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의 억측과는 달리 나는 태영건설 계열사인 모방송국에서 제작하는 뉴스를 빠짐없이 시청한다. 그것도 하루에 두 차례나. 저녁 8시 40분과 밤 12시 40분. 스포츠뉴스. 다른 뉴스는 하든지 말든지.
요 며칠 스포츠뉴스 정말 볼만하다. 비좁은 사자우리를 탈출한 승짱 이승엽이 현해탄 건너 일본에서 연일 시원한 홈런포를 펑펑 터트리고 있기 때문이다. 엊그제는 비거리 150미터의 초대형 장외홈런을 날렸다. 이승엽의 방망이가 뿜어낸 장쾌한 홈런타구가 일본 총리관저까지 훨훨 날아가 싸가지 없는 고이즈미의 상추쌈머리 잎사귀에 된장 좀 바르게 했으면 좋겠다. 승짱 파이팅.
30홈런 100타점을 올리지 못해도 괜찮다. 삼진을 당하든 병살타를 치든 위풍당당하게 기죽지 말고 대한의 아들답게 힘차게 방망이를 휘둘러라. 스트라이크아웃은 이해할 수 있어도 일본선수들에게 위축돼 무기력한 플레이를 펼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쯤에서 가상 스포츠소설을 써보도록 하겠다. 만약 이승엽이 구단의 달콤한 약속에 넘어가 해외진출을 단념하고 삼성 라이온즈에 그냥 잔류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삼성이 시즌에 몇 승 더 거두고 대구구장에 관중이 얼마간 더 입장하긴 했겠지만 이승엽이 과연 진정한 국민타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이승엽을 줄곧 따라다니던 부정적 닉네임이 '무늬만 국민타자, 알고 보면 대구타자'였다. 큰 경기에 약하고 선수협 파동 당시 구단의 압력에 굴복해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했던 결과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다른 팀 팬들이 이승엽을 평가절하한 결정적 이유는 삼성 라이온즈의 홈구장인 대구구장의 독특한 구조에 있었다.
대구구장은 프로야구 경기장으로 사용중인 야구장 가운데 좌우측 담장거리가 가장 짧다. 또한 센터펜스와 좌우펜스를 연결하는 타원의 모양이 거의 삼각형에 가까운 형태다. 평상시 바람의 풍향도 홈플레이트에서 외야로 분다고 한다. 홈런공장으로서 최적의 입지다. 잠실이나 사직구장, 혹은 작년 개장한 인천 문학야구장에서는 평범한 외야플라이에 머무를 공이 대구구장에서는 홈런이 된다.
대구구장을 홈그라운드로 쓰고 있는 삼성 주전야수들은 한 시즌에 못 쳐도 15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하곤 하다. 시즌 15개 홈런을 쳐내는 선수는 비교적 장타력이 있는 선수로 분류된다. 삼성에서는 예외다. 실례로 삼성시절 강타자로 통했던 선수들이 정상적인 크기의 구장을 쓰는 타구단으로 트레이드 되면 대개가 무기력하게 헛방망이를 돌리기 일쑤였다.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들에게는 악몽이 따로 없다. 삼성 에이스들은 방어율이 평균 4점대다. 빗맞아도 홈런이라는 놀림을 받는 구장에서 페넌트레이스의 절반을 치러야하는 선수들치고는 발군의 성적이다. 삼성 투수들이 새가슴이 된 것은 홈구장에서 하도 홈런을 자주 맞아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홈런걱정이 적은 LG나 두산, 롯데투수들은 홈에서는 자신 있게 공을 뿌린다. 잠실벌에서는 선동렬이던 선수가 달구벌에서는 차명석이 된다. 그만큼 야구경기의 승패와 개인기록에서 구장 크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이승엽의 실력에 대해 긴가민가했었다. 터놓고 까발리자면 연습생 신화 장종훈의 통산 최다홈런기록이 경신되는 것이 두려웠다. 충청도에 있는 것 중에 마음이 드는 건 오직 프로야구팀 이글스다. 정치권에 돈 뿌리고 해외로 도주한 김승연이란 작자가 얄미워 '한화'란 단어는 빼겠다.
여태껏 나는 여느 이글스팬처럼 이승엽의 홈런기록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장종훈이 대구구장을 홈으로 이용했더라면 통산 400홈런도 기록했으리라고 믿었다. 야구 수준이 한 단계 높은 일본에 가서, 대구구장보다 더 넓은 구장을 운용하는 지바 롯데 마린스 소속으로, 스피드와 컨트롤을 겸비한 일본투수들을 상대로 맹타를 휘두르는 것을 목격하니 내가 100%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장하다 이승엽. 예쁜 제수씨께 안부 전해줘.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낯선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을 보면 한국에서 어느 팀에서 플레이를 했었든 무조건 격려부터 해주고 싶다. 전성기 선동렬이 국내에서 현역으로 광속구를 뿌려댈 무렵, 안타 맞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렇게 통쾌했었는데 막상 그가 일본에 진출한 첫 해,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몹시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꼭 대한민국 국보급 문화재가 일본에 가서 이리저리 함부로 발로 채이는 기분이었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은 넓은 무대에 나가 마음껏 기량과 재주를 뽐내야 한다. 억지로 우물안 개구리로 가둬서 잠재력과 발전가능성을 질식시켜서는 안된다.
