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함의 비용
막말 사회에서 더 빛나는 정중함의 힘
크리스틴 포래스 지음
“당신은 해고야(You're fired)”란 유행어로 유명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막말이나, 기업 2세들의 ‘갑질’ 발언 등 막말과 디스(dis)의 하위문화가 대중적 코드로 소비되고 있다. 우리나라 직장인 열 명 중 여섯 명은 막말, 무례함 행동 등으로 대표되는 직장 내 따돌림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부당함에 맞서 대항하라는 조언도 하지만 현실에서 대부분의 약자는 예의와 존중이란 이름 아래 침묵을 강요당한다. 만약 이를 거절한다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무례함의 전 세계적인 확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바탕에는 “피도 눈물도 없어야 성공한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인정사정 따지지 말아야 한다”는 말처럼 결과를 위해서는 부당한 언행을 일정부분 눈감아줘야 한다는 성과지상주의 사고방식이 숨어있다. 그런데 정말, 피도 눈물도 없어야 성공할까? 저자는 무례함(incivility)을 용인할 경우 개인, 조직, 사회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증명해 냈다.
엘리트 스포츠선수 출신으로 대학을 막 졸업한 한 여성은 자신이 꿈꾸던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에 입사한다. 그러나 곧 회사의 민낯을 보게 된다. 직장 동료들은 서로 괴롭히기 바쁘고, 일부 직원은 노골적인 태업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문제의 원인은 CEO에 있었다. 회사의 CEO는 생산성 향상과 긴장감 형성이라는 미명 아래 막말과 무례한 언행을 주변에 퍼트리고 다녔다. 그가 퍼트린 무례함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조직 전체를 감염시켜 수모를 겪는 직원들은 서로에게 분풀이를 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결국 지쳐버린 그녀는 꿈꾸던 직장을 1년 만에 나오게 된다.
자신의 경험과 주위 사람들이 직장에서 겪은 일을 지켜본 그녀는 ‘직장 내 무례함’에 대한 연구를 평생의 직업으로 삼게 된다. 그렇게 20년이 넘는 연구를 통해 마침내 책 『무례함의 비용(Mastering Civility)』을 통해 무례함의 비용과 정중함의 효용을 실증적으로 분석하게 된다. 그녀는 구글, 픽사, 제넨테크, 익스피디아 등 기업과 UN, 세계은행, IMF, 미국 노동부의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선입견과 달리 정중한 사람은 널리 인정받으며, 정중한 조직은 더 높은 성과를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간에게는 어딘가에 속하고 싶다는 기본적 욕구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소속감(affiliation)이라고 부른다. 소속감은 자율 욕구, 발전 욕구와 더불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욕구이다. 흔히 예의라고 불리는 정중한 행동은 단순한 격식이 아니라 사회와 조직의 일원으로서 존중받고 소중하게 대우 받는다는 소속감을 정립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따라서 정중함은 인간관계에서 의사소통과 신뢰가 강화되도록 해준다. 이는 더 나은 관계와 협력이 뿌리를 내리도록 해주는 씨앗을 뿌리고, 더 많은 실적을 창의적으로 내도록 도와준다. 예의 바르고 존중이 가득한 관계는 더 큰 행복과 건강으로도 이어지며 이는 개인에게도, 조직에도 도움이 된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창의적 기업을 중심으로 정중함의 효용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를 중요한 인사관리 원칙으로 삼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예의 바르게 행동하면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 자신에게도 혜택이 돌아온다고 말한다.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정중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번아웃이 될 가능성이 20% 이상 낮았으며, 실적이 더 높았고(13%), 급여가 더 올랐으며(7%) 궁극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더 높아진 것(35%)으로 조사됐다.
흔히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지 않거나, 문제를 보고도 입을 닫는 것을 ‘착하게(being nice)’ 혹은 예의 바른 태도로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는 결코 진정한 정중함이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 예의를 갖추면서도, 얼마든지 자기 주관으로 주류에 맞서 건설적인 피드백을 내놓을 수 있으며, 이런 행동이 사회 전반에 퍼져나갈 때 막말로 야기되는 심각한 비용들이 상쇄되고 침묵을 요구하는 카르텔이 무너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태도를 ‘정중한 솔직주의’라고 정의한다.
