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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산이씨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들 원문보기 글쓴이: 기라성
배달겨레의 꽃, 무궁화(출처 : 무궁나라)
우리 나라의 여러 가지 명칭
오늘날 우리가 우리 나라를 배달 나라〔倍達國〕, 조선(朝鮮), 한국(韓國) 등으로 부르고 있는데, 국내외 옛 문헌들을 살펴보면 우리 나라에 대한 한자(漢字) 명칭이 실로 많음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권상로(權相老 1879∼1965)의《한국지명연혁고(韓國地名沿革考)》부록(附錄)7,〈국명(國名)의 이칭(異稱)〉에는 나라 안팎의 수많은 문헌 속에서 찾은 배달 나라에 대한 한자 명칭들을 정리하여 두었는데, 그 수가 무려 194가지나 된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근방(槿邦), 근역(槿域), 근화향(槿花鄕), 근원(槿原), 부상(扶桑) 등의 명칭들은 모두 무궁화를 뜻하는 근(槿)자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무궁화 나라’를 의미한다. 즉, 우리 나라에 무궁화가 많이 피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부상(扶桑)은 뒤에 설명하겠지만 무궁화의 다른 이름이다.
▲단군조선국 강역
단국(檀國), 단기지방(檀箕之邦), 신단(神壇), 진단(震檀), 단방(檀邦) 등은 단군(檀君)과 관계되는 명칭으로 곧,‘배달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대동(大東), 동구(東區), 동국(東國), 동극(東極), 동륙(東陸), 동명(東明, 東溟), 동방(東方, 東邦), 동번(東藩), 동변(東邊), 동빈(東濱), 동역(東域), 동비(東鄙), 동요(東ㅇ), 동우(東隅), 동이(東夷), 동진(東震), 동토(東土), 동표(東表), 동한(東韓), 동해(東海), 압동(鴨東), 요동(遼東), 패동(浿東), 해동(海東), 일동(日東), 양곡(暘谷), 양이(暘夷), 일군(日君), 일방(日邦), 일변(日邊), 일역(日域), 일처(日處), 일출지방(日出之邦), 일출지분(日出之分), 일출허(日出墟),일택(日宅), 일하(日下), 출일지방(出日之邦) 등의 명칭들은‘동방의 해 뜨는 나라’를 의미하는 것들로서 가장 종류가 많은 것이다. 이러한 명칭들은 우리 나라의 지리적인 위치에 연유하여 붙여진 것 같다. 또, 옛부터 중국인들은 이웃하는 나라 사람들을 낮추어 불렀으나, 유독 우리 나라만은 높여서 불렀는데, 군자국(君子國), 동한인수군자국(東韓仁壽君子國), 예의지방(禮義之邦), 불사지민(不死之民), 선인국(仙人國), 선향(仙鄕), 선인(善人), 은사국(隱士國), 이(夷), 인방(仁邦), 인의지국(仁義之國), 인의지향(仁義之鄕), 대인국(大人國)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명칭들이 있는데, 개국(蓋國), 계림(鷄林), 고려(高麗), 구려(句麗), 여진(女眞), 대한(大韓),낙랑(樂浪), 마한(馬韓), 맥국(貊國, 貊國, 國), 백민(白民), 백의(白衣), 백제(百濟), 부여(夫餘, 扶餘), 사로(斯盧), 삼한(三韓), 신라(新羅), 예맥(濊 ), 우이( 夷), 조선(朝鮮), 진한(辰韓), 진역(震域), 청구(靑丘), 청해(靑海), 해외(海外) 등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라 이름 들이다.
