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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27:1-4절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내용분해 : A.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짐(1a절)
B. 이삭이 에서에게 장자 축복 계획을
밝힘 (lb-4절)
1. 에서를 부름 (1b절)
2.
에서에게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말함 (2절)
3. 에서에게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 올 것을 명함
(3-4a절)
4 . 별미를 먹고 마음껏 축복할 것을 약속함 (4b절)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늘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의 예배를 올려 드립시다. 그럴때 하나님은 내일도 모래도,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시며, 우리의 날 들을 강복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말씀은 창세기 27:1-4절 말씀으로 에서를 향한 이삭의 축복 계획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우리는 본 단락에서부터 시작하는 제 27-36장이 구약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직계 조상을 이루는 초대의 네 족장(族長, Patriarch)중 제3대 족장인 야곱 (Jacob, 2006-1859 B. C.) 의 행적을 기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창세기 후반부에 기록된 네 명의 족장 중에서 가장 이채로운 인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훗날 그 자신도
토로하였듯이 그 열정적이고도 일면, 교활한 성격으로 인해, 속고 속이며, 빼앗고 빼앗기는 풍운의 삶을 살았습니다 (47:9). 특히 야곱은 그를
기점으로 하여 구약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혈통의 분리(分離)작업이 종결되고, 이제 그 아들들의 대(代)에 이르러서는 새로이 택한 혈통의
확장(據張)이 시작되는 인물로서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즉 야곱 이전까지는 태초 아담으로부터 하여, 하나님의 택한 혈통, 즉 선민
이스라엘을 이룰 혈통이 셋과 가인 중에서 셋이, 그리고 셈, 함, 야뱃 중에서는 셈이 택해지는 방식 등으로 계속 분리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다시말해 아브라함이 구약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최초의 직계 조상으로 소명 (Calling) 을 받은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즉 아브라함 이후에도 이삭이 이스마엘을 비롯한 여러 서자들로부터 그리고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로부터 따로 구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야곱 이후의 여러 자녀들은 모두 다 택한 혈통, 곧 선민의 반열에 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선민 혈통의 구분은 종결되고,
새로이 선민 혈통의 확장이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처럼 야곱을 기점으로 최종 확정된 구약 선민의 혈통은 야곱이 훗날 하나님으로부터 새로
얻은 이름인 ‘이스라엘 (the IsraeD’ 을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 이스라엘 혈통으로 명명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본 단락에서부터 시작되는 일곱 문단 즉 27 : 1-28: 9절 부분은, 야곱의 행적 기사의 첫 부분으로서 야곱의 이삭의 축복 탈취 사건 전후의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야곱이 노쇠한 아비 이삭을 속여 언약 가문( 言約 家門)의 계승자(繼承者)로서의 축복을 탈취한 후에, 분노한 형 에서로부터 도피하는 동시에, 자신의 친족인 맛단아랍 땅 하란 (Haran in Paddan-Aram) 에 살고있던 라반의 딸들과 결혼을 하고자 하란으로 도피한 일련 사건 (27 : 1 -28:5)과 일종의 삽입 기사로서, 에서가 부모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하여 자신의 사촌인 이스마엘의 딸을 새로운 아내로 취한 사건 (28:6-9) 이 기록됩니다. 그리고 이에 이어서 훗날 압복 강가 (the Riverside of Jabbok)에서 여호와와 밤새 씨름한 사건과 함께 야곱 생애의 양대 사건의 하나인 뻗엘 서원 (Vow of Bethel) 사건이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탈취한 축복이 장자권(長子權) 축복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즉 야곱이 이삭을 속여 장자로서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틀렸다기 보다는 너무나 근시안적 견해입니다.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받은 축복은 일개 가문의 장자, 또는 범위를 조금 넓혀, 한 혈족의 수장 정도의 지위와는 비교조차 안되는 중대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이삭의 가문은 이 지상의 유일한 언약 가문이었기에, 이 가문의 장자로서의 지위는 실로 중대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만약 에서와 야곱이 둘 다 택한 혈통에 속하여 공히 언약 가문의 계승자가 될 수 있었다면, 장자냐 차자냐 정도의 차이는 별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이 이삭의 축복에 의하여 수여받은 것은 단순히 한 가문의 장자로서의 보다 우월한 지위 정도가 아니라 지상에 유일한 언약 가문의 유일한 계승자로서의 배타적 지위였다는 사실입니다.
