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최고 ‘K-라면’의 비결… ‘스피드’와 ‘스마트’
농심, 전 공정 자동화에 대규모 투자
BBC, “세계 최고 수준 스마트 공장”
100여 개국에 라면 50억 개 수출
‘글로벌 1위’ 목표로 기술 업그레이드
신동원 농심 회장이 공장을 방문해 라면 제조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농심은 현재 세계 5위 규모의 라면 생산 기업이며 지난해 해외 매출이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섰다. 농심 제공
2020년 영국 공영방송 BBC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고 친환경적인 공장을 소개하는 ‘슈퍼팩토리’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포스코제철소와 농심 구미공장을 꼽았다. 그중에서도 구미공장에 대해 ‘라면 제조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 공장’이라고 했다.
농심의 구미공장은 32년째 국내 라면 소비 1등 브랜드인 ‘신라면’ 생산량의 70%를 만들어 내는 곳이다. 최근 수년간 삼성전자, LG전자, 아모레퍼시픽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이고 ABB 차이나, 태국 CP그룹 등 해외 기업이 구미공장을 찾아 농심의 전 공정 연속 자동화 라인을 살펴봤다. 왜 사람들은 앞다퉈 이 공장을 보러 오는 걸까. 비밀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최첨단 기술이 녹아든 스마트 공장이라는 점, 그리고 이를 이미 20여 년 전에 내다보고 구현했다는 데 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3년 10월 2호(379호)에 실린 농심 스마트팩토리 기사의 핵심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 100만 개당 불량 0.5개뿐
공장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라면의 원료인 밀가루를 담은 거대한 저장고였다. 밀가루는 중앙관제실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자동 계량돼 믹서로 옮겨지고 깨끗한 물로 자동 반죽된다. 밀가루 반죽은 대형 롤러를 통과하며 얇게 펴지는데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하얀 이불 천들이 계속 생산되는 것처럼 보였다. 반죽을 납작하게 누른다고 해서 압연 공정이라고 부르는 이 라인을 지나면 면을 꼬불꼬불하게 만드는 절출 공정이 기다리고 있다. 얇게 펴진 반죽을 국수 형태로 만들면서 아래위에서 밀어주는 롤러의 속도에 차이를 주면 라면의 면발이 완성된다. 절출이 끝나면 100도 이상에서 스팀으로 면을 삶는 ‘증숙’ 과정에 이어 신선한 팜유에 튀겨지는 유탕을 거친다. 이를 급속 냉각하면 우리가 아는 건조 상태의 라면이 된다. 면이 완성되면 또 다른 몇 단계 자동화 과정을 거친 수프를 만나 봉지 안에 함께 담긴다.
공장을 둘러보며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빠르다’는 것이다. 단 1초 만에 밀가루 반죽에서 완제품 10개가 나오는 와중에도 오차 없이 균질한 제품이 만들어진다. 주요 라면 선진국에서는 제품 100만 개당 포장 불량이 2개 정도 나오는데 구미공장은 0.5개로 미국식품의약국(FDA)도 놀라는 수준이라고 한다.
● 공격적으로 해외 조기 진출
스마트 팩토리의 핵심은 생산과 물류에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네트워크로 만들어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데 있다. 구미공장에서는 원료 혼합부터 압연, 절출, 증숙, 절단, 유탕, 냉각, 포장에 이르기까지 전 제조 공정이 지능형 공장 시스템에 의해 관리된다. 공장 내 모든 정보는 공장의 뇌라고 할 수 있는 중앙관제실에 모이고 본사와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구미공장이 지금처럼 변모한 것은 1999년 8월이다. 최첨단 자동화 설비를 일찍부터 구현한 것은 고 신춘호 회장의 안목과 도전 정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신 전 회장은 1980년대부터 “세계 어디를 가도 신라면이 보이게 하라”며 수출을 독려했다. 창업 6년 만인 1971년부터 수출을 시작해 국내 식품 회사 중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공격적으로 해외에 진출했다. 그는 라면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고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김상훈 구미공장장은 “만약 투자가 1, 2년 늦춰졌거나 아날로그 설비를 추가하는 차원에 그쳤다면 세계 100여 개국에 연간 50억 개 라면을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미국 라면 시장 1위 목표로
신 전 회장이 ‘스피드’를 내세우며 혁신을 거듭했다면 2대인 현 신동원 회장은 ‘스마트’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특히 농심이 업계 최초로 적용하고 있는 기술은 AI가 사물을 시각적으로 인식해 데이터화하는 ‘사물 인식 프로그램’이다. AI 프로그램을 카메라와 함께 생산 라인에 설치해 수십만 장의 제품 사진을 데이터화한 후 인공신경망이 불량 유무를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컨대 포장 접합 부분의 패턴이 깨져 있음을 감지하게 하거나 하나의 멀티팩 안에 ‘신(辛)’이라는 글자 5개가 보이지 않으면 불량으로 분류해 걸러내는 식이다. 이 밖에도 신라면은 1.3mm, 짜파게티는 1.55mm, 얼큰한너구리는 1.6mm로 제각각인 면의 굵기를 제품에 따라 다르게 한다거나 한 봉지에 들어가는 면발 수를 100가닥으로 맞추고 개당 무게를 100g으로 정확히 맞추는 모든 과정을 AI가 총괄하도록 했다.
한발 앞서 내다보고 일찌감치 움직인 결과는 이제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하늘부터 땅끝까지라는 ‘실핏줄 전략’으로 100여 개국에 신라면을 팔고 있는 농심은 현재 세계 5위 규모의 라면 생산 기업(글로벌 시장조사기업 유로모니터 조사 결과)이다. 지난해에는 해외 매출이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으면서 라면을 ‘K푸드’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라면 원조국 일본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월마트는 신라면 블랙을 지난해 모든 지점에 입점시켰다. 뉴욕타임스의 제품 리뷰 사이트 와이어커터는 신라면 블랙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으로 선정했다.
신 회장은 2030년까지 미국 시장에서 지금의 세 배 수준인 연매출 15억 달러를 달성하고 라면 시장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농심은 이르면 2025년 미국 제3공장을 착공하고 시장 공략에 한층 속도를 더 낼 계획이다.
구미=허문명 기자, 정리=최한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