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피는 야생화
나는 사람들이 찾지 않은 산자락을 즐겨 간다. 내 생활권에서 서북산 일대가 그런 곳에 해당한다. 시내버스를 한 번 갈아타면 공기가 맑고 호젓한 산자락을 누빌 수 있다. 집 근처에도 산행을 나설만한 곳이 있기는 하지만 잘 가질 않는다. 용추계곡이나 진례산성이다. 정병산이나 대암산을 찾아도 된다. 천주산도 있다. 봄가을 이런 곳으로 가면 산행객이 붐벼 내 체질에 맞지 않다.
사월 첫날은 일요일이었다. 평소와 같은 출근 시각에 집을 나서 마산역으로 향했다. 역 광장 모퉁이 농어촌버스 출발지로 갔다. 의림사로 가는 74번을 탔다. 보름 전 응달 산기슭에 피어난 야생화를 보러 그곳으로 갔던 적 있다. 남들은 봄꽃을 찾아 무리 지어 전세버스로 떠난다만 나는 혼자 호젓한 산행을 즐긴다. 내가 탄 버스는 어시장을 둘러 댓거리를 지나 밤밭고개를 넘어갔다.
차창 밖 가로수와 언덕에는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벚꽃이 만발하였다. 오리나무를 비롯한 산자락 활엽수들도 새잎이 돋으면서 연녹색으로 물들어갔다. 도심에서 검은 아스팔트와 잿빛 콘크리트만 보다가 교외의 숲과 흙을 보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내가 탄 버스는 어느새 동전터널을 지나 진동 환승장을 들렀다. 이후 진전 면소재지에서 골짜기로 들었다. 의림사 산문 바깥에서 내렸다.
절간으로 드는 차피안교를 건너지 않고 인성산 등산로로 올랐다. 지난번 들렸을 때 봉오리만 맺어 있던 자줏빛 얼레지는 고개를 숙인 채 저물고 있었다. 하얀 꽃잎을 다섯 장 펼친 개별꽃 무더기도 만났다. 엷은 보라색으로 피어난 현호색도 아직 한창이었다. 잎사귀가 단풍잎처럼 생긴 단풍잎제비꽃도 보았다. 가랑잎이 삭아 부엽토가 층을 이룬 산기슭을 누비면서 야생화를 감상했다.
응달 산기슭에서 한동안 야생화를 탐방하다 임도로 내려섰다. 부재고개로 오르는 길고 긴 임도였다. 야생화는 임도 길섶까지 영역을 넓혀 자랐다. 취나물도 돋아 잎을 펼쳐 자랐다. 쑥이 수북하게 자라 있어 허리를 굽혀 몇 줌 캐 보았다. 활엽수림 사이사이 산벚나무는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야생복숭아나무는 연분홍 꽃이 살구꽃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산도화로 불리는 꽃이었다.
생강나무 꽃은 저물고 삼지닥나무 꽃은 아직 방울 같은 꽃을 달려 있었다. 절개면 비탈에는 진달래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산자락 봄꽃들은 더 머뭇거리지 않고 동시다발로 피어났다. 나는 진달래꽃의 사열을 받으면서 임도를 걸었다. 산허리 어디쯤 지날 무렵 두릅나무에서 새순이 돋고 있었다. 가시를 조심해 가면서 두릅 순을 따 모았다. 보드라운 쑥이 보여 몇 줌 캐 보았다.
수리봉으로 건너는 길목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서 배낭에 담긴 김밥을 꺼내 소진된 열량을 보충시켰다. 부재고개로 가는 길섶은 해발고도가 높았다. 거기는 아까 의림사 부근에선 저물던 얼레지가 이제 한창이었다. 아래서는 단풍잎제비꽃만 보았는데 노랑제비꽃과 뫼제비꽃도 만났다. 노랑제비꽃은 무척 밝은 색이었다. 볕이 바른 곳에는 노랗게 피어난 양지꽃도 있었다.
부재고개 갈림길에서 행선지를 선택해야 했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부재골로 미천마을이다. 오른쪽으로 한참 가면 서북동이다. 더 나아가면 감재고개 너머 여항 버드내다. 남은 여정은 서북동으로 향했다. 얼마 전 봄눈이 내렸을 때 피해를 입은 소나무들이 있었다. 눈의 무게를 못 이겨 가지와 둥치가 부러져 있었다. 저만치 서북산이 아스라했고 건너편 봉화산과 편백나무 숲이 보였다.
갈림길에서 서북동을 내려갔다. 길섶에서 두릅 순을 더 따 보탰다. 서북동 마을 뒤는 종단이 다른 두 절이 나란히 있었다. 구원사와 가야사였다. 절간 들머리에서 배낭을 풀어 두릅과 쑥에 붙은 검불을 가렸다. 계곡물을 상수원으로 쓰는 저수탱크 주변 맑은 물이 솟아났다. 모자를 벗고 이마의 땀을 씻고 물을 받아 마셨더니 아주 시원했다. 종점에 닿아 시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18.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