축복을 마음껏 꺼내어 쓸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을 읽을 때 그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약속의 말씀을 깨닫고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약속을 믿고 기도하기로 결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축복을 사용하여서 더 복된 한해를 살아가고, 더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영락의 모든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연수(年數)를 깨닫는 법
단 9:1-7 / 유관지 목사
성도들 가운데는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 그 어려움이 쉽게 끝나지 않고 오래 계속되고 있는 분들이 여럿 계실 것입니다.
건강의 어려움, 경제적인 어려움, 가정적인 어려움이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원하는 것이 있는데,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는데,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분들에게 오늘 본문은 깊은 교훈을 주고 또 소망을 줍니다.
다니엘서는 예루살렘이 망하고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것은 기원전 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때의 일입니다.
오늘 본문, 다니엘서 9장의 1절과 2절에 나오는 다리오 왕 원년은 기원전 538년입니다.
다니엘서 1장에서 9장까지 6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니엘서 1장 4절을 보면 포로가 되었을 때 다니엘은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운 소년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80대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머리에는 백발이 성성해졌을 것입니다.
그 60여 년 동안 통치자가 여러 명 바뀌었습니다.
느부갓네살, 벨사살을 거쳐 이제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갈대아는 바벨론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 사이, 다니엘은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첫 번째 꿈을 풀어주었습니다.
그 일로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는 자리에 올랐습니다.(단2: 48)
금 신상에 절하는 것을 거부하다가 풀무불에 들어갔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두 번째 꿈도 풀어주었습니다.
벨사살 왕이 큰 잔치를 벌였는데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썼지요. 이 글자의 뜻도 풀어주었습니다.
왕 외에 다른 존재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지게 된 법을 어기고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사자 굴에도 들어갔었습니다.
우여곡절,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 환상도 여럿 보았습니다.
사자, 곰, 표범, 쇠로 된 큰 이와 열 뿔을 가진 짐승, 이와 같은 큰 짐승 넷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두 뿔 가진 숫양과 한 염소의 환상도 보았습니다.
이 환상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 다니엘에게는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이들은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가 된 사이였습니다.
이들은 같이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부하고 채식과 물만 들었습니다.
바벨론의 벼슬살이도 같이 했습니다. 풀무불에도 같이 들어갔습니다.
그야말로 생사고락을 함께 한 동지들입니다.
다니엘서 4장 이후에는 이 세 친구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도 세 친구는 나이 많아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니엘은 혼자가 되어, 외롭게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 여러 가지가 변했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이 포로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아직도 황폐한 상태로 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황폐한 상태로 있다는 것은 곧 예루살렘 성전이 황폐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제대로 드릴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9장 17절을 보세요.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이것은, 지금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입니다.
우리는 “주의 황폐한 성소에”를 ‘북한의 무너진 제단들에’로 바꿔서 ‘하나님, 주의 얼굴 빛을 무너진 북한의 제단들에 비추시고 그 제단들을 재건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가운데서 다니엘이 성경을 통해서,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해서,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곧 그칠 것을 깨달았다는 내용입니다.
다니엘은 이것을 깨닫고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4절부터는 그 기도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깊은 감동을 주는 기도문입니다.
▶ 다니엘은 연수를 깨달았습니다.
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상태가 언제 끝나나, 원하는 것이 언제 이뤄지는가, 예루살렘 회복을 위한 간구가 언제 응답되는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연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연수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먼저, 연수를 깨달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춰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비밀을 택한 사람에게 알려 주시는데 비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일들에는, 특히 고통스러운 일들에는 정해진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연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입추입니다. 다음 주일은 말복입니다.
오늘도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제 더위가 곧 끝난다는 것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사람의 삶,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 그리고 정권, 그밖의 모든 것에도 정해진 때가 있습니다.
전도서 3장 1장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에 다 때가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일들이 정해진 때가 없이 그저 끝없이 계속되고, 반복되고, 돌아간다는 것은 기독교적인 사고가 아닙니다.
