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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알럽느바 회원님 여러분. 정말 참 오랜만에 글 올립니다.
저는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2014년 올 해, 저희 신문반 학생들과 함께 쓴 기사를 올립니다.
여러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에 알리려고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개인 자격으로 올립니다.
세월호는 두 개의 사건입니다.
'세월호 A'는 세월호 침몰 사건입니다.
'세월호 B'는 세월호 구조 실패 사건입니다.
세월호 A사건에 대해서는 충분한 관심과 추적과 심판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B사건에 대해서는 관심과 추적에 비해 심판은 없습니다.
저희가 주목한 것은 '세월호 B' 사건입니다.
지난 5년 여 동안 수학여행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업무를 맡아온 사람으로서,
더욱이 3년 전,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길을 거쳐 제주도 수학여행을 다녀온 한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여전히 고등학교 꽃다운 학생들의 선생으로 살고 있으며
적어도 4살, 6살 아들과 딸을 둔 대한민국의 한 아비로서,
이 사건이 그냥 이렇게 지나가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무섭고, 잔혹하며, 위험한 일입니다.
개인자격으로라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서,
이 사건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분명히 책임을 따지고 처벌하고 엄히 다스려서
두번 다시 이렇게 꽃다운 아이들을 허망하게 잃는 일은,
이렇게 허망하게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 단단히 매듭을 지었으면 하는 바랍입니다.
세월호 희생 학생의 어느 누님의 말씀처럼,
세월호의 그들이 희생자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안전한 나라로 만드는
동기와 계기를 만들어 준 귀한 이들로
우리 역사에 남기를 바랍니다.
저희 학생들과 함께 토론하며 만든 기사입니다.
꼭 한 번 읽어주시고, 관심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병섭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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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것이 알고 싶다.
이준호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이 참사로 인해 304명이 사망하고 75명만 살아남았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정치, 행정, 교육 등 수많은 문제가 드러났다.
하지만 이렇게 큰 사건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다. 당시엔 많은 뉴스, SNS, 인터넷 등이 세월호에 대해 다루었지만 지금은 세월호에 대한 보도는 거의 없다. 그렇기에 더욱 세월호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으로 글을 쓴다.
세월호 사건...이 사건을 그저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안타까운 사건으로만 기억하기에는 많은 문제와 의문점이 남아있다. 과연 세월호가 가지고 있는 의문점과 문제점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레이더에 나타난 물체는 무엇이었을까?
세월호 사건은 정해진 항로가 아닌 다른 항로로 가다가 배가 침몰한 사건이다.하지만 최근에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 세월호의 기묘한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점부근에서 갑자기 유턴을 했는데, 3등 항해사는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배’때문이었다고 진술한 것이다.
레이더 사진을 보았을 때 주목해야 할 점은 희미하게 나타나 있는 알 수 없는 물체이다. 세월호의 길이는 146m에 달한다. 괴물체는 세월호 선체 길이의 약 2/3가량이며 이것의 일부가 물에 잠겨 있을 수도 있으므로 영상에 나타난 괴물체의 총길이는 약 100m정도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 괴물체는 세월호가 급변침을 한 직후인 8시 53분 35초경부터 레이더에 포착되었으며 세월호가 조류에 의해 북쪽으로 표류하는 상황에서 세월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다가 9시 2분 이후 레이더에서 돌연히 사라졌다. 언론에서 저것은 컨테이너라고 하지만 뉴스에서 보도한 영상을 봐도 이것은 납득이 안된다. 그리고 컨테이너가 이렇게 거대한 크기의 다발로 이어져서 떨어진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보는 편이 옳다.
그래서 이것이 확인되지 않은 잠수함이라는 설이 부상했는데 100m급 잠수함은 주변국들 가운데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세월호 앞에 나타난 물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의 정체를 하루 빨리 찾아내는 것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의문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유병언과 그 일족의 도주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면서 같이 부상한 문제는 바로 청해진 해운의 관리자(회장)이자 기독교복음침례 (통칭: 구원파)의 관계자인 유병언 회장과 그 일족의 책임이다.
