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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이방원 제131편: 최초의 거북선 등장
("왜국 배보다 더 빠르고 야무진 배를 만들어라")
동북아 정세가 심상치 않다. 조카 혜제를 폐하고 황위(皇位)에 오른 영락제는 자금성을 지어 남경에서 북경으로 천도를 준비하는 한편 친히 정예군을 이끌고 북벌을 감행했다. 세계의 정복자로 군림하던 원나라는 대륙을 호령하던 기백은 간데없고 북녘 변방으로 쫓기며 종말을 예고하고 있었다.
고비사막 너머 북방으로 밀린 원나라는 옛 영광의 중흥을 노렸으나 내부 분열로 대륙 회복의 꿈은 점점 멀어져 갔다. 아루크타이를 공격하면서 우리앙가드를 공격하여 몽골족을 고립시키는데 성공한 영락제는 흑룡강 유역에 살고 있던 여진족을 책동하여 몽골족 고사 작전에 들어갔다. 대륙의 패자 원나라의 패망은 시간문제다.
자신감을 얻은 영락제는 안남을 공략하는 한편 이슬람 환관 출신 정화에게 함대를 주어 동남아와 서역을 원정하도록 했다. 그 다음은 어디인가? 이것이 문제였다. 힘이 넘치는 명나라가 다음 공격목표로 삼을 나라가 어디란 말인가? 태종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명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리나라의 안위가 걱정스러웠다.
영락제의 북벌 성공을 축하하기 위하여 진하사(進賀使)로 남경에 파견했던 평양군(平壤君) 조대림과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 윤사수를 불렀다. 오늘 현재 명나라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명나라의 정세가 어떠하더냐?"
"황제의 북벌 성공으로 승전 분위기입니다."
"서역을 원정했던 정화에게 더 큰 함대를 주어 동아(東阿)를 원정하게 한답니다."
동아(東阿), 오늘날의 두바이와 소말리아 이티오피아에 해당하는 동 아프리카는 명나라만 알고 살아오던 조선인에게 혹성(惑星)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알 길이 없는 딴 세상이었다. 먼 바다에 나가면 낭떠러지에 떨어진다고 생각하던 시대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발표되기 110년 전이니 그럴 만도 하다.
"정화 함대의 배가 얼마나 크기에 그리 멀리 갈수 있단 말이냐?"
"신(臣)이 배를 만드는 포구에 나가 직접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장대하기가 대궐보다도 몇 배 컸습니다."
당대 최고의 조선술과 항해술로 세계로 나아가는 명나라
창덕궁의 인정전 보다 몇 배 컸다는 것이다. 그렇다. 영락제가 동아(東阿)를 원정하라고 명한 정화함대의 주력선은 길이가 150m에 3100톤의 배수량을 자랑하는 거대한 선박이었다. 70년 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하여 에스파냐 팔로스에서 출항시킨 산타마리아호가 230톤에 불과했으니 명나라의 조선술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당시의 조선술(造船術)은 오늘날의 우주선처럼 최첨단 기술의 집합체였다. 조선술과 항해술은 과학 문명의 꽃이었고 국가 기술력의 총아였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재패할 수 있다는 개념을 터득하기 시작한 서양에서 500톤급 이상의 배가 출현한 것은 16세기 이후다. 충격을 받은 태종이 병조판서 박은을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빠른 병선(兵船)을 만들어라."
오늘날의 고속 전투함을 만들어라는 명이 떨어졌다. 명을 받은 병조판서는 즉각 병선 건조에 착수했다. 용산강(龍山江)에 마련된 군자감(軍資監)에 조선(朝鮮) 최고의 선박 건조 장인을 징발한 병판은 조선(朝鮮)의 기술을 총동원하여 최신형 병선을 건조했다. 보고를 받은 태종은 왜인(倭人) 평도전이 만든 왜선(倭船)과 비교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한강에 배가 띄워졌다. 일본인 기술자가 만든 일본식 배와 조선 최고의 장인들이 만든 조선 배다. '어느 나라 병선이 더 빠른가?' 시험하는 것이다. 시험장이 결정되었다. 용산강 어귀를 출발하여 한강진까지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내려오는 속도를 비교 검토하는 것이었다. 주행시험을 참관했던 대언 유사눌이 보고했다.
"물길을 따라 내려가면 우리나라 병선이 왜선보다 30보(步) 뒤지고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몇 백 보나 뒤졌습니다."
"뭣이라고?"
태종은 아연실색했다. 최소한 왜선보다는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대가 깨진 것이다. 동북면 방비를 강화하고 평양성을 완성하는 등 육전(陸戰) 태세에 치중하느라 선군(船軍) 장비를 소홀히 한 것이 안타까웠다.