그것은 불교의 대표적인 사고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윤회전생(輪廻轉生)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고통스러운 일에, 무거운 짐이 되는 일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통은 그 안에 두 가지를 품고 있습니다.
하나는 의미입니다. 고통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끝입니다. 고통에는 끝이 있습니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자기가 겪는 고통이 제일 큰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이 고통은 끝이 없을 것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둘 다 틀린 것입니다.
나보다 더 큰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제일 큰 고통을 겪은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고통에는 끝이 있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 노예생활의 고통, 400년 만에 끝났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의 고통, 70년 만에 끝났습니다.
기원후 70년, 로마군의 예루살렘 점령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디아스포라 생활,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떠돌이 생활은 주후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됨으로써, 1870여 년 만에 끝났습니다.
1870여 년, 매우 길었습니다. 그러나 끝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끝이 있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연수를 가르쳐주십니다.
끝이 있는데 곧 있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욥은 형언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고통의 끝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욥은 끝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끝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으면 그 심한 고통 가운데에서 욥이 어떻게 버틸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욥에게,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욥 36: 9-11) 알러주셨습니다.
바다의 물결에도 한계가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 몰려오는 고난의 파도에도 ‘여기까지!’ 한계가 있습니다. 거기까지 오면 하나님은 고난의 파도를 향해 ‘동작 그만!’ 하십니다.
욥이 겪는 고통 가운데 제일 큰 것은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욥은 ‘언제인가는 하나님이 이것을 밝히 알려줄 것이다.’ 하는 믿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욥이 믿은 대로 되었지요.
하나님은 욥에게 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대 성숙, 대 전환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통에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 일제 때 많은 사람들이 일제 통치의 끝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특히 지도층 인사들이 생각을 바꾸고 친일행위를 했습니다. 언제인가는 일제의 통치가 끝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립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끝까지 지켰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매년 광복절은 당사자들에게나 그 후손들에게 영광스러운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광복 60년인 올해는 더욱 영광스러운 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요즘 도청 문제로 나라가 참 시끄럽습니다.
집권자들이, 정권은 언제인가는 바뀌고,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들의 내용도 알려 주셨고 그 뜻도 알려 주셨습니다.
여러 가지 환상을 보여 주시고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그 환상의 뜻도 알려 주셨습니다.
그 꿈들과 환상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땅 위의 나라들은 끝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2장 44절에 기록된 대로 하늘의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만이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고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선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4장 3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하나님의 통치는 대대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동굴과 터널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동굴은 끝이 막혀 있습니다.
터널은 끝이 뚫려 있습니다.
왜 애써 터널을 뚫습니까?
지름길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깨달아야 할 것을 빨리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 민족이 깨달아야 할 것을 빨리 깨닫게 하기 위해서, 다니엘이 깨달은 것을 여러분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고통이라는 터널, 분단이라는 터널을 통과하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터널 속에 있으면서 동굴에 있는 것으로 여기지 마세요.
세상의 일들에는, 특히 고통스러운 일에는 정해진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 하나님이 정하신연수를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을 통해서 연수를 깨닫게 됩니다.
2절을 보면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다고 하였습니다.
“책을 통해,” 여기에서 책은 곧 성경을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진 성경과는 물론 다릅니다. 신약은 물론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구약 가운데에서도 예언서의 일부였을 것입니다.
여기 책이라고 번역된 말은 ‘밤파림’이라는 히브리어를 번역한 것인데 ‘예언의 글’이라는 뜻입니다.
복수로 되어 있으니까 정확하게는 ‘예언의 글들’로서 다른 예언들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우리는 다니엘이 성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감동을 받고 교훈을 얻습니다.
다니엘은 어떻게 해서 이 성경을 가지고 있었을까?
중간에 다른 경로를 통해서 구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십중팔구는 포로로 끌려올 때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그 때의 성경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런 책이 아니라 두루마리 형태였습니다.
분량이 많았고 부피가 컸습니다.