선동렬을 붙잡아두고자 해태구단이 온갖 잔꾀를 부리자 앞장서서 해외진출을 요구한 이들이 열성 해태팬들이었다. 해태가 프로야구 패권을 한두 번 더 차지하는 것보다 무등산 폭격기가 국제적으로 위용을 과시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선동렬은 해태급 투수를 벗어나 국보급 투수로서 나고야의 태양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나는 이글스가 반드시 V2를 이루기 바란다. 하지만 이글스가 한국시리즈 챔피언 반지를 끼기 위해 미국에 가 있는 박찬호를 불러들인다면 선두에서 반대할 것이다.
박찬호가 한화 이글스에 입단해 삼미 슈퍼스타스의 너구리 투수 장명부가 수립한 시즌 30승 기록을 깨는 것은 반갑지 않다. 메이저리거 한국인 1호 박찬호와 같은 고향인 것이 자랑스럽지 이글스의 제1 선발 박찬호와 동향인 것은 전혀 기쁘지 않다. 박찬호가 금년 시즌에도 재기를 못하고 텍사스의 석양 너머로 사라진다 해도 박찬호의 도전과 성공, 그리고 좌절을 기꺼이 찬양하리다. 찬호야, 너 없어도 금강물 마시고 배터질 사람은 많단다. 시련속에서 죽는 것이 누워서 떡먹기 하면서 사는 것보다는 낫단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막내동생뻘 되는 젊은 청년들이 불리한 타향살이를 기꺼이 감수하며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광경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대구에 짱박혀 세과시에 여념이 없는 박대표의 모습은 초등학생들 데리고 공차면서 자기가 마치 호나우도라도 되는 양 골 세리머니를 연출하고 있는 퇴물축구선수와 진배없다. 좌우 펜스거리를 50미터로 당겨놓고 한 시즌에 홈런 백 개를 쳤다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엽기적인 야구선수와 용호상박이다.
선거를 야구에 비유하자면 TK는 무척 특이한 구장이다. 좌우 펜스거리 50미터에서는 유격수가 충분히 잡을 내야플라이도 어마어마한 비거리의 큼지막한 홈런이 된다. 선수와 감독에 더해 관중들까지 그토록 희한한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활용하면서 줄곧 자기들이야말로 진정한 홈런왕이라고 우긴다. 그래서 웃긴다. 박근혜 대표, 좌우펜스 50m에 중앙펜스 60m짜리 구장에서 열심히 홈런왕 되세요. 말리지 않을게요. 기록 만들어주기도 이만하면 가히 노벨상감이다. 한나라당 정치 자영업자들이 DJ의 노벨상 수상에 얼마나 배아파했던가. 이참에 아예 차떼기들 주장처럼 노벨상 위원회에 로비해 노벨기록상 신규로 제정해보시라.
공화당 허경영 총재와 내가 몸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영혼이 바뀐 것일까. 나는 박근혜 대표가 잘 되기를 바란다. 진심이다. 조만간 한나라당 컨테이너박스 당사를 구경 반 스케치 반의 목적으로 방문할 심산이다. 강금실 장관과 송광수 검찰총장처럼 나도 박대표와 사이좋게 팔짱끼고 사진촬영 하고 싶다. 그리고 대대로 가보로 보관하겠다.
박대표의 자칭 무보수 정치 컨설턴트 자격으로 강력히 코치하는 바이다. 외야 펜스거리를 정상적인 길이로 조정해놓고 당당하게 실력으로 승부해 정치적으로 입신하시라. 현재와 같이 국민타자의 길을 애당초 포기한 채 대구타자 노릇에 자족한다면 박대표에게 미래는 없다.
TK지역의 몰표는 박근혜 대표에게 두고두고 짐이 될 것이다. 연로한 홈팬들의 편집증적 집착은 국민타자를 대구타자로 주저앉히는 원흉이다. 박대표께 직언(直言)하겠다. 펜스거리 당겨서 공갈포성 홈런 날리며 홈팬들에게 영합하는 짓은 당장은 좋아도 나중에 부메랑으로 돌아와 선수생명을 망치게 되어 있다. 똘똘 결속한 소수 팬들의 컬트적 숭배를 받는 대구타자가 될 것인가? 전국 어디를 가도 고루 박수를 받는 국민타자가 될 것인가? 선택은 박대표 본인의 몫이다.
유권자들도 각성해야 한다. 대구팬들은 프랜차이즈 스타를 키우는 지혜와 인내가 너무 부족하다. 관중들이 홈런만 치라고 성화를 부리면 타자는 실력에 상관없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홈런만 노리게 되어 있다. 이런 편법과 무리수는 홈에서는 통해도 원정경기에서는 즉시 퇴장감이다. 비싼 몸값 치르고 스카우트한 유망주마다 번번이 먹튀성 골목대장으로 전락시켜온 삼성 라이온스의 처절한 실패담을 그대로 되풀이할 작정인가. 정치에 있어서 홈팬들의 난동과 홈팀의 텃세에 기댄 안방불패 전설은 패망의 지름길이다. 정정당당한 홈 앤드 어웨이는 정치를 포함한 세상만사를 관통하는 법칙임을 늦게라도 깨달아야할 것이다.
첫댓글 이런 맥락으로 보면 추미애의원의 광주에서 3보1배는 우리 정치를 한단계 밑으로 끌어 내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 할수 있습니다.. 즉 광주시민과 전라도사람들을 우롱한 처사라 할 수 있겠습니다.
뉘신지 모르오나 존경하오...글쓰신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