이렇게 나라의 명칭이 많았던 것을 볼 때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의 관심의 대상이었고, 선진 문화를 가진 나라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왜냐 하면 문화가 뒤진 나라였다면 나쁜 의미의 이름들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배달 겨레는 고래(古來)로 여러 다른 민족들보다 앞선 문화를 가지고 동방 문명을 선도하여 왔고, 더불어 무궁화도 번성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군자의 나라와 무궁화 |
▲<논어>자한편 |
이 구절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풀이가 있으나 동방 구이(九夷)의 땅에 군자가 살고 있었음을 뜻한다고 보는 게 마땅한 해석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구이의 땅이란 곧 한반도를 포함한 중국의 동쪽 일대를 일컫는 것으로 공자가 우리의 선조(先祖)인 동방인을 군자로 일컬은 이래 이와 유사한 기록은 중국 고대의 여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후한(後漢)의 허신(許愼)이 지은《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종
唯東夷從大大人也夷俗仁仁者壽有君子不死之國 유동이종대대인야이속인인자수유군자불사지국 以孔子之乘 慾去 이공자지승부욕거 오직 동이는 대(大)를 쫓으니 대인(大人)이다. 이(夷)의 풍속이 어지니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가 있다 하니 공자 같은 성인(聖人)조차도 뗏목을 타고 가고자 하였다. 라고 하였고,《산해경》에는 다음 기록이 보인다. 君子國…衣冠帶劍…其人好讓不爭 군자국 의관대검 기인호양부쟁 군자국 사람들은…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고 있으며…사양하기를 좋아하여 다투지 않는다. ◀<산해경>표지 |
또, 곽박(郭璞 276∼324)이 지은《산해경찬(山海經讚)》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東方氣仁國有君子…雅好禮讓禮委論理 동방기인국유군자 아호예양예위논리 동방은 천성이 어질고 군자가 있는 나라이다. …예양을 좋아하되 예(禮)는 이치에 맡긴다.
고대의 중국인들은 자기네 한족(漢族)을 스스로 높여 중화(中華)라 자칭하고 그 이웃하는 겨레들을 미물(微物) 짐승에 비유하여 지칭하였다. 남쪽 땅의 사람들을 벌레〔南蠻(남만)〕,북쪽은 개[北狄(북적)〕, 서쪽은 싸움패〔西戎(서융), 戎=戈甲(과갑)〕라 하였으나 동쪽의 겨레인 우리 민족을 일컬어서는‘큰 활을 쓰는 사람〔夷(이)=大弓人(대궁인)〕’이라 하였다.
이처럼 우리 나라를 동이(東夷)라 한 것부터가 중화(中華)를 곁한 남·북·서쪽에 위치한 여러 나라와 비교해 볼 때 한 차원 높여 미화시켜 준 것임을 알 수 있다.‘이(夷)’를‘큰 활을 쓰는 사람’으로 본 풀이는《예기(禮記)》,《설문해자(設文解字)》,《후한서》에 잘 표현되어 있다. 《후한서(後漢書)》〈동이전(東夷傳)〉서문에는 “동방 사람들을 이(夷)라 일컫는데 이(夷)는 뿌리를 의미하는 바, 즉 인성(人性)이 어질고 생육하기를 좋아함이 마치 만물이 땅에 뿌리를 내려야 생육됨과 같다는 것을 뜻한다….동이(東夷)는 모두 제 고장에 어울려 살면서 음주(飮酒)와 가무를 즐기고, 때로는 고깔 모자를 쓰며 비단옷을 입고 도마와 접시를 사용한다. 이른바 중국이 예의를 잃을 때에는 가서 배워 올 만한 곳이다.”라고 하고 있다. 또,《왕제측기(王制則記)》에서는
東方曰夷…言仁而好生萬物抵地而出 동방왈이 언인이호생만물저지이출 동방을 이(夷)라고 하는데, …어질고 생물(生物)을 좋아하므로 만물이 땅을 밀고 나온다.
하였고,《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에는 “인민은 서로 도적질하는 일이 없어 문을 닫지 않고 지내며, 혼인에는 매매(賣買)하는 버릇이 없고 여인들은 정신(貞信)하여 음란하지 않아 예의가 분명하며, 음식은 나무 그릇으로 하는데, 중국인이 들어간 뒤에는 그를 본떠서 자못 나빠졌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동방삭(東方朔)이 지은《신이경(神異經)》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東方有人焉男皆鎬帶玄冠女皆 衣恒恭坐而不相犯 동방유인언남개호대현관여개변의항공좌이불상범 相譽而不相毁見人有患投死救之如癡名曰善人 상예이불상훼견인유환투사구지여치명왈선인 동방에 사람들이 있는데 남자들은 모두 명주 띠를 두르고 검은 갓을 쓰며 여자들은 모두 옷을 분별하여 입고 항상 공손히 앉는다. 서로 범하지 아니하며, 서로 기리고 서로 헐뜯지 아니하며, 남에게 환란이 있는 것을 보면 목숨을 내걸고 이를 구하여 주니 어리석어 보이나 이름하여 선인(善人)이라 하였다.
