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삶이 곧 상실이고 상실이 곧 삶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평생 상실과 싸우고 그것을 거부합니다.
상실 없이 삶은 변화할 수 없고, 우리도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옛 유대 격언에도 '많은 결혼식에 가서 춤을 추면 많은 장례식에 가서 울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당신이 많은 시작의 순간에 있었다면, 그것들이 끝나는 순간에도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만일 당신에게 친구가 많다면, 그만큼의 이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상실에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습니다.
부모의 죽음에서부터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지를 잃어버리는 것에 이르기까지 상실은 다양합니다.
죽음처럼 영원한 것도 있고, 출장을 갈 때 아이와 떨어지는 것처럼 일시적인 것도 있습니다.
죽음을 포함한 모든 상실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다섯 단계의 반응은,
삶에서 겪는 모든 크고 작은 상실에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당신의 아이가 시각 장애아로 태어났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당신은 아마 다음과 같은 반응을 거칠 것입니다.
첫번째 반응은 부정입니다.
"의사는 아이가 앞을 못 볼 거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아이는 정상적으로 될 거야."
두번째 반응은 분노입니다.
"의사들은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우리에게 좀더 빨리 알려줬어야지! 신은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거지?"
세번째 반응은 타협입니다.
"아이가 말귀를 잘 알아듣고, 자라서 혼자 앞가림을 할 수 있게만 된다면, 난 견딜 수 있어."
네번째 반응은 절망입니다.
"이건 끔찍한 일이야. 아이의 인생이 너무나 불쌍해."
그리고 다섯번째 반응은 수용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우린 잘 이겨 낼 수 있어. 아이는 그래도 사랑으로 가득한 멋진 삶을 살 수 있어."
아니면 좀더 사소한 문제로 넘어가서, 당신이 콘텍트렌즈를 잃어버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렌즈를 잃어버린 것에 당신은 다음과 같이 반응할 것입니다.
첫번째, 부정입니다.
"내가 그걸 떨어뜨렸다니, 믿을 수 없어!"
두번째, 분노입니다.
"젠장, 좀더 조심했어야지!"
세번째 타협입니다.
"렌즈를 찾게 된다면, 앞으로 훨씬 더 조심할 거야."
네번째 절망입니다.
"그걸 잃어버리다니, 너무 아까워 견딜 수 없어. 새것을 사야 하잖아."
그리고 다섯번째, 수용입니다.
"괜찮아, 어차피 언젠가는 바꿔야 하는데 뭐. 내일 아침 새 렌즈를 맞춰야겠어."
모든 사람이 상실에 대해 매번 이 다섯 단계를 모두 거치지는 않으며,
반응이 항상 순서대로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또한 한 단계를 반복적으로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번 여러 가지 형태로 상실을 경험하며, 그것에 반응합니다.
이렇게 축적된 상실의 경험은 삶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잃게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은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이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입니다.
우리는 결코 누군가에게, "넌 부정의 단계에 너무 오래 있었어.
이제 분노의 단계로 넘어가야 해." 하고 말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치유의 과정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상실을 경험했을 때, 그 반응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상실은 우리에게 공허함과 무기력함, 분노, 슬픔, 두려움 등의 감정을 남깁니다.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하루 종일 잠만 자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식욕이 없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눈에 띄는건 무엇이든 먹어 치우기도 합니다.
극단적인 감정을 오가거나, 그 사이의 감정 상태를 두루 거치기도 합니다.
이런 단계들을 거치는 것이 치유의 과정입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시간이 그 모든 것을 치유하리라는 사실입니다.
불행히도 치유의 과정이 언제나 직선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래프의 상승선처럼 빠르고 분명하게 회복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치유의 과정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온전히 자신을 회복해 가다가도
갑자기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역행하는 것 같다가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치유의 과정입니다. 결국 당신은 치유될 것이며, 온전한 자신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지는 못하겠지만, 그 상처를 치유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여행의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당신이 잃어버렸다고 슬퍼한 사람이나 사물이
결코 당신에게 소유된 적이 없었음을 꺠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한편으론 그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영원히 소유하게 되리라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나 사물들이 지금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기 바라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상실은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어려운 배움 중 하나입니다.
상실감에서 얼른 벗어나려고 애쓰고, 때로는 그것을 미화시켜 보기도 하지만,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사람이나 사물과의 헤어짐은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곁에 없다는 사실이 언제나 마음을 성장시켜 주지만은 않습니다.
때로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슬픔과 고독감과 공허를 안겨 줍니다.
상실 없이는 성장도 없습니다. 또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성장 없이는 상실의 경험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우며,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매번 상처를 받는지도 모릅니다.
이 개념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교사는 일찍 자식을 잃은 부모들입니다.
그들은 마치 세상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하는데,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고 나서 몇 해가 지나면 어떤 부모들은 그런 비극이 자신드을 성장시켰다고 말할 것입니다.
물론 자식을 잃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 상실이 뜻밖의 방식으로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열렬히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 중 누구도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보냈다고 해서,
아예 그 아이가 태어나지 않은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어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상실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한눈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장합니다. 상실로 인해 고통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결국 더 강해지고,
더 온전한 존재가 됩니다.
인생 수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