그는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검찰측의 소환명령을 세 차례나 무시하고 금수원 안에 잠적했으며 검찰·경찰 합동수사본부가 금수원에 진입하기 이전에 빠져나왔다. 유병언 부자는 수원을 빠져나온 후 전라남도 순천시로 도주하여 휴게소를 운영하는 구원파 신도 부부의 도움을 받아 휴게소와 송치재 별장에 은신하였다. 검찰·경찰 합동수사본부가 이 사실을 듣고 순천을 검문검색하고 유병언 부자가 머물고 있는 별장을 급습했으나 검거에 실패했다. 유병언은 관계자를 통해 대한민국 주재 타국 대사관에 '정치적 탄압과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정치적 망명 가능성을 타진하였으나 국제법상 난민이 아닌 단순 형사범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에 유병언 회장이 사망하였다는 보도가 들려왔다. 유병언은 별장의 비밀장소에서 숨어있다가 주변의 검문소를 피해서 도망치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별장의 허술한 비밀장소를 발견하지 못한 것도 어이없지만 70세 노인이 혼자서 도망치다 갑자기 죽은 것은 무언가 명확하지 않다.
유병언은 언제나 자신 주변에 자신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다녔으며 본인도 몸에 지병이 있기 때문에 식사조차도 엄선한 음식만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아무리 검거하려 해도 피해다니던 유병언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행동하던 사람이 갑지기 혼자서 변사체로 발견되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더 있었다. 유병헌의 사체(추정)가 심하게 부폐되어 있었는데 단시간에 사람의 시신이 부폐되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오랫동안 현장에 버려져있었다면 왜 아무도 신고하지 않은 것일까? 이를 비롯해 의문이 가는 지점이 많아 많은 의혹이 있다.
여전히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서도 세월호 유가족들은 계속해서 고통받고 괴로워 하고 있다. 영화‘변호인’을 보면 이런 대사가 있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이렇게 국민들이 힘들어 하는 이 순간에서도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나? 정부가 매달리고 있는 경제법... 경제는 언제든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잊혀져 갈 것이다. 그렇기에 정부는 거미줄처럼 얽힌 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각성하기를 바란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능하고 빈약한지 알려주었고 우리에게 많은 아픔과 괴로움과 교훈을 주었다. 그래서 더욱 절대로 잊어선 안된다. 우리는 이 사건을 기억하며 더 이상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그것이 알고 싶다.
2014년 5월 19일 오전, 대국민 담화에서 박근혜 대통령님이 세월호 수습에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해양경찰청을 폐지하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일을 잘못한 마땅한 처사일 수도 있지만 꼭 그렇게 까지 압박을 가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만약 해경이 폐지가 되면 어떻게 될까?
해양경찰청이 폐지가 되면 Police가 아닌 Coast gourd(해안 경비대) 로 변경 되어 조직 자체는 커질지도 모르지만 신분 자체는 사라질 수다 있다. 정보 수사 업무를 담당하는 해양경찰들은 육상의 경찰 조직에 들어가 수상경찰로 될 수가 있다. 옛 해경 창설 이전에는 인천과 부산 등에 수상경찰서가 있었으며 해경이 창설된 이후 1961년 7월 폐지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현재도 경찰청 산하 p정급 육경정(일부 해안지역 경찰서 보유 - 통영, 목포 홍도, 울릉경찰서)과 소주정 및 한강경찰대 아라뱃길 경찰대등 일부 수상경찰 영역이 남아 있어 관련 부서를 통합해서 수상경찰을 창설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코스트 가드 식으로 운영될 거라는 전망이 있다.
