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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다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海風)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시집 <겨울바다>(1967)-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명상적, 회고적, 주지적, 상징적, 종교적
◆ 특성
* 자기 응시적 독백체와 기도조의 어조로 화자의 정서를 표현함.
* '물(생성, 차가움)'과 '불(소멸, 뜨거움)'의 대립적 이미지를 통해 주제의식을 형상화함.
* 회상 시제 표현 → 감각적 체험을 시적 정서로 승화시켜 줌.
* 인식의 변화에 의한 시상의 전개(허무와 좌절의 심정 ⇒ 허무의 극복과 삶의 의지)
◆ 중요 시구
* 1연의 겨울 바다 → 상징적 공간, 부재의 현실, 소멸과 허무의 공간
* 미지의 새 = 보고 싶던 새 → 삶의 진실, 삶의 이상과 소망
*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 비극적 자아 인식, 소망과 기대의 상실로 인한
허무와 절망
* 그대 → 사랑의 대상
* 매운 해풍 → 현실적 시련과 역경(공감각적 표현)
*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 사랑의 상실로 인한 절망
* 허무의 / 불 → 소멸과 상실과 죽음의 이미지, 인고의 물과 대립됨.
* 물 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 물과 불의 대립과 갈등, 내면적 갈등의 시각화
* 나를 가르치는 건 / 언제나 /시간 …….
→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숙해진다는 의미임. 인간은 운명적으로 시간 속의 존재임.
*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 삶에 대한 긍정적 인식, 갈등의 극복과
자기 긍정
* 3연의 겨울 바다 → 깨달음의 공간
* 남은 날은 적지만 → 삶이 유한함을 자각함.
* 기도를 끝낸 다음 /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 기도는 허무와 좌절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며, 기도의 문은 부정적 세계와 긍정적
세계의 분기점임.
역설
* 그런 영혼 → 허무를 극복한 영혼
* 5연의 겨울 바다 → 부활과 생성의 공간
* 인고의 물 → '부재의 현실'을 초극하려는 자아의 내면적 신념의 표상, 허무와 절망의
초극 의지
*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 화자의 내면의 극복 의지를 시각적으로 구상화함.
◆ '겨울바다'의 의미 : '겨울'은 사계절의 끝이자 순환의 단계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이다. 다시 말하면 만물의 죽음의 계절이자 재상을 잉태하고 있는 계절이라는 모순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상처받은 자의 고통이 만들어 낸 공간, 기대하던 '미지의 새'조차 없는
참담한 '겨울바다'는 오히려 희망의 깨달음으로 전환되어 이 시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겨울바다'는 삶의 끝이요, 죽음을 표상하는 동시에 인생의 시발점이 되는 곳으로,
만남과 이별, 상실과 획득, 죽음과 탄생,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복합적 심상이다.
◆ 주제 : 삶의 허무와 절망을 극복하려는 의지, 진실과 사랑에 대한 소망
[시상의 전개(구성)]
◆ 1연 : 소망과 기대가 사라진 죽음의 공간인 겨울바다
◆ 2연 : 삶에 대한 허무와 극복의지
◆ 3연 : 깨달음을 통한 삶에 대한 긍정
◆ 4연 : 기도를 통해 삶의 허무를 극복하고 참된 의미를 찾고자 함.
◆ 5연 : 허무한 삶을 극복하려는 성숙한 의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소멸 이미지로서의 '불'과 생성 이미지로서의 '물'이 대립을 이루는 가운데, 이 시는 부정과 좌절, 대립과 갈등을 통해 깨달음과 긍정에 이르는 과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다.'겨울 바다'의 소멸과 생성으로 대표되는 관념적이고 이중적(二重的)인 이미지와 물과 불의 대립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극적 긴장감을 환기시킨 다음, 수심 속의 물 기둥을 통한 초극 의지를 시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겨울'은 4계절의 끝으로 만물이 무(無)로 돌아간 때이지만, 한편으로는 만물이 재생하는 봄을 잉태하는 때이기도 한데, 이것이 바로 '겨울'이 갖는 모순의 이미지이다. 마찬가지로 '바다'도 물의 순환이 끝나는 종착지면서 동시에 시발지라는 모순의 이미지를 갖는다. 그러므로 '겨울 바다'는 죽음과 생성, 절망과 희망, 상실과 획득, 이별과 만남의 복합 이미지의 상징어가 된다.