포로로 끌려올 때 다른 것도 가지고 올 것이 많았을 텐데 그것을 소중하게 품고 와서 육십 여 년 동안 보관하면서 늘 읽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서 6장 10절을 보면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다고 했습니다.
그와 함께 다니엘은 시간을 정해 놓고 성경을 읽었을 것입니다.
기도와 성경 읽기, 이것이 성전도 없고, 제사 드리는 일도 없는 바벨론 땅, 말둑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이방 땅에서 다니엘을 신앙의 사람으로 지탱해 준 두 개의 기둥이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도대체 예루살렘은 언제 회복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품고 성경을 읽다가 예레미야서 중간 부분에서 그 답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다니엘 때는 성경에 장과 절이 매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장과 절은 중세 시절에 읽기 편하도록 구분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다니엘은 예레미야서 중간 부분에서 그 답을 발견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답은 이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5:9-13절까지의 말씀인데요,
예레미야 25:9-13 / 보라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주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을 놀램과 비웃음 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 소리와 등불 빛이 끊어지게 하리니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내가 그 땅을 향하여 선언한 바 곧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다니엘은 ‘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예정하신 일이로구나!’ ‘정해진 기한이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니엘은 평소에도 이 말씀을 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심각한 질문을 갖고 읽을 때 이 말씀이 답으로 깨달아졌을 것입니다.
여러분, 평소에도 성경을 열심히 읽으세요.
그리고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에 성경을 더욱 열심히 읽으세요.
성경에서 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답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런 체험을 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평소에 성경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성경을 열심히 읽지 않는 분들은 급할 때 성경을 열어도 성경이 좀처럼 답이 되어주지 않습니다.
이런 체험을 한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미 여러 환상을 통해서 세상의 여러 왕국은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환상이나 그밖의 신비체험들도 연수를 알려주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특별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지요.
성경은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환상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일반적인 진리였습니다.
성경을 통해서는 아주 구체적이고 명확한 답을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의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구체적이고 명확한 답을 줍니다.
여러분, 칠십 년입니다. 무한대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겪는 고통, 정해진 기간이 있습니다.
이제 그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 바라 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 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이런 가사이지요.
여러분,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 고통이 언제 끝나는지 주님이 연수를 알려 주실 것입니다.
성경을 소중하게 여기고 평소에도 성경을 읽는 가운데, 성경을 통해 나의 중요한 문제의 해답을 얻는, 연수를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그 다음, 연수를 깨달았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합니다.
경건을 가다듬으며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이 연수를 깨달은 사람의 바른 자세입니다.
연수를 깨달은 다니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기도하며 간구했습니다.
자복하며 회개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합하여 저는 ‘경건을 가다듬으며 준비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왜 이렇게 했을까?
‘예언의 기간은 거의 다 차가는데 예루살렘이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아서 안타까워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저는 그보다 연수가 다 찬 이후의 새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회개 자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뜨뜻미지근한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철저한 회개였습니다.
5절 /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4절에서 19절까지 화개의 기도문 가운데 ‘우리가 범죄했습니다.’는 고백이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회개는 마음의 목욕입니다.
예루살렘의 황폐가 끝나고, 주의 거룩한 산 예루살렘에서 주의 분노가 떠나고, 예루살렘 성소에 하나님의 빛이 다시 비치는 날을 바라보면서 다니엘은 지금 동족들이 그 날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동족을 대표하고 대신해서 자신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세요. 다니엘은 자기 민족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시여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죄의 고백입니다. 회개입니다.
다니엘은 회개라는 안경을 쓰고 자기 민족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다니엘의 역사관은 회개사관(悔改史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연수가 다 차가는 것을 깨달으셨습니까?
그것이 확신으로 다가옵니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음을 가다듬는 것입니다.
마음이 들뜨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숙연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할 수 없다면 하나님은 ‘아, 이 사람에게는 연수를 깨닫게 하는 것이 오히려 유익하지 않겠구나!’ 하실 것입니다.
