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참사에도 "안전 도시" 강조한 시장…시민들 불안감 증폭
정신건강·사법 시스템 허점 지적…구조적 대책 요구 커져
반복되는 무차별 범죄에 밴쿠버 안전 신뢰 흔들
밴쿠버에서 또 한 번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서, 도시의 안전성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지난 26일 밤, 밴쿠버 동부 이스트 43번가에서 열린 필리핀 문화행사 ‘라푸라푸 데이’ 도중, 검은색 SUV 차량이 군중을 향해 돌진했다. 이 사고로 11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켄 심 밴쿠버 시장은 사건 다음 날 기자회견을 열고 “밴쿠버는 여전히 안전한 도시”라고 밝혔다. “많은 시민이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하지만, 우리는 사실에 기반해 서로를 믿고 회복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코로나19 이후 밴쿠버에서 잇따르고 있는 무차별 범죄 중 가장 큰 희생자를 낸 사건으로 기록됐다. 팬데믹 이후, 밴쿠버에서는 낯선 사람을 대상으로 한 거리 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다.
이번 참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밴쿠버에서 빈발한 무차별 범죄 중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낸 사건으로 기록됐다. 팬데믹 이후 밴쿠버에서는 낯선 사람을 향한 공격이 잇따라 발생해왔다.
△2025년 4월 15일, 콜하버 산책로에서 토론토 출신 여성이 공격당해 코뼈가 부러지고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
△3월 18일, 92세 남성이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 골목에서 집단 폭행당해 3월 31일 숨졌다.
△4월 10일, 순찰 중이던 경찰관 2명이 공격을 받아 제복에 불이 붙었다.
△2024년 9월 4일, 다운타운에서 한 남성이 칼에 찔려 사망하고 다른 남성은 손이 절단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시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켄 심 시장과 스티브 라이 경찰서장 직무대행은 "밴쿠버의 전체 범죄율은 하락세"라고 강조하고 있다. RCMP로 이직한 애덤 팔머 전 경찰서장 역시, “올해 1분기 기준으로 폭력 범죄는 11.3%, 재산 범죄는 4% 감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숫자와 체감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시민들의 반응이다. 스티브 라이 서장은 “경찰은 범죄를 막기 위한 조직이지,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기관은 아니다”며, 주정부와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과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의 용의자인 카이지 애덤 로·30세를 2급 살인 혐의 8건으로 기소했다. 추가 기소 가능성도 열려 있다. 경찰에 따르면, 로는 과거 정신건강 문제로 여러 차례 경찰과 의료기관의 관리 대상이었고, 사건 하루 전에는 다른 관할 경찰과도 접촉한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경찰은 그의 정신 상태와 범행의 직접적인 연관성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
정신건강 이슈를 둘러싼 논의도 활발하다. 캐나다 정신건강협회 BC주 지부의 조니 모리스 대표는 “정신질환과 폭력을 직접적으로 연결짓는 건 위험한 일반화”라고 말했다. 그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 대부분은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모리스 대표는 “지금이야말로 정신건강 시스템을 바로잡을 전환점”이라며, “강제 치료에 앞서 자발적인 치료 체계부터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티브 애디슨 밴쿠버 경찰서 대변인은 사망자 11명 중 8명이 여성, 2명이 남성, 그리고 1명은 5세 여자 어린이라고 밝혔다. 희생자 중 10명은 메트로밴쿠버 거주자로, 나머지 한 명의 신원은 확인 중이다.
사건이 벌어진 거리에는 희생자를 위한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꽃과 촛불을 놓으며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 필리핀계 아퀴노 Filipino BC 회장은 “이런 일이 우리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지만, 오히려 함께 지지하며 다시 일어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칼에 찔려 생명을 건졌던 자넷 위 교사는 “공공장소에 나가는 것이 여전히 두렵다”며, “정신질환자 관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필리핀계 주민 제이콥 마르티네즈 역시 “이번 일은 나와 같은 커뮤니티 사람들에게 더 깊은 상처”라며, “정의가 반드시 실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스티브 애디슨 경사는 마지막까지 “밴쿠버는 여전히 세계 주요 도시 중에서도 안전한 도시”라고 말했다. “대도시에서 범죄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밴쿠버는 시민 대다수가 안전하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곳”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