미국의 해안경비대는 당초 밀무역의 단속과 관세의 징수를 목적으로 하여 징세해상부대 라는 명칭으로 1790년에 창설되었다가, 1915년 그때까지 해난구조를 담당하고 있던 정부의 다른 기관과 합병해서 해안경비대라는 명칭으로 정식 발족하였다. 평시에는 운수성에 소속되어 있으나, 전시에는 해군의 지휘에 편입되어 실전에도 참가하는 준군사기관이기도 하다.
한편 일부에는 이런 의견도 있다. 국가안전처는 국민 생활 안전을 위한 구조 업무에 중점을 두기로 계획되었는데 해양 구조 업무 뿐만 아니라 해양 경비 업무까지 포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해양 구난 업무만을 국가안전처 해양안전본부로 옮기고 경비함과 항공기 등 경비 업무는 대한민국 해군 산하에 두어 가칭 '경비함대'를 신설하여 해군으로 편입시키자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많은 의견이 넘치는 가운데 우리가 가장 중요한 문제를 빼 놓고 있었다.그것을 살펴보자.
해양경찰정이 사라지면 그들의 주요 업무인 해양 구조 업무는 누가 해야 할까. 말 그대로 전국 358개 해수욕장 안전관리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그동안 해수욕장의 시설관리는 해당 자치단체가 맡고 안전관리는 소방본부 119구조대와 해경이 각각 나눠서 맡았다. 부산시 등 전국 지자체들은 해경 해체로 다음 달부터 개장 예정인 해수욕장의 안전관리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22일 밝혔다. 지자체들은 해체가 예고된 해경과 소방 간 협업 체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각종 안전사고를 우려하고 있다. 해수욕장 안전 관리 업무는 2012년부터 소방 1.5대, 해경 1 정도로 해경의 담당 부분이 크다. 앞으로 구조 업무와 더불어 해수욕장 범죄예방 등 치안 업무에 중점을 두고 활동해 온 해경의 공백이 매우 클 것이다. 소방은 올해 부산 7개 해수욕장에 소방공무원 174명과 자원봉사자 300명을 투입한다. 해경이 올해부터 해수욕장 업무에서 빠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 자원봉사자를 추가로 확보하는 방안 등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다. 해경은 아직 정부 지침이 전달되거나 확정된 게 없는 만큼 해수욕장 안전관리를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2009년 해수욕장 안전관리 총괄기관으로 지정된 해경은 해마다 여름철 해수욕장에 1000여명을 투입해왔다. 최근 국회를 통과해 해경에게 해수욕장 안전관리의 전권을 위임하는 ‘해수욕장의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해수욕장법)은 폐기될 전망이다. 허나 그렇다면 그 기간 동안 남은 공백을 자원봉사자와 소방 쪽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럼 해경 1000명이라는 무시무시한 공백이 생길 텐데 그런 공백을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가 문제이다. 매 년 많은 해수욕장에 수많은 사고가 일어난다. 그런 사고들을 지키는 해경이 없으니 우리는 무엇을 믿고 피서를 갈수 있을까.
해경을 준비하는 해양경찰 준비생들도 문제이다. 그들은 해양경찰이 되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해왔을 텐데 말이다. ‘경찰공무원을 꿈꾸는 사람들’ 온라인 커뮤니티 카페에는 ‘해경 해체’ 소식에 해경 시험 준비생들의 심경 토로가 이어졌다. 회원 게시판에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준비하다가 날벼락 같은 소식이다”, “그래도 그냥 없애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등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앞서 해양경찰청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2014년 제1회 해양경찰 공무원 채용 계획’ 공고문에 따르면 당장 20일부터 적성·체력 평가가 예정돼 있었다. -[서울신문 발췌] 그들이 피 눈물을 흘리며 준비한 공무원 시험 준비는 하루 만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국가는 그 보상을 책임져 줄까?