시적 화자는 바로 그러한 이미지의 겨울 바다에서 '미지(未知)의 새'가 죽고 없음을 발견한다. '미지의 새'는 곧, 그 어떤 진실의 실체로 시적 자아가 체험하지 못한 성스러움을 표상하고 있는 것으로서 그것이 상실된 겨울 바다는 죽음과 절망의 공간일 뿐이다. 그 때 살 속을 파고드는 매운 해풍까지 불어 대기에 그간 자신을 지켜 주고 지탱하게 했던 사랑마저도 실패로 끝나는 삶의 좌절을 체험하는 것이다. 절망적인 현실 공간에 매운 해풍이라는 현실적 고난이 닥쳐옴으로써 화자는 더욱 비극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고뇌에 몸부림치며 삶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의 갈등을 겪던 그는 사람은 누구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시간 속의 유한적(有限的) 존재라는 것과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치유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통해 긍정적 삶을 인식하기에 이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삶에 대해 경건한 자세를 가지게 된 화자는 허무와 좌절을 이겨내기 위한 뜨거운 기도를 올리며 영혼의 부활을 소망한다. 그러므로 유한적 존재임을 분명히 자각하며 다시금 겨울 바다에 섰을 때, 그 곳은 이미 죽음의 공간이 아닌 소생의 공간이 되어 삶에 대한 뜨거운 의지가 커다란 물기둥같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 <양승준, 양승국 공저 [한국현대시 400선-이해와 감상]> -
◆ 시간과 기도의 힘
보고 싶던 '미지의 새'들은 죽어 있고 '매운 해풍'에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린, 허무라는 마음의 불로 불붙은 '겨울 바다'. 그 죽음의 공간에서 시인은 시간의 힘을 깨닫는다. 시간은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말도,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내일은 내이르이 태양이 뜬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를 맑게 깨우치고 우리를 키우는 건 세상을 향해 끄덕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다.
기도는 시간을 견뎌 내는 데서 비롯된다.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해달라는 기도는, 저 차디찬 바다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인고의 물기둥'을 세우는 일이었으리라. '허무의 불'을 '인고의 물'로 버텨 내는 것이야말로 시간의 힘이고 기도의 힘이다.
◆ 더 읽을 거리
이 시는 그 핵심이 물과 불의 긴장력 또는 부정과 긍정의 변증법에 놓여 있는 것이다. 삶이란, 사랑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생성과 소멸, 이성과 감성, 정열과 허무, 육신과 정신, 신성과 세속, 희망과 절망의 대립 또는 화해 속에서 전개되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이러한 대립과 화해는 "새들은 죽고 없었네 /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와 같은 부정의 인식으로부터 시작되어 "허무의 / 불 /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와 같은 갈등을 겪고, 마침내 "나를 가르치는 건 / 언제나 / 시간… /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처럼 깨달음 또는 긍정의 정신에 도달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시의 의미는 분명해진다. 그것은 좌절과 절망 끝에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대립적인 것의 경계선에서, 참회와 정죄를 겪으면서 새롭게 자기 극복과 부활을 성취해 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 겨울 바다는 뉘우침과 속죄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부활과 소생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실상 우리는 한 생애를 살아가면서 잃을 수 있기에 얻을 수 있고, 헤어질 수 있기에 새롭게 만날 수 있고, 또한 죽을 수 있기에 새로운 탄생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시는 삶의 거듭 태어남 또는 사랑의 거듭남을 '겨울 바다'라는 부활의 동굴, 또는 무(無)의 통과과정을 토애서 성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작가소개]
김남조[ 金南祚 ] : 시인, 명예교수
출생 : 1927. 대구광역시
소속 : 숙명여자대학교(명예교수)
가족 : 배우자 김세중
데뷔 : 1950년 연합신문 시 '성숙', '잔상' 등단
수상 : 2020년 제12회 구상문학상
2017년 제29회 정지용문학상
경력 : 2011~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명예교수
