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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3927Bible 말씀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박봉웅
엘리사의 요단 강변의 영적 제단 고지합니다. 타 카페 주인장 및 운영자님들께 알립니다.
왕하2:1-11절, 182.253.313장. 3927 Bible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엘리사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보낸 시므온 지파인 사밧의 후손입니다.(민13:5절). 그는 아벨므흘 요단강 한 촌락에 살던 농촌 청년이었습니다. 엘리야의 제자로 선지직분을 맡은 후에 여호보람과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왕의 통치시대에 57년간 선지자로 역사한 사람입니다.
그는 엘리야의 뒤를 이어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사명감을 느끼고 끈질긴 신념으로 엘리야보다 갑절의 영감이 있어야 하겠다고 기도하여 성령을 받고 많은 기적을 베풀며 선지의 사명을 훌륭히 감당한 자입니다. 그가 받은 영감의 증거는,
(1)요단강 물을 갈라지게 하고(왕하2:13), (2)독한 물을 소금을 쳐서 먹게도 하고(왕하2:20) (3)조롱하던 아이들을 곰에게 죽게도 하고(왕하2:24) (4)물이 골짜기에 가득하게도 하고(왕하3:20) (5)과부에게 기름이 많아지게도 하고(왕하4:7) (6)수넴 여인에게 아들을 낳게도 하고(왕하4:17)
(7)우물물의 독을 제하기도 하고(왕하4:41) (8)보리떡 20개로 백명을 먹이기도 하고(왕하4:43) (9)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치기도 하고(왕하5:14) (10)게하시에게 문둥병이 발하게도 하고(왕하5:27) (11)물에 빠진 도끼를 나무가지로 건지기도 하고(왕하6:6) (12)사환의 눈을 뜨게 하여 영의 세계를 보게도 하고(왕하6:17)
(13)아랍군대의 눈을 어둡게도 하고(왕하6:18-20) (14)죽은 시체에 엘리사의 뼈가 닿으니 다른 사람이 살기도 하고(왕하13:21) (15)미래를 예언하여 기근을 면케도 하고(왕하7:1-7) 이렇게 많은 권능과 이적을 행할 수 있던 것은 무엇보다도 기도하여 성령을 받은데서 있습니다.그러면 그가 어떻게 성령을 받았는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엘리사는 목적이 분명한 기도를 했습니다. 9절에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오직 이 한 목표를 위해 산넘고 들넘어 죽음의 골짜기까지 따라온 것입니다. 그러면 엘리사가 엘리야가 받은 성령의 갑절을 달라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엘리야 선지자가 떠난 후 자기가 져야 할 사명의 막중함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하늘의 불, 하늘의 비를 동원시킨,지구 역사상 가장 놀라운 기적과 능력을 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엘리야가 세상을 떠나면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데 엘리야 보다 갑절의 성령을 받지 않고는 옳은 후계자의 대를 이을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거짓말하는 영에 사로잡힌 400명의 선지자를 처리하기 위해서 입니다. 엘리야는 거짓선지자 400명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승천했습니다. 셋째, 50명의 탈선된 선지 학생을 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엘리야가 창설한 선지 학교에 선지학생 50명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자유주의 신자였습니다.
이 탈선된 불신앙의 학생들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엘리야 영감의 갑절을 받아야 한다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넷째, 나라가 위급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종교와 정치가 극도로 부패하여 가는 동안 앗수르는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백성은 여호와가 참 신인지 바알이 참신인지 머뭇거리며,갈팡질팡하고 있었고 정치는 부패와 타락의 말로를 걷고 있는 이런 실정에서 나라를 구원하려면 시시한 능력을 가진 인간의 수단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고서는 나라의 위기를 구할 수 없기에 엘리사는 엘리야 보다 갑절의 성령을 구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 시를 잘 알찐대 엘리사와 같이 성령을 갑절로 받아야 죄악에 빠진 자들을 주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구합시다.