이밖에《이아(爾雅)》는‘태평지인(太平之人)’이라 기술(記述)하고 있으며, 《동경잡기》권1〈풍속조〉 에는 당태종이 김춘추에게 신라를 군자지국(君子之國)이라 지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당나라 이후로도 현종이 신라 성덕왕에게 보낸 국서에 군자의 나라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아> |
송나라 영종(英宗)이 고려 문종(文宗)에게 보낸 국서(國書)에서는 우리 나라를‘예의지국(禮義之國)’이라 기록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기록을 보면 신라 때의 최치원은 낭혜화상비(朗慧和尙碑)에‘군자국(君子國)’이라 기록하고 있고, 지증대사비(智證大師碑)에서는‘군자지향(君子之鄕)’이라 쓰고 있다. 근세 조선에 이르러는 《태종실록(太宗實錄)》에‘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 《인조실록(仁祖實錄)》에서는‘삼한예의지국(三韓禮義之國)’이라 하는 등으로 일반화되었다. 이 군자의 나라, 예의의 나라는 또한 중국의 고문헌(古文獻)에 무궁화의 나라로도 알려져 있다.
중국 상고대(上古代)의 지리와 풍속 등을 기록한 《산해경(山海經)》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는데 여기에서 훈화초(薰華草)는 무궁화를 말하는 것이다.
君子國在其北…有薰華草 朝生夕死 군자국재기북 유훈화초 조생석사 군자국이 그 북쪽에 있다.…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나서 저녁에 죽는다.
또,《고금주(古今注)》와《원중기(元中記)》에도 이와 유사한 기록이 있는데, 후술(後述)하기로 한다. 이러한 기록들로 미루어 우리 조상들이 군자의 나라, 인의(仁義)·예의(禮義)의 나라라는 칭송을 들을 만큼 용감하고도 겸허한 양면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나라의 곳곳에 아름다운 무궁화가 만발해 있어 고대로부터 중국인들은 우리 나라를‘무궁화 동산’으로 인식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무궁화가 군자(君子), 인자(仁者), 대인(大人)을 상징하는 나라꽃으로 비유됨은 이미 5천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시원(始原)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백의 민족과 무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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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산해경》,《고금주》등 고문헌에‘우리 나라에 무궁화가 많다’라고 기록된 것은 단순히 중국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 나라의 자연 경물만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기록은 우리 나라 산천에 무궁화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애지중지하는 우리 민족의 감성을 은연중 표출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우리의 선인들은 밝고 맑은 것을, 색으로 치면 흰 것을 그지없이 사랑하였다. 희고 밝고 맑은 것의 시원은 하늘이요, 그 하늘의 태양이요, 그 태양을 주는 것이 아침이다. 그래서 우리 고대 국가 시절의 땅 이름, 사람 이름, 벼슬 이름들에는 희고 밝고 맑은 것 및 아침과 연관을 가진 것이 많다고들 하였다. 태백(太白)은‘한밝’이요, 신단수(神檀樹)와 단군(檀君)의 단(檀) 곧,‘박달나무’의‘박’은‘밝음’의 ‘밝’과 상통한다고 하였다. 환웅(桓雄), 환국(桓國)의 ‘환’이 또한‘하늘,한’의‘한’과 통하며, 백산(白山)의‘백이’또한‘밝음’의‘밝’이라 하였다. 조선(朝 鮮)의 조(朝)는 밝음을 주는‘아침, 아사’요, 이는 또 ‘아사달(阿斯達)’의‘아사’및 일본말의‘아사(朝, アサ)’와 같은 것인가 하면,‘맥(貊·맥)’이 또한 우리의 백(白)을 낮추어 중국인이 변방 겨레를 일컬을 때 즐기는 짐승 이름의 변(邊)을 붙여 만든 글자라 하였다. 그것 뿐인가? 숙신(肅愼)의 숙(蕭), 말갈(靺鞨), 조선의 선(鮮)을‘밝’과 같은 근원의 유의어(類義語)인‘맑음’의‘맑’과 관련을 두어 본 이가 있는가 하면 박혁거세(朴赫居世), 불구내왕(弗矩內王)의‘박· 혁·불구’를 또한 밝음과 관련지어 본 이도 있다. 그 입론의 타당성 여부에 대하여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주어진 한자 그대로를 가지고서도‘태백 ·백산·맥’등에서 백색 선호(白色選好)의 한 경향이 있었음을 충분히 살피고도 남음이 있다. 묵자(墨子)는 어떤 사람이 실에 물을 들이는 것을 보고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했다. 墨子見染絲者而泣曰染於蒼則蒼染於黃則黃言其可 묵자견염사자이읍왈염어창즉창염어황즉황언기가 染於善而不可染於惡也 염어선이불가염어악야 푸르게 물들이면 푸르게 되고, 노랗게 물들이면 노랗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사람도 착한 데에 물들여지면 결코 악한 데에 물들지 아니한다.