작년 가을에 교회당 준공을 앞두고 새해 교회 표어를 정할 때 여러 가지를 생각했으나 ‘겸손히 주의 일을 행하는 교회’ 이것을 표어로 한 것은 바로 이런 필요 때문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 어떤 사람이 큰 죄를 범했습니다. 이 사람은 재판에서 무기징역 형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은 체념을 하고 교도소 생활에 순응을 했습니다. 성실한 교도소 생활이 인정을 받아 감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이 사람은 조바심을 하고 날이 왜 이리 더디 가느냐고 짜증을 냈습니다. 같이 고생하는 재소자들이나 교도관들에게 화를 내고 심지어는 행패를 부렸습니다. 이런 생활 태도는 그의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사람은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살아서 교도소를 나올 수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우리 민족의 현실에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통일을 바라고 있습니다.
최근에 북한 관광이 확대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고, 남북 남녀 축구 경기가 열리고, 여러 분야의 교류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부분적인 것들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우리나라는 엄연한 분단 상태입니다.
우리는 올해 광복 60년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광복 60년은 곧 분단 60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분단 상태로 60년째, 사람으로 말하면 환갑, ‘이 나라는 정말 통일이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를 품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분단, 끝날 때가 있고, 이제 그 끝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광복 60년이 되는 해인데 동양에서는 60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동양에서는 육십갑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갑, 을, 병, 정, 이렇게 나가는 천간(天干)이 있고, 자, 축, 인, 묘, 이렇게 나가는 지간(支干)이 있는데 이 둘이 순차적으로 배합되어 갑자, 을축, 이렇게 나갑니다.
이렇게 해서 육십 가지로 늘어놓고 육십이 끝나면 다시 시작하지요.
올해가 광복 60년이라는 것이 강조되고, 정부와 각 기관들 광복 60년 행사들을 여러 가지 진행하고, 올해 광복절 행사는 성대하게 준비되고 있는 이유도 이런 동양적인 관습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십진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고대 바벨론에서는 육십진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육십진법은 지금도 일부 남아 있어서 각도를 정밀하게 잴 때도 60분법을 사용합니다.
시간에서는 60초가 1분, 60분이 한 시간, 이렇게 진행됩니다.
지금은 분단의 57분쯤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곧, 58분이 되고, 59분이 되고, 그리고 새 시간, 새 역사가 열릴 것입니다.
올해, 광복 60년이 되는 해가 분단 문제 해결에 획기적인 전환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다니엘은 화개의 기도를 드렸는데, 분단 문제 해결에 있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우리의 회개가 부족해서 하나님은 아직 통일을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상품을 만들 때 마지막으로 거치는 공정이 무엇입니까?
불량한 부분이 없나 점검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 그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내 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이 이 과정을 거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다니엘은 경건으로 70년 이후를 준비했는데 분단 문제 해결에 있어서 우리에게 필요한 또 한 가지가 준비입니다.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 준비에는 북한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좀 못 살고, 북한 사람들의 가치관이 워낙 달라져 있기 때문에 갈등과 혼란을 겪을 것을 감수할 마음의 준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통일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통일 이후를 준비하지 않는 것은 일제 말기에 해방이 올 것을 알지 못하고 변절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며 마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겪는 일, 우리 민족의 분단에는 정해진 연수가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 가운데, 오묘한 비밀이 다 들어 있는 성경을 읽는 가운데 그 연수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경건함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새로운 날들,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고 이 민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니엘의 기도
단 9 : 1-19
오늘 본문 다니엘 9장은 다니엘의 기도입니다.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쉬지 말고 항상 기도하라"고 권면했듯이, 다니엘은 무시로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서 2장을 보면,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 자신의 꿈을 알아내지도 해석하지도 못하는 바벨론의 지혜자들에게 죽음을 선고할 당시에, 다니엘은 그 꿈을 자신이 해석하겠다고 말하며 그의 친구들에게 함께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2:18).