2.부패된 국민들을 구하기 위해 갑절의 성령을 구했습니다. 엘리사가 성령의 갑절의 은사를 구하게된 그 시대의 형편은 말할 수 없는 광란시대였습니다. 정치는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며 핍박하고 선지자 엘리야를 잡으려고 하였으며 사회는 상하계급을 막론하고 전부 우상화되고 도덕의 부패는 그 절정에 달하였습니다.
또한 종교도 빛을 잃어 불신앙으로 충만하여 당시에 비록 선지 학교가 있긴 하였지만 소위 신학을 공부하는 선지 후보생의 무리까지도 역시(亦是) 불신(不信)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산채로 공중으로 옛날 에녹과 같이 들려 올리웠습니다. 선지자의 무리도 이것을 보았습니다.(왕하2:15).
그러면서도 엘리야의 시체가 어느 산이나 어느 골짜기에 떨어졌는가(16절) 의심하여 그 시체를 수색하러 가자고 엘리사에게 간청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아니다 엘리야는 우리들이 본바와 같이 분명히 승천하였다 찾으러 가지 말라고 하였으나 그들은 듣지 않고 아니요 선생님 회오리 바람에 가옥도 날아가는데,
사람하나 쯤이야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하면서 시체 수색의 청원을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은 엘리사의 만류도 듣지 않고 인부 50명을 구성하여 3일간 산으로 시냇가로 골짜기로 세밀하게 찾아가 보았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예수를 이미 부활하신 무덤 가운데서 찾던 자들과 같이 선지자의,
무리들은 이미 승천한 엘리야를 찾았던 것입니다. 엘리사가 이와 같이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부패한 시대에 있어 세상의 지위와 물질과 명예를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을 간구한 것은 참으로 의당한 요구였습니다. 믿음이 없고 부패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성령을 충만히 받도록 구해야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3.우상 숭배 세력을 물리치려고 영감을 구한 것입니다.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구할 때의 이스라엘의 국내외 사정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통일 왕국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남북으로 분열되었는데 북극은 이스라엘이요 남극은 유다라고 하였습니다.
북극 이스라엘은 분립 당초부터 제 일대 왕인 여로보암이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의 제단을 쌓고 왕 자신이 거기에 분향하고 백성들에게도 권하여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런 중 이스라엘의 제 7대왕 아합 때에 와서는 왕이 이방인 시돈 나라 왕인 옛 바알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데려왔습니다. 그때 이세벨이 가지고 온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궁중에 세워 놓고 왕실에서부터 우상을 섬기며 전국 각지에 있던,
여호와의 단을 모두 헐고 그 자리에 우상을 세워 놓았으며 바알 선지자 850명을 국록을 먹여 양성하였습니다. 강권을 발동하여 국내의 여호와의 선지자들과 여호와를 섬긴다는 사람들을 체포, 투옥, 학살하며 핍박해서 선지자들 중 망명 은신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변질되고 세속화되어 어용 제사장 관제 선지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였던 이스라엘은 우상국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같이 우상화된 국가 국민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선배 엘리야보다는 갑절의 영감이 필요해서 구한 것입니다. 현재 세상도 우상 숭배자들이 늘고 있으며 이단자들이 늘고 있는 이 때에 우리 성도들도 성령을 갑절로 받아야 하겠습니다.
4.자신이 영적 무장이 필요해서 구했습니다. 기도를 하여 가뭄이 3년 6개월이나 계속 되게도 하고 또 비를 오게한(약5:1-7) 엘리야 선지는 떠나고 함께 공부하던 선지자 지망생들도 아합의 권력에 의해 신앙을 상실하고 이제 혼자 남은 자신마저 여호와를 버릴까 봐서 갑절의 영감을 구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무명 농부의 아들이요 문벌도, 학벌도, 지위도, 권력도 없고 외모는 아이들이 놀려줄 정도로 보기 흉한 대머리였습니다. 그렇게 이름 없고 볼 것 없고 초라한 사람이 국가와 교계가 타락하고 부패했으니 혼자라도 영이 살기 위해서 갑절의 성령이 요구된 것입니다.