▲<조선어독본>표지 |
아직 잡(雜)스러움에 물들기 이전인, 청정무구(淸淨無垢)의 순수 곧, 흰빛은 밝고 맑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한 커다란 인류 문화 발상의 주역이었던 중국인들에게서, 이미 4천년 전부터 군자국으로 대우받은 겨레였기에 그 순수에 걸맞는 색깔이 바로 흰색이다. 더욱이 밝고 맑음을 사랑하던 민족, 그 밝고 맑음의 근원인 해와 아침을 숭상하던 민족이었던 만큼, 그 모두의 속성을 구비한 무궁화를 사랑했던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일본에게서 수난을 당하던 시대에 왜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쳤었다. 다음은 1937년도 총독부 발행의 보통학교 4학년 《조선어독본》에 실린 글이다. |
여러분, 春夏秋冬(춘하추동) 四(사)철을 通(통)하여, 흰옷을 입는 것은, 우리 朝鮮(조선)서 예로부터 내려오는 習慣(습관)이 올시다. 이것은, 朝鮮(조선)에서 染色(염색)하는 方法(방법)이 充分(충분)히 普及(보급)되지 못하얏든 關係(관계), 國喪(국상)·父母喪(부모상)其他(기타)喪服期間(상복기간)이 길엇든 關係(관계)等(등), 여러 가지 事情(사정)이 잇서 그러하얏겟지마는, 여름 더운 동안은 하는 수 업다 할지라도, 春秋冬(춘추동)三(삼)철까지 흰옷 입는 것을 과연 조은 習慣(습관)이라 하겟습닛가. 매우 遺憾(유감)이지 마는, 나는 그러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 첫째 理由(이유)는 洗濯(세탁) 及(급) 其他(기타)費用(비용)의 不經濟(불경제)올시다. …그 둘째 理由(이유)는 時間上(시간상) 不經濟(불경제)올시다. …그 셋째 理由(이유)는 勞力(노력)의 不經濟(불경제)올시다. 그 外(외)에도 흰옷은 빨래와 다듬이질하는 度數(도수)가 잦은 까닭에 쉬 해지는 것, 더러워질가 하야 입은 사람이 마음껏 活動(활동)치 못하는 것, 熱(열)을 吸收(흡수)치 안는 까닭에, 치운 節期(절기)에는 何如(하여)튼 不適當(부적당)한 것 等(등)여러 가지로 조치 못한點(점)이 잇습니다. 정말 고소(苦笑)를 금치 못할 언설(言說)들이다.
