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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楚汉志) 2-5
* 刘邦과 樊哙
秦始皇이 죽고 胡亥가 皇帝로 登极했을 무렵, 沛县에는 刘邦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유방은 어려서부터 무술에 능하여 泗上이라는 마을에 亭长(洞长格)이 되기는 했으나,
본시 벼슬에는 욕심이 없어 낮이나 밤이나 술과 계집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성품이 활달하고 인자하여, 모든 사람들을 너그럽게 포섭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유방은 본시 체구가 장대한데다가, 얼굴은 龙같이 특이하게 생겼다. 게다가 왼편 넓적다리에 점이
72개나 있어서, 观相家들은 그를 <후일에 큰 인물이 될 사람!> 이라고 은근히 두려워 하고 있었다.
(관상가들의 그러한 예언은 정확하게 들어 맞았으니, 유방이야 말로 후일에 진나라와 초나라를
평정하고 4백 년의 国基를 일으켜 놓은 汉나라의 高祖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방 자신은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던지 일체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같이 술과 계집만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어서, 일반 사람들은 그를 <천하의 난봉꾼>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기가 일상이었다
.그 무렵 그 지방에는 吕文이라는 60객 도학자가 있었다. 여문은 일반 학문에도 해박했지만,
특히 관상학에 있어서는 그를 따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여문은 어느날 술집 앞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유방의 관상을 보고 첫눈에 혹해 버렸다. 그리하여 생면 부지의 유방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젊은이! 내가 자네한테 술을 한잔 대접하고 싶으니, 나와 함께 우리 집으로 가지 않겠는가?"
유방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노인께서는 무슨 이유로 술을 주시겠다는 것이 옵니까?"
"이 사람아! 늙은이가 술을 한잔 대접하겠다는데, 무슨 말이 많은가!" "알겠습니다.
저는 워낙 술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놈이라, 술을 주시겠다면 무조건 따라 가겠습니다."
老 观相家 吕文은 刘邦을 데리고 집에 와 술잔을 나누는데, 유방의 얼굴을 볼수록 帝王之相이
분명하였다.이에 여 노인은 내심 굳게 결심한 바 있어서, 안방으로 들어가 마누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마누라, 지금 사랑방에 젊은 손님이 한 사람 와 있는데, 우리집 큰 딸아이 颜을
그 청년과 결혼시키야 하겠소."노옹 마누라는 너무나 뜻밖의 말에 기절초풍할 듯이 놀란다.
"아니 영감님은 정신이 도셨나 보구려, 그 아이는 县令에게 시집 가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지 않소.
그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과 혼인을 시키겠다는 말이오?" "그런 약속 따위는 파기해 버리면
그만 아닌가. 모든 것은 내가 알아서 결정할 테니, 당신은 나만 믿고 있어요."
그래도 마누라는 화를 버럭 내며, 극성스럽게 반대하고 나온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건 안 돼요.
현령을 사위로 맞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데 그것을 마다 하다니오." 마누라가 강경하게
반대하고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현령이라면 한 고을의 사또가 아니던가. 사또를 사위로
맞이하면서 장인 장모도 호강을 하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데 초면의 술 주정뱅이 젊은이를
데려다 놓고는 느닷없이 사위로 맞이 하겠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러나 여문 노인의 입장에서 보면, 사또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보 마누라.
당신도 잘 알다시피, 우리집 큰 딸아이는 보통내기가 아니오. 皇后의 기상을 타고난 그 아이를,
어찌 현령 따위에게 주어 버리자는 것이오?" "영감님은, 그 아이가 황후가 된다는 것을
무엇으로 보장하시우?" "관상학으로 보아서, 그 아이는 틀림없이 황후가 될 기상이란 말이오."
