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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괜한 걸 물어서 정규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만 같아 미안하기만 한 가람이 아무 말도 못하고 정규를 물끄러미 바라보면, 정규도 미안해하는 가람에게 우리 둘째 형은 어차피 8년 전의 사람이고, 내 기억 속에 남아있으니까 살아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가람의 어깨에 다부진 팔을 올려놓고는 밝게 웃는다.
“괜찮아.. 괜찮아.. 이미 예전일이니까.”
“그렇지만.. 미안한걸.”
자꾸만 미안해하는 가람의 모습에 자신이 더 미안해진 정규가 웃으면서 이 형님이 참아야지 안 그래?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허밍을 하며 저만치 앞서간다.
가람도 정규를 따라 가려는 순간 아무도 없는 음대 전공실기 연습실에서 창문을 열어놨는지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월광 소나타?.. 누구지? 이 시간에는 연습하는 사람이 없을 텐데.’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건지 가람이 정규에게 밖에서 잠깐 기다리라는 말을 남겨둔 체 음대 건물로 향한다.
가람의 모습을 보며 정규는 얘가 왜 이럴까? 하고 생각하다 안 되겠는 지 이내 가람을 따라 음대 건물로 들어간다.
가람이 건물로 들어오면서부터 피아노 소리는 점점 커지는 가운데, 아무도 없는 실습실은 적막하기만 하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앞으로 다가가면서 피아노 소리는 아까보다 커져만 가는 가운데, 가람은 온 정신을 집중하며, 피아노 연습실을 돌아가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는다.
그렇게 창가가 있는 복도의 끝으로 왔을 때, 소리의 근원지가 나왔고, 유리창 너머에서 여유로운 모습으로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느낌으로 할 수가 있는 거야?’
연습실 안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사람은 밖에서 사람이 보는 것에 대해 상관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여유를 부리는 건지 나른한 느낌으로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한편,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람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한 마음에 연주자의 모습을 보려고 하지만 연주자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좀 더 가까이에서 들어 볼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가람의 시선이 피아노에 올려져 있는 안경으로 향한다.
‘안경?! .. 눈이 안 좋은 건가? 아닌데.. 분명.. 악보가 없는데.’
가람의 머릿속에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동안 연습실 안에서는 편안한 모습의 마루가 눈을 감고 손이 가는 데로 건반을 누르고 있다.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연주를 하는 건데도 실력은 음대생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와!! 굉장해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놀란 건지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오른손의 연주가 멈추면서 반주를 하던 왼손도 오른손을 따라 멈추게 되었다.
“왜.. 멈추는 거 에요? 이렇게 굉장한 월광 소나타는 처음 들어보는데.”
한참이나 들뜬 가람의 목소리에 마루는 어떻게 수습을 할까 생각해보지만 마땅히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얼마나 연습한거에요?”
“.......”
“얼마나 연습을 했으면 눈감고도 그런 연주가 가능한걸까? 정말 놀랍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익숙한 사람의 뒷모습만 봐도 누군지 금방 알아채는데 가람은 그런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눈치 챈 건지 피아노 위에 놓여진 안경을 다시 쓰고선 고개를 돌린다.
“어... 해밀씨였어요?”
“아...네..에.. 안..경이.. 어디 있었는지.. 자..잘 안보여서.”
마루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 가람의 관심은 온통 마루가 연주한 월광 소나타에 가 있었다.
“해밀씨.. 해밀씨.”
“에...에?”
“저.. 이곡 가르쳐 줄래요?”
“에?”
“실은.. 월광 소나타 무서워서 못 쳤었거든요.”
“무.. 무서워요?”
“네.”
“왜... 못..치는지...아..알 수 있을까요?”
“무서웠어요.”
“실..실례되지만.. 않으면... 계...계속.. 마..말해..줄...수..이...있어요?”
가람의 말인 즉, 어릴 적 흡혈귀가 나오는 공포영화를 본적이 있었는데 장면 중에 흡혈귀가 어두운 방안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는 장면에서 월광 소나타가 나온 후로 월광 소나타를 들으면 어릴 적 보았던 그 영화 장면이 생각나게 되어버려서 그 곡을 쳐 본적이 없다고 했다.
본래 모습을 한 마루였다면 가람의 말에 특유의 웃음을 지었겠지만, 현재는 윤해밀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가람의 고민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 그.. 그랬..구나.”
“그래도.. 뭐.. 쇼팽의 야상곡은 자신 있게 칠 수 있어요.”
“야...상...곡.”
가람이 말없이 웃으며 마루의 옆으로 가더니 숨을 크게 들어 마신 후 손을 건반 위에 올려놓는다.
곧이어, 가람의 마음이 담긴 야상곡이 연습실 안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느낌을 가진 가람만의 야상곡이었다.
평소의 가람도 밝았지만,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는 모습의 가람도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인다.
가람의 피아노에 마루도 눈을 감고 피아노 음에 마음을 맞긴다.
‘그래... 8년 전의 너 또한 이 곡을 좋아했었지.’
연주를 마친 가람이 마루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 가람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마루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마루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언젠가 한번 본적이 있는 사람의 미소와 겹쳐지는 거 같아 설마 아니겠지?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왜.. 왜 그래요?”
“흠.. 흠.. 아니에요.”
“너.. 거기 있었냐?”
소리가 돌리는 쪽으로 가람과 마루가 고개를 돌리면 연습실 문가에 정규가 서 있었다.
“뭐야.. 잠깐 기다리라고 했으면서 한 시간도 넘게 거기 있었던 거야?”
