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온천
여름일기
강 문 석
온천관광지구에서 백암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관통하는 야트막한 동산엔 건강하게 자란 적송들이 울울창창했다. 언제 만나도 기품이 느껴지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청량감이 느껴지는 적송은 붉은색 표피를 지녔다. 대목수들이 흔히 말하는 황장목黃腸木이나 춘양목 금강송이 모두 적송 반열에 든다. 적송은 더디게 성장하기 때문에 나무조직이 조밀하고 송진 함유량이 많아 잘 썩지 않는데다 쉽게 갈라지지도 않고 강도가 높아 그만큼 목재로서 대접을 받는다.
백암온천에 여장을 풀고선 바로 산을 오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아내는 그동안 여행지마다 남편과 함께 걷지 못한 때문인지 오늘은 작정하고 따라나서는 듯했다. 원래 울진은 성류굴과 불영계곡이 유명하고 왕피천도 명소로 꼽히지만 그에 못지않은 계곡이 바로 이곳 백암산 신선계곡이다. 계곡은 마치 거대한 용이 꿈틀거리는 형상으로 짙푸른 소나무와 참나무가 뒤덮고 있었다. 용소에는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하고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은 태곳적 신비까지 느끼게 해준다.
카메라에 산의 풍광을 담으며 오르다가 뒤쳐진 아내를 생각했다. 그 순간 더 이상 오르다간 이번 여행의 남은 일정을 소화하는데 무리가 따를 것 같았다. 바로 아내의 무릎 때문이었다. 울진은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1963년에 강원도에서 경북으로 편입되어 잊히질 않는다. 하지만 울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5년이나 지난 뒤였다. 바로 1968년의 ‘울진삼척무장공비사건’이 터진 때문이었다. 공비들은 그해 1월에도 청와대 폭파를 목표로 서울에 침투했던 북한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의 124군부대였다.
그들은 침투지역 일원을 공포분위기로 만들어 주민들을 선동하고 양민학살 등 만행을 저질렀다. 120명 공비들은 울진 고포해안에 상륙하여 울진 삼척 봉화 영주 정선으로 침투하였다. 당시 소탕작전에 나섰던 군경과 민간인 등 18명이 억울하게 희생되었고 우리 측에선 저항하는 공비 31명을 사살하고 2명은 산채로 잡았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절규와 함께 처참한 죽임을 당한 반공소년 이승복도 이때 평창 산간마을에서 열 살의 어린 나이로 안타까운 최후를 맞고 말았다.
실제로 울진에 첫발을 디딘 것은 현직 때인 1980년대로 관광 붐을 타고 성류굴과 백암온천이 전국에 알려지면서였다. 그 무렵 원자력발전소 2기를 울진에 건설하면서 부산과도 직원 교류가 이뤄져 그곳으로 옮겨간 동료들의 초청을 받고 두어 차례 방문한 적도 있었다. 퇴직 무렵엔 산악서클에서 눈 덮인 왕피천을 찾았고 얼음물 속을 발가벗고 뛰어든 기인이 나타나 두고두고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퇴직 후에는 3년 동안 영남지역 안전장구 시험업무를 용역으로 맡아 또 울진 전역을 돌 수 있었다.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불영계곡은 문화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여 여행작가 그룹을 불러줘서 팸투어로 단풍철에 다녀올 수 있었으니 이래저래 울진은 나와 인연이 많았던 곳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도 이번 여름휴가여행 중에 백암온천을 찾은 것은 다소 의외였다. 지인이 이곳에다 숙소를 마련해주었고 배려해준 정성이 고마워 거절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온천관광이 시작된 1980년대에 어린 아이들을 달고 찾았던 추억도 떠올라 삼사십 년 동안의 변화상도 궁금하긴 했었다.
간선도로를 벗어나 온천으로 향하는 도로변엔 소담스럽게 꽃을 피운 3천여 그루의 배롱나무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여 지난 2009년엔 이곳 꽃길이 국가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백일 동안 꽃을 피운다고 백일홍으로도 불리는 꽃들은 흡사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공항연도에 길게 늘어선 환영인파처럼 우리 부부를 그렇게 맞고 있었다. 국제결혼으로 일본에 가있는 여류작가가 보내온 정보에는 일본사람들의 유별난 온천문화가 들어있었다.
‘이열치열로 여름에 즐기는 온천以熱治熱 夏に 楽しむ 温泉’이 제목이었다. 그중 만좌万座온천은 고도가 높아 한여름에도 아침저녁으로 춥기 때문에 두꺼운 옷을 지참해야 할 정도라고 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열대야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는 피서지다보니 한여름에도 인기가 높다는 것이다. 또한 나가노 현에 있는 지옥곡じごくたに온천은 산속 깊은 곳에 있기 때문에 노천온천에 몸을 담근 채 멋진 자연경관을 감상하면서 소박한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데 이곳은 야생원숭이 서식지로도 유명하단다.
따라서 온천을 좋아하는 원숭이들도 감정적인 동물인지라 기분이 좋지 않은 원숭이가 다가올 때는 벗은 채로라도 빠르게 탕에서 도망가야 한다니 세상 참 요지경이란 생각이 든다. 백암온천 숙소의 대중탕은 지하에 위치했고 시설은 30년 세월이 지났지만 일본의 호텔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대신 일본 온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노인네들을 이곳에선 만날 수 없어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폭염주의보까지 발령된 날 신라 때부터 알려진 유황온천 백암에서 이열치열로 보낸 시간들이 어느새 추억 속으로 저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