이렇게 말한 저들의 지위가 우리 나라 황실의 의복이며, 관위를 가졌던 이들의 조복(朝服)이며 수의(壽衣)이며, 행세하는 집안 사람들의 명절 의복 등을 볼 만한 처지에 있었다면, 언감생심(焉敢生心) 우리의 염색 방법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한갓 초야에 묻혀 살았던 이름 없는 화공들이 그려 남긴 민화(民 )들의 찬란한 색채 하나만을 보았더라면, 그 따위 부당(不當)한 언설(言說)을 펴지는 못했을 것이다. 세탁의 비용, 시간, 노력의 과중 운운하지만, 도대체 무색 옷이라 해서 흰옷보다 더 오래 입으며, 빨래를 늦춰 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남방 미개인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말에서의 첫째인 몸가짐, 부용(婦容)에서의 여인네 치레의 정결 존중 등, 우리는 그 입은 옷이 비록 무색 옷일지라도 때가 찌들도록, 흰옷보다 오래 입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감히 하지 않았던 민족이었다. 저들이 노력 경제 운운의 억지를 쓰고 있으나 하루에 한 번 아니라, 열 번을 세탁한다고 해도 기계가 자동으로 해치워 힘들지 않은 오늘날 같은 편의로운 기계화 시대가 도래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시간 운운하지만 그들이 정작 우리의 세탁하는 시간의 많음을 안타까워 그런 것이 아니고, 그들의 착취를 위한 시간의 소모를 안타까워 함이었다.
이는 결코 우리들을 위한 충언이 아니라, 흰빛을 숭상하는 우리의 민족정신·민족혼을 말살하여, 끝내는 저네들에게 동화시키려던 약은 발상이었던 것이다. 자고이래(自古以來)로 우리는 무궁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고, 무궁화 중에서도 눈부신 흰 바탕에 다홍의 화심을 가진 백단심(白丹心)을 더욱 사랑하였다. 이것은 순백색 계통의 무궁화가 백의민족으로 불리 우는 우리 민족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청정무구의 밝고 맑은 흰빛, 해와 아침을 숭상한 선인들의 진실한 마음과도 같은 그 빛깔의 선호(選好)는 한국과 한국인이 있는 한 영원히 존속할 것이다.
무궁화의 학명(學名)중‘히비스커스(Hibiscus)’라는 말이 있는데,‘히비스’란 이집트의 아름다운 여신(女神)이며,‘커스’란 닮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무궁화는‘아름다운 신(神)을 닮은 꽃’이 된다. 또한 무궁화를‘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라고도 하는데, 샤론이란 성경에 나오는 성스러운 땅을 일컫는 것으로,‘선에게 바치고 싶은 꽃’또는‘성스러운 땅에서 피어나는 꽃’이라는 뜻이다. 단군시대(檀君時代)에는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祭天壇)을 만들어, 이 신성(神聖)한 자리의 둘레에 무궁화를 심었다는 기록도 보이고 있다. 이밖에 무궁화를 신성시(神聖視)한 예는 여러 문학 작품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무궁화의 명칭으로 부상(扶桑)을 사용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당(唐)나라 양경(楊烱)의 시(詩)에 다음의 구절이 있다. |
사기(絲琪)라는 것을 기화(琪花)로 생각한다면, 기화는 신선(神仙)이 사는 곳에 피는 아름다운 꽃을 말하는 것이므로 실제 존재하는 꽃은 아니다. 이와 대립(對立)하여 무궁화를 사철 피는 꽃이라 하였다. 신선이 산다는 선경(仙境)의 아름다운 꽃인 기화에 무궁화를 비유한 것은 그만큼 무궁화를 신성시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동일한 예를 더 들어 보면《광주기(廣州記)》에, 平興縣有樹似槿又似桑四時有花此蕣木也 평흥현유수사근우사상사시유화차순목야 평흥현에 무궁화 비슷한 나무가 있는데 마치 뽕나무 같기도 하다. 사철 피어 있으니 이것이 순이라는 나무다.
