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동문
탑재하는 것만으로 해킹 막는 ‘디지털 금고’ 만들었어요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40호(2023.03.15)
강보경 (수학교육94-99)
삼성전자 상무
삼성 스마트폰 보안 강화 주역
40대 젊은 여성임원으로 눈길
최근 발매된 삼성전자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23 울트라’가 화제다. 화제의 중심은 단연 카메라. 2억 화소에 뛰어난 손 떨림 방지 기능과 밤하늘의 달을 끌어당겨 찍는 줌 성능은 전문가 용 촬영 장비 못지않다. 그런 카메라로 찍은 내 사진이 나도 모르게 유출된다면? 어디 사진뿐인가. 메모도 문자도 계좌도 보험도 스마트폰으로 관리하고 처리하는 까닭에 그 기능이 현란해질수록 해킹의 위험은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보안이 중요한 이유다.
강보경 삼성전자 상무는 반도체 설계 전문 S.LSI 사업부에서 모바일·Automative향SOC(System On Chip)에 ‘디지털 금고’라고 할 수 있는 Security Processor, Secure Storage 및 보안 솔루션을 개발해 그 공로로 작년 말 승진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까지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외치며 뛰어난 인재들이 산업계에 뛰어들 것을 호소했다. 2월 27일 삼성전자 DSR 타워에서 강보경 동문을 만났다.
“회사에서 저는 임베디드 시큐어리티(Embedded Security)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보안이란 무엇을 보호할 것인가에서 출발하고, 보호하는 기반 기술인 암호학은 수학의 난제에 기반하죠. 모교 재학시절 주어진 성질을 만족시키거나 극대화하는 경우의 수를 연구하는 조합론(Combinatorics)에 흥미를 느껴 카이스트 수리과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암호학으로 훌륭한 선배들이 계신 연구실에 들어갔고요. 석사와 박사 학위 취득 후 삼성전자에 입사해 학계에서 익힌 근본적인 이론을 체감할 수 있는 기술로서 구현하고 있습니다.”
강 동문이 개발한 Security Processor와 Secure Storage는 갤럭시S21부터 적용됐다. 보안 프로세서와 보안 메모리칩을 결합해 PIN과 암호, 생체인식, 디지털 인증서 등 사용자의 민감 정보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서 완전히 분리된 별도의 저장소에 격리, 보관한다. 쌀 한 톨 만한 크기에 불과하지만, 전압·레이저 같은 물리적 공격을 감지하는 즉시 사용자에게 경고 후 동작을 차단하며, 소프트웨어 튜닝 없이 그저 탑재하는 것만으로 해커의 침입을 차단한다. 소프트웨어 무결성 검사, 보안 부팅, 기기의 정품 인증 같은 다양한 기능도 발휘할 수 있다.
“저희가 개발한 Security Processor와 Secure Storage는 보안 국제공통 평가 기준에서 업계 최고 수준인 CC(Common Criteria) EAL(Evaluation Assurance Lab) 5+등급을 인증받았습니다. 소프트웨어 차원에서뿐 아니라 하드웨어 차원에서도 보안을 지원하죠. 본인 외에는 사실상 아무도 접근할 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동시에 사용자의 편리성을 높이는 게 관건이죠. 내 계좌의 비밀번호도 헷갈리거나 오타를 낼 수 있잖아요. 그런 실수를 용인하면서도 타인의 접근은 막는 게 저희 기술의 역할입니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2020년 4월엔 하루 4800만 건의 악성 메일이 감지 및 차단됐다. 피싱 메일, 스미싱 문자로 인한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는 상황. 동시에 4차 산업혁명을 맞아 IT 기술의 활용 범위가 폭증하면서 보안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S.LSI 시큐리티 기술은 향후 자체적으로 보안 프로그램 및 장치를 개발할 여건이 안 되는 수많은 IT 기업에 손쉬운 보안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상당한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건강한 사람은 아파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 듯 보안도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대중에게 중요성이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큐리티 기술은 아키텍처 보안부터 기반 이론까지 모두 알아야 해서, 커리어 측면에서도 무척 안정적이죠. 항상 수요가 있고, 어느 곳에서건 필요로 하죠. 자사 반도체의 이러한 우수성을 어필하고 마케팅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국내 대표 대기업의 임원이 된 강보경 동문. ‘유리 천장’은 어떻게 깼는지, 일과 가정의 균형은 어떻게 이뤘는지 묻자 후배들에게 전하는 조언을 쏟아냈다.
“생애주기를 돌아봤을 땐 일에 집중한 시간이 훨씬 많았습니다. 아이 낳고 2~3년 동안만 가정에 중점을 뒀어요. 흔히 아이는 엄마를 더 찾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아요. 함께 지내는 시간에 비례하는 거죠. 적극적으로 육아를 맡는 아빠는 엄마보다 더 아이와 친합니다. 물론 쉽지 않죠. 그러나 남자가 일에, 여자가 가정에 집중한다는 통념은 깨졌습니다. 회사와 사회가 좋은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부족한 점이 많아요. 그래도 의지를 갖고 부부가 함께 서로의 성장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후배들이 되길 바랍니다.”
강 동문은 우수한 인재가 의대에 몰리는 현상을 아쉬워하면서 산업을 통해 인류와 환경에 기여하는 사업보국의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성장이란 그 꿈을 실현할 만한 직위나 재력, 능력을 함양하는 과정이라며 “꿈이 없다면 설사 유리천장이 사라지더라도 자신의 성장을 스스로 막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일을 벌이고, 성장하고, 더 넓은 세계에 공헌하길 꿈꾸는 그런 후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입사하고 몇 년은 그저 월급이 출근하는 목적이었어요. 소병세(전자공학 80-84) 전 부사장님의 말씀이 제 생각을 지금처럼 바꿔놨죠. 당신의 다짐을 그저 담담히 얘기하셨을 뿐인데 그렇구나, 하게 되더라고요. 보통은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역량껏 일을 안 해요. 자기 성장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는 거죠. 그전까진 회사에서 주는 돈을 당연시했었는데, 소 선배의 말씀에 제가 그만한 값어치를 하고 있나 돌아보게 됐어요.
그때부터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액셀만 밟았죠.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 후배들이 외려 회사에선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제법 있어요. 자신의 능력을 못 알아본다고 생각하기 일쑤죠. 전문성은 당연한 거고 소통과 협업 능력을 보완해야 합니다. 겸손하게 열심히 일하면, 인재를 중시하는 회사는 분명히 알아봐요.”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