우리나라 병선이 왜선(倭船)보다 느리다면 명나라 병선은 어떻게 당해낸단 말인가? 명나라 병선이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없지만 거대한 선박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명나라 병선과 맞서려면 조선 수군의 병선은 빨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왜국(倭國) 병선보다 우리나라의 최신예 병선이 느리다니 모든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태종은 지금까지의 전투는 산성(山城)을 지키고 공략하는 것이 병법의 전부였지만 앞으로의 전쟁은 바다에서 승패가 갈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명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략할 경우 우리의 보군이 전열을 가다듬는 동안 선군(船軍)이 압록강 어구와 황해를 장악하여 그들의 보급로를 차단한다면 그들을 능히 패퇴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략이 압록강을 경계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명나라와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상 대명(對明) 전략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 해도 대일본(對日本) 전략으로는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적이 우리나라 땅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바다에서 분쇄해야 백성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대마도(對馬島) 종정무(宗貞茂)가 조공을 바치는 처지이지만 남해안에 상륙하여 노략질을 일삼는 왜인들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힘이 비축되면 대마도는 정벌의 대상이었고 왜국은 일전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태종의 생각은 당대에는 이루지지 못했지만 후대 즉, 세종대에 태종의 진두지휘로 이종무를 앞세워 대마도 정벌이 현실화 되었다.
병선 시험에 실망한 태종이 병조판서를 다시 불렀다.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
"황망하옵니다."
"아니, 왜국의 배보다 우리의 배가 느리다니 말이나 되는 것이냐?"
"면목이 없습니다."
"왜국의 배보다 더 빠르고 야무진 배를 만들어 보라."
특명이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건만 대책이 없었다. 고민하던 병판이 조선 건조의 장인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장인들에게 지혜를 짜내라고 닦달 했지만 묘책이 나오지 않았다. 시간도 없었다. 임금이 풍해도에 행차 하는 길 임진강에서 시범을 보여야 하니 마음이 급했다.
거북선을 만들어라
고민하던 병판이 구전(口傳)으로 전해 내려오던 구선(龜船)을 만들어보라고 주문했다. 고려시대 거북선이 있었다는 사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을 뿐, 설계도도 없었고 장인 중에서 만들어 본 사람도 없었다. 막막하기만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거북선을 완성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거북선이다.
평주로 향하던 임금의 행차가 통제원(通濟院) 남교를 지나 임진도(臨津渡)에 도착했다. 나루터에 매어있던 왜선과 거북선이 강심으로 흘러 들어가 전투 대형을 갖췄다.
병판의 군호에 따라 쫓고 쫓기는 선군전(船軍戰)이 펼쳐졌다. 거북이 모양을 한 구선(龜船)이 제법 위용을 갖추었으나 속도가 문제였다. 실망한 태종은 일언반구 말 한 마디 남기지 않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우리나라 역사 문헌에 이렇게 나타난 거북선이 180년 후 이순신에 의하여 부활했다. 태종대의 거북선과 이순신의 거북선이 동일형인지 동명이형(同名異形)인지 알 수 없다.
이순신의 거북선은 충무공의 고안에 의해 나대용이 건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태종시대의 거북선과 이순신의 거북선 모두 설계에 대한 세부적인 기록이 없어 그 진실을 가릴 수 없다.
박은과 이숙번에 이어 병조판서에 오른 탁신이 병비(兵備)에 대한 사의(事宜)를 올릴 때 거북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보고 한 것으로 보아 구선(龜船)은 돌격선으로 꾸준히 개량되었던 것 같다.
"거북선(龜船)의 전술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가위 결승(決勝)의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戰勝)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 - <태종실록>
"일본을 정벌하겠다" 명나라 황제의 통첩에 뒤집어진 조선
평주에서 휴식을 취하고 한양에 돌아온 태종에게 급박한 보고가 날아들었다. 하정사(賀正使)의 통사(通事)로 남경을 방문했던 임밀(林密)의 보고였다.
"일본국(日本國) 노왕(老王)은 지성으로 사대하여 도둑질함이 없었는데 지금의 사왕(嗣王)은 좀도둑을 금하지 아니하여 우리 강토를 침요(侵擾)하고 또 아비의 영정(眞)을 벽에 걸어 놓고 그 눈을 찌른다니 그 부도함이 이 같은지라, 짐(朕)이 병선 1만 척(艘)을 발하여 토벌하고자 한다. 너희 조선에서도 이를 미리 알아둠이 마땅하겠다."
명나라가 일본을 정벌하겠다는 것이다. 황제의 칙유를 받아든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우려했던 동북아의 전운이 조선반도를 강타한 것이다. 일본과 명나라가 전쟁을 벌인다면 조선반도는 전쟁터가 될 터.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태종•이방원^다음 제132편~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