라고 하였고,《장자(莊子)》에는 또 다음과 같은 고사(古事)가 있다. 上古有椿者以八千歲爲春八千歲爲秋 상고유춘자이팔천세위춘팔천세위추 옛적에 춘(참죽나무)이 있어 팔천년을 봄으로 하고, 팔천년을 가을로 한다. 위의 고사에 대하여 사마표(司,馬彪)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木槿也以萬六千歲一年一名蕣椿 목근야이만육천세일년일명순춘 무궁화는 만육천 해를 일년으로 하니 그 이름 순춘이라. 예로부터 춘(椿:참죽나무, 대추나무)은 장수(長壽)하는 나무로 전하여지고 있어 오늘날 친구의 부친이나 남의 부친을 춘부장(椿府丈)이라고 한다. 봄이 팔천 세요, 가을이 팔천 세면 춘추(春秋) 합하여 만육천 세이다. 춘추는 곧, 일년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마표가 만육천 세로 일년을 삼는다 하는 말은 춘(椿)의 춘추를 설명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다만, 고대부터 춘(椿)은 오래 사는 나무라는 전설(傳說)이 있는 것을 장자(莊子)는 이를 구체화하여 말한 것이고 사마표는 이것을 더욱 구체화하여 만육천세(萬六千歲)로 일년을 삼는다 하였다. 그러나 사마표가 춘(椿)은 목근(무궁화)으로 달리 한 것을 보면 춘보다는 목근 곧, 무궁화를 신성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무궁화가 당시의 모든 사람들에게 애호(愛護)와 존경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사마표는 그 시대 사람들의 심리를 대표하여 무궁화를 춘과 동일한 것으로 하였으나, 무궁화를 춘과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는 하지 못하고 애매한 명사(名詞)를 하나 지었다. 즉, 무궁화의 이명(異名)인 순(蕣)과 춘(椿)을 합하여‘순춘(蕣椿)’이라고 한 것이다. 세상에 만육천년 동안 사는 나무는 없다. 그러나 그 시대(時代)의 사람들이 무궁화를 지극히 사랑하였으며, 얼마나 신성시하였는가는 넉넉히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또,《본초강목》의 부상조(扶桑條)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佛桑朱佛槿赤槿日及時珍曰東海日出處有扶桑樹此花불상주근적근일급시진왈동해일출처유부상수차화 光 照日其葉似桑因以此之後人訛爲佛桑乃木槿別 광염조일기엽사상인이차지후인와위불상내목근별種故日及諸名亦與之同時珍曰扶桑産高方乃木槿別종고일급제명역여지동시진왈부상산고방내목근별種wwwwww種정정저其枝柯柔弱葉深綠微 如桑其化有紅黃白三色紅종기지가유약엽심록미색여상기화유홍황백삼색홍者尤貴呼爲朱槿 含草木狀云朱槿一名赤槿一名日자우귀호위주근혜함초목장운주근일명적근일명일 及及出高 郡花莖葉皆如桑其葉光而厚木高四五尺而 급출고량군화경엽개여상기엽광이후목고사오척이 枝葉婆娑其花深紅色五出大如蜀葵重敷柔澤有 一 지엽파사기화심홍색오출대여촉규중부유택유예일 條長於花葉上綴金日光所 疑若焰生一叢之上日開 조장어화엽상철금일광소삭의약염생일총지상일개 數百朶朝開暮落自五月始至中冬乃歇揷樹卽活 수백타조개모락자오월시지중동내헐삽수즉활 불상, 주근, 적근, 일급, 시진이 말하기를, 동해의 해 돋는 곳에 부상(扶桑)나무가 있는데, 이 꽃은 햇빛이 비치면 곱게 빛난다. 그 잎이 뽕나무와 비슷하여 후세 사람들은 불상(佛桑)이라 했다. |
▲<본초강목>부상조 |