작품 : 도서 141건
<요약> 김남조의 작품은 지속적으로 이러한 기독교적 정조를 짙게 깔고 있으며 모윤숙(毛允淑)‧노천명(盧天命)의 뒤를 이어 1960년대 여류시인의 계보를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27년 9월 25일 경북 대구 출생. 일본 규슈(九州)에서 여학교를 마쳤고,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마산고교, 이화여고에서 교편을 잡은 후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강사를 거쳐 1955년부터 1993년까지 숙명여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1950년 대학 재학시절 『연합신문』에 시 「성수(星宿)」, 「잔상(殘像)」 등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발간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에 들어갔는데, 이후의 시 「황혼」, 「낙일」, 「만가」 등과 더불어 이 시기의 작품들은 인간성에 대한 확신과 왕성한 생명력을 통한 정열의 구현을 소화해 내고 있다. 특히 『목숨』은 가톨릭 계율의 경건성과 뜨거운 인간적 목소리가 완전하게 조화된 시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제2시집 『나아드의 향유』로 이어지면서 종교적 신념이 한층 더 강조되고 기독교적 인간애와 윤리의식을 전면에 드러내게 된다. 이후의 시들 대부분이 지속적으로 이러한 기독교적 정조를 짙게 깔고 있으며 후기로 갈수록 더욱 심화된 신앙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열의 표출보다는 한껏 내면화된 기독교적 심연 가운데에서 절제와 인고를 배우며 자아를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집 『정념의 기』(1960), 『풍림의 음악』(1963), 『잠시, 그리고 영원히』(1965), 『김남조 시집』(1967) 등을 발간하면서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었다. 모윤숙(毛允淑)‧노천명(盧天命)의 뒤를 이어 1960년대 여성 시인의 계보를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에도 『평안을 위하여』(1995), 『외롭거든 나의 사랑이소서』(1997), 『희망학습』(시와시학사, 1998), 『사랑 후에 남은 사랑』(1999), 『영혼과 가슴』(2004), 『가난한 이름에게』(2005), 『귀중한 오늘』(2007) 등의 시집을 간행한 김남조는 비교적 다작(多作)하는 시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목숨』(1953), 『나아드의 향유』(1955), 『나무와 바람』(1958), 『정념의 기』(1960), 『풍림의 음악』(1963), 『겨울 바다』(1967), 『설일』(1971), 『영혼과 빵』(1973), 『사랑초서』(1974), 『동행』(1976), 『빛과 고요』(1982), 『시로 쓴 김대건 신부』(1983), 『마음의 마음』(1983), 『눈물과 땀과 향유』(1984), 『너를 위하여』(1985), 『저무는 날에』(1985), 『말하지 않은 말』(1986), 『문 앞에 계신 손님』(1986), 『둘의 마음에 산울림이』(1986), 『고독보다 깊은 사랑』(1986), 『겨울나무』(1987), 『새벽보다 먼저』(1988), 『바람세례』(1988), 『깨어나소서 주여』(1988), 『겨울꽃』(1990), 『가슴을 적시는 비』(1991), 『겨울사랑』(1993), 『평안을 위하여』(1995), 『외롭거든 나의 사랑이소서』(1997), 『희망학습』(1998), 『사랑초서와 촛불』(2003), 『영혼과 가슴』(2004), 『가난한 이름에게』(2005), 『귀중한 오늘』(2007) 등이 있다.
시선집 『김남조시집』(1967), 『김남조 육필시선』(1975), 『김남조 시선』(1984), 『가난한 이름에게』(1991), 『김남조 시 99선』 등이 있다. 2005년 국학자료원에서 『김남조 시전집』를 발간했다. 이밖에도 산문집으로 『잠시 그리고 영원히』(1964), 『은은한 환희』(1965), 『그래도 못다한 말』(1966), 『달과 해 사이』(1967), 『시간의 은모래』(1968), 『여럿이서 혼자서』(1972), 『그대들 눈부신 설목같이』(1975), 『이브의 천형』(1976), 『만남을 위하여』(1977), 『그대 사랑 앞에』(1978), 『기억하라 아침의 약속을』(1979), 『그 이름에게』(1980), 『바람에게 주는 말』(1981), 『그가 네 영혼을 부르거든』(1985), 『먼데서 오는 새벽』(1986), 『사랑을 어찌 말로 다하랴』(1986), 『가슴 안의 그 하나』(1987), 『끝나는 고통 끝이 없는 사랑』(1990), 『마지막 편지』(1996), 『사랑 후에 남은 사랑』(1999) 등이 있다.
1992년 제33회 3·1문화상, 1996년 제41회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부문 예술원상, 2007년 제11회 만해대상 문학부문상 등을 받았고, 1993년 국민훈장 모란장과 1998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남조 [金南祚]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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