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 퇴임 후 월 1,400만 원 연금·경호원 65명…‘무사 하차’의 의미
2025년 4월 25일, 백발에 수염이 덥수룩한 한 노인이 국회 로텐더홀에 섰다. 퇴임 후 처음으로 국회를 찾은 자리였다. 그는 귀향한 지 3년이 됐지만, 마음 한 켠이 편치 않다고 고백했다. 그 전날, 전주지검은 그에게 뇌물 수수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노인은 문재인,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이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문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무사히 걸어나온 보기 드문 대통령이다. 퇴임 후 매월 1,400만 원(약 7만 7천 위안)의 연금을 받고, 65명의 경호원이 24시간 교대 근무 중이다. 역대 대통령 중 이 정도 대우를 받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그러나 이 ‘무사 하차’의 무게를 가늠하려면, 그의 전임자들의 말로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 자리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위험한 직업 중 하나로 꼽힌다.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장에게 암살당했고, 이승만은 망명지에서 객사했으며, 전두환과 노태우는 감옥에 갔다. 박근혜는 청와대에서 곧바로 수감되었고, 윤석열은 재임 중 체포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거의 대부분이 좋은 끝을 맞이하지 못했다.
여기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인물이 있다.
2009년 5월 23일, 문재인은 전 국민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발표했다. 노무현은 문재인에게 평생 가장 가까운 동지였다. 퇴임 1년 만에 가족의 비리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다 끝내 투신자살했다.
문재인은 훗날 그날을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라고 회고했다.
그날의 고통은 외부인이 쉽게 헤아릴 수 없다.
문재인은 1953년 경남 거제도에서 피란민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양말을 팔았고, 어머니는 연탄을 날랐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 법학을 공부한 것은 그 당시로서는 거의 유일한 출세 경로였다. 그는 장학금을 받고 경희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반독재 시위가 한창이던 당시, 젊은 문재인은 거리로 나섰다가 체포되어 8개월 형을 선고받고 학교에서 제적됐다.
이후 군 복무, 제대, 그리고 사법시험 재도전.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전과 기록’ 때문에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전환점은 부산에서 찾아왔다. 노무현은 젊고 유능한 이 청년의 패기와 실력을 알아보고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신의 법무법인으로 스카우트했다.
두 사람은 함께 노동자 사건을 맡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 관계는 동료에서 절친으로, 절친에서 정치적 운명을 함께하는 동지로 발전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문재인은 청와대로 따라 들어가 민정수석비서관,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2009년, 노무현의 투신 자살.
문재인은 자서전 『운명』에 이렇게 적었다. “강물이 되어, 다시 그대를 만나리라.” 그날 이후, 그는 거의 10년에 걸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정치판의 끝없는 복수의 악순환을 뿌리 뽑지 않으면, 누가 그 자리에 앉든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2017년 5월, 박근혜의 ‘국정농단’ 사태로 촛불集会가 전국을 뒤덮었다. 문재인은 그 흐름에 편승해 대선에 출마, 41.08%의 득표율로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이 된 후 그는 두 가지 일을 해냈다.
첫째, 죽은 친구를 위한 ‘복수’. 그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이명박의 비리를 파헤쳤고, 결국 노무현을 간접적으로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명박을 감옥에 보냈다. 둘째, 검찰 개혁이라는 대장정에 착수했다.
검찰의 권한은 막강하다. 영장 없이도 고위 공직자를 직접 수사할 수 있다. 역대 전직 대통령이 수감된 배경에는 항상 검찰의 그림자가 있었다.
문재인은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2022년 5월 3일, 임기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그는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내용의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이는 검찰의 독점적 권력을 차단하는 결정타였다.
제도 개혁만으로는 부족했다. 문재인은 또 다른 카드, ‘민심’을 준비했다.