또 다니엘 6장에 보면, 그는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정규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 바벨론의 고관들은 이러한 다니엘의 기도 습관을 알고 그것을 이용하여 다니엘을 사자굴 속에 던져지도록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러한 모든 것을 알고도 기도를 결코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위기에 빠질 때나, 역경의 때에나 항상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이러한 기도 생활이 먼 타국의 포로생활에서도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이며, 그의 지혜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 9장에 나오는 다니엘의 기도는 특별한 기도입니다.
특별한 시기, 특별한 이유,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평소에 매일 기도하지만, 특별히 작정하고 기도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한 서원을 하며,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다니엘의 기도를 공부하면서 진정 우리가 특별히 기도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깨닫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다니엘은 언제 기도했습니까?
오늘 본문 1절이 그 때가 언제인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이 때는 바벨론 제국이 망하고 페르시아 시대가 들어서게 된 때를 가리킵니다. 한 나라가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들어섰습니다. 새 시대, 새 역사가 열렸습니다. 어쩌면 역사의 격변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혼란의 시대, 미래가 불투명한 시대에 다니엘은 더욱 기도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시대는 다니엘이 경험했던 시대보다 더 불투명하고 더 혼란스럽고, 더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새 천년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기대도 있지만, 걱정스러운 일들이 더 많습니다. 눈앞에 닥친 'Y2K 문제, 고도의 과학 문명이 속에서 메말라 가는 인간성의 문제, 환경의 문제' 등.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면에서도 사이비 종교들이 극성을 부리고, 잘못된 종말론자들이 진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시대가 바뀔 때, 기도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이 시대에 기도함으로 모든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다니엘이 기도하게 된 동기를 또 하나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성경을 읽다가 기도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레미야서를 읽었습니다. 다니엘은 시대가 바뀌는 대전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말씀을 읽다가 깨달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들이 다니엘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말씀을 읽다가 보니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하고 이국만리에 포로로 잡혀와서 생활했는데, 그 기간이 벌써 70년이 다 되었습니다.
역사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는 것을 보며,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징조로구나! 새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실 놀라운 역사가 있구나!' 기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이루실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혼란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새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기대, 새로운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비전, 그 꿈,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아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자자를 통해 주신 그 역사를 성취하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시대의 혼란스러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어디에서 희망을 찾고, 어디에서 위로를 얻고, 어디에서 용기를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불투명한 시대, 걱정과 염려로 가득 찬 시대, 한치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앞길을 밝혀 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 모든 염려와 걱정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갖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목양교회는 이 역사의 격변기에, 역사가 천년 단위로 바뀌어지는 때에, 세상의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새 천년, 첫 과제가 성전을 건축해야 하는 일입니다. 모두들 염려합니다. 모두들 교회를 걱정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니엘서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새로운 용기를 갖습니다. 역사의 대 격변기 기도한 다니엘,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며 그 말씀 속에서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꿈을 품는 다니엘에게서 오늘 우리가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 불안, 걱정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그 지혜가 무엇입니까? 말씀과 기도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어렵고 불안의 때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는 한 걱정이 없습니다. 문제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들어 한 시대를 감당하는 교회로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기 말, 이 격변기에 얼마나 기도하십니까? 얼마나 말씀으로 무장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읽는 중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이 발견되었습니다. 70년 포로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날이 가까워 왔다는 것입니다.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예레미야 29장10절-14절(1097쪽)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실로 위대한 발견입니다. 이 위대한 발견은 기도를 낳았고, 이 위대한 기도는 위대한 계시를 낳았습니다.
여러분 기도합시다. 말씀 공부합시다. 새로운 꿈을 찾읍시다. 새로운 용기를 발견합시다.
둘째, 다니엘이 왜 기도하였습니까?
