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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르뫼산악동호회 원문보기 글쓴이: 한재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12월9일
세한도를 국가에 기부한 손창근(91) 옹을 청와대로 초청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문화재청은 12월 8일 손옹에게
문화훈장 중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2004년 문화유산 정부포상 이래 처음으로 수여했다.
“귀중한 유물을 저 대신 잘 간직해주세요”
올해 2월 세한도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어떤 조건이나 예우의 요구없이, 손옹이 남긴 유일한 말씀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손옹의 기증품을 모아 특별 전시를 하고 있는데, 현재는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으로 중단한 상태다.
歲寒圖 金正喜 筆
1844년, 국보 제180호
세로 23㎝ × 69.2㎝,
종이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추사가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을 때 그린 그림이다
당시엔 죄인의 시신수습이나 수발들기 등 죄인과 관계를 가지면 같은 죄로 벌을 받았다.
그럼에도 추사의 문인으로 사제 간 의리를 지킨 사람이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이다
이상적은 중국에 12번 다녀온 역관이었으며 서화에도 조예가 깊은 문인이었다.
중국의 저명한 문인들과 교류로 명성을 얻어, 청나라에서 시문집도 발간했다.
청나라에서 수집한 桂馥(계복)의 <晩學集(만학집>과 惲敬(운경)의 <大運山房文藁(대운산방문고)>,
賀長齡(하장령)의 <皇朝經世文編(황조경세문편)> 등 귀한 책을 두 번 김정희에게 보내 준다.
이러한 이상적에게 감사의 답례로 세한도를 그려 주었다.
그림을 받은 이상적은 이렇게 답서를 쓴다
歲寒圖一幅 伏而讀之 不覺涕淚交
세한도일폭 복이독지 불각체루교
세한도 한 폭 머리 숙여 읽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상적은 세한도를 가지고 북경에 가서 청나라 문인 16명의 題贊(제찬)도 받았다.
훗날 그림을 소장하던 金準學(김준학)의 贊(찬)과 吳世昌(오세창)·李始榮(이시영)의 拜觀記(배관기)도 첨부되어
긴 두루마리가 되었다.
초옥의 앞뒤로 소나무와 잣나무 두 그루씩 갈필로 그렸다.
우측에 畵題(화제)와 款識(관식)이, 좌측에 跋文(발문)이 적혀있다.
歲寒圖라는 이름도 발문중의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에서 인용되었다.
세한도는 이상적의 사후에 제자 김병선과 그 아들 김준학이 보유했다가,
민영휘의 아들 민규식에게 거쳐,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 경성제대 교수가 일본으로 가져갔다.
1944년 서예가 손재형의 노력으로 한국에 돌아온다.
추사에 매료되었던 후지쓰카 지카시는 세한도를 손재형에게 돌려주었으며,
그 아들 후지쓰카 아키나오(藤塚明直)는 부친이 수집했던 추사 친필과 관련자료 2700여 점을 과천시에 기증했다.
무상으로 돌려주면서 자료실 건립에 써달라고 200만엔도 기부했다 한다.
손재형이 정치를 하면서 이근태에게 저당 잡히고, 다시 개성 갑부 손세기와 그 아들 손창근에게 전해졌다.
이 번에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그 손옹이다
마지막 소유자였던 손옹은 시가 1000억 원에 달하는 경기도 용인 땅을 국가에 기부하고,
수집한 컬렉션 304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조건 없이 기증했다.
코로나 19로 중단된 특별 전시가 재개되기를 기다려 본다.
