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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다함께 아래 성경절로 안식일복음 신앙을 고백하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강좌/ 창세기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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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망치소리 (창 6:9~22)
한번은 특집 기획 프로를 보게 되었는데 한 70대의 노교수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방영한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 광활한 산과 들을 사서는 손수 나무집을 짓고 문명을 등진 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유수한 대학의 교육학 박사로 자신의 믿음을 실천하면서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그에게 재산을 물려 줄 자녀가 없다는 것을 보아서 그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아 온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외롭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에서라고 밝힙니다. 현 문명사회에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욕심과 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세상을 향해 자연과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서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마음이 숙연해 졌습니다. 그는 그런 뜻을 가진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모이고 있었는데 그들이 그런 뜻을 가지고 살도록 영감을 불어넣은 스콧 부부의 저택으로 모입니다. 이 스콧이라는 사람은 100여권의 왕성한 저술을 통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위해 살았는데 이들이 그의 후예들인 것입니다. 그들을 보면서 제가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저들이 저 불편하고 외로운 가운데 자신들의 신념과 믿음을 계속 유지하는 것일까? 제가 발견한 결론은 세 가지입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그들의 외로운 투쟁(?)과 믿음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투자하고 두 번째는 또 그렇게 살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전하기 위하여 전 세계에 우편물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데 오직 자신들의 신념을 알리기 위하여 인터넷을 사용하기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120년동안 자신의 믿음을 확고하게 지켜 낸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노아입니다. 어느 날 저는 문득 노아가 어떻게 120년 동안 그의 믿음을 흔들림 없이 유지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여러분 노아는 어떻게 120년 동안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조롱과 비아냥 속에서도 그의 믿음을 확고하게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결론은 모두가 똑 같았습니다. 노아나 앞에서 언급한 자연주의자들이나 똑 같은 방법으로 그들의 믿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지으라는 요청을 받았고 성경에 보면 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22절)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조와 선지자 95-96 페이지에는 이렇게 부연설명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믿는 모본을 세상에 보여 주었다. 그가 소유했던 모든 것을 그는 방주를 짓는데 바쳤다.”.....120년간 그의 엄숙한 음성이 인간의 지혜로 판단해 볼 때 불가능한 사건들에 관하여 저 세대의 사람들의 귀를 울리고 있는 동안, 하나님과의 연결이 그를 무한하신 능력 안에서 강하게 만들었다.” 노아도 역시 자신이 믿는바에 전체를 투자하였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믿는 바를 철저히 행하였으며, 마지막으로 방주를 지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믿음을 전하는 일을 병행하였습니다.
존경하는 청취자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이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의 믿음을 따라 사는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의 생각과 욕망과 소원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를 만나는 순간부터 나는 사라지고 나는 그가 돼버린 것입니다. 그의 소원을 따라 사는 자가 된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다 팔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입니다. 의미가 있고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의 모든 것을 다 팔아 투자하게 하고 내 욕망과 소원을 버리게 할 뿐만 아니라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존재를 만나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직 그런 분을 만나보지 못했다면 오늘 이 아침 한 분을 소개합니다.
존경하는 청취자 여러분!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직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팔아 마음을 다해 천국복음을 사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 십자가의 주님을 진실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각과 나의 모든 것이 십자가의 주님과 복음보다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죽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안식일복음의 주인이신 예수를 만난 후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나의 모든 것을 다 팔아 그분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바꾸고 싶은 열망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내 마음을 가득 메우고 있던 욕망들이 안개와 같이 사라짐을 느낍니다. 그리고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조급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도 한 때, 요즘 세상 말로 “한번 떠보고 싶었습니다.” “한번 폼 나게 목사 노릇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의 유일한 기도는 “주님 저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나의 생명이십니다.” 이것이 저의 유일한 기도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예수님과 교제하면서 예수님이 주신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네가 죽어야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씀이 얼마나 마음을 무겁게 했는지 모릅니다. 죽는다는 것은 내 꿈도 죽는 것이고, 내 계획도 죽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죽어야한다는 말씀이 싫었습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진짜 복된 말씀임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왜 죽으라고 하시는지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안 죽으려고 발버둥 칩니다. 내가 죽어야 내 안에 사신다는 것, 내가 안 죽을수록 손해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내가 안 죽었기 때문에 이 모양으로 밖에 못 산다는 것도 모르고 기를 쓰고 죽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정말 바쳐야 할 것은 나의 자아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분명히 예수님이 계신데도 아무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 생각, 내 고집, 내 성질에 예수님이 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나의 자아를 하나님께 바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정말 나를 하나님께 바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십자가의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하십시오.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다고 믿음을 가지고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 안에 임하십니다. 내 안에 임하신 하나님은 나를 위한 기쁘신 뜻을 가지고 노아처럼 살게 하십니다. 방주를 짓게 하십니다. 전파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노아처럼 망치질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 내가 죽으면 하나님은 그 망치소리 조차도 기별이 되게 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자의 망치소리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노아처럼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노아의 신앙을 존경하면서 살아왔지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저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노아는 하나님 안에서 이미 죽은 자였기에 살 수 있었음을 깨달았사오니 오늘도 십자가의 주님 바라보면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Crossabbath Gospel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안식하세요,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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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함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주님의 인도 하심과 간섭하심이 넘치시길 기도 합니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기쁘고 행복 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주안에서 기쁨 넘치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