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공격측인 투르크 군의 규모를 보겠습니다.
육군 : 그리스인들은 투르크군의 육군을 30~40만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런데 원래 이사람들 특성상 믿을 말이 못되고, 그만큼 많았다는 것만 느끼면 그걸로 대성공이죠. 반면 베네치아인들은 15만을 추정했습니다. 약간 신빙성이 있습니다. 가장 믿을 만한 공격 당사자인 투르크 측의 기록에 의하면, 정규군 8만 명(예니체리 1만 2천명이 포함되는건 지 의문입니다.), 비정규군 바시 바조우크 2만명, 비전투 종군자 수천명 정도로 나타납니다. 기독교측 사료에 의하면 투르크군의 규모는 평균적으로 30만명에 육박하지만 투르크측의 기록과 그당시 오스만 제국의 인구규모를 볼때 8만 명 정도가 가장 적절할 듯 합니다. 국경 방어와 치안 유지에 필요한 수비대, 그리스 주둔군을 제외한 전 군대를 동원한 것을 볼 때, 여하튼 국가적 총동원령을 내린 것임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사료 참조- 기독교측 : 두카스(Dukas)의 기록에서는 투르크 군을 총 40만명으로 묘사.
찰로콘딜레스(Chalkokondlyes)의 기록에서는 투르크 군이 40만 명.
크리토불로스(Kritovoulos)의 기록에서는 막사 담당병 제외 30만 명.
프란체스(Phrantzes) 262,000명.
키오스의 레오나르드(Lonard of Chios) 예니체리 포함 30만명.
테탈디(Tetaldi) 6만명의 막사 담당병을 포함, 20만명
니콜로 바르바로(Barbaro) 16만명.
투르크 측 : 약 8만 명으로 기술. Khairullah Effendi, Tarikh ; Mordtmann, Belagerung und Eroberung Konstantinopels ; 바빈게르(Babinger)는 당시 오스만 제국의 인구상 이유 때문에 8만 명 이상은 차출이 불가능함을 지적.
해군 : 일단 그리스 측의 사료를 보자면 역시나 과장으로 도배되어 있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프란체스는 큰 배 30척, 소형 배 330척으로 묘사했다가 다른 페이지에서는 480척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두카스는 300척 ; 찰로콘딜레스는 3단 노 갤리선 30척과 소형 배 200척 ; 크리토불로스는 수송선 제외 350척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서방 측의 사료를 보면 바르바로는 갤리선 12척 긴 배(?) 70~80척, 테탈디는 갤리선 16~18척, 긴 배 60~80척; 레오나르드는 3단 노 갤리선 6척, 2단식 노 갤리선 10척, 그리고 총 250척의 배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에 있었던 이탈리아 선원들이 남긴 자료를 보면, 3단 결리선 6척, 2단 갤리선 10척, 노가 딸린 갤리선 약 15척, 푸스테(무게가 가벼운 긴 배) 약 75척, 파란다리아(운송용) 20척, 그리고 통신이 목적인 외돛배와 소형 범선 여러척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수비측을 보겠습니다. 이 때 당시, 콘스탄티노플 수비병의 규모를 보면 안구에 습기만...... 제국의 위용은 어디로 가고
ㅠㅠ
육군 : 황제는 프란체스에게 도시 안에 거주하는 전투 가능한 인원(수도사 포함)을 세도록 명령했는데, 합산해보니 그리스인 4983명, 외국인 2000명이 약간 안될 정도 였습니다. 황제는 기겁하여 프란체스에게 이 사실을 함구하도록 명했으나, 이탈리아인들은 대략적으로 숫자를 알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테탈디는 많아야 전투 가능 인원을 6000~7000 이라고 추정했고, 레오나르드는 그리스인 6000명, 이탈리아인 3000명 정도로 추정합니다.
해군 : 해군도 투르크군에 비해 터무니 없이 빈약한 것은 마찬가지긴 합니다. 이 정도 갖고 골든혼에서 분전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죠. 전투 장비를 갖추고 있던 선박수가 26척이었는데, 페라의 제노바인 상선과 소형 선박들은 제외한 숫자입니다. 그 중 다섯 척이 베네치아 선박이었고, 나머지는 제노바 선박 5 척 , 크레타 선박 3 척, 앙코나(어디지?) 선박 1 척, 카탈루냐 선박 1 척, 프로방스 선박 1 척, 그리고 우리의 콘스탄티누스 황제 폐하의 선박이 10 척입니다.
종합해보자면,
투르크 - 육군 전투요원 비전투요원 합산 8만명, 해군은 많이 잡았을 때 대략 300척 정도.
기독교군 - 무기를 들 수 있는 자 약 7000명, 해군은 26척.
참고로 이 글은 제가 직접 연구한 것이 아닌, 고(故)스티븐 런치만 경의 저서,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을 전적으로 의존했으며, 저는 그것을 단지 정리만을 했음을 밝힙니다.
추가 - 고인이 되어버린 런치만경의 노고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흥 카페에 올린 제 글입니다.
첫댓글 그러고 보면 확실히 서 유럽 프랑크 놈들이 싸움 질 하난 잘 합니다. 비슷한 위기에서 몽지사르 전투에서는 아주 살라딘을 꽁무늬 빠지게 했으니 말이지요...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