즉 야곱이 탈취한 축복은 장자의 지위라는 상대적 축복이기 전에, 언약의 유일한 계승자로서의 절대적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은 이삭의 축복의 내용이 단순히 일개 가문의 장자 내지, 수장으로서의 세속적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한 특별하고도 유일한 민족을 이룰 것에 대한 (27 : 27 -29) 배타적 축복이라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고 할수 있습니다(27 : 34-38). 그리고 또한 반대로 이삭의 축복의 내용 중에는 당대의 재물의 상속이나 여타 세속적 특권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을 돌려 넓게 바라볼 때에, 택한 혈통의 지위가 언제나 장자의 지위에 우선하였으며, 또한 택한 혈통의 지위와 육적 장자의 지위가 일치하지 않았던 적도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전날 가인 (Cain) 으로부터 분리된 아벨이나 셋 (Seth) 도 장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택한 혈통의 지위에 드는 데에는 적자(觸子)냐 서자(應子)냐의 문제도 기준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가장 직접적 기원인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단, 납달리, 갓, 아셀 등은 첩실의 자식인 서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날 아브라함의 유일한 적자인 이삭이 언약의 계승자가 된 것도, 그가 적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그만이 언약에 의해 태어난, 하나님이 지정하신 언약의 계승자였기 때문인것입니다. 즉 한 인간이 택한 혈통의 계승자, 언약 가문의 계승자가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에 의한 것이었지, 장자나 차자, 적자와 서자 등 그 어떤 인간적, 세속적 요소에 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차자였던 야곱이, 그것도 속임수를 통하여 이삭으로부터 언약의 계승자로서의 축복을 탈취한 것이 그대로 인정된 것도, 속아서 축복을 행한 이삭의 축복 행위 자체에 무슨 절대적 권위나 힘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즉 이삭의 축복 행위의 형식(形式)과 절차(節次)가 무조건적으로, 어떠한 구속력이나 권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이삭의 축복 행위는 결코 무슨 공식적 절차나 객관적 형식에 의해 이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삭의 축복 행위 같은 과정 없이도 이미 야곱이 그 어미의 복중에 있을 때부터, 야곱만을 언약의 계승자로 지정하신 자신의 뜻에 따라, 야곱에게 언약 가문의 계승자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얼마든지 부여할 수 있으셨습니다.
따라서 야곱은 노쇠한 아비를 속여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즉 간교한 방법으로 축복을 쟁취하였기 때문에, 언약의 계승자가 되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다만 이같은 왜곡된 방법에 의해 진행된, 축복 행위를 하나님이 용인해 주셨던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뒤늦게나마 이를
깨달은 이삭도, 속임수에 의한 축복의 탈취라는 야곱의 도덕적 결함과 절차상의 하자에도 불구하고, 야곱을 저주하거나 축복을 철회하는 극단적
행동없이, 야곱의 언약의 계승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하고 야곱의 축복 탈취 사건으로 야기된 사태의 진정을 위한 후속 조치만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이삭이 두 아들 중 분명히 한 아들에게만 택한 혈통, 곧 선민 역사의 계승자요 언약 가문의 계승자로서의 지위를 전수하고자 한
것은 훗날 야곱이 일단 언약 가문의 법적 장자로서의 지위는 요셉에게 전수하였지만, 여타 나머지 열한 명의 아들들에게도 언약 가문의 계승자로서의
지위만큼은 모두에게 공통으로 부여한 사실과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이는 전날 아브라함이 이삭에게만 이 지위를 배타적으로 전수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듯이, 이삭도 비록 그가 야곱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였으나 자신의 두 아들 중에서 한 아들만이 배타적으로, 이
지위를 가질 것임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5 : 23).
반면 야곱의 경우는 이제 자신 이후로부터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의 분리 없이, 자신의 모든 후손들을 다 하나의 선택된 혈통을 가진 한 민족의 구성원으로 삼아주셨기에, 자신의 모든 아들을 장자와 차자, 적자와 서자의 구별없이, 모두 다 선민 언약의 계승자로 간주하였던 것입니다(35 : 22b-26 ; 49 : 1-33). 하나님께서 야곱의 아들들의 대에 이르러, 더 이상의 구분이나 분리없이 그들 모두를 택한 혈통의 반열이요, 선민 언약의 계승자로 삼아 주신 사실은 단순히 그 결과로서만이 아니라, 전날 이삭이나 야곱의 경우는 사전에 거듭하여 분명한 제한을 두시면서, 이삭과 야곱만이 언약의 계승자가 될 것을 밝히셨으나(15:40; 17 :15-21; 25:23) 야곱의 후손들의 경우는 단 한번도 사전에 별다른 구별없이 그의 후손들이 한 특별한 민족을 이룰 언약을 이어갈 것이라는 점만을 보편적으로 밝히신 사실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는 특별히 야곱의 두 정실 아내와 그들의 첩들이 상호 경쟁적으로 자녀를 출산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모든 자녀들을 다 축복 속에 당신의 섭리에 따라 태어나게 하신 사실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29 : 31-24).
