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 되어
임 애 월
삭지 않는 그리움으로 한 계절을 살겠다
한적한 길에서 만나는 파란만장한 것들의 이야기에
두 귀를 열어 놓겠다
길을 놓친 바람을 만나면
지평선까지 좁은 산길을 말없이 동행해 주겠다
산모퉁이를 돌다 문득 마주친 노을의 슬픈 눈빛
붉고 어두운 슬픔을 가둔 노을은
언제나 등 뒤의 배경화면으로 낮게 깔려있다
초저녁 서쪽으로 뻗은 가지 위에 위태롭게 걸린
별빛의 말간 슬픔도 받아 안겠다
그 아스라한 빛들이 잎사귀에 스며들어
새벽의 푸른 잎맥으로 거듭날 때까지
슬픈 기색도 없이 긴 밤을 견뎌내겠다
바람을 따라간 작은 소녀가
잃어버린 길을 찾아 지친 걸음으로 다시 돌아올 때
그녀가 걸어오는 흔들리는 들길 위에
작은 꽃등 하나 걸어놓겠다
떠나간 기억들은 늘 저녁의 밀물을 타고
조용하게 돌아오곤 했다
그 바스락거리는 기억의 궤도 저편
더욱 쓸쓸해진 어깨를 위해 성호를 긋는
남십자성이여
한때는 진실이라고 믿었던 슬픈 몸짓들이여
안녕, 너를 위해 소리도 없이
허공에 꽃잎 하나 다시 피운다
- 시집 <지상낙원>에서
첫댓글 나두 남십자성 보고 싶다.
살아 생전에!
아침에 멋진 작품으로 힐링하고 갑니다.들꽃이 되어...머물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