물론 다니엘은 발견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의 이 기도는 중보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에 다니엘은 자신을 "나 다니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시작할 때도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3절), 또 4절에서도 "내 하나님 여호와께…"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5절 이하에 보면, "내"가 아니라 "우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6절)".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을 말합니다. 다니엘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과거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한 그 말씀을 붙들고 민족의 장래와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와 있는 시대는 성전을 잃어버린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길 자리를 빼앗겼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의 꿈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 백성으로 하나님을 온전하게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포로시기에 그들의 꿈은 완전히 짓밟혔고 약속의 땅에서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더 이상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도 없었고, 교제를 나눌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선민이라고 자부해 왔는데, 포로의 신세가 되어서는 이러한 신앙적, 영적, 정신적 특권을 모두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발 강가로 나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그리워하며 울었습니다(시137:1).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포로기 이스라엘의 이 모습이 지금 목양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아닌가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대치동에서 너무너무 흥왕하고 신나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되었든 성전은 허물어졌고, 방해 세력들 때문에 다시 건축하지 못했습니다. 남의 건물을 빌려 예배드리다가 끝내는 수지까지 왔습니다. 영적 지도자를 잃고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던 그 자리에는 서울 교회가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 또 한번 웁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니엘에게서 다시 한 번 위로를 받고 우리가 해야할 기도의 사명을 깨닫습니다. 아까 찾았던 예레미야 29장을 다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12절과 13절을 누가 다시 읽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70년 후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이 주어졌는데, 그냥 무조건 주어진 약속이 아닙니다. 분명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게 와서 기도하면…,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그런데 누가 기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작정기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누가 열어갑니까? 누가 새로운 비전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2000년이 되었다고 새 시대가 아닙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구를 통하여 역사를 이끌어 가시느냐의 문제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다니엘이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부르심의 사명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이 뜻을 붙들고 누가 기도할 것인가? 이 때 기도하는 사람이 은총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2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이미 하나님의 계획은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기도하는 다니엘을 보자 즉시 명령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목양교회를 향해서도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2000년 새 시대, 새 성전의 시대를 열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교회를 품고, 성전을 그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그 용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성전시대, 수지 성전의 시대를 열어 가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다니엘처럼 기도의 용사가 되어 하나님과 함께 그 시대를 열어 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셋째로,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기도의 방법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겸손입니다. 3절에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금식은 육체적인 모든 욕망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썼다는 것은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② 회개입니다. 구구 절절이 백성의 죄에서부터 제사장의 죄, 왕의 죄까지 회개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던 것, 하나님께 범죄했던 것, 율법을 행하지 않았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③ 긍휼과 용서입니다. 9절에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라고 했습니다. 18절 마지막 부분에서도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고 했습니다. 특히 19절에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그랬습니다.
철저한 회개, 철저한 긍휼에 의지한 기도입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거나, 자신의 의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④ 하나님 영광입니다. 19절 중반부에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멸하리라고 하실 때,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하시면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이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냈다"고 하나님을 조롱하게 될 것이다 고 기도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 그들의 구원은 곧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가 잘 안되기를 바라시겠습니까? 교회의 회복, 교회의 부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더욱 교회가 부흥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깨달음
단 9:1-6