또한 우리는 이 야곱의 축복 탈취 사건에 있어서 축복을 통한 언약의 계승자로서의 지위의 전수라는 중대한 사건이, 관련자 전원의 실수
내지 과오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먼저 이삭 (the Issac) 은 전날 하나님이 자신의 직접적 예언을 통하여
오직 야곱만을 배타적 계승자로 지목하였음에도, 이삭 자신의 인간적 선호와 편애에 따라, 에서를 축복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리브가와 야곱
(Rebel‘ah and Jacob) 은 이같은 이삭의 처사에 대하여 정면으로 설득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이, 기만과 술책으로 축복을 얻어
냈습니다. 그리고 에서 (the Esau) 는 이미 자기 스스로가 장자권을 경솔히 야곱에게 양도한 상황에서, 그리고 사실 이삭의 축복이 주는
언약 가문의 계승자로서의 지위의 진정한 본질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세속적 관점에서의 장자권 축복 정도로만 간주하고 이것을 얻는데
실패하자, 분노에 떨며 살의까지 품는 혈기를 부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관련된 인간 전원의 과오와 실수에도 불구하고 전날 자신이 예언하셨던 바대로 야곱에게 아브라함에게 처음 주어졌던 땅과
후손의 언약을 계승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오히려 야곱에게 훌로 떠나 벨엘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게 하시고, 또한 그 옛날
이삭처럼 여호와 신앙을 갖고 있는 자기의 친족과 결혼까지 하게 되는, 새로운 인생의 전기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늘 혼들리며 개인적 오류와 주변
상황의 변화에 휩쓸리기 쉬운 인간들의 한계와 한번 정하신 자신의 구원의 뜻을 한치의 오차없이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교차하는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끝으로 삽입 기사인 에서의 새로운 결혼 기사는 일면으로는 부모의 마음에 들고자 하는 에서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에서가 아직도 언약의 가문의 계승자의 진정한 본질을 파악 못한 채, 다만 자신의 장자로서의 세속적 지위의 회복에만 급급해 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본문은 노년에 이르러 눈이 어두워진 이삭이 야곱을언약의 계승자로 선택하신 하나님의 뜻(25:23)과 달리, 맏아들 에서를 축복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케 하기 위하여, 에서에게 축복받을 준비를 하도록 지시하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본문은 성도가 영안이 어두워질 때 얼마나 쉽게 하나님의 뜻에 상반되게 행할수 있는지를 잘 보여 줌으로써 성도들에게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을 것을 촉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인간의 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방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 주십니다.
본문을 보면 이삭은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25 : 23) 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자신의 뜻을 쫓아, 에서에게 언약
계승자로서의 축복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26-29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에서로 변장한 야곱에게 힘을 다해 축복했습니다. 여기서
보듯이 이삭은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본래의 하나님의 뜻대로 야곱을 축복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로는 결단코 하나님의 정해진 뜻을
방해할 수 없음을 교훈해 줍니다. 물론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는 과정에는 리브가와 야곱의 계교가 크게 작용했습니
다. 따라서 이삭의 야곱
축복을 인간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리브가와 야곱의 계교는 그들의 악한 계획까지도 자신의 뜻을 이루는 방편으로 사용하신 하나님의 선하시고도 오묘하신 섭리(신
29:29) 가 있지 아니하고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삭이 야곱의 목소리가 에서의 것과 다른 줄로 알면서도 (22절)
그에게 축복한 사실로도 입증할 수 있습니다. 실로 인간은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작정된 일을 변경시키거나 방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어떠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을 온전하게 이루어 가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변경시키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자신의 유한한 능력을 신뢰하는 지극히 어리석은 처사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명백한 죄악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비록 그것이 자신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거기에 자신의
의지를 온전히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뜻에 겸손하게 순종하십시요. 그것이 하나님을 주로 섬기는 자들의 지극히 마땅한 자세요 자신이 잘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 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 두란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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