"영감님의 관상 따위를 누가 믿어요?" 등잔 밑은 어두운 법이라던가, 늙은 마누라는 영감의 관상
실력을 애시당초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여문 노인은 어처구니가 없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당신이 나의 의견에 끝까지 반대할 생각이라면, 그 아이를 이 자리에 불러다 놓고
본인더러 결정하게 합시다." "맘대로 하시구료. 물어 보나마나 그 애는 현령한테 시집가겠노라고
대답할 거예요."두 내외는 딸을 그 자리에 불러서, 자초지종을 자세하게 설명해 준 뒤에
이렇게 물어 보았다. "너는 县令에게 시집갈 테냐, 그렇지 않으면 장차 帝王이 될지도 모르는
刘邦이라는 청년한테 시집갈 테냐?" 처녀 颜은 워낙 기상이 웅장한 성품인지라,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아니하고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한다. "현령은 싫어요. 유방이라는 청년한테
시집가게 해주세요." 늙은 어머니는 너무도 기가 차서, "네가 정신이 있느냐.
어째서 현령을 마다하고 <천하의 난봉꾼>에게 시집을 가겠다는 것이냐?"
"어머니! 제 일은 저한테 맡겨 주세요. 사내 대장부가 난봉을 부릴 줄 모른다면, 그런 사내를
무엇에 쓰겠어요. 자고로 영웅이 호색한다는 말이 있지 않아요? 유방이라는 청년이
아버님 말씀대로 장차 제왕이 될지 어쩔지 그것은 두고 봐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젊은 그에게는
그런대로 미래라는 것이 있지 않아요? 그러나 현령이라는 사람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버린
과거의 사람이거든요."아버지 여문은 딸의 명쾌한 대답을 듣고 크게 감탄하였다.
"과연 너는 황후의 제목이 분명하다. 네 뜻을 알았으니, 이제는 애비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여문 노인은 사랑방으로 달려 나와 유방과 술잔을 다시 주고 받다가, 문득 생각난 듯,
"여보게 젊은이! 나에게는 사랑스러럽고 아름다운 딸이 있는데 자네는 내 딸아이와 결혼을 해 주게나.
그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네." 하고 말했다. 처음 만난 刘邦을 사위로 맞이할 결심이었던 것이다.
유방은 너무도 뜻밖의 말에 어리둥절하였다. "노인장께서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여문 노인은 유방에게 새삼스러이 술잔을 권하면서, "나에게는 딸이 두 명이 있는데,
큰 달의 이름은 颜이라고 하네. 그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니까, 자네가 그 아이와 결혼을
해달라는 말일세. 다시 말하면, 자네는 내 사위가 되어 달라는 말이지."
"노인장과 저는 오늘이 초면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보고 저한테 따님을 주시겠다는 것입니까?"
"자네가 궁금한 모양이니,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해 줌세.나는 관상학에는 자신이 있는 사람이네.
자네와 나는 오늘이 초면 이기는 하지만, 관상학적으로 보아 자네는 먼 장래에 반드시 재앙이
될 사람이야. 그래서 자네한테 내 딸을 주는 것이네." "제 얼굴이 먼 장래에는 제왕이 될 相이라구요?"
아무튼 잘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기는 사람의 팔자가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저라고 제왕이 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겠지요. 제왕의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러나 저러나 저는 지금으로서는 장가를 들 형편이 못 되옵니다. 따라서 노인장의 말씀에는
사양을 하는 수 밖에 없겠습니다." 유방은 완곡하게 거절해 버렸다.
그러나 여문 노인은 여전히 끈덕지게, "이 사람아! 자네가 장가들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은 무슨 소린가?
어째서 장가를 못 든다는 것인지, 그 사유를 한번 들어 보게." 두 사람이 술잔을 나눠 가며
그런 대화를 주고 받을 바로 그때, 뒷문 밖에서 아까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처녀가 한사람
있었으니, 그 청년은 吕文 노인의 딸인 颜娘이었다.
2-6편에 계속
초한지(楚漢誌) 2-6
《유방(劉邦)과 번쾌(樊噲) 》
방안으로 들어온 顔郞은 눈을 들어 劉邦을 슬쩍 올려다 본 뒤,
"아버님 ! 소녀의 婚談에 대해서는 소녀도 한 말씀 여쭙고 싶은 말씀이 있사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呂文노인은 사랑하는 딸이 별안간 사랑방에 뛰어든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아니, 네가 어째서 여기에 나타났는냐? 그러나, 이왕 나왔으니 劉君에게 인사 하거라.''
