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발발한 지 85주년이 되는 1일(현지시간) 극우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이 옛 동독 지역인 튀링겐주(州) 의회 선거에서 30%대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예상됐다. 지방 의회 선거지만 독일에서 극우 정당이 1위를 차지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집권 이후 약 80년 만이다.
나치의 집단 학살인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샬롯테 크노블로흐는 나치가 폴란드를 침공한 지 85년이 되는 날에 선거가 치러져 이 나라가 "더 불안정하고 더 차가워지고 더 가난해지며 덜 안정되고 덜 살 가치가 없는"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렸다고 지적했다.
공영 방송 ARD가 이날 오후 6시(한국시간 2일 오전 1시)에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 AfD는 32.8%의 득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중도 우파 성향의 기독민주당(CDU)이 23.6%로 2위, 급진 좌파 성향의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BSW)이 15.8%로 3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연방 정부를 구성한 사회민주당(SPD)과 녹색당, 자유민주당(FDP) 등 이른바 ‘신호등 연정’ 참여 정당들은 모두 한 자릿수 득표율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됐다.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집권 SPD는 6.1%, 녹색당은 3.2%의 득표율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AfD는 이날 동시에 치러진 작센주(州) 의회 선거에서는 30.7%의 지지율로 2위를 차지할 것으로 나타났다. 작센에서는 CDU가 31.9%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할 전망이다.
튀링겐과 작센 모두 옛 동독 지역이다.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반이민 정서가 강해, AfD 등 극우 성향의 정당들이 줄곧 강세를 보여왔던 곳이다. AfD는 2019년에도 튀링겐에서 23.4%, 작센에서 27.5%의 득표율로 각각 2위를 차지하는 등 두 지역은 AfD의 텃밭 역할을 해왔다. 이 지역 AfD 대표인 비외른 회케는 AfD 안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는 ‘플뤼겔(Flügel)’ 파벌의 지도자로 유명하다. 독일의 과거사 책임을 축소하고,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수치의 기념물’이라 언급하는가 하면, “이민자와 난민이 독일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있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는 나치 슬로건을 사용한 혐의로 벌금형이 선고됐는데 역사 교사 출신이 그는 나치가 사용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부인했다.
공영 방송 ZDF 조사에 따르면 이날 투표 유권자는 500만명정도인데 튀링겐의 30세 이하 유권자 가운데 36%가 AfD에 한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AfD에 찬동한 유권자들은 이민 특히 난민과 망명 이슈 때문에 한 표를 행사했다고 답했다.
회케 대표는 튀링겐 주의회 의원 자리를 직접 꿰차지는 못하지만 1위 당의 대표이기 때문에 의원 자리를 확보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AfD가 그러나 주정부를 이끌게 될 가능성은 낮다고 독일 매체들은 전망했다. 독일의 기성 정당들이 모두 AfD와의 협력을 일관되게 거부해 왔기 때문이다. 튀링겐에서는 CDU를 중심으로 BSW, SPD 등 3개 정당이 연정을 구성할 것으로, 또 작센에서는 CDU가 다른 중도 성향 정당들과 손잡고 차기 주정부를 구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독일 헌법수호청은 튀링겐과 작센 지역의 AfD를 우익 극단주의 단체로도 지정, 연방 수사당국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고도 있다.
다만 두 지역에서 모두 3위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 BSW의 행보가 변수다. 좌파 포퓰리즘 성향의 BSW는 우크라이나 지원 축소, 러시아와 관계 회복, 포용적 이민 정책 전환 및 이민 장벽 강화 등을 주장하며 주요 이슈에서 AfD와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안에 따라 두 극단주의 정당이 손을 잡고 중도 세력의 정책을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요 매체들은 “신호등 연정 정당들이 5년 전 선거 대비 저조한 득표율로 돌아선 민심을 확인했다”고 분석했다. 독일 연방 하원은 내년 9월에 총선을 치른다. 이달 22일에는 옛 동독 지역 세 번째로 브란덴부르크 주의회 선거가 치러진다. 숄츠 총리의 지역구인 포츠담이 포함된 곳이다. AfD는 브란덴부르크 여론조사에서도 CDU를 앞지르며 1위를 기록 중인데 격차는 그리 크지 않아 귀추가 주목된다고 BBC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