사람이 자존심 상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남의 도움을 받아 사는 것입니다. 반면에 마음 뿌듯해 하는 것은 남에게 도움을 줬을 때입니다. 도움을 받는 것도 도움을 주는 것도 모두 힘과 연관이 있습니다. 힘이 없기 때문에 도움을 받는 것이고, 힘이 있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결국 자존심 상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힘이 없다는데 대한 수치감이 앞서기 때문이고, 마음이 뿌듯하다는 것은 자신에게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사람은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힘이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철저하게 도움을 받아서 세상을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용서를 받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에게 힘이 있다는 것이 느껴지면 그 힘을 믿으려고 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이럴 때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이라는 것을 은연중 거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누군가의 도움 때문이라고 하면 자기의 자랑의 근거가 모두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소유한 것이 많을수록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사람은 살아갈수록 하나님의 도움으로 산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하는데 반대로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살 수 있다고 믿다가도 점차 살아가면서 자신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다니엘서에서는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메데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볼 때 다니엘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이 무엇 때문에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왔으며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70년만에 마친다는 말씀의 70년이란 의미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먼저 살펴볼 것은 다니엘서의 장의 순서에 대한 문제입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뭔가 순서가 뒤바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1절을 보면 다리오 왕의 원년, 즉 다리오가 왕으로 세움을 입은 첫해에 깨달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다리오 왕은 이미 6장에서 등장하고 있음을 볼 때 6장과 9장의 순서가 뒤바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순서가 뒤바꼈는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다니엘의 깨달음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굳이 순서가 뒤바뀐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같은 의미의 사건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있지만 이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9장이 순서상으로 5장 뒤에 들어가야 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5장 뒷부분의 이야기를 이해해야 본문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5장 뒷부분의 이야기는 벨사살 왕이 잔치를 할 때 손가락이 나타나서 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을 쓴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하나님께서 달아봐서 부족한 인간은 끝내버리시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벨사살 왕은 자기 아버지인 느부갓네살이 교만으로 인해서 짐승으로 일곱 때를 지낸 것을 보고서도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성전의 기명들로 술잔을 삼아서 잔치를 했던 것입니다. 이런 벨사살을 끝내버리고 다른 사람으로 왕으로 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손가락의 글씨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알았는데 그 약속이 그날 밤에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5:30절에 보면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라고 합니다. 여기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없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예레미야에게 하신 70년의 약속 또한 그대로 이루어질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70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가고 예루살렘은 70년간 황폐해졌습니다. 예루살렘이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그 거룩한 곳이 황폐해지고, 성전이 무너진 것은 모두가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는데 그것은 70년이 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 뭔가를 잘해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한 기간이기 때문에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있는 동안 거룩한 땅인 예루살렘이 70년간 황폐함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무엇인가가 고초를 당하고 부서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70이란 숫자의 의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교만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짐승이 되는 징벌을 받은 느부갓네살은 짐승으로 지내는 기간이 일곱 때였습니다. 7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날수로서 인간이 전혀 개입하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하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느부갓네살이 교만한 인간에서 하나님을 아는 인간으로 변한 것은 7년의 기간이 지나서인데 그 7년이란 숫자는 '느부갓네살을 변하게 한 것은 하나님이 직접적인 간섭에 의해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띠라서 70년이란 하나님이 느부갓네살을 짐승같이 만드셔서 하나님을 아는 인간으로 만드신 것 같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간섭 속에서 새롭게 달라지는 기간이 바로 70년인 것입니다. 그것을 다니엘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은 자신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야 했던 이유와 자신들의 잘못 때문에 예루살렘이 황폐하게 된 이유를 깨달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잘못 때문에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들의 잘못 때문에 성전 되신 예수님이 무너지신 것입니다.
그 의미를 깨달은 다니엘이 하나님께 회개를 합니다. 회개는 '나는 심판 받아야 할 죄인입니다'는 의미입니다. 심판 받아야 할 죄인인데 심판이 나 아닌 다른 거룩한 분에게로 떨어지고 나에게는 심판 대신 긍휼과 자비가 주어진 것을 깨닫고 이제부터는 주의 말씀과 주의 법에 마음을 두고 살고자 하는 것이 회개한 후의 모습입니다.
회개는 깨닫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바라보고 나 때문에 다른 거룩하신 분이 무너지고 부서졌다는 것을 깨닫는 자만이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없이 회개를 한다면 그것은 반성이지 회개는 아닙니다. 반성은 회개와 다릅니다. 회개는 '나는 도저히 가망성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는 고백인데 반성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못했습니다'는 뉘우침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신자가 바라보고 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나 때문에 심판을 받으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약속을 의지하는 모습입니다. 약속만을 의지할 때 세상의 고민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고민이란 모두 살고자 하는 욕심에서 나오는 것인데 마지막 때의 약속을 아는 신자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산다는 것을 아는 신자가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민하고 불평하는 우리가 예수님을 또 다시 십자가에 달리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상관이 없던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말씀으로 들어 왔다면 우리가 관심 두어야 할 것은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