''여보게 劉君 ! 이 아이가 바로 나의 큰딸인 안(顔)일세."하고 두 사람을 서로 소개시켜 주었다.
劉邦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처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특별히 빼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미간 사이가 널찍한 것이 <보통처녀>는 아닌 것 같았다.
처녀 顔은 劉邦에게 머리를 공손히 수그려 보이며 당돌하게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소녀는 아까부터 뒷문 밖에서 두 분의 말씀을 始終一貫 엿듣고 있었사옵니다.
남의 말을 엿듣는 것이 예절에 어긋나는 일임은 알고 있사오나 소녀의 一生에 관한 婚談이옵기에
失禮를 무릅쓰고 엿들었사오니 그 점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옵소서."
"아닙니다. 이야기가 婚談이다 보니 본인이 엿들었기로 나무랄 일은 아닐 것이오."
劉邦은 어색한 말투로 대답하였다. 그러나 顔郞은 도도한 자세로 흐트러짐 없이 계속 말했다.
"이처럼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니 고맙기 그지없사옵니다.... 유랑께서 조금전 <지금으로서는
結婚할 수 없는 理由>를 몇가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혹시나 그것은 소녀와의 結婚을
拒絕하기 위한 단순한 핑계가 아니시온지? 소녀는 그점을 분명히 알고 싶사옵니다."
顔郞처녀가 눈썹 한번 까딱하지 않고 야무지게 따지고 드는 바람에 劉邦은 어안이 벙벙해 왔다.
"천만에요. 싫으면 싫다고 사실대로 말할 일이지 무엇때문에 핑계까지 대가면서 拒絕하겠소.
다만 나는 지금으로서는 장가갈 수 없는 사정을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오.
그 점에 오해가 없기를 바라오." 顔郞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지 얼굴에 가벼운 희색을 띄며,
"그렇다면 소녀는 안심이옵니다."하고 명랑한 목소리로 수줍은듯 말하는 것이었다.
"안심이라니, 뭐가 안심이란 말이오 ?"이번에는 劉邦이 물어 보았다.
"그러자 顔郞은 별안간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는데,
"아까 劉郞께서 말씀하신 사유는 結婚을 못 하실 이유가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옵니다."
"學文이 不足하고, 勇氣가 없고, 妻子息을 먹여 살릴 돈이 없는 것이 어째서 結婚을 못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오 ?"" ......"
顔郞은 劉邦의 얼굴을 따듯한 눈매로 그윽히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아니 한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呂文老人이 그제서야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딸에게 말했다.
"네가 劉君에게 첫눈에 반한 모양이로구나. 學文이 없고, 勇氣가 없는 것이 어째서 結婚못할
이유가 되지 않는지, 네가 시원스럽게 대답해 보아라 ! "劉邦은 처녀의 얼굴을 새삼스러이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호감이 가는 얼굴인데다가 성품조차 쾌활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면(이만한 여자라면 지금이라도....) 유방은 마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學文이 不足하고, 勇氣가 없고, 돈이 없는 것이 어째서 結婚못할 사유가 되지 않는지,
낭자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오. 참고삼아 꼭 들어 보고 싶소이다."
하고 말하였다. 顔郞은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劉郞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소녀의 생각하는 바를 솔직하게 여쭙겠나이다.
첫째, 지금으로서는 學文이 不足하여 結婚을 못 하시겠다고 하셨으나 學文이란 것은 一生을 두고
배워도 끝이 없는 것이옵니다. 따라서 學文을 硏究하기 위하여 일생을 독신으로 살아가신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어차피 結婚을 하시려면 지금 結婚하시나 2,3년 후에 結婚하시거나
마찬가지 일이 될 것이옵니다.''
劉邦은 그 말을 듣고 顔郞의 明晳한 사리 판단(事理判斷)에 크게 감동을 하였다.
"듣고 보니 과연 그렇군요. 그렇다면 勇氣도 없고 돈도 없는 것은 어떻게 되는거죠?"