“아.. 맞다.. 그렇게 말했었지?”
손뼉을 치며 1시간 전에 자신이 정규에게 한 말을 까맣게 잊어 버렸었다.
정규에게 잔소리를 들을 걱정을 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은 가람이 그럼 나 먼저 갈게 하고는 정규와 마루만 남겨두고 빠른 속도로 연습실 안을 빠져 나온다.
“그나저나.. 당신이었습니까?”
“.... 뭐가?”
“월광 소나타.”
“.......”
“뭐.. 잘 들었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정규가 발걸음을 돌려 연습실을 나가려고 하는 찰라, 마루의 무미건조하지만 감미로운 저음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녀석이.. 왜.. 그 꼬맹이와 함께 있는지 알 것도 같아.”
“그렇다면 왜.. 제가 당신을 달갑지 않아하는 건지 잘 알고 있겠군요?”
그 말만을 남겨둔 체 유유히 연습실을 나가는 정규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루만이 남아 피아노를 응시한다.
‘언젠가.. 어둠이 싫으냐는 내 물음에 넌 이렇게 대답했었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속에 들어갈 까봐.. 그리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까봐.. 두렵다고 했었다.’
닫힌 피아노의 뚜껑을 열고는 가늘고 긴 손가락을 움직이며, 가람이 연주했던 것과 다른 느낌의 야상곡을 연주한다.
부드럽고 감미로웠던 가람의 야상곡과는 달리 마루가 치는 야상곡은 그야말로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별들처럼 편안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저 멀리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한 곡처럼 들렸다.
‘듣고 있냐? 윤해밀? 내가 널 위해서.. 이렇게 피아노를 치고 있잖아.’
한편, 정규와 함께 하교 길을 걷고 있는 가람의 머릿속에서는 마루가 연주하던 월광 소나타의 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뭘 그렇게 생각해?”
“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언가 생각하고 있었잖아.”
“아.. 월광 소나타.”
“월광 소나타?”
“응.. 공포영화에서 듣던 그 월광 소나타 같지 않았어.”
“공포영화?”
“응.. 공포영화에서 나오는 월광 소나타는 마냥 살벌했는데.. 아까 해밀씨가 연주하던 월광 소나타는 살벌한 것 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것처럼 들렸었거든.”
“그.. 그래?”
“마치.. 옥상위에서 봤었던.. 그 사람처럼.”
가람의 말에 당황했던 건지 움찔하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오는 정규다.
“참.. 정규야.”
“응?”
“컴퓨터.. 언제 집으로 가져오는 거야?”
“그럼 그렇지.”
가람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정규가 으이구 하면서 가람의 정돈된 머리카락을 흩날린다.
“너.. 머리 안 자른 지 얼마나 됐냐?”
“흠.. 글쎄.. 한 3달 정도 됐을걸.”
“사내자식이 그게 뭐냐? 기집 애 같이.. 컴퓨터는 늦게 와도 괜찮으니까.. 일단 머리나 좀 자르자.”
“싫어.. 난 지금 이 머리가 딱 좋단 말이야.”
“좋기는.. 이제 아주 어깨에 닿아서 더 기집 애 같다.”
“정규.. 너.. 내가 기집 애 소리 듣기 싫어하는 거 알면서 계속 그러더라?”
“그럼 누가 그렇게 하고 다니래?”
“내 차림이 어때서.”
“누가 봐도 기집 애처럼 보이잖아.”
그랬다. 정규가 보는 가람의 옷차림은 대략 이러했다.
윗옷은 흰 스웨터에 바지는 커피 밀크 색을 가진 편안한 캐주얼 바지였는데, 일반 성인 남자들 보다 체구가 작았기 때문인지 남성복 보다는 여성복에 더 가까운 옷차림이었다.
“아무튼.. 너.. 머리카락 너무 길어.”
“그래서.. 정규 너처럼 짧은 모히칸은 싫다고.”
“임마.. 안 잡아먹어. 잔말 말고 따라와.”
정규가 씨익 웃더니 가람의 얇은 손목을 잡고는 번화가 안 대형 미용실로 향한다.
들어가기 싫다는 가람을 억지로 끌고 미용실 안으로 들어가면, 안에 있던 직원들이 어서오세요! 하고 크게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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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동안 잘 놀고 새로운 기분으로 느낌 충만하게 갖고 글을 썼답니다.
제글 기다리신분들 고생 많으셨어요.
그럼 다음 회차에서 뵙도록 하지요.
댓글 남겨주시면 정말 생유베리감사합니다.
첫댓글 가람군 넘넘 귀여워~^^
흠.. 나도 월광소나타 처음 들었을땐 뭐 이런 우울한 음악이 다 있나 했어.;
....꺄, =_=* [의미불명]
그 뜻은 무엇일까요? ^_^ 가람군은 월광 소나타를 무서워 합니다.. 저 처럼요.. ;;
언니 여기에 저 노래 넘 잘어울린다 ㅋㄷ 앞부터봐야하는데 여기부터봐버렸네 =ㅅ= 흐음.;
사실 그 남자 이야기 쓸 때에는 이 노래만 계속 들으면서 쓰는 편이야. ^_^;
흐음...마루군이었군요...
네.. 마루군이었습니다. ^_^
마루는너무멋잇어! ㅋㅋㅋㅋㅋ
능글맞은게 아니라?
월광의소나타가무서웠구낭ㅇ_ㅇ
전 가끔 무섭다는 생각 드는데.. 그런 생각 안드세요?
헤^ㅇ^*사실 월과의소나타 한번도안들어봤써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