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문은 언제 사라지나?
공부인은 수행하면서
깨달음에 대한 '체험'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에 대한
기대가 있다.
이렇게 하면 깨달음이 올까?
깨닫는 순간은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런 마음이 깨달음일까?
대체로 공부하면서
깨달음이 언제나 올런지 기대한다.
그런데 기다리면 오지 않는다.
왜냐고?
기대하는 놈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놈은
그 모든 것을 관찰하는 자로
기능하면서
전체성과
하나되지 못하는 걸림돌이 된다.
그래서 '주시자'에는
묘하게도
분리감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가?
순수한 성품(진아)을 깨닫기 위해
동일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바라보는 '주시자'로까지
분리되었다면,
이제
주시자 관점마저
넘어가야(초월해야) 한다.
이 부분이 매우 미묘하기에
어렵게 여겨지는 부분이다.
'주시자' 단계 이후부터는,
지금까지의 공부를 이끌어 왔던
'의도ᆞ의지'를
포기해야 한다.
공부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힘을 완전히 빼야 한다.
완전히 놓아야 한다.
그러나 빼야하고,
놓아야 한다는
의도(의지)가 없이,
저절로 빠져야 하고,
그냥 놓아져야 한다.
이런 부분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혹은
'신의 은총이다!'고 하는 것이다.
굳이 방법을 말한다면,
열심히 온마음으로
공부에 몰입하는 것뿐이다.
오직! 할 뿐!
* * *
'의문'은
답을 찾기 위한 과정에서
추진력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의문은
의문 스스로에게 향하게 되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그래?
도대체
이 의문하는 놈은 뭐야?
의문이,
의문에 대하여,
의문을 품게된 것이다?
이것이 정확하게 말하자면,
단 하나의 주관과 객관이
한 곳에서 한점으로 만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주객이라는 이분적 구조로
남아있는 상태이다.
이 부분에서 대체로,
공부의 진전이 없는 상태가
한동안 지속된다.
그러나
이 기간을 잘 견뎌야 한다.
숙성기간이기 때문이다.
잘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내면에서는
공부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하여 충분히 익어지면,
의식 내면이 변한다.
정확하게는
성숙된 차원의 의식이 출현한다.
마치 두개(주객)의 물방울이
하나의 물방울로 융합된 것이다.
이 때, 의문은 사라진다.
(표면 의식상에서,
그러나
무의식에서는 남아있다)
정확하게는
생각이라는 분별적 구조에
변화가 온 것이다.
그러나 생각의 기능이
정지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이 단계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된다.
드디어,
주객이 하나된 그 자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이를테면,
반야지혜가 생겨난 것이다!
이제 모든 의문이 사라지고,
처음의 의문은
반야지혜로 전환되었다!
ㅡ 의문은 언제 사라지나? (대적광)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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