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해도 치열한 입시경쟁을 언제 치뤘는지도 잊어버릴만큼의 지금에 나는 새내기 대학생활을 여유롭게 만끽하고 있다.
너무 여유롭다 못해 나 자신에게까지 한심스러울 정도로 요즘 난 늦게 찾아온 방황기때문에 오늘도 강의를 멋대로 빼먹고
강변 다리밑에서 한가로이 누워서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위에 여객기가 지나가는걸 생각없이 바라보다가 왼쪽으로 무심코 고개를 돌리니 다리위에 왠 여자아이가 위험하게
난간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아무생각없이 멍하니 있었다지만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나로하여금 당황해서 소리치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어이~뭐하는 거야? 위험해~!"
'첨~~~~~~벙~~~~!!!'
물속에 뛰어들때 배치기를 했는지 아주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면위엔 수백 수천의 물방울 파편들이 뒤고 파장이 일었지만
주위엔 나밖에 없었다.
"이런 쓰바~!"
언제 배웠는지 기억도 나지않는 수영실력으로 뭘 어떻게 해보겠냐만은 무작정 물속으로 생각없이 뛰어들고 말았다.
"헉헉헉....헉.."
가까스로 사람목숨하나 건졌다 생각은 했지만 '인공호흡을 해야하나?'망설이고 있는데 소녀가 벌떡 일어났다.
"야~이 미친...거기서 왜 뛰어내리고 지랄이야?"
괜찮냐고 좀더 신사적이고 다정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내입에선 욕지거리부터 튀어나와서 나도 당황하던 찰나에
"어?어라? 웬디아냐? 웬~~~~~디~!!!"
내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던 소녀가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고 말을 살짝 더듬더니 '웬디~'라며 무작정 날 끌어안았다.
"야~떨어져~!아니 떨어지세요..."
"웬디 나야 피터~! 나 몰라보겠어?"
떨어질때 머리를 다쳤는지 웬 망상에 빠져서 날 웬디라고 부르고 자신을 피터라고 말한 소녀에게서 정신착란증세가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아님 날 가지고 장난을 치는것인지도 몰랐다. 무엇보다도 난 남잔데 왠 웬디?
그 소녀의 장난이 어디까지 가는지 시험해보기로 했다.
"니가 피터팬이면 팅커벨은?"
"에프킬라 피하려다가 파리채에 맞아죽었어!"
"그럼 후크선장은?"
"악어랑 눈맞아서 짐 어딨는지 몰라!"
"그럼 다른 애들은?"
"몰라~! 잠수탔어~남아있는 건 웬디랑 나뿐이야."
나까지도 이상해질까봐 뒤도 안돌아보고 그 소녀를 놔두고 학교로 곧장 뛰어와버렸다.
"어이 수현아 너 강의 빠지고 뭐하다 이제온거냐? 옷은 다 젖어가지구..."
같은과 친구인 문도녀석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아~오~! 그냥 피곤해서 강변에서 쉬고있었는데 왠 정신나간 여자애가 들러붙는바람에 말도마라."
"정신나간 여자애?"
"어 자기가 피터팬이래나 뭐래나."
"재밌는 얘구만 데려오지 그랬냐?구경좀 하게."
"미쳤냐?"
"그건 그렇고 이번엠티 갈꺼야 말꺼야? 아직까지 회비안낸사람 너밖에 없어."
"갈꺼얌마 조금만 더 기다려라 내가 CC의 꿈을 놓칠까보냐?이 형님이 금방 마련해 올리마"
"근데 저기 매점앞에 있는 여자가 수현이 너만 아까부터 계속 쳐다보고 있는데 귀엽게 생겼다."
"어디어디? 귀여워?"
문도가 턱짓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본 나는 깜짝 놀라서 그 귀엽다는 여자얘한테 성큼성큼 다가가서 말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웬디 니가 뛰어가길래 쫒아가기 힘들어서 지나가는 택시잡아서 쫒아왔지!"
"그 거리를 택시기사가 알았다고 태워주던?"
"따따블로 준다니깐 태워주던데?"
"야~택시는 뭐하러 탔냐? 피터팬이라면서 날라오지?"
"팅커벨 죽어서 요정가루가 없어서 아까 밀가루좀 묻히고 다리에서 날아볼려구 시험해봤는데 안되더라."
"아오~내가 미치..."
도저히 어떻게 수습이 불가능한 그 소녀는 내가 다니는 학교를 안뒤로는 그때부터 매일같이 날 찾아왔다.
"야야~수현아 또 왔다 너 피터팬."
"야~이~씨~! 문도 너 진짜 죽여버린다."
"어디어디? 오~~~진짜 귀엽게 생겼네."
"수현아 임마 정신이 살짝 나가긴 했어도 저정도 외모면 너한텐 하늘이 주신선물이다. 그냥 '아리가또'하면서 받어."
문도랑 쓸개빠진 주위 친구놈들이 하는소리는 신경쓰지 않고 대뜸 자신을 피터라고 소개한 여자얘한데 걸어갔다.
"후....이제 질리지도 않냐?"
"웬디....날 기억못해?"
"내가 널 왜 기억해야 하니?"
"이제 점점 시간이 없는데...."
"왜? 돌아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진거야?잘됐네~! 너희별로 얼른 돌아가라~!"
마지막말에 강하게 엑센트까지 주어가며 친구들한테로 돌아가긴했지만 뒷통수가 따가운게
그 여자얘의 눈이 슬퍼보였던게 살짝 아주 살짝 맘에 걸리긴 했다.하지만 더이상 안본다면 나도 귀찮은 일없으니까...