↑ 마지막 해양경찰 시험을 치르고 있는 준비생들
결국 여권은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기로 한 당초 방침을 바꿔 해양수산부 소속으로 이관해 사실상 존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해경의 기구를 대폭 축소하고 기능을 불법어로 단속과 해양 구조·구난, 경비에 한정하며 명칭도 변경하기로 했다.
여권의 고위관계자는 17일 “여권 핵심부는 세월호 참사에서 무능의 극치를 보인 해경을 해체하는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마련했으나 불법어로 단속, 해양경비 기능 등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유지하기로 입장정리를 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고위당직자도 이날 통화에서 “해경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면서“다만 지금처럼 인사·예산을 독자적으로 집행하는 독립외청으로 두지 않고 해수부 소속으로 이관해 장관의 엄격한 통제를 받고 해양 경비, 구조·구난 업무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칭은 해양경비대로 바꾸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경의 수사·정보 기능은 경찰청으로 넘어간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님은 지난 5월 19일 세월호 참사에서 해양경찰청을 해체한다고 발언했지만 결국 해체 하지 않았다. 이 행동은 그저 분노한 민심을 식히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여당과 정부는 더욱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세월호와 교황
단원고 2학년 故이승현군의 부친 이호진님이 교황님에게 직접 세례를 받았다.
- 세례를 받으신 소감이 어떠신지요?
▶ 우선 상당히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인데, 교황님이 직접 세례해주실 때 구름 같은 것이 저를 감싸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평생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기분을 느꼈고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냥 황홀했었다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다른 표현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공부를 해오셨다고 들었거든요. 세례를 받아야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 현재 제가 와동에 살고 있거든요. 미사하면서 모니카 수녀님을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수녀님을 통해 성당에 나가야겠다, 그 성당을 다녀서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을 제일 처음 모니카 수녀님을 통해 갖게 됐었죠. 와동 성당에 나가면서 그런 시간을 보내고 ,햇수로는 2~3년 된 것 같아요.
- 교황님에게 세례를 요청할 생각을 미리 하셨던 건가요?
▶ 미리 하기도 했었습니다. 교황님을 뵙게 되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세례를 말씀드려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을 경우 여러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아섰거든요. 교황님을 실제 뵈니까 당장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준비해 갔던 질문은 있었지만 그 질문을 말씀드리기엔 너무나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교황님을 알현하는 그 시간으로서는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세례를 요청드렸던 것이죠.
- 교황님이 세례식에서 다른 말씀은 안 하셨나요?
▶ 보좌 신부님을 통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세례를 주시는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처음 교황님께서 제가 세례를 요청드릴 때 상당히 놀라셨다고 말씀하셨고요. 직접 세례를 요청한 그 용기를 높이 칭찬하셨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만약에 교황님이 세례를 거절할 경우 상처 입은 한 사람에게 또 다시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해주셨고요. 또 하나 제가 무척 감동스럽게 받아들인 부분은, 교황님께서 세례를 주시겠다고 결정하신 뒤에 저와 교황청과의 연락이나 커뮤니케이션 부분에서 미처 되지 않아 제가 세례를 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까봐 그 부분에 대해 실수 없이 준비하라고 수행원 모든 분들에게 교황님이 직접 말씀하셨다고 해요. 그것을 보좌 신부님께서 그대로 전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제가 들었을 때 정말 교황님께 세례 요청을 드린 것이 정말 잘한 일이구나, 교황님이 정말 그런 분이셨구나, 라는 것을 현장에서 말씀을 전해 듣고 느꼈습니다. - PBC 인터뷰 발췌
이렇게 다른 나라의 교황마저 세월호 피해자들은 동정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위로하고 있다. 우리 종교인들은 그들은 비난하는 것보다 위로의 손길을 보내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기자 – 김완수
첫댓글 잊지않겠습니다
절대 잊지 말아야죠. 누군가는 빨리 잊혀지기를 정말 바라겠지만 말이죠.
점점 잊혀져 가는거 같아 아쉽네요..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잊지 않아야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않습니다. 잊지 맙시다 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