그림의 오른쪽 상단 畵題(화제)에는
歲寒圖(세한도)
藕船是賞 (우선시상) : 藕船(李尙迪 이상적)에게 주다
阮堂 (완당) : 김정희의 다른 호
오른쪽 하단은 款識(관식)은
長毋相忘 (장무상망) : 오랫동안 서로 잊지말자, 중국 섬서성 순화에서 출토된 瓦當(와당)에 새겨진 말이다
題跋文(제발문)의 내용은
去年以晩學1)大雲2)二書寄來 거년이만학대운이서기래
今年又以藕畊文編3)寄來 금년우이우경문편기래
此皆非世之常有 차개비세지상유
購之千萬里之遠 구지천만리지원
積有年而得之 적유년이득지
非一時之事也 비일시지사야
지난 해에는 만학과 대운 두 책을 보내주시고
금년에는 또 우경문편을 보내주시니
이런 일들은 세상에서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천만리 먼 곳에서 구한 것이고
여러 해에 걸쳐서 얻은 것이니
한 때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且世之滔滔 차세지도도
惟權利之是趨 유권리지시추
爲之費心費力如此 위지비심비력여차
而不以歸之權利 이불이귀지권리
乃歸之海外蕉萃枯稿之人 내귀지해외초췌고고지인
如世之趨權利者 여세지추권리자
더욱이 세상의 흐름은
오로지 권세와 이득이 되는 것을 쫓는데
(책 구함에) 마음을 쓰고 힘들이기를 그같이 하면서도
그대는 권세와 이득을 따르지 않고
바다 밖 초췌하고 메마른 사람을 돌보는 것이
마치 세상사람들이 권세와 이익을 쫓듯이 해 주시는구려
太史公4)云 태사공운
以權利合者 이권리합자
權利盡以交䟽 권리진이교소
君亦世之滔滔中一人 군역세지도도중일인
其有超然自拔於滔滔 기유초연자발어도도
權利之外不以權利視我耶 권리지외불이권리시아야
太史公之言非耶 태사공지언비야
태사공(司馬遷)이 말하기를
권세와 이득에 따라 만난 자들은
권세와 이득이 다하면 교분이 성글어진다고 하였거늘
그대 또한 세상 흐름 가운데 한 사람임에도
어찌 초연히 세상 흐름에서 스스로 벗어나 계시며
권세와 이익의 밖에서, 권세와 이익 없이 나를 대하시는가.
태사공의 말씀이 잘못된 것인가?
孔子曰5) 공자왈
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松栢是貫四時而不凋者 송백시관사시이부조자
歲寒以前一松栢也 세한이전일송백야
歲寒以後一松栢也 세한이후일송백야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성인특칭지어세한지후
공자님 말씀에
‘날이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 하셨으니
송백은 사계절 내내 시들지 않는 것이라.
날이 추워지기 전에도 한결같은 송백이요
날이 추워진 후에도 한결같은 송백임인데
공자께서는 특별히 날이 추워진 후의 송백을 칭찬하셨으되
今君之於我 금군지어아
由前6)而無加焉 유전이무가언
由後而無損焉 유후이무손언
然由前之君無可稱 연유전지군무가칭
由後之君 유후지군
亦可見稱7)於聖人也耶 역가견칭어성인야야
이제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은
유배 전이라고 더 잘해 준 것도 없고
유배 후라고 더 못해 준 것도 없었네.
예전에 나를 대하던 그대에게 칭찬한 적 없었기에
그 후 지금 나를 대하는 그대는
설마 성인에게 칭찬 받으려 한 것이기야 하겠는가?
聖人之特稱 성인지특칭
非徒爲8)後凋之貞操勁節9)而已 비도위후조지정조경절이이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 역유소감발어세한지시자야
성인이 말씀하신 바는
후에 시드는 정조와 절개가 무익한 짓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다기 보다
오히려 추운 계절에 느끼신 감회가 있었던 것이다.
烏乎 오호
西京10)淳厚之世 서경순후지세
以汲11)鄭12)之賢 이급정지현
賓客與之盛衰13) 빈객여지성쇠
如下邳榜門14) 여하비방문
迫切之極矣 박절지극의
悲夫 비부
阮堂老人書 완당노인서
아!
漢(한)나라 서경의 순박하고 후덕하던 시절
급암이나 정당시와 같은 어진 분들에게도
빈객은 주인 권세와 더불어 성하고 쇠하였다.
