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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인플레이션 현황과 원인
2023년 7월 초 크로아티아는 유로존 국가 중 두 번째로 높은 인플레이션을 기록했다. 슬로바키아가 10.2%로 1위였고 크로아티아는 8.1%로 그 뒤를 이었다(Eurostat, 2023a). 소비자물가조화지수(HICP, Harmonised Index of Consumer Prices) 기준으로 크로아티아의 인플레이션은 유로존과 유사한 수준이었으나, 2022년 3월을 기점으로 심화되어 2022년 11월에는 13%를 기록했다. 이후 서서히 하락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다른 유로존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선이 더디다.
크로아티아에서 인플레이션이 쉽사리 개선되고 있지 않은 이유는 수요와 공급 양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수요 측면에서 살펴보면, 크로아티아는 중앙유럽 경제 대국과 인접해 있어 지리적 특성상 관광 서비스 수요가 높다. 크로아티아 관광업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한 것으로 나타난다. 관광객 수는 코로나 이전보다 증가했고 2023년 1월에서 7월까지 크로아티아를 찾은 숙박 관광객 수는 최고 수준을 기록했던 2019년을 넘어섰다. 또한, 2024년에 예정된 크로아티아 의회, 유럽의회 그리고 대통령 선거도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現) 사회민주당 정부는 여러 시민단체의 요구에 부응하여 공공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공급 측면에서 인플레이션을 견인하는 첫 번째 요소는 54.5%에 달하는 높은 에너지 대외 의존도이다(Kotarski, 2023a). 가스, 전기, 연료비의 상승으로 생활비와 사업비가 증가했다. 두 번째 원인은 EU 내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이다. 2022년 정규직에 고용된 근로자 수가 3% 증가하는 등(Šonje, 2023) 현재 크로아티아의 노동시장은 매우 견고하다. 취업이민비자 발급률이 최고치를 기록했음에도 건설, 관광, 숙박업, 청소관리 등의 분야에서 인력 부족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수 개월간 민간 분야의 근로자 임금 협상력이 제고되었고, 높은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2021년 9월 이후 처음으로 실질임금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2023년 6월 크로아티아 실업률은 전례 없이 낮은 5.6%를 기록했다(DZS, 2023). 최악의 상황인 고물가 경기 침체 위기는 면한 것으로 판단된다.
인플레이션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상승하면 대부분의 경우 시민 사회에서 시위가 발생하거나 산업계 그리고 대중의 정당 지지율에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현재로서 크로아티아에서는 그러한 움직임이 없으며, 당분간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23년 4월 EMERiCs 기고문 '크로아티아 경제의 2023년도 전망과 장기적 발전과제(Kotarski 2023b)'에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크로아티아 전체 가구의 85%가 가계대출 없이 자가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가 보유율이 모든 소득 계층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도 크로아티아의 사회적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격 결정에 대한 크로아티아 정부의 직간접적인 개입이 크로아티아의 인플레이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크로아티아 정부의 물가통제
크로아티아 물가는 2단계 시스템으로 결정된다. 1단계는 식품, 비주류 음료, 의류, 소형가전, 신발, 가구, 호텔 및 음식점 등 시장이 결정하는 물가이다. 특히 재화 가격은 크로아티아 경제 수준 대비 상당히 높으며 최근 2년 동안 EU 27개국 평균 가격 대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재화가격의 가파른 증가 추세에는 △높은 관광 의존도 △높은 소비세와 진입 장벽 △경쟁 부재 △규모의 경제를 어렵게 하는 소규모 시장 등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분석된다(Vizek, 2023).
2단계는 가스, 전기, 연료, 교통 등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가격이다. 예를 들어, 크로아티아 정부는 2023년 3월에 에너지에 대한 부가가치세율과 에너지 제품에 대한 소비세 감축, 연금 수급자 등 취약 계층에 대한 사회적 전환 비용 완화 등을 결정했고 전기, 가스와 연료에 대한 가격 상한제 적용 기간도 연장하기로 했다. 시장가격과 상한가격은 국영기업인 HEP(Hrvatska elektroprivreda)에서 통제하고 있다. 2단계 가격 결정 제도에 따른 전기 보조금은 2023년 4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가구와 기업의 소비 수준에 비례하여 지급되고 있으며, 가스 가격 보조금 지급은 2024년 3월 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European Commission, 2023).
지난 2년간 크로아티아의 전기 및 가스 물가 상승률은 EU 국가 중 가장 낮았으며(<그림 1>, <그림 3>) 비(非)가정용 가스의 소비자 가격은 다른 EU 회원국에 비해 엄격하게 통제되었다(<그림 2>). 비(非)가정용 전기 가격만이 상대적으로 다소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그림 4>). 2022년 봄부터 연료 가격 또한 엄격하게 관리되어 크로아티아 운전자는 EU 평균보다 낮은 가격에 휘발유와 디젤을 구매할 수 있었다(European Commissions, 2023b). 국가가 지정한 휘발유와 디젤의 마진은 0.0862유로(한화 약 123원)/L로, 인하된 부가가치세 및 소비세 등을 포함하여 정부 통제로 인해 발생하는 총비용은 약 월 1,700만 유로(한화 약 243억 53706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N1 Hrvatska, 2022). 유럽중앙은행(2023a) 데이터에 따르면 크로아티아 정부가 가격을 통제한 품목들은 다른 유로존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은 상승률을 보이며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했지만,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품목들은 유로존 평균 대비 가파르게 상승했다(<그림 6>). 소비자물가조화지수 데이터 분석 역시 유사한 결론을 말해준다. 교통, 전기, 가스 및 기타 연료 가격을 제외한 모든 물가는 다른 유로존에 비해 훨씬 빠르게 증가했다(European Central Bank, 2023b).