이것은 목근(木槿:무궁화)의 다른 종자이기 때문에 일급(日及)의 모든 명칭 또한 같은 무리이다. 시진이 말하기를, 부상은 높은 땅에 자라고 목근의 다른 종자인데 그 가지는 부드럽고 약하다. 잎은 짙은 녹색으로 뽕잎같이 약간 꺼칠하다. 꽃은 홍, 황, 백 3색이 있는데 붉은〔紅〕것이 더욱 귀하며, 주근(朱槿)이라 부른다. 혜함의 《초목장》에 이르기를 주근은 일명(一名) 적근(赤槿)·일급(日及)이며, 높고 서늘한 고을에 난다. 꽃대와 잎은 모두 뽕나무와 같다. 잎은 빛나고 두꺼우며, 나무 높이는 4∼5척(尺)된다. 가지는 잎이 많이 떨어져 성기다. 꽃은 짙은 붉은 색으로 다섯 가지가 나타나는데 큰 철쭉꽃 같고, 부드럽고 윤이 나고 겹쳐서 무성하다. 꽃잎보다 긴 꽃술이 한 줄기 있는데, 위에는 금가루를 뿌린 듯하고 햇빛을 받으면 꼭 불꽃이 일어나는 것 같다. 한 떨기 위에 매일 수백 송이의 꽃을 피운다. 5월부터 시작하여 아침에 피고 저녁에 떨어지는데 겨울에는 그친다. 꺾꽂이로 심으면 산다. 여기서 부상은 무궁화의 별종(別種)이며 불상, 주근, 적근, 일급 등으로 불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상에 대하여 좀더 알아보면, 陽谷上有扶桑十日所浴在黑齒北居水中有大木九日 양곡상유부상십일소욕재흑치북거수중유대목구일 居下枝一日居上枝 거하지일일거상지 양곡의 위에는 부상이 있는데, 이곳은 열 개의 태양이 목욕하는 곳으로 흑치의 북쪽에 있 다. 물 가운데에 큰 나무가 있는데, 아홉 개의 태양이 아랫 가지에 있고 한 개의 태양이 윗 가지에 있다. 위의 글은《산해경》의 〈해외동경〉에 실려 있는 것이다. 또, 이 글 중 부상에 대한《십주기(十州記)》 의 주(註)는 葉似桑樹長數千丈大二十圍兩兩同根生更相依倚是 엽사상수장수천장대이십위양양동근생경상의기시 以名之扶桑 이명지부상 잎은 뽕잎 비슷하고 키가 수천 장(丈), 둘레가 스무 아름인데, 두 그루씩 한 뿌리에서 나 와 서로 기대고 있기 때문에 부상이라고 한다.
라고 하였고, 부목(扶木) 혹은 약목(若木)이라고도 하는 신목(神木)이라 덧붙이고 있다. 또,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우국지사 굴원(屈原)의 《초사(楚辭)》에 수록된 작품 중〈이소경(離騷經)〉이라는 장편의 시(詩)가 있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飮余馬於咸池兮總余 乎扶桑 음여마어함지혜총여비호부상 折若木以拂日兮聊逍遙而相羊 절약목이불일혜요소요이상양 함지(咸池)서 내 말에 물을 먹이고 부상(扶桑)나무에 고삐를 매어 두고, 약목(若木)을 끊어 해를 쫓아 보내고 잠깐 소요하며 다시 노니네. 위시에서 함지(咸池)는 태양이 목욕하는 곳, 즉 해가 들어가는 연못을 말하고 말(馬)은 뿔 없는 용(龍)을 가리킨다. 부상은 동극(東極)의 신목이며 태양이 이 나무 밑에서 나오고, 약목은 서극(西極)에 있다는 신목(神木)의 이름으로 그 꽃이 대지(大地)를 비춘다고 한다. 곧 위의 2행은 동쪽 끝의 들을 거쳐 서쪽 끝의 들로 가서 서산(西山)에 지려는 해를 약목을 꺾어 한 번 쳐서 도로 돌려 보내고 다시 배회(徘徊)한다는 말이다. 또, 1914년에 김교헌(金敎獻 1868∼1923)이 지은 《신단실기(神壇實記)》에 조선 후기의 정두경(鄭斗卿 1597∼1673)이 지었다는 시가(詩歌)가 실려 있는데, 그 중에 다음의 구절이 있다.
扶桑賓白日이오, 檀木上靑雲이라.
부상빈백일 단목상청운 부상나무에 흰 태양이 오르고, 박달나무에 푸른 구름 일어났네.