임기 5년 동안 그는 최저임금 인상, 코로나19 대응,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추진 등 여러 정책을 펼쳤다. 경제적 논란과 집값 상승 등으로 청년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퇴임 당시 높은 긍정 평가율을 기록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그를 배웅했다. 그는 전용차 대신 일반 열차를 타고 떠나며 “여러분 덕분”이라는 인사를 남겼다.
2022년 5월 10일, 문재인은 윤석열의 취임식에 참석한 뒤 부인과 함께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로 내려갔다. 그는 사비로 땅을 사 집을 지었고, 인근에 통도사가 있는 조용한 곳이었다.
전원 생활이 시작됐다. 채소를 심고, 닭을 키우고, 개를 산책시키고, 책을 읽었다. SNS에 간간이 사진 한 장씩 올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저 평범한 시골 노인으로 여길 법했다.
퇴임 대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문재인은 임기 마지막 해 연봉의 95%에 해당하는 약 1억 6,690만 원을 연금으로 받는다. 연금 외에도 교통통신비, 사무실 운영비, 공무 출장비, 국립·공립·사립 병원 진료비 전액 무료 혜택이 주어진다.
65명의 경호원은 어찌 된 일일까. 통상 전직 대통령에게 배치되는 경호 인력은 27명 수준이다. 하지만 문재인에게는 두 배 이상인 65명이 배치됐다. 공식적 이유는 의무경찰 제도 개편으로 인한 전문 인력 필요성 때문이었다. 문재인이 외출할 때면 승용차 두 대와 경호차량 여섯 대가 뒤따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퇴직 노인 하나에 저 정도 인력이 필요한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의 ‘사후 관리’가 처참한 한국 정치 현실을 감안하면, 감옥에 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시선도 있다.
평산마을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보수 성향의 시위대는 문재인을 따라 평산마을에 정착했다. “문재인 체포하라”는 구호와 욕설이 담긴 확성기가 밤낮으로 울려 퍼졌고, 문재인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도 일상을 빼앗겼다.
문재인의 대응은 특이했다. 그는 ‘평산책방’이라는 서점을 열었다. 직접 책을 추천하며 SNS를 활발히 운영했다. 2025년 11월, 유튜브 채널 ‘평산책방’을 통해 북토크 영상을 게재하며 전직 대통령 최초로 크리에이터 활동을 시작했다.
진짜 폭풍은 2024년 말에 몰아쳤다.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갑작스러운 대국민 담화로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문재인은 즉각 “민주주의를 지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탄핵안을 인용했고, 그는 박근혜에 이어 두 번째로 탄핵된 대통령이 됐다.
그리고 불과 20일 만에 검찰이 문재인을 수사 대상에 올렸다. 전 사위 서 씨가 항공업계 경험이 없는데도 태국 이스타 항공 임원으로 취업해 약 2억 1,500만 원의 급여를 받은 것이 문재인의 뇌물 수수라는 논리였다.
검찰이 7년 동안 전직 대통령을 수사한 끝에 내놓은 내용이었다. 문재인은 “황당무계한 기소”, “윤석열 탄핵에 대한 보복성 수사”라고 강력 반발했다.
2025년 6월 3일, 조기 대선이 실시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49.42%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재명은 문재인과 같은 진보 진영의 정치인이다. 새 대통령 취임은 문재인에게 상당한 정치적 안전판이 되어 주었다. 같은 해 9월, 검찰은 연평도 한국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문재인의 직무유기 및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뇌물 수수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검찰은 다른 단서를 찾느라 분주하지만, 대부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된다.
지금의 문재인은 72세, 경남 양산의 산골 마을에서 책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투명’하게, 위험을 예측하고 개혁을 단행하며 민심을 활용하고, 논란에서 멀어진 인물로 평가된다. 청와대의 저주를 완전히 깼는지 여부는 시간이 말해줄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텃밭을 가꾸고, 서점을 열고, 유튜브에서 책을 추천하는 이 노인은 건강하게 잘 살아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역사에서 이는 결코 작지 않은 결말이다.
페이북에 페친 오제학님께서 포스팅한글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