크로아티아의 가계 최종소비지출은 EU 평균의 72%에 불과하다. 이는 크로아티아 국민이 다른 EU 회원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가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연합통계국(Eurostat) 데이터에 따르면 교육, 보건, 주택, 전기, 가스와
<그림 1> 2021년 상반기 ~ 2022년 하반기 가정용 가스 가격 변화율
자료: Eurostat (2023c)
<그림 2> 2021년 상반기 ~ 2022년 하반기 비(非)가정용 가스 가격 변화율
자료: Eurostat (2023d)
<그림 3> 2021년 상반기 ~ 2022년 하반기 가정용 전기 가격 변화율
자료: Eurostat (2023e)
<그림 4> 2021년 상반기 ~ 2022년 하반기 비(非)가정용 전기 가격 변화율
자료: Eurostat (2023f)
<그림 5> 완전통제, 통제, 시장가격 종합소비자물가지수 추세
(크로아티아 vs. 유로존)
자료: European Central Bank (2023a)
<그림 6> 소비자물가조화지수 (2015=100)
자료: European Central Bank (2023b)
연료를 제외한 모든 소비 분야에서 크로아티아의 물가는 국가 구매력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표1>). 식품이나 비주류(非酒類) 음료 등과 같은 특정 소비 부문에서의 크로아티아 물가 수준은 EU 평균 물가보다 높으며 이는 특정 계층에 생활고를 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전기, 가스, 연료 물가에 대한 정부의 통제뿐만 아니라 생활비의 무분별한 상승을 예방해 주는 의료보험과 교육 등 사회적 서비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국가 예산 사용과 국영기업 운영 시 사회적 안정 보장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국가의 물가통제는 소비재의 약 20%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에너지 비용과 식품 생산비용 간의 연관성을 고려하면 간접적인 영향은 훨씬 크다(Eurostat,2023h). 이러한 크로아티아의 정치경제 구조는 값비싼 수입 제품 가격을 상쇄한다.
<표 1> 물가수준 지표 (2022)
EU=100;크로아티아 평균 가계 소비구조
자료: Eurostat (2023g); Eurostat (2023h)
결론: 인플레이션 극복을 위한
장기적인 대비책 마련 시급
앞서 언급한 정부개입을 통한 물가조정은 장기적이지 않다. EU의 예산 지원과 경제회복기금(RRF, Recovery and Resilience Facility) 등 외부자금 지원이 중단될 경우 정부개입 물가조정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외부자금은 2026년을 기점으로 GDP 대비 점진적으로 감소할 예정이며 현재 19억 4,000만 유로(한화 약 2조 7,8175억 원)에 달하고 매월 1,330만 유로(한화 약 191억 원)씩 증가하고 있는 의료시설 부채는 잔존할 것으로 예상된다(Glas Slavonije, 2022; Udruga poslodavaca u zdravstvu Hrvatske, 2023).
국영기업인 HEP의 조치가 초기 물가 충격 완화에 기여하였고 정치경제 구조 개혁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다 준 것은 분명하나, 지나치게 엄격한 물가통제가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할 만한 사안이다. 2022년 HEP는 7억 7,900만 유로(한화 약 1조 1,17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Litvan, 2023). 이는 2007년 이후 처음 발생한 적자로, 당시 적자 규모는 14만 유로(한화 약 2억 원)에 불과했다. HEP의 적자로 인해 에너지 전환은 불가피하게 지연되고 있다. 정부는 7억~ 9억 유로(한화 약 1조 28억~1조 2,890억 원)의 자본재편을 통해 HEP의 적자를 충당할 계획이며 이로 인해 납세자의 부담이 늘어나게 되었다. HEP의 최소 손실 규모를 크로아티아 인구로 나누면 1인당 185유로(한화 약 26만 5,000원)가량의 부담이 늘어나는 셈이다(Kotarski, 2023b). 정부는 물가통제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잡기도 했지만 21만 9,000명에 달하는 공무원 임금을 인상하는 등 사회적 이전 비용을 증가시켜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더욱 가중시켰다(Vlada Republike Hrvatske, 2023).
물가에 대한 정부 개입과 동시에 급증한 사회적 이전 비용 및 공무원 임금 증가분에 대한 청구서는 내년 선거 이후로 미루어 질 전망이다. 장기적인 국가 개입을 통한 위기 대응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유사한 경제 위기 예방과 탄력적이고 역동적인 경제 구조 구축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단기적인 해결책일 뿐이다. 정부 개입과 가격 규제는 시의적절하고 명확한 목표가 있는 일시적인 조치로 한정되어야 하며 구조개혁이 지속 가능한 번영의 기반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과 더불어 △생산성 증대 △공정한 시장 경쟁 보장△외국인 직접 투자 유치 △에너지 수입 의존도 감축 △원주민 및 이민 노동자 기술 수준 향상 △보조금과 중간 소비에서 과도하게 사용되는 국가 지출 합리화 방안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1). 부유하지 않은 국가에서 정부의 지나친 개입과 변동성 억제는 불안정성을 증가시키고 고통을 지연시킬 뿐이다.
이런 사항들을 고려한다면, 외부자금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현재 크로아티아의 정치경제 구조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EU의 예산지원 및 RRF로 구조적 취약성이 일시적으로 보완되었으나, 2026년 이후 해당 지원 자금이 감소하면 증가한 병원 부채가 의료보험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등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이 수면위로 드러날 것이다.
*각주
1)GDP 디플레이터를 단위 세금, 단위 인건비, 단위 이익으로 분해하면 크로아티아 기업, 특히 대기업의 경우 일반적으로 유로 지역의 기업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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