저자는 ‘보이지 않는 고릴라(invisible gorilla)’ 실험 등 다양한 과학적 실험을 통해 무례한 언행, 단어, 문장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증명한다. 이를 통해 무례한 언행이 바이러스처럼 개인과 조직을 감염시키는 경로와 그 양태를 분석하고 무례함이 결코 개인의 차원에서만 바라볼 문제가 아님을 강조한다. 이외에도 조직에서 무례한 사람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거품 방울 가두기’ 등 무례함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전략을 소개한다.
저자는 독자가 ‘나는 얼마나 정중한 사람인가’를 객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직접 개발한 테스트 도구를 제시한다. 또한 정중한 습관을 내면화하는 방법으로 ▲ 미소 짓기, 배려, 경청하기 등 쉬워 보이지만 놓치기 쉬운 대인관계 스킬 ▲내 안에 숨겨진 편견을 찾아내고 극복하는 법 ▲네트워크 시대에 인정받는 공유 전략 ▲온라인에서 통하는 정중함 전략 등을 소개한다.
뇌과학자이자 하버드 의대 교수인 에드워드 할로웰 박사가 지적했듯, 나쁜 기억은 몇 년 동안 기억의 수면 아래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 할로웰 박사는 이런 현상을 뇌 화상(brain burn)이라고 불렀다. 무례한 언행으로 난처하거나 불쾌한 상황을 경험하면, 심리적 격변이 일어나면서 심장이 쿵쾅거리거나 호흡이 가빠오는 등 생리적인 반응이 일어나고 격렬한 감정의 홍수가 야기된다. 이렇게 분노와 두려움과 슬픔이 무례함의 피해자 또는 목격자에게 한꺼번에 밀려들면 몸과 마음 모두에 상처를 남기게 된다. 아드레날린이 온몸에 솟구치면서 뇌를 태워 구멍을 내기 때문이다. 지워지지 않는 ‘문신’을 뇌에 새기는 셈이다. 이런 압도적인 감정들은 문신으로 남아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가해자 또는 그 사건이 발생한 장소를 슬쩍 보기만 해도 그 감정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미소를 짓는 행동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면역력이 증가하며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혈압이 낮아진다. 또한 심장마비의 위험성이 적어진다. 1번 웃으면 초콜릿 바 2,000개를 섭취하는 것에 필적하는 수준으로 뇌를 자극할 수 있다. 웃는 얼굴은 수명과도 관련 있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연구가 있다. 1952년 시즌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들의 얼굴이 담긴 야구 카드를 연구한 결과, 웃는 얼굴인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선수들의 수명이 달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활짝 웃는 선수들의 평균 수명은 79세였지만, 별로 웃지 않는 선수들의 평균 수명은 72세였다. 웃는 얼굴 덕분에 7년을 더 살았다는 이야기다.
여성이라면 선의의 거짓말을 통해서라도 불쾌하거나 창피한 상황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남녀 공히 많다.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여성을 상처 받기 쉬운 존재로 또는 보호와 특별대우가 필요한 존재로 여기면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의에서 비롯된 거짓말이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솔직한 피드백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짧은 시간 내 자신을 효과적으로 발전시킬 수 없고, 그 결과 경력 개발 과정도 순탄치 않을 것이다. 여성들은 하나같이 솔직한 피드백을 원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의 성과에 대해 거짓을 말하는 것 같으면 분노를 느낀다. 이 같은 선의의 거짓말은 여성이 상처 받기 쉬운 존재라는 가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도리어 여성에게 깊은 상처를 입힐 수 있다.
행복의 50%는 뇌의 신경망에, 40%는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해석하고 반응하는 방식에, 10%는 우리가 권력이 약하다거나 일자리 또는 가해자에게 의존적인 경우 등 현실에 달려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우리는 무례함을 해석하는 방식과 그것에 부여하는 의미,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무례함 때문에 기분이 상할지 말지 통제하는 것도 우리 자신이다. 당신에게 ‘강인한’ 사람으로 거듭나라는 말은 현실성 없는 조언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가해진 무례함에 대해 신경을 끄기로 결정할 수는 있다.
조지타운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인 저자 크리스틴 포래스(Christine Porath)는 스포츠 경영 및 마케팅 회사인 IMG에서 컨설턴트로 일했으며 하버드대학교, USC, 스페인 에사데대학교에서 경영자 과정을 가르쳤다. 구글, 픽사, UN, 세계은행 등 다양한 기업과 조직에게 컨설팅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무례한 행동의 대가(The Cost of Bad Behavior)》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