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동문
아르헨티나서 왔어요, 김포시에서 경전철 운전해요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40호(2023.03.15)
알비올 안드레스 (조선해양공학11-14)
김포골드라인 기관사
한국인들과 경쟁 거쳐 입사
국내 첫 외국인 기관사
“아르헨티나에서 기관사로 일했습니다. 한국에서 기관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2018년 어느날, 알비올 안드레스 동문은 부산교통공사를 찾아 이렇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외국인은 안 됩니다’. 선례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거듭 알아보니 희망이 보였다. “법적으로 외국인이라고 안 된단 말은 없네요. 한국인과 똑같은 과정을 거치면 될 것 같은데….”
철도 기관사가 되기 위한 첫 관문이자 진입장벽이라는 입교 시험부터 시작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송원대 철도 아카데미에 입교, 400여 시간의 교육을 받고 면허 시험 응시 자격을 얻었다. 필기와 기능 시험을 거쳐 제2종 전기차량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내처 김포골드라인 기관사 공채에 응시했다. 2021년 7월, 아르헨티나에서 온 청년이 국내 최초 외국인 기관사가 되기까지 여정이다.
2월 23일 김포공항역에서 출발한 김포골드라인을 타고 종착역인 양촌역 근처 본사에 가서 안드레스 동문을 만났다. 간밤에 야간 운행을 했다며 청회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유창한 한국어에 그가 철도안전법을 달달 외우고, 악명 높은 철도 면허 구술시험도 통과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철도를 좋아했어요. 한국의 이과에 해당하는 기술고등학교를 나왔고, 당시 철도공학 관련 학과가 없어 아르헨티나 국립기술대학(UTN)에서 조선공학을 전공했죠. 졸업 후 철도 회사에서 철도 정비도 하고 기관사로도 일했어요.”
2010년 직장을 그만두고 호기심에 찾은 한국이 생각보다 더 좋았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에 3학년으로 편입, 졸업 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해 5년간 선박 엔지니어로 일했다.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배보다 기차를 볼 때 더 가슴이 뛰었다. 내국인도 어려운 기관사에 도전한 이유다. “기능 시험에선 산본역에서 남태령역까지 10정거장 동안 모의 연습기를 몰면서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돼요. 그 와중에 감독관님이 ‘PAN(집전장치)이 상승되지 않을 땐 어떻게 하나’ 물으면 ‘축전지 전압 74v 이상 확인, mcb 투입 여부 확인’ 같은 답변을 500개 넘게 외워서 말해야 하죠. 공채 과정에선 경력직으로 지원했어도 신입과 똑같이 교육을 들었습니다. 외국인은 물론, 외국에서 철도 관련 일을 하다 온 한국인의 사례도 없었거든요.”
김포골드라인은 무인 경전철이지만 기관사가 늘 탑승한다. 가끔 수동운전을 하거나 응급상황에 대처하고, 시운전과 회송도 맡는다. 운전석에서 본 세상은 어떨까. “매일 비슷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출근길 열차와 막차는 승객들 분위기도, 하는 일도 다르죠. 막차에서 잠든 승객에겐 ‘어디까지 가십니까’ 묻고 깨워 드리기도 해요. 특히 추운 새벽 일찍 일하러 나오신 노인들, 무거운 카트를 끌고 다니는 할머님들을 볼 때 생각이 많아져요. 우리나라에선 나이 들면 한국 시골처럼 동네에 모여 놀고, 이동할 땐 힘드니까 대중교통보다 택시를 타거든요. 각자 이유가 있을 텐데 조금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요. 한국이 좋지만, ‘내가 나이 들면 이곳에서 잘 살 수 있을까’ 싶고요.”
한국 생활에 익숙해졌지만 아직 불편할 때가 있다. 그의 전체 이름은 ‘Albiol Paradeda Andres Alfredo’. 순서대로 아버지 성, 어머니 성, 이름, 미들 네임이다. 스페인과 아르헨티나 이중 국적인데 각국에서 쓰는 부분이 달라 여권엔 모두 적는다. “얼마 전 운전면허증을 갱신했다. 뒷면 국제면허증에 전체 이름을 쓰고 싶었지만 칸이 모자라서 못 적었다”며 아쉬워 했다. 서울대 졸업장에 적힌 한국어 이름은 ‘미르’다. “누가 한국 이름 물으면 알려주려고 만든 건데, 졸업장까지 적힐 줄 몰랐죠. 졸업증명서 같은 건 정정했어도 졸업장은 다시 만들어줄 수 없다고 들었어요.”
때로 섭섭하지만 ‘유학생이나 선생님으로 온 외국인은 많아도, 나처럼 사회 깊숙이 들어온 경우는 많지 않으니 애로사항이 있겠지’ 헤아려 본다. 다만 정착이 길어지면서 느끼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 올해 37세인 그는 “자국으로 돌아간 외국인 친구도 많고, 남더라도 한국 친구들처럼 결혼하면서 자주 만나기 힘들어졌다. 아르헨티나와 다르게 한국은 결혼하고 나서 친구관계가 많이 바뀌는 것 같다”고 했다.
대학 생활도 조금 다르다. “아르헨티나 대학은 고교 졸업장만 있으면 갈 수 있는 대신 졸업이 어려워요. 그래서 처음 한국에서 친구들이 ‘홍대 놀러가자’고 했을 때 싫다고 했죠. 대학은 고생하는 곳이지, 근처에서 논다는 걸 상상도 못 했거든요. 가장 놀란 건 점수를 못 받았다고 수업을 다시 듣는 거였어요. 아르헨티나에선 학점보다 합격, 불합격이 중요했어요. ‘C면 합격 아냐?’ 했더니 동기가 ‘형, 점수 너무 낮아서 안 돼’ 하더라고요.” 도림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던 등굣길, 선형시험수조에서 선박 실험에 푹 빠졌던 날들은 추억이 됐다.
그는 최근 회사에서 사장 명의의 표창을 받았다. 직원 연구회를 만들어 근무시간 외에도 철도 연구를 할 만큼 성실하다. 지하철 외에 무궁화호 같은 디젤 철도차량 운전 면허도 따뒀다. ‘철도 일을 정말 사랑하는 것 같다’는 말에 어조가 한층 진지해졌다. “그건 제가 유일한 외국인 기관사이기 때문이기도 해요. 전 처음이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외국인이 도전할 수 있잖아요. 뭔가를 첫 번째로 시작한 사람은 시선을 더 많이 받는 만큼 열심히 할 수밖에 없죠. 절 믿어주신 회사에 감사한 마음도 있고요.” 김포골드라인을 타면 기관사 대표로 게재한 그의 인사말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해외 철도사업도 많이 수주하고 있어요. 책상에서 하는 일보다 실무를 좋아해서, 기관사로 경험을 쌓고 해외 철도 현장의 시운전이나 기술 교육에 참여해 한국의 철도 기술을 전하는 일에 기여하고 싶어요. 세상이 변해도 계속 발전하고, 없어지지 않을 사업이라는 게 철도의 매력입니다.”
고향에 간 지 4년 됐다는 그는 얼마전 아르헨티나가 우승한 월드컵 결승전도 안 봤다고 했다. “제가 안 봐야 이기거든요. 밤 근무 끝나고 휴게실 TV 앞에 다들 모였는데, 자러 간다니까 ‘유일한 아르헨티나 사람이 가면 어떡해’ 하시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제게 고맙다고 한 걸로 충분해요.”(웃음) 박수진 기자