이틀동안 정신나간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강변에 누워서 강의 땡땡이 치고 있을때였다.
내 얼굴위로 사람그림자가 드리워지자 나만의 명상을 방해받자 잔뜩 찌푸린 얼굴로 그 대상을 쳐다본 나는 그만
넋을 잃고야 말았다.
나레이터모델옷 같은걸 입고 있긴 한데 모델할만한 정도의 키는 아닌것 같다. 단발머리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상당히 뛰어난
미모의 여자였는데 인상적인건 튀는 의상에 비해 얼굴은 화장기라곤 찾아볼수 없는 상당히 앳된 얼굴의 미인이었다는 것이다.
"저...저기 저에게 무슨 볼일이?"
더듬더듬 말을 걸자 그녀는 나에게 책한권을 건내주고는 보일듯 말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잠시 정신을 놓고난뒤에 무슨책인가 싶어 잠시 손에 든 책표지를 보았다.
'피티팬.....'이었다. 황당한 나는 바로 고개를 들어 무슨뜻이냐고 물으려 했지만 주위엔 나밖에 없었다.
내가 싫어하는 강의시간인데 더이상 빠지기엔 학점이 펑크날까봐 듣는 강의
심심해서 가방속에 들어있던 이름모를 미녀에게 건네받은 '피터팬'이라도 대충 읽어볼까싶어 꺼냈다.
"풉~!웬디야 이젠 책까지 사서 보냐?"
"죽고 싶냐? 길가다가 우연히 주은거야."
"어~그래?어련하시겠냐?"
옆에서 문도녀석의 비아냥거림을 무시하고 책을 넘겼다. 동화책이 아니었다.
그건 앨범이었다. 한장 한장의 사진속엔 어릴적 내모습이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어?'
초등학교때 연극했던 '피터팬'속에 낮익은 얼굴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이땐 남자애들이 여자역을 했었고 여자애들이 남자역을 했었기에 꽤 독특했었는데 난 '웬디'였다.
내 머릿속은 무언가 말로 형언하기 힘든 강렬한 충격에 휩싸였다.
'보민이?'
귀여운 녹색피터팬의상을 입은 소녀사진에 내눈은 한참동안이나 고정되어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내 어릴적 첫사랑이었던 '서보민'이었다.
이제야 기억났다. 그녀는 정신이 나간게 아니라 좀더 독특한 방식으로 그녀만의 방식으로 날 찾아왔었던 것이다.
'하하...하....이제서야 기억을 하다니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보민아'
벅차오르는 감격을 주체할수 없었던 나는 벌떡 일어나서 곧장 강의실을 나왔다. 기다리기로 했다.
매일같이 그녀가 날 기다리던 학교매점앞에서 무작정 보민이를 기다릴려고 했다. 아직 난 그방법외에는
그녈 만날 방법이 없었으니깐.....
이틀동안 안보였던건 내가 한말에 잠시 서운함을 느꼈을뿐이리라....
'얼른 너희별로 돌아가라'사실 마지막에 한말은 좀 찜찜하긴했다. 만나게 되면 사과해야지...매점을 향해 걸으면서 다짐했다.
매점앞엔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보민이도 없었다. 오늘은 오겠지?
3시간을 기다렸는데 보이질 않는다. 이럼 안되는데 스스로 약간 불안해 하고 있을때 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기 학생?"
"네?"
"혹시 노...수현...학생?"
"네 제가 노수현 맞는데요 왜 그러시죠?"
"아......."
날 몇번이나 더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아주머니께서는 이내 눈물을 흘리시며 나에게 쪽지하나를 건내줬다.
"이게 뭔데요?"
"우리 보민이가 그저께 수술들어가기전에 적은건데 만약에......"
손수건으로 눈물을 연신 훔치시며 대화가 살짝 중단되자 다급해진 나는 더이상 참지못하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네?수술이라뇨? 만약이라뇨?"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듯한 보민이 어머님은 가냘프게 말을 이었다.
"만약에 수술갔다가 돌아오지 못할껏 같으면 수현학생에게 전해주라고....."
나는 꼬깃꼬깃 접혀있는 쪽지를 급하게 풀어서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웬디야~아니 수현아....
사실은 병이 다 나아서 널 찾고 싶었는데....너무 두려워서....
피터팬이 왜 웬디에게 사랑한다고 고백못했는줄 아니?
나 나름대로 생각해봤는데 말야...
그건 피터팬은 영원히 늙지도 않고 어린채로 동심에서 살아갈수밖에 없는데
웬디는 나이를 먹을수밖에 없잖아....
자신은 영원히 어린채로 살아가는데 나이들어 죽어가는 웬디를 볼수가 없었던 같아.
난 그래서 웬디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피터팬이 되고싶어.
어디서 불어왔는지도 모르는 봄바람이 공허한 내마음을 낚아채듯 내손에서 쪽지를 빼앗아
미처 날지못한 보민이를 대신하듯 하늘에 띄우고 있었다.
카페 게시글
인소닷단편소설
[단편]
[+유우+] 공상극장 [피터팬의 사랑]
+유우+
추천 0
조회 91
08.04.23 02:45
댓글 3
다음검색
첫댓글 재밌어요 ^^ ㅋ
인형닮은여자님 잘 읽어주시고 재밌다는 글이 저에겐 아주 큰힘이 되네요^^감사해요
예전에 단편만화그릴려고 단편소설 썼던 거에용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