"劉郞께서 勇氣가 없는 것도 結婚을 할 수 없는 이유라고 하셨습니다만, 勇氣라는 것은
어떤 사태에 부딪쳐야 비로소 용솟음쳐 오르는 것이지, 아무런 일도 없을 때에 勇氣가 솟아나는 것은
아니옵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돈이 없어 結婚을 못 하겠노라고 말씀하셨으나, 돈이라는 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겨나는 것이옵니다. 지금은 비록 한푼없는 처지라 하여도,
두 사람이 結婚 後에 힘을 모아 노력하면 天下를 내것으로 만들 수가 있는 일인데,
지금 당장 돈이 있고 없는 것이 무슨 상관이겠나이까."
"옛 ? 두 사람이 結婚 後에 힘을 모아 노력하면 天下를 내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구요 ?"
劉邦은 顔郞의 거대한 포부를 엿본 것 같아서 크게 놀라며 반문하였다.
呂文은 이때다 싶어서 얼른 대답을 가로막고 나섰다.
"이 사람아 ! 나는 자네가 제왕지상(帝王之相)을 타고난 人物이라고 이미 말한 바가 있지만,
이제사 말이지, 내 딸 역시 자네에 못지 않은 帝王之相을 타고난 아이라네 ! 그러니까 내 딸과
結婚하면 자네는 틀림없이 帝王이 될 수 있을 걸세 ! "劉邦은 그 소리에 또 한 번 놀라며 묻는다.
"따님께서도 저와 똑같이 帝王之相을 타고난 여인이라는 말씀입니까 ?""물론이지 !
그러니까 두 사람은 하늘이 정해 주신 배필(配匹)이란 말이야 ! 그러니 자네는 내가 시키는 대로
내 딸과 結婚하는 것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이야 ! "
"좋습니다. 顔郞같이 훌륭한 처자를 제가 어찌 싫다고 하겠습니까."
이리하여 이날 두 사람은 즉석에서 約婚을 하게 되었는데, 이날의 신부 顔郞이야 말로 후일
<여태후(呂太后)>로써 천하를 주름잡은 바로 그 여인인 것이다.
劉邦과 顔郞의 約婚이 成立되자, 呂文은 즉석에서 축하연(祝賀宴)을 베풀었다. 그리하여 술이
몇 순배 돌아갔을 바로 그때에 문득 대문 밖에서 몹시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는데,
"이 댁이 呂文老人宅입니까 ?"하고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呂文이 몸소 일어나 나가 보니, 대문 밖에는 키가 구척이나 되는데다가 얼굴이 시커먼 수염으로
뒤덮여 있는 몹시 험상궂게 생긴 젊은이 하나가 떡 버티고 서 있었다.
呂文이 觀相을 보니, 얼굴은 비록 험상궂게 생겼어도 예사 인물이 아니었다.
"자네는 무슨 일로 내 집에 찾아왔는가 ?"呂文이 묻자, 괴청년은 머리를 꾸벅해 보이고 나서,
저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는 <번쾌(樊噲)>라는 놈입니다. 劉邦이라는 어른이
이 댁에 가 계시다기에 그 어른을 찾아 뵈려고 찾아 왔습니다. 유대인이 이 댁에 계시거든
잠깐 만나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생김새는 험상궂어도 관상학상으로는 쓸 만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었다.
"劉邦을 만나게 해 줄 테니 나를 따라 들어오게."樊噲는 呂文을 따라 들어와 劉邦을 만나자,
방바닥에 넙죽 엎드려 큰절을 올리며 말한다."유대인 전에 인사 여쭙겠습니다.
저는 이 지방에 살고 있는 <번쾌(樊噲)>라는 놈입니다. 하는 일은 비록 개백정 노릇을 해먹고 있으나,
나라를 일으켜 보려는 큰 뜻을 품고 유대인을 일부러 찾아 뵈러 왔사옵니다."
劉邦은 樊噲의 손을 덥석 붙잡아 일으켜 앉히면서 말한다."오오 ! 이 지방에 樊噲라는 지사(志士)가
있다는 소문을 진작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구려.