선지자로 부름을 받고 성령의 능력, 성령의 지혜도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깨닫고 요단 강변에서 갑절의 영감을 간절히 구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떠합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죄악은 날로 더해가고 국내의 혼란과 국가적 전쟁과 테러들의 요인 암살로 비극이 극심해 가고 있는 이 때, 제이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한국의 교회의 선장의 답보의 상태 그리고 신자들의 식어져가는 신앙의 자세를 보게 되는 이때에,
이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전에 받은 성령의 은사를 갑절뿐만이 아니라 몇십배의 충만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사는 길입니다.어부, 농부, 세리, 무식하고, 가난하고, 세력없는 사람들 120명이 열흘동안 간구하며 성령을 충만히 받으므로 권능을 얻어 땅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고 복음 전파와 이적 기사로,
세계를 뒤흔들었던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증인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하겠습니다.
5.끈기가 있는 기도자입니다. 엘리야 선지가 하늘로 올라갈 기한이 가까왔을 때 마지막으로 길갈에 갔다가 여리고로 해서 요단강을 건너 벧엘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고별하면서 말하기를 엘리사야 너는 여기 머물라 나는 벧엘 길갈 여리고와 요단강까지 가야 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나는 선생이 가는 곳인 길갈에도 벧엘에도 여리고도 요단강도 같이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인본주의적인 선지학교 생도들이 희롱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를 끝까지 따른 엘리사였습니다.
영생하시는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하는 베드로의 결심처럼 우리도 괴로우나 즐거우나 변함없이 주님을 따라야 겠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딸의 병을 고쳐주기를 구하였을 때도 예수님의 시험을 이기고 끝까지 개도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며 구하여 예수님께서는,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고 청을 들어 주셨습니다. 오순절에 제자들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을 기다리라는 말씀을 믿고 끝까지 구했을 때에 그들은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주실 때까지 단념하지 말고 구하고 찾아서 주의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하겠습니다.
6.엘리사는 어려운 것을 구하였다고 했습니다. 10절에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 도다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삼고 그것을 얻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그 구한대로 얻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고통 없이 영광을 취하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고난이나 아픔 또는 실패나 가난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으면 열매가 있을 수 없고 모든 육적인 소욕을 죽이지 않으면 영적인 열매 또한 불가능합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기까지 13년의 종살이와 옥살이를 필요로 했고 모세는 이스라엘 지도자,
신앙의 지도자로 칭함을 받기까지 40년의 광야 생활을 필요로 했습니다. 모든 세상 사람이 사탄의 편에 서고 세상 것에 소망을 두고 살 때 자신은 하나님의 편에 서서 산다는 일 또한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능히 우리의 소망을 채우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문제는 우리의 결단이 엘리사만큼 단호하고 하나님 편에서 살겠다는 각오가 확실한 가에 있습니다. 확실한 각오를 가지고 어렵다고 생각이 되는 문제가 있어도 기도합시다. 구하는 자에게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7.기도하는 자에게만 성령이 임합니다. 9절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라고 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성령의 갑절을 요구한 엘리사는 그대로 응답(應答)받았습니다.
그 증표가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갖가지 기적을 산출하여 주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예언과 환상과 꿈을 꾸는 영을 갑절이나 받고 간구의 영을 갑절이나 받으며 찬미의 영 예수를 증거하는 영도 갑절로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생을 통해 힘있게 주를 위해 봉사, 충성하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약4:3절에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엘리사처럼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영감 받기를 원한다면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충만히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은 위로부터 내려옵니다. 성령의 충만을 위하여 간절히 부르짖으므로 능력을 받아 기쁨으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르짖는 자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엘리사처럼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시간 기도회로 모인 여러분들의 심령속에 성령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에 정성을 다하여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