翟公(적공)의 下邳榜門(하비방문)에는
人情(인정)의 박절함을 극적으로 잘 묘사하였도다.
슬픈 일이로다!
완당 노인이 쓰다.
[ 주 석 ]
1) 晩學(만학) : 桂馥(계복)의 晩學集(만학집)
2) 大雲(대운) : 惲敬(휘경)의 大雲山房文藁(대운산방문고)
3) 藕耕文編(우경문편) : 藕耕(우경)의 皇朝經世文編(황조경세문고)
4) 太史公(태사공) : 司馬遷(사마천)
5) 孔子曰(공자왈) : 論語 子罕(자한) 편에 있는 말
“子曰 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也” 자왈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
6) 由前由後(유전유후) : 앞과 뒤가 같음
7) 見稱(견칭) : 칭찬을 받다
8) 徒爲(도위) : 無益한 行爲
9) 勁節(경절) : 굳은 절개
10) 西京(서경) : 前漢(전한)의 수도인 長安(장안)
11) 汲黯(급암) : 前漢 무제 때의 忠諫을 잘하던 忠臣(1295~1359)
12) 鄭當時(정당시) : 漢(한) 나라의 충신, 이름 장(莊).
손님을 좋아하여 서울 사방 교외(郊外)에 역마(驛馬)를 두고 손님을 영접했음
13) 賓客與之盛衰(빈객여지성쇠) :史記列傳(사기열전) 권120.汲鄭列傳(급정열전)에서
유래 된 말로 손님은 주인 권세의 성쇠와 더불어 늘거나 줄어든다는 뜻
太史公曰 (태사공왈) 태사공(사마천)이 말한다
夫以汲鄭之賢 (부이급정지현) 汲黯(급암)이나 鄭當時(정당시) 같이 어진 사람들도
有勢則賓客十倍 (유세즉빈객십배) 권세가 있을 때는 빈객들이 열 배가 되었다가
無勢則否 (무세즉부) 권세가 없어지면 그렇지 않는데
況眾人乎 (황중인호) 하물며 보통 사람들은 어떠하겠는가
下邽翟公有言 (하규적공유언) 하규(下邽)현의 적공(翟公)은 말하기를
* 下邽(하규):지금의 陝西省(섬서성) 渭南市(위남시) 北下縣鎭(북하현진) 동남쪽 일대
* 翟公(적공) :전한 중기의 관료로 하규현下邽縣(하규현) 사람
始翟公為廷尉 (시적공위정위) 처음에 내(적공)가 정위(廷尉)가 되었을 때
賓客闐門 (빈객전문) 찾아오는 손님으로 대문이 가득 메워졌는데
及廢 (급폐) 관직을 그만 두자
門外可設雀羅 (문외가설작라) 대문 밖에 참새를 잡는 그물을 쳐도 될 정도였다
14) 下邳榜門(하비방문) : 翟公書門(적공서문), 下邽縣(하규현) 下邳(하비)의 翟公(적공)이 대문에 써 붙인 글
*下邳(하비) : 장쑤(江蘇) 성 북단에 있는 비(邳) 현의 옛 이름.
翟公復為廷尉 (적공부위정위) 적공이 다시 정위에 복위하자
賓客欲往 (빈객욕왕) 빈객들이 다시 찾아오려고 했는데
翟公乃人署其門曰 (적공내인서기문왈) 적공은 이에 대문에다 이렇게 써 붙였다
一死一生乃知交情 (일사일생내지교정) 한번 죽었다 한번 살아나니 비로소 사귀는 정을 알게 되고
一貧一富乃知交態 (일빈일부내지교태) 한번 가난해졌다 한번 부유해지니 비로소 사귀는 태도를 알게 되고
一貴一賤交情乃見 (일귀일천교정내현) 한번 귀해졌다 한번 천해지니 비로소 사귀는 정이 드러났네
汲鄭亦云 (급정역운) 급암과 정당시 역시 이러한 말에 해당되니
悲夫 (비부) 슬픈 일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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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