나를 일부러 찾아와 주셨다니 정말 고맙소이다."그러자 樊噲는 감격한 듯 머리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평소에 흠모해 오던 유대인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다시 없는 영광입니다. 유대인께서는
혹시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무리가 진시황에게 등을 돌리고 초국 재건 운동을 펼치고 있는 사실을
알고 계시옵니까 ?"劉邦은 웃으면서 대답한다."내가 어찌 그것을 모를리가 있겠소.
내 비록 겉으로는 술미치광이 행세를 하고 있지만, 陳勝과 吳廣의 반란사건뿐만 아니라,
진시황 사후의 전국 각지의 영웅 호걸들의 출반(出返)사실도 모두 알고 있다오."
"그러한 사실들을 속속들이 알고 계신다면, 유대인께서는 어찌하여 아직도 술과 계집으로
허송세월을 하고 계시옵니까 ?"樊噲의 질책은 은근히 신랄하였다."허송세월(虛送歲月) .... ? 하하하."
劉邦은 혼잣말 처럼 중얼거리면서 통쾌하게 웃으며, 樊噲에게 술을 권하며 말했다.
"급히 마시는 물도 체하는 법이오. 매사에 때가 있는 것인데, 때도 오기전에 서두르는 것은
도로무공(徒勞無功)이 되기십상이라, 나는 오랫동안 술과 계집으로 헛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오."
樊噲는 그제서야 유방의 참뜻을 알아본 듯 말했다."유대인의 큰 뜻을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신중을 기하다가는 때를 놓쳐 버릴 우려도 있을 것이니, 秦始皇이 죽어
천하의 주인이 없어진 이 때가 유대인께서 궐기하실 때가 아닌가 싶사옵니다.
유대인께서 궐기하신다면 저도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할 터이오니 천하 대세를 속히 도모하도록
하시옵소서.""고맙소이다. 그렇지않아도 진작부터 동생 공사(同生共死)할 동지들을 은밀히 규합하고
있던 중이오. 그런데 귀공이 불시에 찾아와 나의 잠을 깨워 일으켜 주니, 나도 이제는 마음을
새롭게 먹을 생각이오. 자, 그런 의미에서 한잔합시다."劉邦은 樊噲에게 새삼스럽게 술잔을
권하며 말했다."오늘은 나에게 두 가지의 커다란 慶事가 있는 날이오. 오늘이야말로 나에게는 다시없는
대길일(大吉日)인가 보오.""두 가지의 慶事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
"첫째는, 귀공 같은 믿음직스러운 동지를 만난 것이고,
둘째는 가인(佳人)을 만나 백년지계(百年之契)를 약속하게 된 것이오."
樊噲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아니 그럼, 유대인께서는 오늘 約婚을 하셨다는 말씀입니까 ?"
"그렇소이다. 이 어른이 바로 나의 丈人 어른이시오. 어서 인사드리시오."
그때까지 입을 굳게 다문채 두 사람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만 있던 呂文은 별안간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대장부와 대장부의 만남이 마치 고기가 물을 만난 것만 같네그려. 자네들 두 사람이
뜻을 같이 한다면, 천하의 대사인들 어찌 이루어 놓지 못할 것인가 ? 그런데 나로서는 樊噲에게
소원이 하나 있네.""어르신께서 저에게 무슨 소원이....? "
"나에게는 딸이 둘이 있는데, 큰아이는 이미 劉邦과 約婚을 했으니까, 작은 아이는 樊噲 자네가
맡아 주면 고맙겠네.""저는 개백정이라 불리는 천한 몸이옵니다. 그러한 저에게 어찌 따님을 주시겠다는
말씀이시옵니까.""천한 세상을 모르는 사람은 만인의 친구가 될 수 없는 법이네.
두말 말고 내 딸을 맡아 주게."呂文의 決定에 劉邦도 크게 기뻐하며 樊噲에게 장가 들 것을 권하는 바람에,
樊噲는 즉석에서 呂文老人의 둘째 사위가 되기로 결정하였다.이리하여 장차 천하 대사를 도모할
劉邦과 樊噲는 동서간(同壻間)이 되었다.
2-7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