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케네디 아들의 돌풍… 확인된 정치 브랜드의 힘
바이든-트럼프가 4년 만에 재대결할 공산이 큰 내년 미국 대선에 제3의 인물이 등장했다. 민주당원으로 출마했다가 불과 1개월 전 탈당해 무소속으로 나선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다. 변호사이자 환경운동가인 그는 퀴니피액대가 이달 초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22% 지지를 얻었다. 바이든(39%) 트럼프(36%)에는 못 미치지만 만만찮은 숫자다. 18∼34세를 떼어놓으면 38%를 얻어 바이든(32%) 트럼프(27%)를 눌렀다. 최근 3개월 여론조사 평균치가 14.5%이니, 일시적 현상은 아니다.
▷그가 이처럼 돌풍의 주인공이 된 데는 이름의 힘이 크다. 큰아버지가 43세에 대통령이 됐다가 재임 중 살해된 존 F 케네디다. 아버지는 법무장관을 지낸 뒤 ‘바비(Bobby)’란 별명을 얻으며 개혁의 아이콘이 된 로버트 케네디. 두 형제는 1960년대 변화와 희망을 앞세워 기성정치를 흔들다가 5년 간격으로 총탄에 숨졌다. 69세가 되도록 선출직 출마 경험이 없던 케네디 가문의 아들이 단숨에 3위에 오른 이유다.
▷1등에게 주별 선거인단을 몰아주는 미국의 독특한 제도 때문에 그가 당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이유로 민주 공화 양당은 케네디가 누구 표를 더 잠식할지 한창 표 계산 중이다. 그의 환경 인권 불평등 개선 주장은 바이든 표를 가져갈 것을 예상하게 한다. 하지만 그는 코로나 백신의 위험성을 이유로 접종 반대에 앞장서면서 트럼프 추종자들의 표를 뺏어갈 수도 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그의 출마 선언 직후 “케네디를 지지하면 안 되는 23가지 이유”라는 성명을 발표한 이유이기도 하다.
▷케네디 바람의 실체는 지난주 뉴욕타임스 여론조사에서 짐작할 수 있다. 제3 후보를 찍겠느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응답자의 2%만이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케네디 이름을 제시하며 물었더니 24%가 “케네디라면 찍겠다”고 답했다(바이든 33%, 트럼프 35%).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라는 전망 속에 마음 줄 곳 없던 표심이 케네디라는 향수 짙은 이름을 통해 불만을 표시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선거에는 정책과 비전을 파는 마케팅 요소가 있으니 브랜드의 힘은 강조할 필요도 없다. 1980년 이후 미 대통령 선거에서 가족 출마가 빈번한 것도 이런 인지도가 결정적일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부시가 총 3번 당선됐다. 재선 대통령 클린턴의 지명도에 힘입어 아내 힐러리도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오바마 재임 8년 동안 대통령 부인이었던 미셸의 출마 가능성도 끊이지 않는다. 현직 대통령의 막강한 뉴스 장악력과 함께 그 이름이 소환하는 시대의 추억은 묘한 힘을 지닌다. 트럼프 후보가 며칠 전 “나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TV 스타였던) 내 브랜드로 당선됐다”고 한 게 엉뚱한 말이 아니다.
김승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