▲단재 신채호 |
또《단재 신채호 전집(丹齋申采浩全集)》을 보면 조선 고대 신화(神話)인 〈구미호(九尾狐)와 오제(五帝)〉라는 것이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수긍과 그의 스승 태화 선인(仙人)사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수긍이 어느 날 어떤 이인(異人)과 만나 그의 박학(博學)에 경탄하여 스승보다 능가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데서 작품은 시작한다. 그 이인은 곧 구미호가 둔갑한 것이었는데 이를 깨우치기 위해 태화 선인은 거대한 무궁화나무 가지를 꺽어 조화(造化)를 부려 싸움을 하여 이를 물리치고 수긍의 의혹을 깨친다는 내용이다. 주문(呪文)이 끝나자 수긍과 태화 선인은 몸도 가벼이 둥둥 떠서 구름 밖으로 날아 동쪽으로 7일 동안 가다가 한 곳에 이르렀다. 그곳은 네모가 반듯한 섬이었는데, 사방(四方)이 각각 사백 리(里)씩 되고 그 중간에 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
나무의 둘레는 수천 척(數千尺)이나 되는데, 동쪽으로 벋은 가지는 고르고, 남쪽으로 벋은 가지는 붉고, 북쪽으로 벋은 가지는 검고, 서쪽으로 벋은 가지는 희고, 가운데 가지는 누른 빛인데, 그늘이 온 섬을 덮고도 남음이 있었다.…〈중략〉… 수긍이 묻기를“오제(五帝)는 천신(天神)의 조력자(助力者)인데 어떻게 선생(先生)이 이를 부렸으며, 오색(五色) 나무는 무슨 나무이기에 신(神)이 이 나무에 의거(依據)합니까?” “이 나무 이름은 부상(扶桑)이라 한다. 또 일명 무궁화나무라고도 한다. 세상 사람들이 부상을 뽕나무의 일종(一種)으로 아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무궁화는 부여(扶餘)의 신성한 나무인데 그 잎이 뽕나무 비슷하다 하여 부상이라 일컫는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부상은 우선 오색(五色)이 나지 않고 오직 무궁화만 오색이 나나니, 천지간(天地間)에 나서 천궁(天宮) 아래서만 자라난다. 바람, 비, 눈, 서리, 벌레, 새, 짐승 또는 사람들의 침략도 받지 않으므로 다섯 가지 정기(精氣)를 독차지하였으니, 능(能)히 오색을 갖추어 변치 않는 것이다. 오제의 신(神)이 이를 사랑하여 늘 여기 와 노는데 실로 신을 공경하지 않는 자(者)는 그 자리를 알지 못하며, 비록 안다 해도 그 신을 능히 부릴 수 없나니, 그 신을 이미 알고 그 신을 능히 부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하나뿐이다.”
이 글을 통해서 볼 때 부상은 곧 무궁화로서 신목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이 쓰여지던 일제 강점기에는 부상이 일본의 이칭(異稱)으로 쓰여지기도 하였다. 다음은 한일합방 전야(前夜)에 함녕전(咸寧殿)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모리 오노리〔森大來〕, 마스야 아라스케〔曾彌荒助〕, 이완용(李完用)등 합방의 주역들이 연회를 가졌을 때 이들이 지 은 합작시(合作詩)이다. 甘雨初來霑萬人(伊 ) 감우초래점만인 이등 扶桑槿域何論態(曾彌) 부상근역하론태 증미 咸寧殿上露華新(森) 함녕전상로화신 삼 兩地一家天下春(李) 양지일가천하춘 이 단비가 처음 내려 만사람을 적셔주니, 부상과 근역을 어찌 다르다 논하리오. |
함녕전 위에 이슬 빛이 새로워지니, 두 땅이 한집되어 천하가 봄이로다. 이 시에서 부상은 일본을 지칭하고, 근역(槿域)은 우리 나라를 일컫는 대명사(代名詞)로 쓰이고 있다. 이를 볼 때 부상은 신목 이외에 나라 명칭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는데, 전술했듯이 부상은 우리 나라의 명칭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일본을 지칭하는 명칭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상에서 부상이 무궁화이고, 신성한 신목으로 다루어지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오늘날 우리가 무궁화를 겨레 꽃으로 삼고 있으나, 아직까지 그릇된 인식(認識)으로 이를 잘 보살피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무궁화는‘신의 꽃’이요, 신목(神木)인 부상(扶桑)이다. 소중히 다루고 가꾸는 정신을 길러야 하겠다.
첫댓글 중국내에서도 간혹 무궁화를 만나봤습니다. 지금 제가 거주하는 지역에도 무궁화가 있는데, 한국 것 하고는 종이 약간 다릅니다.
아마도 우리네 선조님들이.옮겨 심은것이아닐런지요.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