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처음될것이라는 말씀이 실감나는 사건이 둘 있습니다. 한번 보시고 우리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듯 합니다. 한사람은 전과6범으로 출발해 지금은 19년간 제소자 선교에 헌신하고 있는 분의 이야기이고 다른 한 사람은 얼마전 여신도와 간통하다 결국 교회사에 이같은 불명예스런 죽음이 있을까 싶을만큼 치욕스런 죽음을 맞이한 사건입니다. 그는 정통교단 소속의 인천에서도 대표적인 교회의 목회자였으며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공동회장까지 역임한 거물급인사였기에 더욱 충격을 주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그 누구라도 죄를 지을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데 누가 타지 않겠느냐"는 잠언은 남녀노소 직분의 유무와 고하를 막론하고 적용되는듯 합니다. 분명 두 사람 모두 인생에서 씻을수 없는 과오를 범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그러한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오히려 성결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다른 사람은 성결의 길에서 출발해서 죄악의 길에서 인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보시기에 아름다울것인가는 그분만이 판단하시겠지만 우리또한 이 일을 보면서 삶에서 선택하는 작은 일들이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내는가를 명백히 알수 있을것입니다.
저 또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내가 삶에서 어떤 선택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고 또 참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 아니 내 삶에서 경건의 무늬가 아닌 능력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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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자’ 촛불된 ‘빵잡이 목사’
=[삶속의 종교, 종교속의 삶](4)출소자의 ‘선한 목자’ 임석근 목사=
전과 6범의 목사님. 걸핏하면 폭력을 휘둘러 제집처럼 ‘빵’을 드나들던 ‘깡패’ 목사의 과거는 도리어 음습한 곳에서 버림받은 삶을 살아가는 전과자들을 인도하는 데는 귀한 경험이 되었다. 담안선교회 회장 임석근 목사(48)는 그 경험으로 19년째 전과자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출소자를 대상으로 복음을 전파해왔다.
임목사는 어린 시절부터 주님을 섬기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갔다.
“계모 밑에서 중 2때 가출했습니다. 1976년 강원도에서 광부로 일하다 광산업주와 분쟁이 일어났는데, 그때 제가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며 자살을 기도했죠. 결국 불발로 끝났지만,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강릉교도소에서 만기출소했지만 다시 삼청교육대로 끌려가 4주 교육을 받았어요. 그런데 개전의 정이 없다며 다시 감호 2년을 주더군요.”
청송 보호감호소 시절(1980년) 재소자들을 위해 기도하던 군인가족들이 있었다. 끝없는 나락에 빠져 세상을 미워했던 ‘깡패’는 자신의 손을 붙잡고 “세상이 당신을 버려도 신앙으로 마음을 잡으라”고 눈물로 기도하던 장교부인의 정성에 새로운 길을 결심했다.
그가 교도소 전도에 관심을 가진 건 85년 유치장 전도를 하던 안길용 목사(92)와 교도소장 출신 이정찬 목사(82)를 만나고부터. 당시 전도사였던 임목사는 그때부터 재·출소자들을 위한 갱생·교화사업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갇힌 자에게 복음을, 풀린 자에게 사랑을’을 구호로 ‘담안(교도소 담안이라는 뜻)선교회’를 만든 것도 그해(85년)였다.
95년 목사안수를 받은 임목사는 19년째 종파를 초월한 채 ‘담안선교회’를 이끌고 있다. 그는 지난 10월 서울 중랑구 면목4동에 신축한 ‘성애원’과 출소자가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아파트(18·20평형)인 ‘샬롬의 집’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두 곳 합해 총 250명이 최대수용인원. 공주 치료감호소와 청송 보호감호소 등에서 온 70명의 출소자들은 성애원에 2년동안 머물며 자립의 길을 찾고 있다. 현재 80명이 살고있는 ‘샬롬의 집’은 3년 거주한 뒤 본인이 원하면 2년을 더 연장할 수 있다.
가장 인상에 남는 출소자는 마약 판매상이던 20대 청년. 마약중독으로 몇번씩 교도소를 드나들던 그는 90년대초 성애원으로 온 후 1년동안 마약 금단현상 때문에 포악해지기 일쑤여서 담안선교회 가족들을 애타게 했다. 그러나 기도와 사랑의 힘으로 마약기운이 빠지면서 결혼도 했고 지금은 목사로 활동중이라고 했다. 92년 서울 여의도광장 택시질주사건의 범인도 성애원을 거쳐가 새 삶을 살고 있다. 당시 어린이 등 일가족을 택시로 들이받은 뒤 달아났다 다시 사고현장을 구경하던 시민들에게 돌진해 15명의 부상자를 낸 그는 세상을 미워하며 정신질환에 시달렸지만 임목사의 도움으로 갱생의 길을 걷게 됐다.
일부에선 ‘빵잡이’가 무슨 전도를 하냐고 비난도 했지만 죄수들도 착하게 살 수 있다는 신념은 임목사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담안선교회 부목사·전도사·집사 등도 모두 전과자 출신이다. “아직도 제 등에 새겨진 구렁이 문신을 다 지우지 못했어요. 지난 2년동안 13차례에 걸쳐 문신을 뺐는데 이제 한번만 더하면 완전히 없어질 거예요.” 팔과 손의 문신을 지우고 몸의 칼자국도 희미해졌지만 등 문신지우기는 오래 걸린다고 숨김없이 웃는다.
이곳의 1년 운영비는 8억원. 법무부 보조금이 지난 2000년부터 연 1억원 정도(1인당 1일 식비 2,930원을 기준으로 계산한 금액) 나오고 컴퓨터 토너와 잉크를 재생하는 담안자활원 공장을 경영해 살림에 보태고 있다. 임목사는 “담안선교회는 사회복지재단으로 인가받지 못해 각종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운영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이곳을 거쳐간 이는 5,000여명. 특히 72쌍의 전과범 부부들이 조직한 ‘창조회’는 임목사의 자랑거리이다. 교회에서 만난 이정림씨(40·사회복지사 과정 2학년)와 딸(20)을 두고 있지만 임목사의 또다른 식구들은 ‘담안의 출소자’들이다.
국민일보는 이날 34면에 2단 크기로 실은 <‘교회연합 헌신’ 장OO 목사 소천>이라는 기사에서 “장OO 인천 OO교회 목사가 1일 밤 10시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3일자 10면(사회면) <간통 들킨 목사님…>에서 “2일 오전 1시5분쯤 인천수 계양구 계산동 S오피스텔 9층에서 간통현장을 들킨 인천 P교회 목사 장모씨가 30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며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당시 오피스텔에 함께 있던 김모씨의 남편이 간통 현장을 급습하기 위해 문을 두들기며 들이닥치자 몸을 피해 배란다 에어컨에 10여분간 매달려 있다가 떨어졌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